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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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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최근연재일 :
2024.06.03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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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5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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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100. 1대1

DUMMY

*


빙글 돌았다.


제냐 역시 알렌으로부터 오는 미는 힘에 버티면서 움직여야 했기에 순간 쉽지가 않았다. 꽉 끼어버린 오래된 유리병의 뚜껑을 돌려 따듯이, 간신히 돌아 피한다. 한번에 휙 돌아서 알렌의 검격을 흘려버렸기에, 알렌이 균형을 잃고 그의 검이 일순간 앞으로 툭, 나섰다.


힘을 맞추어 균형을 이루고 춤을 추던 파트너가 갑자기 옆으로 슥 빠져버린 꼴이었다. 관성대로 내밀어진 알렌의 한손검을, ‘챙!’ 하는 사나운 소리와 함께 숀의 손도끼가 치고 지나갔다. 알렌은 그 충격에도 검을 놓치지 않았다. 제냐는 터프한 사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검을 들고 있을 때 흔히 비어 보이는 장소인 옆구리를 빠르게 다가가 긁었다.

발톱 대거로 이미 세 명 째의 옆구리에 상처를 내고 있었다. 황야 지룡의 발톱 대거, 라는 이름답게 짐승처럼 누군가의 내장을 탐하는 무기다. 뭐 물론 무기에는 의지가 없다. 오롯이 제냐가 그것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붉은 검기처럼도 보이는, 파이어 인챈트가 일렁거리면서 넋놓고 있는 알렌의 복부 측면을 긁고 지나갔다. 제냐는 한 번 공격을 했고, 그대로 숀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가 굉장한 기세로 달려오고 있었다.


알렌을 제압해야 했다. 다행히 숀의 공격이 도리어 알렌의 검에 부딪히면서 아주 약간의 틈새가 났고, 그 사이에 찌를 수 있었다. 아예 그의 몸에 딱 붙어 대거를 든 팔로 껴안듯이 그의 목 근처에 팔을 가져다 댔다. 포옹을 하자는 건 아니었다. 아, 비슷한 일이기는 하다. 레슬링을 하자는 것이었으니까. 그대로 알렌의 목덜미를 감아 조르듯이, 팩 끌었다.

순간적으로 강력한 힘에 알렌은 한손검을 역수로 쥐어 뒤에 있는 제냐를 찌르려 했지만, 그럴 겨를도 나지가 않았다. 목이 조이면서 순간 몸에 힘이 풀렸다. 제냐는 반 걸음 정도 알렌을 강하게 당긴 뒤에 자세가 무너지고 힘이 빠지는 것 같자, 오른 발로 그의 발치 근처에 툭, 장애물을 놓았다. 그리고 걸었던 왼팔로 몸을 돌려 밀면서, 발로는 그의 균형을 슬쩍 빼앗자 알렌이 넘어졌다. 기사답지 않은 실수였지만, 그를 넘어뜨리고 있는 작자도 무술 스킬을 상당한 수준까지 연마한 제냐였다.

긴 묘사와 달리 제냐의 동작은 알렌이 미처 반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한 호흡에 이루어졌다. 알렌을 땅에 넘어뜨리고, 그대로 뒷덜미에 대거를 박아 넣었다면 앞으로의 일이 편해졌겠지만. 숀이 눈을 빛내면서 날듯 뛰어왔다. 퍽, 퍽 하면서 흙바닥에 자국을 남기는 그의 질주가 사납다. 체구가 작은 숀이었지만 기세만큼은 작지 않았다. 제냐조차도 조금 뒷걸음질 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게끔 만들었으니까 말이다.


한 손에 든 두터운 날의 손도끼가 위협적이다. 그대로 날아 찍으려는 듯, 근처에 다가온 숀이 길게 뛰었다. 제냐는 알렌의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공격에 대응해야 했다. 콱! 하고 숀에게 다가가기 위해 뛰기 전에, 숲의 흙바닥 대신 알렌의 등판을 밟은 건 나름대로의 추가 공격이었다. 알렌은 앞으로 쓰러졌다가, 격통을 느끼는 와중에도 일어나려 하고 있었는데 제냐가 갑자기 즈려밟자 척추가 어긋나는 느낌마저 들었다. “크억.” 내려 하지 않았지만 저절로 신음이 토해져 나왔고.


제냐는 알렌을 바닥처럼 써먹고 앞으로 뛴다. 숀의 기세도 만만찮지만, 속도에 대응할 수 있다면 맞받아쳐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제냐는 이들보다 반사신경이 더 빠르고, 동체시력 역시 우월하다. 순발력 스텟이 높아지고 각종 스킬들의 보정을 더욱 받는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사소한 차이를 찍어누를 수 있을 정도의 외부적 조건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1대1로 상대를 한다면 제냐가 이기는 건 대개 당연한 일이었다.


제냐는 뛰면서, 오른손의 든 도끼를 부드러운 곡선 궤적으로 휘둘러오는 숀을 보았다. 자신의 목덜미 즈음을 노리고 들어오는 도끼의 한쪽 날개이다. 캉, 대거를 들이밀어 그 궤적을 바꾸려 했다. 도끼는 쉽게 밀려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 숀은 높이, 또 길게 뛰었고 제냐는 짧게 뛰었다. 자세를 수그리며 도끼가 위로 지나가도록, 대거의 날로 그 도끼를 위쪽으로 튕겨낸다. 약간의 변화만으로도 피할 수 있었다.

도끼날의 목적지였던 제냐의 목덜미 자체가 훨씬 아래로 가면서 그의 공격을 피했으니. 달려들어 날아온 숀의 도끼를 피하고 자세를 낮추자 보이는 건 숀의 다리였다. 그대로 비스트 슬레이어를 휘둘러서 그를 두쪽으로 내면 좋겠지만, 생각보다 숀의 기세가 강렬했다. 그는 유연하게 대처했다. 도끼가 위로 튕겨나갔지만, 다리는 살아있고 또 제냐의 앞에 있다.


숀은 그대로 다리를 웅크려 제냐의 목덜미를 잡았다. 얽히듯이 잡혔다. 제냐는 목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상대는 레슬링에도 제법 일가견이 있는 모양이었다. 숀은 그대로 다리로 제냐를 잡고, 관성을 이용해 앞으로 계속 날았다. 제냐로서는 앞으로 가고 싶었지만 붙들려서 뒤로 넘어가야 하는 처지가 된다. 그냥 넘어가 줄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몸을 한 번 빙글 뒤집었다.


제냐는 앞을 보던 것을 뒤로 보았고, 위가 아닌 흙바닥을 보아야 했다. 숀은 뒤쪽의, 하늘을 처다보아야 했고. 시야가 빙글 돌려졌다. 숀이 바라본 하늘에는 빛이 그리 많지 않았다. 울창한 침엽수림이 집요하게 시계를 막고 있었다. 어둠숲에서 바라본느 하늘이란 대개 그런 법이었다. 제냐는 프로레슬링 선수처럼, 합을 맞춘 것처럼 재빠르게 움직였고 숀 역시 그에 반응했다.

잘 짜여진 동작처럼 제냐가 퍽, 하고 쓰러졌다. 숀은 뒤통수를 보호했다. 고개를 바짝 당기면서 힘을 주었고, 등을 웅크려 충격에 대비했다. 텅, 하고 그가 갑옷 째로 강하게 떨어진다. 제냐는 흙바닥 쪽을 바라보기에 떨어지는 충격에 훨씬 유리하다. 그는 팔꿈치를 세워 자신을 보호했고, 기력을 둘렀다. 숀 역시 얼마간은 둘렀지만 제냐보다는 늦다. 제냐가 순간 숀을 땅바닥에 내팽겨친 것과 비슷한 형국이 되었다.


땅바닥에 부딪히면서, 숀의 다리 힘이 풀렸다. 순간의 틈을 느낀 제냐는 그대로 왼손을 써서 다리의 그립을 풀러내며 뒤로 빠진다.


페이트, 아르망디. 페이트는 제냐의 시야 근처에 있었다. 아르망디는 뒤에서 다가오고 있다. 아직 보이지 않았는데, 이제 막 보였다. ‘보였다’라는 말은 제냐가 켜고 있는 기력 감지술의 반경 내부로 들어왔다는 뜻이었다. 약 11.5미터 정도이다. 그리고 그 정도면 아르망디가 뭐라도 던지면서 제냐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할 수 있는 거리이기도 했고.

아, 복잡하다. 제냐는 생각했다. 역시 그냥 도망칠 걸 잘못 생각했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일단 벌인 일은 끝까지 처리해야 할 테다.

이제 와서 생각을 잘못 했으니 얌전히 자리를 파하고 서로 집으로 갑시다, 라고 해봤자 얘기를 들어줄 턱이 없는 작자들이다. 한 명은 NPC도 아닌데 NPC들보다도 더 소통이 안될 것 같은 괴짜였고.


제냐는 고민한다.

한 순간의 움직임은 아무렇게나 할 수 있었다. 체스와 같은 것이다. 아무렇게나 움직일 수는 있지만, 움직임 다음의 상황이 어떻게 펼쳐질 지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수가 괜찮은 행동이라고 생각했어도, 그 움직임 때문에 피할 길이 좁아지고 다른 쪽에서 예상치 못한 공격이 들어온다면 결국 외통수가 된다. 상대의 역량에 따라서 자유로워 보였던 체스판은 아주 비좁은 길로 이루어진 험로가 되어버린다.

아르망디의 실력이 어느 정도일까. 정확히는, 제냐 그 자신과의 실력 차이가 어느 정도일까. 제냐는 바닥에 엎어진 숀을 잠시 보았다. 비스트 슬레이어는 아래로 칼끝을 늘어뜨리면 바닥을 훑을 수 있었다. 충분히 말이다. 그대로 아르망디 쪽을 향해 돌아서면서, 칼끝에 기력을 실어 숀의 갑옷 틈새를 베어버렸다. 오금 쪽은 가죽을 연마해서 쇠붙이를 접붙인 판갑옷이 아니라 질긴 천으로 되어 있었다. 스윽, 하는 숀으로서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그의 다리 뒷면이 조금 베였다.


숀 역시 전투 중에 무방비가 된 곳을 최우선적으로 기력을 돌려 보호하고 있었고, 출혈이 심하지는 않았지만 움직임에 불편함이 있을 정도이기는 했다. 아르망디 쪽을 돌아 보는데, 마침 아르망디가 격렬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입고 있는 가죽 갑옷의 전면부가 거뭇하게 타들어가 숯처럼 염색을 했고, 또 불긋하게 달아오른 면상이다. 홍조가 피어올라 생기가 돌고 있는 안면이 아니라, 불에 그을린 것처럼 시뻘겋게 달아오른 피부였다. 아르망디는 그렇잖아도 무표정한 얼굴을 더욱 굳혀 보이며, 아니 약간 화가 난듯 보일 정도로 입을 앙다물고 숏소드를 투척한다. 마침 제냐가 돌아본 그 시점이었다.


홱, 하고 양 손에 든 숏소드 두 자루를 던져버렸다. 순차적으로 하나, 하나. 붉은 검기로 쌓여 있는 검이었고, 그녀의 손을 떠났어도 그 기력술의 안정성이 변하지 않는다. 저 정도로 유형화된 검기를 멀리 떨어뜨린 상태에서도 유지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기술이다. 그녀 스스로의 역량이 아니라면, 스킬로서의 효용일 테다. ‘붉은 검기’의 효과였다. 제냐가 철시 따위를 파워샷으로 쏘아낼 때도, 그저 기력이 어른거리게 하는 정도였지 저처럼 손에 쥐었을 때마냥 유색 선명한 형체를 만들기가 어렵다.

가능할 지는 모르겠으나, MP의 소모가 상당해져 그저 그 아래 단계의 형상 변화를 주고, 불꽃이 그러하듯 일렁거리는 느낌으로 날아가게끔 하는 것이다. 최대한 화살의 촉 말단에는 기력을 응축시켜 고정시킨 형태로 만들기는 하지만, 화살대 전체로까지 그 효과를 옮기기는 조금 어려웠다. 붉은 검기의 효능은 그런 데서 나온다.


자신의 실력보다도 조금 더 다양한 효과를 기력술로 쓸 수 있게 만들어주고, 다양한 상황에서 여러가지 공격들을 하면서 상황을 더 낫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아르망디에게는 잘 어울리는 스킬이었다. 단순한 한 방의 공격이 아니고, 그녀의 기력술 전체에 관여하면서 일대일 교전 상황에서의 전황을 주도할 수 있는 스킬이었으니까.

일대일 근접전 상황이 클래스 특성 상 많을 수 밖에 없는 아르망디로서는 주력 스킬이 될 수 밖에 없는 기술이었다.


날 선 두 자루의 숏소드가, 붉고 반투명한 기운을 품은 채 날아든다. 반투명하고 반듯하게 잘 깎여서, 마치 보석을 흉내내 만든 플라스틱 칼집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그런 귀여운 물건은 아니었고, 저 정도로 연마되어 형태 고정을 강력하게 이루어낸 것은 상당한 파괴력을 발휘한다.

제냐는 굳이 맞아줄 생각은 당연히 없었다. 눈으로 보았고, 속도를 느꼈다. 머릿속에 무술 계열의 여러 스킬들이 그에게 다음 상황을 시뮬레이트 해서 넣어준다. 마치 가상의 궤적선을 붉은 점선으로 보듯이, 순간 시간이 아주 느려지면서 여러 가지 시각 정보들이 제냐에게 한꺼번에 들어간다.

슬로우 모션으로 느껴지는 숏소드의 움직임 속에서, 제냐는 비스트 슬레이어와 대거를 나란히 들고 휘둘렀다. 좌측 아래로부터 우측 상단으로 대각선으로 무언가를 뽑아 올리듯이 휘두르는 검날의 끝에 날아오는 숏소드가 차례대로 걸렸다. 왼손에 든 대거는 더 짧았기에, 조금 더 일찍 날아오는 것을 쳐냈다.


비스트 슬레이어는 그 뒤로 날아오는 숏소드를 쳐냈고, 손이 조금 저렸다. 무게감이 묵직했다. 그건 숏소드의 무게라기보다 기력으로 인해 강화된 파괴력의 탓이다. 위쪽으로 숏소드의 궤적을 바꾸었고, 다행히도 제냐가 꺾는대로 잘 바뀌어 날아간다.

검으로 한 차례 쳐냈음에도 기세가 남아서 그 뒤쪽, 어둠숲의 어느 고목들을 쩌억 갈라내며 관통하고야 말았다. 퍼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도끼에 패이듯 나무에 구멍이 났다. 숏소드 두 자루 모두, 제각기 한 그루 씩을 잡고 뚫어낸 뒤 그 뒤에 있는 나무에 박혀 들어갔다.


제냐는 얼얼한 손을 가지고, 아르망디를 상대했다. 숀과 페이트, 알렌 모두 천천히 움직였다. 제냐에게 당해서 HP가 빠지고 있었지만, 뭐 어쩔 수 없다. 검은 늑대단은 자고로 포기를 잘 모르는 존재들이었다. 이 자리에서 암살 대상에게 도리어 죽게 되더라도, 한 번 시작한 임무를 완수하려고 들 것이다.

그건 기사로서의 명예에 달린 문제였다. 어쨌건 프린스 알사드는 그들의 주인이었고, 주인의 명이라는 건 곧 그들의 목숨과 바꾸어서라도 완수해야 하는 사명이 되니까.

다만 프린스 알사드를 섬기면서 온갖 더러운 꼴들을 보게 되었는데, 그 과정들이 인간으로서 그들의 머리를 다소 굳게 만들었다는 점은 있었다. 그때문에 더더욱 알사드는 아랫 사람들에게 일을 시키면서 자신의 머릿속 계획 전체를 알려주지 않는다.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결코 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그토록 은밀하게 숨기는 이유는, 대부분 부패하고 더러운 악의를 품을 때였다. 간혹 청렴한 자가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고서라도 은밀하게 선행을 하고는 하지만, 세상에 그런 자가 늘 많지는 않았다.


페이트, 숀, 알렌은 제각기 복부에 치명적인 자상을 입고서도 굴하지 않는다. 숀과 알렌은 몸을 가누며 간신히 일어섰고, 제자리에서 챙겨온 HP포션을 꺼내들어 상처 부위에 붓는다. 잠깐이라도 움직임이 멎어주면 좋을 일이다. 제냐는 그 시간동안 아르망디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

페이트는 이미 한 번 찔린 곳을 더 찔렸기 때문에 상처가 깊다. 세 남자 모두 움직임이 굼뜨다. 아르망디는 그녀대로 썬더 볼트에 직격해서 상당한 피해를 보았고, 머리에 열이 올랐지만 한편으로는 여러가지 계산이 교차한다. 전투가 길어질수록, 제냐가 그리 만만치 않은 인간이라는 게 끊임없이 재확인되고 있었으니까.


제냐는 아르망디에게 다가가면서, 그녀의 눈빛이 흔들린다는 걸 읽고 일단은 달려들었다. 제일 까다로운 상대를 고르라면 아르망디를 고를 것이다. 나머지 셋은 강하지만 스타일이 고정되어 있었다. 단순히 실력 좋은 기사이자 기력술사라고 한다면 제냐에게 있어서는 가장 정형화된 유형의 적이며 상대하기 좋은 이들이다.

그러나 아르망디는 저번에도 그러했듯이, 다양한 위치에서 공격을 날릴 수 있었고 그 때 보여주었던 스킬들이 그녀의 밑천의 전부라고 할 수도 없었다. 저 셋은 제냐의 실력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덤벼들었던 것 같고, 준비 또한 그리 철저하지 못하다. 그러나 아르망디는 가장 날카롭게 제냐를 노리고 있었고, 이상한 아이템 류를 준비해서 그를 놀라게 할 지도 모른다.


그런 계산 속에서 먼저 다가가는 게 망설여졌는데, 아르망디에게서 ‘자신이 없다’는 투의 눈빛을 읽자마자 제냐가 뛴 것이다. 포커가 그러하듯이, 결국 실전에서의 싸움도 상대의 심리를 읽어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 한 쪽이 치트키를 쓰고 싸우는 게임이 아니라면, 결국 누구의 공격도 상대의 목덜미를 잡아 뜯을 수 있는 법이었으니까. 요점은 상대의 정신적인 빈틈을 파고들어 반격하지 못하게끔 만들고, 그 약점에 공격을 넣는 것이 최선이다.

스포츠가 여러 룰을 가지듯이, 전장에는 전장의 룰이 있었다. 제냐는 이 자리에서 아르망디가 게임 오버되어도 좋았고, 그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어딘지 정신이 조금 이상한 듯한 여자가 계속해서 따라오는 플레이를 즐기는 취미는 없었다. 아주 오래 전에나 유행했던 삼류 공포 영화의 컨셉도 아니고 말이다.


제냐가 먼저 가벼운 몸놀림으로 뛴다. 두 개의 숏소드를 쳐내느라 손이 저리지만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그에게 공격을 당한 세 명의 기사가 충분히 다가와서 지원하기 전에 아르망디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달려가면서 그립을 다시 강하게 쥔다. 아르망디는 벨트에 걸려 있던 여러 자루의 숏소드 중에서 두 개를 다시 순식간에 꺼내들어, 손목을 돌렸다. 칼춤을 추듯 부드럽게 흔들리는 두 자루 검날의 궤적이다.

반 바퀴쯤 돌았을 때 붉은 검기가 다시 감돌며 그녀의 칼날에 덧씌워졌고, 제냐의 칼에서도 마찬가지로 기력의 흔적이 엿보이며 빛을 발한다. 제냐는 파이어 인챈트를 크게 돋궈 불길을 일으켰다. 독의 성질과 화염의 성질을 갖고 있는 발톱 대거였다.

어떤 아이템이나 애초제 제작되었을 때의 품질 한계가 있는 바였고, 아마 무한하게 강화를 할 수는 없겠지만 솔직히 한 두 단계 정도는 더 인챈트를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애용하는 무기였고, 잃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상대의 허를 찌를 수 있다면 투척 정도야.


제냐는 망토를 휘날리며 뛰었다. 아르망디도 마침내 생각을 굳혔는지 그를 마주보고 뛰어오기 시작했고, 몇 걸음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제냐는 먼저 대거를 휘둘렀다. 도저히 닿지 않을 거리에서 칼날을 번뜩이는 제냐의 행동은 의문스러운 것이었지만, 그 팔의 궤적이 아르망디 쪽을 향했을 때 의문은 사라진다. 대거가 손에서 날아 그녀의 명치 쪽을 향해 정확히 날아왔다. 쐐애액, 하는 짧은 파공성이 그 사이에도 들렸다. 아르망디는 흔들거리며 들고 있던 두 자루의 숏소드를 교차시켰다. 챙!


하는 금속성과 함께 대거가 막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실린 기력이 만만한 것이 아니라 아르망디 역시 멈칫해야 했다. 제냐는 그 위로 검을 질렀다. X자로 교차하고 있는 숏소드의 위로 강렬한 내려 베기다. 비스트 슬레이어의 칼끝은 길었고, 기력술을 한 자루의 검에 집중시키니 더욱 푸른 빛이 강해졌다. 그리고 칼날 또한 조금 더 연장이 되었고, 일렁거리며 움직이는 일시적인 칼날은 아르망디의 보호구를 베어낼 정도의 위력을 갖고 있다.

쾅! 하는 강렬한 소리와 함께 비스트 슬레이어가 두 자루의 숏소드를 내려쳤고, 그 검 끝에 맺힌 푸른 검기가 아르망디의 쇄골을 노렸다. 아르망디는 뒤로 빠지고자 했고, 그 찰나에 제냐가 반 걸음 정도 더 밀고 들어갔다. 칼날의 끝이 쇄골에 닿았고, 쇄골까지 보호하고 있던 견갑에 금이 가며 그대로 잘려나갔다.


촤악!


하면서, 그대로 숏소드의 자세가 무너졌고 아르망디는 상체 전면부를 크게 베여버리고 만다.


*

harlie-raethel-ouyjDk-KdfY-unsplash.jpg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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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127. 또 사냥 23.10.31 16 3 12쪽
127 126. 재접속 23.10.31 16 3 22쪽
126 125. 간밤의 습격, 그 끝 23.10.30 19 3 32쪽
125 124. 위검기僞劍氣 23.10.29 18 3 19쪽
124 123. 맥컬리 23.10.29 18 3 21쪽
123 122. 펠 파이든 23.10.29 19 3 21쪽
122 121. 골목길 23.10.29 16 3 23쪽
121 120. 미첼 카니브 23.10.28 21 3 17쪽
120 119. 튀어 23.10.28 22 3 24쪽
119 118. 오케이Okay 23.10.28 20 3 19쪽
118 117. 검기劍氣(2) 23.10.27 20 3 30쪽
117 116. 검기劍氣 23.10.25 22 3 28쪽
116 115. 파罷했음 23.10.25 21 3 34쪽
115 114. 돌아갑시다. 23.10.25 19 3 29쪽
114 113. 동행 23.10.23 22 2 32쪽
113 112. 박영식, 안드레 박 23.10.22 22 3 34쪽
112 111. 사슴의 고기 23.10.20 28 3 34쪽
111 110. 재료 수급 23.10.18 22 3 31쪽
110 109. 피츠 브래드 23.10.15 23 3 24쪽
109 108. 사내는 지난 시간을 등지고 돌아섰다. 23.10.12 21 3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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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105. 귀족제 23.10.10 25 3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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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102. 게임 오버 23.10.06 26 3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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