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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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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최근연재일 :
2024.06.09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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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3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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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쪽

113. 동행

DUMMY

*


퍽.


하는 둔탁한 타격음은 박영식이 낸 것이었다.

그러니까, 안드레 박이다. 콘란드 대륙에서 쓰고 있는 이름을 따지자면.


“읏차.”


무슨 동네 운동장에서 스트레칭이라도 하듯한 소리를 내는 아저씨, 장년인이다. 검은 머리칼을 길게 길렀다. 조금 덥수룩하게 길러서 웨이브를 넣고 있었고, 거기에 촌스러운 붉은 색의 브릿지도 한 줄기 내려오고 있다.

약간 튀는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영 어울리지 않는 꼴은 아니다. 은근히 서구적으로 선이 굵은 사람이었다. 박영식은. 한국인이 아니어 보일 정도는 전혀 아니었지만.

어울린다는 게 중요하다.


어느 정도 무게감을 갖고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비련의 시나리오 바깥에서 박영식은. 그러나 이런 식으로 취미 활동을 하고 있는데, 자신의 캐릭터를 다소 꾸밀 수 있다면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촌스러운 브릿지는 그가 한 이십 대, 혹은 삼십 대 초반 즈음일 때 유행하던 스타일의 일각이었다. 선풍적인 인기가 있어 모두가 하는 건 아니었지만, 중요한 건 그가 당시에 하고 싶었던 머리라는 점이다.


일탈이라면 일탈일 수 있었다. 실상은 그냥 휴일 날 방구석, 침대형 시뮬레이터 내부에 누워서 게임을 하고 있을 뿐이었지만. 어쨌든 기분이 중요하다. 어차피 기분내기 아닌가.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 여러모로 소일거리를 하는 것도 쓸만한 삶의 노하우였다. 그에겐 비련의 시나리오가 그런 대상이 되어주었다.


아직은 사무소를 내버려두고 완전히 어디 멀리 떠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다같이 휴가 시즌이라도 가지고 싶지만, 무턱대로 장기적으로 회사를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가장 위에 서 있는 그는, 별로 일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늘 일정 거리 안쪽에는 있어야 한다는 불안감이나 책임감이 있었다.

그게 사업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이기도 했고 말이다.

믿을만한 부하 직원들이 많이 있었으나, 때로는 그가 컨펌을 내려야 하는 일도 있고 큰 건이 잘못 틀어졌을 땐 그가 얼굴을 내비쳐야 하는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아직 시대가 많이 발전을 했어도, 화상이나 가상 이미지로 교류하는 게 아니라 직접 찾아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되는 점이 같았다.

그건 아무리 통신 기술이 발전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금 거대한 레드 오크의 후두부를 때려 갈긴 영식은 생각했다.


씁.


이 정도의 손맛. 이 정도의 현실감이 완벽하게 모든 사용자에게 주어진다면, 혹시 나중에는 그 예의가 다소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손을 맞잡고 눈빛을 서로 처다보는 그런 커뮤니케이션이 완벽에 가깝게 구현되는 가상 세계라고 한다면, 정말로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사업상의 주요 파트너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대면하는 게 충분할 지 모른다.


시대가 아무리 발전을 해도, 사람 간에 이루어지는 일은 똑같았기에. 사업이라는 건 결국 사람의 눈빛을 보고 그 속내를 읽어내야 하는 일이었기에 말이다. 아무리 복잡한 안건이 걸려 있고, 다양한 계획과 말들이 떠다녀도 결국 그 일을 해내는 건 사람의 손발이 필요하다. 주체는 그 계획을 실행할 실행자들이었고.

그들의 눈빛을 알고, 어떤 꿍꿍이가 있는지 확인을 하고, 직접 체온을 느끼고 인격과 인간성을 알아 보아야 사업이라는 게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런 점에서 실제의 만남이라는 게 무게감을 가지고 중요하다.

겉으로 완벽하게 좋은 사업 상의 제안을 꺼내드는 사람에, 믿을 만한 커리어를 갖고 있는 상대라고 하더라도 직접 자신의 사람 보는 눈으로 만나보면 다를 때도 있었으니까.


결국 인간 관계라는 건 빼 놓을 수가 없는 일이었고, 또 부분이다. 그것이 사업적으로 커다란 일이 되면 될수록 그러하다. 만나는 사람의 지위나 사회적 신분이 달라질 뿐이다.

사람 보는 눈이 없는 사람은, 사업에도 실패할 확률이 높다.

혹은 어떤 분야의 완벽한 전문 기술을 가진 사람이, 자신이 가진 기술을 온전히 활용만 해서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둘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그런 방식도 존재를 하는 것이 전문화된 요즘 세상이니까.


그러나 결국 몇 사람 이상이 필요한 규모의 거대한 계획을 진행하려면 그 계획에 들어갈 동료들을 잘 골라야 하고, 사람 보는 눈은 사업가에게 있어 꼭 필요한 능력이다.


그런 생각과 지론, 또 경험을 갖고 살아온 영식이 혹시,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할 정도로 비련의 시나리오는 놀라운 현실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뒤통수를 때리는 감각.

정겨운 친구놈의 후두부를 아프지 않게 적당히 까는 정도의 그 손맛, 그 손맛과 비교해도 현실감이 그다지 떨어지지 않는다.

물론 지금 때리고 있는 뒤통수는 친구의 그것이 아니기에 힘껏 깠다.


더군다나 콘란드 대륙에서는 일단 초인적인 능력을 갖고 있는 안드레 박이었으므로, 스킬과 기력술의 제어 능력을 혼용해 거의 치명적일 정도로 때리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둠숲의 레드 오크들은 강했다. 일시적으로 블랙 아웃이 올 정도의 충격을 주어야만, 일단 그가 수월하게 테이밍 스킬을 걸 수가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그와 엇비슷하거나, 약간 약한 정도의 전투력을 가진 생물이었기에 함부로 굴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놈들은 무리지어 다니면서 그가 이미 테이밍했던 숲 어귀의 적마들 따위를 먹이로 삼고 예사롭게 잡아 죽이는 흉폭한 놈들이다.


어려운 몹들을 테이밍하고 있어서, 그의 스킬 경험치와 레벨 경험치 역시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었다. 레벨 업을 하기 전까지는 느끼지 못하긴 하지만, 대략적인 감이 있었다. 이 정도의 난관을 해결했을 때 이 정도의 경험치를 얻게 되는구나, 하는 말이다.


“흡.”


다시금 짧은 숨소리를 내면서 레드 오크의 후두부를 두들겨 깠다.


어둠숲.


심부.


원래 박영식은 이곳까지 오지 않을 테지만, 제냐가 함께 있으니 올 수 있었다.


흰뿔 큰사슴을 잡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오늘의 사냥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테이밍 할 짐승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마침 레드 오크 무리를 발견한 제냐의 인도에 따라 사슴의 시신을 적당한 동굴 어귀에 옮겨 놓고 테이밍을 위해 따로 온 참이었다. 제냐는 근처에서 영식이 사냥을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단지 지켜보고 있는 것만은 아니었고, 먼저 날듯이 뛰어간 뒤 레드 오크들의 전투력을 반감시켜 놓고 구경하고 있던 참이다.


미리 제냐에게 두들겨 맞고 뼈가 빠지고 부러지고, 장기가 상한 놈들이었기에 영식의 손속에도 쉽사리 당하는 녀석들이다.

테이머가 테이밍을 하기 위해서는 교감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야수, 그리고 몬스터라고 불리는 마성을 지닌 종족들이 되었을 때는 교감이 아니라 폭력이 필요했다.

인류를 보면 무조건적인 적의를 드러내기 바쁜 악마종의 그것들은 적당한 커뮤니케이션으로 도저히 테이밍을 해낼 수 있는 부류가 아니다. 길들이기, 는 어디까지나 그게 되는 녀석들에게 통하는 방법이었다.


그 이상은 스킬의 영역, SP를 활용하는 초상적인 기술의 영역이다. 테이머인 영식의 MP는 오크들에게 데미지를 주면서 각인을 찍듯이 그들의 몸에 새겨진다.

적절한 타격을 계속해서 반복하며, 거기에 MP를 남겨놓는 것이다. 영식의 MP는 곧 영식의 스킬을 발휘하기에 적절한 훈련된 군대라고 할 수 있었다.

이미 교육과 훈련이 완벽하게 끝난 상태의 정예병들이었고, 전략, 곧 영식의 테이밍 스킬을 수행하기에 최적화된 수하들이다.


레드 오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MP와 야성, 혹은 마성이라는 게 있다. 그것들 위에 영식의 MP로 인을 찍고 데미지를 준다. 초상 스킬은 여러가지 의미를 가지는 행동들로 이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제약이라는 게 존재하고, 형식이라는 게 존재한다. ‘초상’ 기술이라고는 하지만 진정으로 현실을 초월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것에도 방법이 있고, 또 약점과 강점이 있어서 파훼도 가능하며 사용하기 위해서 일정한 준비 역시 필요해진다.


그런 관점에서의 일이었다. 영식이 레드 오크들의 후두부를 계속해서 때리는 것은.

후두부만 물론 때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끼고 있는 건틀렛은 유연하게 구부러지는 가죽의 부위와, 너클 파트에는 합금으로 판과 그 위의 징이 박혀져 있어서 타격에 유용한 부위로 나뉘어졌다.

거기에 도축용으로도 쓰고 또 자주 사용하는 휘어진 나이프를 들고서 이리저리 데미지를 주고 있는 것이다.


마물들에게 적당한 데미지를 주었으면, 굴복의 과정이 들어간다. 로웰 드버같은 테이머는 흔치 않은 편이다. 그는 일시적인 정신 지배로 소모적인 군대를 만드는 일에 최상급의 재능과 능력을 갖춘 인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레벨은 별로 높지 않았고, 신체적인 스탯과 힘 역시 별볼일 없었지만, 이런 류의 일에 국한한다면 능히 최상급의 실력자라고 할 수 있다.


영식, 안드레 박은 그보다는 떨어지는 수준의 테이머이기도 했다. 단순히 그가 로웰에게 모든 면에 있어서 밀린다는 것은 아니었고, 일례로 로웰보다 더 나은 수준의 직접 전투 능력을 갖추고 있기도 한다.

아직은 레벨이 떨어지고 또 스킬 수준도 낮아서 쫓아가지 못하는 것이지만, 만약 세무 회계 사무소의 사장인 그가 시간이 앞으로 더 남아서 이대로 고레벨이 된다면 모든 면에 있어서 로웰 드버보다 나은 능력자가 되기는 할 테였다.

플레이어 캐릭터들은 모두, NPC중 최상급의 재능을 가진 이들과 동등한 가능성을 품고 게임을 시작한다. 어찌 보면 불공평한 시작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애초에 이 세계는 게이머들을 위해 지어진 것이었으므로 당연한 일이었다.

이 게임의 클리어를 이룰 수 있는 건 NPC가 아닌 플레이어다.

그것이 어떤 유저가 될 지는 전혀 정해진 바가 없었고, 정해진 형식조차 아직은 없었지만 그것만은 분명했다.


단순하게 시간을 수 없이 많이 투자하면 레벨은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그런 근성장 유전자를 타고난 운동 선수라고 보는 게 옳으리라.

그러나 다만, 그보다 본질적인 점을 따지자면 공평이라는 가치에 대해서 조금 더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된다.

근육의 성장 가능성은 최상급의 그것으로 받은 것이 플레이어 캐릭터들이었지만, 복잡한 운동이 된다면 그 스포츠에서 무조건적으로 승리를 할 수는 없었다.

한 순간의 상황에서 어떻게 판단하고 움직일 것인가, 그리고 본질적인 기술의 정수라고 할 만한 것은 단순한 스탯 이상의 집중력과 깨달음이 필요한 것이었으므로.

단순히 근육의 수행 능력이 좋다고 복잡한 구기 종목의 일인자가 될 수는 없는 것처럼, 레벨이 올라간다고 모두가 최정상급의 랭커들처럼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훗날 비련의 시나리오가 서비스된 지 많은 시간이 지나고, 전체적인 레벨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독보적인 솜씨를 지니고 있으리라.

반대로 말해도 단순히 숫자만 높아진다고 그들이 그 수치를 근거 삼아서 탁월한 컨트롤 솜씨를 가진 랭커들을 잡아낼 수도 없는 일이었고 말이다.

정말로 개미와 코끼리 만큼이나 차이가 난다면 혹시 모를 일이었지만.

‘절대’라는 게 거의 없는 게임이다보니 말이다.


“취이이이이!”


레드 오크가 눈빛을 번뜩이며 반항을 하려 했다.


나무들이 자기들의 큰 키를 자랑하며 곧게 서 있는 어둠숲의 한 부근이다. 그리 넓지 않은 공터였고, 바닥은 들쑥날쑥이다. 많이 쌓인 온갖 흙, 바위, 동물의 시체, 잡동사니, 뭐 그런 것들 때문인지 굴곡이 있다. 지면 자체도 애초에 조금 고르지 않은 지형인 것 같았고. 거대하게 자란 침엽수들의 나무 뿌리가 겉으로 드러나서 발을 디디기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처럼 행세를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 나무들의 사이에 레드 오크 열댓 마리가 있었다. 전부 제냐에게 흠씬 얻어맞고, 거의 전투 능력과 의지를 잃어가는 놈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인 공격 의지와 흉포함만큼은 남아서 안드레가 때려도 쓰러지지는 않는다.

레드 오크들 중 가장 바깥에 있던 놈의 급소를 건틀렛의 너클 파트로 때리고, 나이프의 그립으로 치던 그였다.

한 마리가 눈빛이 죽어가면서 힘을 잃고, 몸에 긴장이 풀린다. 그대로 쓰러질 듯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옆에 있던 오크 한 마리가 안드레에게 콧김을 뿜으며 다가왔다.

어디 사지가 잘려나가지는 않았지만, 내부적으로 많은 타격을 입었다. 레드 오크도 고통을 느끼기는 한다. 제냐는 집요하게 때리고 또 썬더 볼트 따위로 지져 놓으면서 몬스터들의 야성을 죽여놓았다.


그와중에 한 놈이 재기를 하며 안드레에게 적대적인 눈빛의 불길을 다시금 태운다. 안드레는 움찔, 하며 몇 걸음 물러섰다가, 이내 놈에게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건틀렛으로 박투술을 시도했다.

칼을 너무 험하게 휘두르면 결국 죽거나, 그에 준하는 치명상을 입게 된다. 지금 레드 오크들은 내부적으로 빈사 상태에 빠졌지만 겉으로는 대개 멀쩡했다.

이 정도면 그래도 테이밍 스킬을 걸고 회복을 시킨 다음에 일에 써먹을 수 있었다. 어디 사지 하나를 잘라버리면 물건을 운반할 힘조차 없으리라. 본말 전도였다. 사냥이나 하자고 어둠숲에 온 것이 아니었으므로 말이다.


그가 버스Bus(커다란 버스에 탑승하듯, 고레벨 유저의 도움으로 쉽게 플레이하는 것)를 타려고 어둠숲에 온 게 아니다. 그럴 의도였다면 아마 안드레가 돈을 받는 게 아니라 제냐에게 돈을 도리어 주었어야 하리라.

제냐의 의뢰에 동참하면서 겸사겸사 경험치를 얻는 모양새는 아주 좋은 것이었지만.


취이이, 하고 전의를 내세우며 다가오는 놈의 근처로 바짝 붙은 안드레였다. 근접 격투가 익숙하다. 건틀렛을 이용한 맨손 전투법이 그가 가진 전투의 요체라고 할 수 있었다. 거기에 근거리에서도 상대의 사지를 날려버릴 수 있는 나이프 하나가 추가된다. 그는 다채롭게 움직였다.


한 두 발만에 붙었고, 다가서자마자 오크의 턱을 날렸다. 레드 오크는 답잖게 느렸다. 둔중한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 정말로 느린 놈들은 아니었는데.

그 거대한 육신을 지탱하는 근육들이 있었다. 대근육부터 시작해서 소근육까지 꽉 들어찬 것이, 오크의 살을 갈라보면 그 단면에서 보인다. 그 근육들 위에 지방으로 덮여 있어서 ‘돼지’라는 모티브에 걸맞은 꼴이 되기는 한다.

그러나 그 체형을 보고 우습게 생각해 덤벼든 자는 좋은 꼴을 보지 못한다.

안드레는 오크에 대해서 충분히 경각심을 갖고 있었다. 제냐가 이미 여기저기를 때리고 두들겨 놓은 뒤라고 할 지라도.


오크의 반응 속도가 현저히 느렸고, 안드레의 타격을 그대로 턱으로 받았다. 쿵, 하는 피륙과 뼈의 울림과 함께 오크는 눈깔이 뒤로 뒤집혔다. 그대로 정신을 잃는다.

잠깐의 기절 정도는 괜찮았다. 오히려, 테이밍을 하기에 좋은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아예 죽는 것이거나 혼수 상태로 들어가서 길게 이어지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정신이 혼미한 틈을 타서 테이밍 스킬을 사용하면 더 약발이 잘 받는다. ‘약’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이 MP로 이루어지는 신비한 기술은 상대의 정신이 온전치 못 할수록 좋았다. 전의가 불타는 때보다는 싸움을 피하고자 할 때, 정신적인 이빨이 꺾여버렸을 때 잘 듣는다.

그러기 위해서 테이머들이 몬스터를 두들겨 패는 것이기도 하다.


테이머에도 계속 말하듯 여러 종류가 있었고, 이것이 안드레 박이 선택한 방식이었다. 로웰 드버처럼 탁월한 의지력이 있어 초상술사로서 일류 이상의 경지에 다다랐다면, 이런 방식이 아니더라도 순식간에 짐승들을 테이밍할 수도 있었다.

나중에 레벨이 오르면 안드레 역시 그렇게 가능할 지도 모른다.


아직도 몇 마리가 남았다. 안드레는 어둠숲의 가운데서, 제냐가 지켜보는 앞에서, 느릿느릿 굼뜨게 움직이는 멍청한 오크들 사이를 거닐면서 열심히 두들겨 패고, 찜질을 했다.

그 타격에 기력술의 요령이 섞여 그의 MP가 오크들의 몸에 계속해서 붙어 남았다. 잔여 MP는 테이밍 스킬의 MP와 한데 호응해서 조금 더 손쉽게 그것들을 길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리라.

퍽, 까득, 팍! 혹은, 쾅!


거친 소리와 함께 안드레보다 키가 훨씬 큰 레드 오크들이 넉 아웃이 되거나, 혹은 의식을 가졌으나 더욱 굼뜬 상태가 되어갔다.

거친 놈들이었으니 거칠게 대한다. 그러고도 테이밍 스킬군에 있는 강화, 치유, 다양한 버프 스킬들을 먹인다면 쓸만할 것이다. 일단은 그의 손아귀에 넣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약 10분에서 20분 사이의 시간 동안, 신나게 찜질을 해 준 뒤에야 테이밍 스킬을 시도할 수 있었다.


*


스으으으윽, 쿵!


거대한 사슴의 시체가 끌려가고 있었다. 장관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어지간한 코끼리보다도 커다란 놈이 은빛으로 빛나는 반투명한 실에 묶여서, 땅에 질질 끌리고 있는 광경이 말이다. 그 경이로움은 물론 시신의 거대함에서도 오지만, 그 시신을 힘차게 끌어 당기고 있는 몬스터들의 완력과 노동에서도 온다.

여러 마리가 붙어야만 했다. 실제로 흰뿔 큰사슴을 놈들이 잡기 위해서는 여러 마리가 필요하리라.


적마, 라고도 불리는 붉은 색 피부를 가진 거대한 당나귀들이 다섯 마리가 있었다.

거기에 일반적으로 알려진 오크종 중에서 가장 체격이 크고 강하다고 알려진 레드 오크가 스무 마리 정도.


그것들이 튼튼한 실을 몸 여기저기에 묶고, 요령 좋게 끌고 있었다. 몬스터들이 할 수 있을 정도의 노동은 아니었다. 물론 힘은 충분하고도 남았겠지만, 도구를 사용해서 거대한 물건을 옮기는 그 일의 방식이 고난이도의 그것이었다. 능숙한 짐꾼, 일꾼이 일을 하는 양과 비슷하다.

레드 오크와 당나귀들이 큰 어려움 없이 시신을 운반하는 재주는 안드레 박으로부터 기인했다.


어둠숲은 사람이 적다. 콘란드 대륙이 대부분 그런 편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수 억이 훨씬 넘는 NPC에 다시 수 억에 달하는 플레이어들이 한 데 모여있는 세계였으나, 대륙은 초현실적인 크기를 자랑한다.


전 세계에 있는 육대주를 한 덩어리로 모아둔 것과 비슷한 크기였다. 대륙의 각 지역간 거리는 어마어마했다. 그러나 갈 수 없는 정도는 아니었고, 이 세계는 역시 환상 속의 가상 세계라는 걸 알리듯 다양한 초능력들이 있다. 초능력 에너지 역시 존재하고, 말도 안되는 마수와 기이한 동물들 역시 수없이 많다.


그것은 곧 다양한 이동 수단들을 만들어내고, 거리에 비해 생각보다 교류는 활발한 편이었다. 각 지역의 국가들이 다른 지방부의 대륙 국가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그 국경을 넘나드는 모험가들, 이방인들, 이민자들은 많았다.


특별히 사람이 많이 모이는 대도시나 가도, 랜드 마크, 뭐 그런 곳들을 제외하고 이런 필드 사냥터에 나온다면 인적이 드문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덕분에 그들은 어둠숲에서 시신을 끌고 다음 사냥감을 찾으러 이동하는 동안,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수월하게 퀘스트를 완료해갈 수 있었다.


오크와 당나귀가 아주 많았다. 흰뿔 큰사슴의 시신만 두 개였고, 딱정벌레의 것도 이미 하나 있었다.

마지막으로 어둠숲의 보랏빛 고사리가 있는 자생 지역을 들렀다가, 숲의 외곽으로 빠지려는 찰나였다.

스윽, 쿵.


거대한 시신을 옮기는 몬스터들이 힘을 잘 내고 있었다. 안드레가 일일이 조정을 하며 세밀하게 방향을 바꾼다. 그럼에도 무슨 바퀴가 달린 것으로 유려하게 끄는 것은 아니었기에, 나무들 따위에 툭 하면 걸리고 있었다.


기력 감지술 스킬을 발휘하며 길을 찾는 중인 제냐이다. 안드레 역시 어느 정도는 주변 지형을 살필 정도의 능력이 되었고. 어둠숲의 지도는 없었으나 대강의 길은 안다. 그동안 뻔질나게 드나들었으니까.

어둠숲의 모든 지형에 대해 빠삭한 정도는 아니어도, 자주 드나드는 길목의 생김새 정도는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나마 시신들을 옮길 수 있을만한 넓은 길목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거대한 고깃덩이가 질질질, 끌려가고 있었지만 섣불리 다가서는 몬스터들은 없었다. NPC가 아닌 제냐와 안드레에게는 피 냄새나, 혈흔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체액을 빼낸다고 하더라도 잔여물이 남을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숲의 바닥에 패인 자국을 만들어내며 거체를 질질 끌고 있으니 흔적이 아주 많이 묻을 테다.


대부분 육식류의 맹수, 괴수가 많은 이 어둠숲에서 참으로 위협 받기 좋은 짓거리를 하고 있었지만, 몬스터들도 의외로 야성의 감이라는 게 정확히 있는 모양이다.

이 어둠숲 내에서도 따지자면 포식자의 위치에 들어서는 거대 괴수들이 시신으로 끌려가고 있었으니까, 거기에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위협이 있으리라는 걸 직감하는 것인지.

제냐는 차라리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상대하면서 사냥이라도 하고, 감각이라도 둔해지지 않게 연습을 하고, 또 큰사슴이나 거대 딱정벌레가 있다면 놈들을 잡으려고 하고 있었는데.

미끼를 두어 낚시를 하듯 사냥하는 방법은 영 써먹을 게 못되는 모양이었다.

사냥꾼의 스킬 중엔 그런 방식의 수렵 역시 존재하기는 했으나, 제냐가 알고 잘 익혀둔 방식은 아니었다.


최태현이라면 또 모른다. 그는 레인저라는 클래스로 뚜렷이 분화해서 캐릭터를 키우고 있었으니까. 제냐보다는 사냥꾼에 더 가깝다. 계통적으로 비슷하고, 그렇다면 플레이 스타일을 닮아 공통적인 패시브 스킬이나 지식 따위를 익히게 될 확률이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의지가 있어서 다른 계통군에 속하지 않는 유니크 클래스를 빚어나가는 자들도 있기는 했다만.

아마 제냐의 기억으로 최태현은 산림 지역 따위에서 유용하게 쓸만한 다양한 서바이벌 기술들을 모두 익혀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제냐 역시 솔로 플레이를 염두에 두고 캐릭터를 키운 바였고, 혼자서 여러 퀘스트들을 해내기 위해서 다양한 스킬들을 익혀둔 차이기는 하다만.

도움 되는 동료가 있을 때의 편리함을 생각하면 솔로 플레이도 늘 아쉽기는 하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또 고난을 이겨내고 경험치를 더 먹는 보상도 있었지만.


지금 안드레와 하고 있는 것도 파티 플레이라고 하면 할 수 있겠지만, 레벨도 맞지 않았고 의뢰로 인해 잠시 호흡을 맞추고 있는 것이었으니 본격적이라고 볼 정도는 아니었고, 아쉬운 부분도 많았다.

그래도 사르삿에서 이렇게 솜씨가 괜찮은, 성장 가능성이 높은 플레이어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냐는.

그보다 2, 30살 정도는 많아 보이는 중장년의 사내에게 성장 가능성이니 뭐니 하는 말을 따지기도 민망한 것이기는 하다만. 어쨌든 게임에 있어서 전투 능력은 그가 더 높았으니까. 그 부분에 한정지어 말한다면 이야기 할 수 있는 내용이다.


“잘 끌어라.”


제냐가 앞장서서 길을 보고, 주변에 이상한 물건이 없는지 살폈다. 반경 수십 미터를 커버할 수 있는 정도도 아니었고, 고작해야 한 십 수 미터 정도를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런 범위의 감지가 제냐의 몸으로부터 시작하는 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원거리로 시야를 이동해서 볼 수도 있다는 게 중요한 점이었다.

제냐는 갈 길을 미리 앞서 보며 괜찮은 쪽으로 가고 있었다.

어둠숲에서도 이미 알고 있던 지형 위주로 움직이고 있는 점도 있었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보랏빛 고사리가 있는 것 같았다. 원래 자생지 근처까지 가더라도 찾는데 조금 고생을 할까 싶었었다. 운이 좋은 건지, 한 번에 찾을 수 있었다.


안드레는 제냐의 뒤에서 걷다가, 이따금씩 시신을 끌어 오는 몹들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면 뒤돌아 서며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부리는 종에게 이야기를 하듯이 말이다. 짐승인 그것들이 알아들을 리는 없었다. 물론 짐승 중에서도 영리한 부류는 사람의 명령을 인식하고 내용대로 행동을 하기도 한다. 학습의 결과물이다.

몬스터는 영리함과는 별개로 사람의 말을 따를 의지가 전혀 없는 종자들이기는 하다.

지금 안드레가 몬스터를 부리는 방식은 MP를 소모하는 테이머 스킬에 의한 것이었으므로, 음성은 사실대로 말하자면 별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초상술사들이 캐스팅을 할 때 자기의 입으로 발음해서 스킬명을 외듯이, 혹은 그 스킬의 효과와 어우러지는 주문어를 읊듯이 하는 것이다.


의지력이라는 건 게임 내에 존재하는 가상의 힘이었지만 다른 말로 바꿔보면 정신력과도 연관이 깊다. 그러니까, 사람이 머릿속에서 상상하고 생각하는 힘 말이다. 집중을 잘 할수록 눈에는 보이지 않는, 가상의 투명한 팔이 조금 더 잘 움직일 것이다.

고로 초상술사들이 읊는 주문어나, 혹은 안드레가 말하는 명령문은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조금 더 집중을 하고, 쉽게 초상 스킬로 구현되는 결과물을 연상하면서 스킬의 발휘를 돕는 것이다.

실제로 효과가 있는 방법이었고, 미숙한 상태에서 상위의 스킬을 구사해야 하는 스킬 이용자들은 긴 시간을 들여 그렇게 캐스팅을 하기도 한다.


안드레가 말하고, 쿵! 하고 시신이 나무 한 군데에 또 박았다. 그것 자체는 별 일은 아니었다. 흰뿔 큰 사슴의 엉덩이 부근이 침엽수 한 쪽에 닿았다. 오크 중 서너 마리가 그 쪽으로 걸어가서 힘을 써 붙은 부분을 떼어내고, 앞에 있는 놈들이 끌어당기면 마찰 없이 다시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여진다.


거대한 시신을 이끌고 있는 스물 다섯 마리의 괴물들이었다. 놈들은 제각기 거리를 벌리고 천천히 따라오고 있다. 말했듯 이상한 직감이라도 있는지 어둠숲의 괴물들은 저 시신에 이끌려 다가오진 않았고, 플레이어들의 흔적도 발견하기 전에 퀘스트를 끝낼 것 같았다.


안드레는 그렇게 오크들과 당나귀가 몸뚱이를 끌어당기는 장면을 보다 고개를 돌린다. 제냐는 말도 없이 앞만 보고 걷고 있었다. 길을 찾고 있었으니 나름대로 집중을 해야 하는 중이리라. 그 역시 청년의 태를 보고 굳이 말을 걸지는 않았다.

제법 실력이 좋은 사내였다. 게임 내적으로 전투 능력이 뛰어났다. 박영식은 비련의 시나리오에 대해서 나름대로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바가 있는 사내였다.

나이가 많을수록 게임류와 거리가 멀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피지컬이 떨어지는 것도 당연하고, 사실 현실의 삶에는 크게 의미도 없고 영향력도 없는 놀이에 불과하니 보다 진지한 일들에 몰두하는 게 당연한 것이다.


어린 나이에는 시간이라는 게 무한한 줄 알고 마구 흘려보내지만, 나이가 조금 들고 어떤 분야에서든 일을 하기 시작하고 성취를 하다보면 자기가 죽는 날까지 이루어낼 수 있는 성취의 분량이라는 게 대강 감이 잡히기 시작한다.

아주 단순한 비교로, 월급쟁이로서 회사를 다닌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자신의 능력으로 어디까지 일을 할 수 있고,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이 커리어의 끝은 어디일까. 업계의 연봉 평균 추세는 어떻지? 그런 것들을 가늠하다보면 평생 벌어들일 수 있겠다, 싶은 돈의 액수가 대강이라도 감이 잡히는 것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다보면, 사람은 부가적인 것들에는 시간을 쏟지 않게 된다. 물론 돈을 버는 것보다도 중요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성이라던가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시간들을 망치면서까지 할 일은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자신의 전공이나 전문 분야, 직업적 성취에 대해서 진지하게 투자하게 되어가는 것이다. 나이가 먹어갈수록, 그런 현실은 조금 더 분명하게 다가온다.

그런 현실감이 있는 상태에서 아무래도 게임에 몰두하는 건 조금 어렵다.


회사를 다니면서 게임을 한다고 하더라도, 어린 시절만큼 작정을 하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게임을 구경한다거나, 조금쯤 그 겉을 맴돌게 되거나, 하는 것이고.

예전처럼 무작정 놀 수는 없다. 차라리 게임 업계와 관련된 직업을 가지는 부류가 아니고서야.

아무튼, 그런 데도 불구하고 박영식은 이런저런 사유로 인해 비련의 시나리오라는 취미를 가지게 되었고, 나이대에 비해서는 깨나 깊은 몰입도로 그것을 즐기고 있다.


직관적으로, 이 게임이 현실과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박영식 그가 어느 정도의 운동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자신의 능력들에 아는 부분이 있다.

여러모로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능력들을 다 발휘하고, 계발하며 애써오다 보면 알게 된다. 자신의 재능이 어느 분야에서 어느 만큼이 있는 것인지.

다방면에 대단한 재능을 발휘하는 사람들도 있고, 별 것 없어 보이고 아주 좁은 분야와 구간에 특출난 재능을 가진 사람도 있다.

재능이 없는 사람은 없다. 가능성의 싹이라는 건 모두가 가지고 있고, 단지 그것을 갈고 닦지 않을 뿐.


아무튼 그런 실례와 통계에 따라 박영식은 스스로의 능력치를 아는 인간인데, 이 게임에서 그것이 상당히 연관 깊게 발휘된다는 걸 깨달은 탓이다.

그가 알고 있는 스스로의 운동 신경과 감각에 따라서 스킬 플레이를 하고 근접 전투를 할 때 캐릭터를 움직일 수 있었다.

그만큼 묘기를 부릴 수 있었고, 캐릭터의 스탯에 따른 대단한 능력치들을 실제로 발휘할 수 있었다.

큰 에너지를 내부에 품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다면 성능의 십분의 일도 써먹지 못할 수 있다. 게이머의 피지컬 능력은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에서 아주 중요하다.


이미 나이가 많이 들었고, 늙었고, 또 예전같지 않은 자신이라고 생각하지만 비련의 시나리오는 그의 육신이 아닌 정신의 반응 속도만을 체크했다. 그것 또한 나이가 먹으면 줄어들게 마련이지만, 신체 외부 근육의 그것보다는 조금 더 빠르게 반응할 수 있으리라.

거기에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을 하면서 집중도가 보다 오르는 것도 같았다. 이게 그런 용도로 만들어진 게임인 지 까지는 알 수 없었다. 사람의 뇌 속 신경반응 따위를 재활 시켜주는 용도의 말이다.

그러나 써먹지 않아서 퇴화가 되었던 것인지, 아무튼 게임에서 집중을 하며 제법 유려한 플레이를 할 수 있었다.


그런 그이기에 제냐의 솜씨를 보면서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피지컬이 좋은 놈이구나, 하고 말이다. 아마 현실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운동 신경이 꽤 있을 것이다.

물론 현실의 스포츠라는 건 근성장이 함께 가야했기에, 선천적인 신경 반응만으로 다 할 수는 없었다. 적합한 근육들이 따라주어야 뇌의 지시를 받아 이행할 수 있는 법이니.

그러나 가능성이 다분히 높다는 것만으로도 제법 의미가 있었다. 프로 스포츠 선수만이 운동 신경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은, 결국 뇌와 외부 근육을 써먹어 다양한 일들을 한다.


이런 게임에서조차 익히고 연습할 수 있는 집중력은 다른 일을 할 때도 분명 써먹을 수 있는 부분이고. 하다못해 자리에 앉아 법인의 지출 비용 절감을 위해 하루종일 고민만 하고 있어야 하는 사무직의 경우라고 하더라도, 체력은 필요한 법이었고.


“오.”


앞서 가던 제냐가 소리를 뱉었다. 안드레는 몬스터를 조작하면서, 시신이 지나치게 나무에 부딪히지 않게끔 애를 쓰면서 동시에 여러 생각을 하다가 그 소릴 듣고 눈을 떴다.

눈은 이미 뜨고 있었지만 머릿속으로 집중하던 게 깨지고 현실로 돌아왔다는 뜻이었다.

제냐가 고개를 슬쩍 돌리며 말한다.


“보랏빛 고사리. 찾았습니다. 근처에 중소형 몹들이 있기는 한데······.”


한데.

잡으면 될 일이다. 어둠숲에서 아마 저 청년의 상대는 달리 없을 것이다. 각 섹터Sector의 터줏대감을 자처하는 거대한 네임드 몹들이 아니라면야.


“잡으면 될 것 같네요. 먼저 앞서 갈테니 천천히 따라오세요.”

“그러지.”


안드레는 고갤 끄덕인다. 그 말을 뒤로하며 제냐는 이번에도 앞장서서 달려 나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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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125. 간밤의 습격, 그 끝 23.10.30 19 3 32쪽
125 124. 위검기僞劍氣 23.10.29 18 3 19쪽
124 123. 맥컬리 23.10.29 18 3 21쪽
123 122. 펠 파이든 23.10.29 19 3 21쪽
122 121. 골목길 23.10.29 16 3 23쪽
121 120. 미첼 카니브 23.10.28 21 3 17쪽
120 119. 튀어 23.10.28 22 3 24쪽
119 118. 오케이Okay 23.10.28 20 3 19쪽
118 117. 검기劍氣(2) 23.10.27 20 3 30쪽
117 116. 검기劍氣 23.10.25 22 3 28쪽
116 115. 파罷했음 23.10.25 22 3 34쪽
115 114. 돌아갑시다. 23.10.25 19 3 29쪽
» 113. 동행 23.10.23 23 2 32쪽
113 112. 박영식, 안드레 박 23.10.22 22 3 34쪽
112 111. 사슴의 고기 23.10.20 28 3 34쪽
111 110. 재료 수급 23.10.18 22 3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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