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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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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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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9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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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12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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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쪽

107. 아이젠 하우드

DUMMY

*


제냐의 궁리나 추리와는 달리, 게임 속에서 설정되었으며 진행된 아이젠의 실제 이야기다.


아이젠 하우드는 수도 사르삿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건실한 요식업 종사자였다. 손맛이 깔끔하고 좋았으며 또 요리 실력이 남달랐던 그는 처음에 작은 가게에서 시작해 점차 규모를 키우고, 사르삿의 중심지구 외곽까지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나름대로 물가가 비싸고, 돈을 많이 내는 손님들이 자리한 중심지구는 모든 상인들의 목표랄만한 자리였다. 산슈카에서 장사를 하려면 왕성 앞으로 가라, 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결국 귀족들, 돈이 많은 평민들 등은 자신들의 집 근처에 가장 좋은 가게가 있기를 늘 원한다.

또한 거기에 살고 있는 이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오며가며 들르는 수많은 이들이 또 있으니까.

산슈카에서 가장 발전한 거리라고 할 수 있는 왕도 사르삿의 가도들은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돈이 동시간 내에 거래되고 유통되는 자리일 테였다.


그럭저럭 사업적 수완도 나쁘지 않아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남부럽지 않은 삶, 그 이상을 손에 쥐었고, 당시 그의 삶에는 분명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아이젠은 어느 날 참한 아가씨 하나를 만나게 된다. 사르삿의 일반지구 어느 거리에서 태어난 그녀는 평생 왕도를 벗어난 적이 없는, 수도에 살지만 촌스러운 면이 있는 여성이었다. 늘 촌스러움과 순수함이 비례하는 건 아니지만, 아이젠이 보기에 아름답고 또 순진한데다 착한 면이 많은 아가씨였고.


어찌저찌해서, 자연스럽게 이끌리는 두 남녀는 시간이 지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연인이 되었고, 아이젠 하우드는 열심히 요리를 하며 일을 하다가 쉬는 시간과 날에는 꼭 그녀를 만나 함께 지냈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점차 깊어지고, 감정이 생기고. 미래를 논하게 되면서 그의 삶은 점점 더 다양한 색깔로 꽃피워져 갔었다.

그녀는 아이젠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식당을 운영하는 집안에서 자랐다. 가게 일을 도우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덕분에 아이젠과도 이야기가 늘 잘 통했다.

그녀의 부모님은 일반지구의 어느 거리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고,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벌이를 하면서 외동딸을 키우고 가계를 꾸려왔다.


아이젠은 그녀가 마음에 들었고, 그녀 역시 아이젠을 마음에 들어했다. 아이젠은 산슈카의 지방 도시, ‘번햄Bunhamm'에서 난 사내였다. 가족은 따로 없다. 태어났을 시기에 이미 홀어머니 뿐이었고, 어느 정도 나이가 찼을때 지병이 깊었던 그 어머니마저 그를 남겨두고 먼저 세상을 떠났다.

십대 때 홀몸으로 세상에 내던져진 그였고, 그때부터 다양한 일거리를 도맡아 거리를 전전하며 지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들어간 식당에서 재능을 보였고, 이후 주욱 요식업계에서 일을 해온다.


스무살이 넘어서는 나름대로 종잣돈을 모아 수도로 향했고, 광야와 몬스터, 짐승과 강도들의 위협을 넘어 무사히 수도 사르삿에 도착한다. 처음에 이야기했듯 일반지구의 어느 한 구석, 작은 식당을 꾸려 시작한 일이 점차 잘 되어서 이십대 후반에 이미 중심지구의 음식점을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녀, 유사 킨치Yusa Kinchee라는 이름의 아가씨를 만난 건 딱 서른 살이 되는 해의 일이었다.


식당에 손님으로 찾아왔던 그녀가 한 눈에 들어왔고, 중심지구의 음식점 중에서 맛도 좋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었던 그의 식당에 유사가 자주 들르면서 친분을 다졌다.


아이젠은 부모도, 가족도 없는 홀몸이었으나 유사에게는 가족이 있었다. 두 사람이 연인이 되어 관계가 깊어지자 부모와의 연이 생겼다. 아이젠은 유사의 부모, 킨치 부부에게도 정을 느끼고 친절하게 대했다.


유사를 잘 길러낸 두 부부 역시 아이젠이라는 사내를 잘 맞아주었다. 딱히 배척하지 않았고, 유사와의 교제 역시 반대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아이젠이 사르삿의 주민으로서 보면 외지인이며, 이렇다 할 가족도 친척도 없는 처지이기는 하지만 중심지구에 번듯하게 자리잡은 요식업계의 자영업자라는 점이 그녀의 부모에게 어필이 되었는 지도 모른다.


킨치 부부, 반야 킨치 부인과 남편인 베일리 킨치는 굳이 따지자면 속물이라고 표현하는 게 옳을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아이젠과 유사의 관계에 방해가 되는 일은 없었고, 두 사람은 서로의 미래를 논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나름대로 장기간 연애를 했고, 약혼을 하기에 이른다. 결혼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한 해 정도가 더 지난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킨치 부부에게도, 아이젠 하우드에게도 끔찍한 일이었다. 콘란드 대륙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무수한 식생과 동물군들이 있었다. 당장 도시를 떠나 광야를 걷기만 해도, 처리하는 데 기사급의 실력자나 군인들이 모여야만 하는 괴물들도 어렵잖게 만날 수 있다.

드넓은 황무지에서 바로 코앞에서 마주친다거나, 그것들이 집요한 악의를 품고 사람들을 노려오지 않기 때문에 주민들의 삶이 유지될 수 있다. 거기다 정기적으로 군부대나 기사단 등이 토벌을 함으로, 비교적 안전한 치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왕도인 사르삿은 더욱 그럴 테였고.

그러나 언제나 모든 일이 예상 그대로 일어나지는 않는 법이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나중에 아이젠 하우드가 자신의 삶을 돌이키면서 생각했던 문장이었다. 이미 일어난 현실에 대해서, 확률론이란 늘 무의미하며 무능한 이야기였다. 기적적인 확률로 사건은 벌어지며,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사람은 자신의 삶을 감당해야 한다.

애초에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어머니밖에 없었던 가정 환경이 그러했고, 이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를 잃어버렸던 그의 삶이 그러했다.

그에게 있어서 삶이라는 건 늘 혹독한 시련을 던져주는 무언가였다. 삶 자체가 아예 그런 것 같기도 했었고.


결론적으로 말해서 유사 킨치는 죽었다. 그와 결혼을 약속하고, 미래에 대해서 행복하게 나누며 구체적인 날짜를 잡던 와중에 말이다. 그것이 어떤 섭리인 지는, 아직도 아이젠은 정확하게 다 알지 못한다. 삶이라는 것은 늘 그런 법이었다.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여정을 떠나는 과정이다.

아이젠은 슬프고, 고독했으며, 또 분노에 찬 한 명의 어린아이였고 이제는 건장한 청년을 지나 중년기를 바라보고 있는 사내였다.


그가 한창 중심지구에서 아이젠스 키친을 번듯이 키워내고, 하루에도 수백 여 명의 사람들을 손님으로 받고, 또 그만한 수의 사람들에게 포장 음식을 팔면서 많은 돈을 벌고 있을 때 마음에 두었던 여자는 떠나갔다.


별 것도 아니었다. 유사는 여행을 좋아했고, 그녀에게 사르삿은 삶의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개중에서 자그마한 일탈을 즐기는 것이, 성벽 너머 외곽도시까지 가서도 다시 바깥으로 넘어가, 수도 인근의 자연지역을 거닐던 일이었다.


산책과도 비슷하다. 실제로 외곽지역의 끄트머리 인근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았고, 미약하나마 자경대가 치안조직으로 존재한다.

거기에 수도를 지키는 수비군도 정기적으로 외곽을 돌면서 쓸 데 없는 몬스터들의 자생을 없애기 위해 순찰을 하고 토벌을 한다.

수비군의 활동 계획에 꼭 들어가 있는 훈련 겸 순찰이었으므로, 안전하다고 할 수 있었다. 여인의 발길로 갈 수 있는 고작 몇 시간 정도 거리는 강도의 위협도 크지 않았다. 수비군이 몬스터들만 처치하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황야를 떠도는 도적떼 따위도 대도시 인근으로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모든 몬스터를 수비군이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몬스터의 종류는 아주 다양하니까. 황무지에 서식하는 어느 독충에 물린 그녀였다. 유사 킨치는 그 날도 홀로 사색을 즐기면서 도시 인근의 평지를 거닐었고, 늘 다니던 길을 걷던 중 아무런 낌새도 없이 다가온 독충에게 습격당했다. 습격이라고 말하기엔 민망한 사이즈의 독충이었으나, 그것이 품고 있는 독성을 이야기한다면 충분히 그렇게 표현할 수 있었다.

다만 즉효성의 그것은 아니었고 그녀, 유사는 식은땀을 흘리고 평소답지 않은 컨디션을 느끼면서 집으로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

어딘지 몸이 좋지 않은가, 이상한 낌새가 있고서 침대에 드러 눕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고작 반나절만에 독감 류의 질병인가 하던 그녀의 부모는 그대로 유사가 의식을 잃는 걸 지켜봐야 했다.


일반 지구에 살고 있다지만 나름대로 오래 가게를 경영하면서 쌓아둔 재산 정도는 있었다. 딸 아이가 위급할 때 쓸 수 있는 돈도 있었고, 그녀의 혼수로 줄만한 재물들도 있었다. 당장 왕도에 있는 유능한 치료사들, 의사들을 찾았지만 그들도 하나같이 손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무엇보다 처음 보는 유형의 증상이었고, 그녀가 물린 독충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자가 없었다.

그저 희귀한, 게임적으로 말하자면 유니크 몬스터에게 운 나쁘게 걸려 들었을 뿐이었다. 무작위 난수로 인해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 중 한 가지가, 유사 킨치의 인생에 나타난 것이다. 고작 그 뿐인 이야기였으나, 그녀에게 이미 깊은 마음을 쏟고 있던 아이젠 하우드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벌처럼 생겨서 황야 인근을 떠돌다가 적당한 짐승을 발견하면 쏘아대고는 하는 독충이었다. 게임에서는 킬러 비Killer bee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귀여운 이름에 그렇지 못한 수사修辭였다. 손가락 한 두어 마디 정도 되는 크기의 벌레로, 황무지의 어느 동굴 같은 곳에 서식을 하다가 이따금씩 비행해서 먼 거리까지 제 영역으로 삼는다. 독이 제법 강력했고, 기사라 할 지라도 무방비로 당하면 상당히 심한 고통과 함께 병을 앓아야 했다.


초인이라 불리는 기사에게 그런 병이었으니, 일반적인 사람에게는 말할 것 없었다. 기사이기 때문에 사는 것이었지, 일반적으로는 죽음에 이르는 독성을 가지고 있었다.


유사 킨치는 그렇게 벌레에 쏘이고, 집으로 돌아와, 삼 일을 넘기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아이젠 하우드에게는 말이다. 자신의 약혼녀가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 몇 번인가 병문안을 와서 그녀의 안색을 살피고 돌아갔었다. 그리고 나서 하룻밤을 자고 돌아와 들은 이야기는 바로 그녀가 죽었다는 말이었다.


어이가 없을 정도였고, 또 예상치 못했다. 의식 없이 침대에만 누워 있던 그녀였지만, 대단한 병의 증세가 눈으로 보기에는 드러나지 않았기에 말이다. 마치 잠을 자는듯 눈을 감고 있었고, 열병을 앓듯 땀을 흘리고 신음을 내긴 했지만 그 외의 특징들은 없었다.

치료사들도 자기들 나름대로의 조치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상당히 희귀한 몬스터였고, 킬러 비는, 그것의 독을 해독해내려면 수준 높은 치료 스킬이 필요했던 탓이었다.

그녀가 쓰러지고 나서 곧바로 왕실 소속의 치료사를 불러 그의 기술을 받았다면 살아났을 지도 모른다.

만약 그랬다면, 이라는 건 언제나 부질없는 말로 우리의 인생을 떠도는 문장이요 가정이다.


유사 킨치는 덧없이 죽었다. 20대 중반, 한 명의 여성이 목숨을 잃기에는 지나치게 짧고 또 새파란 인생이다.

그러나 비극이 여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고, 게임 바깥 현실에도, 21세기의 후반을 바라보는 작금에도 인생사의 비통함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건 아무리 시대와 문명, 기술과 사회 체계가 발전한다고 해도 사라지는 종류는 아닐 것이다.

제도적으로 더 작아지고, 어떤 지역적 범위로 좁혀지며 어느 정도 통제될 수는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사람의 삶을 따져본다면 ‘고통’이 더 그 본원에 가까운 탓이다.


고통 없는 삶은 없다.

그것을 이겨내는 위대한 결단들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아이젠 하우드는 죽지 않았다.


죽고 싶었지만.


가족도 없는 그가 처음으로 삶에서 씁쓰레하면서도 달콤한 맛을 보았던 때라고 해도 좋았다. 회색빛으로 시커먼 그의 세계가 갖가지 총천연색으로, 혹은 파스텔 톤으로 칠해지기 시작하고 여러 향취를 내기 시작하던 때였다. 유사 킨치와의 만남과 추억과 관계를 가졌던 때는.


지나친 낭만주의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미 다 커버린 몸뚱이의 장정은, 덧없이 꿈꾸었던 미래를 잃었고 우울함과 절망에 빠져들었다. 아니면 이미 애초에 그것을 갖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그의 삶은 그럴만 했으니까. 유사 킨치를 만나기 전에 이미 커다란 슬픔을 안고 있었지만 그것이 표현되지 않았을 뿐이며, 달콤한 삶을 꿈꾸다 보니 잃어버렸을 때 그 반대급부의 슬픔이 더 드러난 것 뿐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아이젠 하우드는 죽는 것보단 사는 길을 택했다.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처럼. 홀로 번햄에서 사르삿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했을 때처럼.


다만 그의 삶이 이전까지와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가게에서 일을 하는 것에 우선 흥미를 잃었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일이자 버팀목이었던 요리로부터 그는 멀어졌다.

그 자리를 대신 킨치 부부에게 맡겼다. 두 노부부는 딸을 잃은 슬픔이 컸으나, 급한대로 여러 치료사들을 고용하고 의료원의 의사들을 불러내느라 많은 돈을 썼다. 모아둔 재산이 있었지만 저금 중 상당 부분을 써버리고 말았다.


아이젠은 요리에는 흥미를 잃어버렸고, 더 이상 치열한 하루를 살고 싶지 않았다. 다만 조금 쉬고 싶을 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듯 하루하루를 버텨온 삶이었으니, 잠깐의 휴식 정도야 괜찮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의 소중한 가게를 아무에게나 넘겨주고 싶지도 않았다. 마침 적당한 사람들이 있었다. 유사 킨치의 부모였던, 장인과 장모가 될 뻔했던 부부였다.

마침 부부 두 명 모두가 오래도록 요식업에 종사한 이들이었고, 요리의 경력만 따지자면 그보다도 훨씬 길었다.

그들이 하는 요리가 변두리라고는 하지만 중심 지구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음식을 파는 아이젠스 키친에 딱 맞는 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레시피가 한정적이라면 연습을 하면 될 일이었다. 어쨌든 중요한 건 하고자 하는 의지와 성실성, 그리고 다년간 비슷한 일을 해온 이들만의 노하우 따위였으니까.


반야 킨치와 베일리 킨치. 머리가 희끗한 장년, 혹은 노년기의 부부였고 아이젠 하우드와는 사실 그리 인간적인 교류를 많이 쌓지 못한 사이였다. 유사 킨치와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그럼에도 아이젠은 두 사람을 남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장인과 장모가 될 뻔했던 사람들이었으니까 말이다.

아이젠스 키친에는 아이젠의 모든 노하우와 그의 요리 인생이 담겨져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소중한 것이었고, 지금 당장 손에서 놓아버리고 싶다고 하더라도 땅바닥에 버려져서는 절대 안되는 무언가였다.

아이젠 하우드는 분명 일류 요리사였고,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줄 아는 사내였다. 나름의 요리 철학이 있었고, 사업적인 신념 역시 있었다. 질 좋은 재료를 양심적으로 조리해서 내다 팔 것. 지나치게 비싼 값을 받지 말 것. 사람들이 한 끼 푸짐한 식사를 먹고, 기분 좋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할 것. 한 끼의 맛보다 오래도록 먹을 수 있는 영양을 중시할 것.


단순한 철학이었지만 지키기는 어려운 것들이다. 아이젠은 나름대로 곧은 사내였고, 뚝심이 있었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지금 이 때까지 살아온 여정을 돌아보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누군가의 물질적, 정서적 지원도 없이 홀몸으로 살아남아 오지 않았겠는가. 물론 그에게는 그 깊은 고독에 비례하는 빛이 있기는 하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보냈던 시간들은 그에게 있어 금과도 바꿀 수 없는 것들이었다. 또 그를 사랑했던 아버지의 이야기에 대해서 아이젠은 늘 가슴 속에 새기고 있다.

지방 도시의 용병이자, 나중에는 지역 수비대의 정규군이 되었던 그의 아버지는 유해한 몬스터들을 전문적으로 잡는 사냥꾼이었다. 정규군에 소속된 다음에는 비슷한 일을 하는 부대의 대원으로서 일을 했다.

거친 일을 하는 사람이었지만 사람들을 돕는 직업을 갖고 있었고, 나름대로 다정한 면이 있는 양반이었다. 빈 하우드, 라는 이름의 사내는 옛날 어느 때 평범한 마을 처녀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리고 죽었다.

그가 겪는 전장은 남들이 겪는 그것보다 조금 더 거칠고 위험한 곳이었고, 그런 곳을 헤쳐나가며 살아온 어느 베테랑 몬스터 헌터는 어느 날 자신의 키에 넘는 고비를 맞닥뜨려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러나 그가 죽었다고 하더라도 그의 마음이나 사상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가 사랑한 여인이 있었고, 그의 아들이 있었다. 아이젠 하우드는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지도 알지도 못하지만, 그라는 인간이 존재했다는 사실만큼은 누구보다도 확실하게 안다.


어떤 사실 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분명한 증거로서 자신의 살갗에 와닿는 사실들이 있었다. 그건 누군가가 거짓말로 아니라고 해도 아니게 될 수 없는 것이고, 또 반대로 누군가가 맞다고 하더라도 아닌 게 맞는 게 될 수 없는 일이었다.

빈 하우드가 평생 살면서 번햄의 외곽에서 처리했던 해수들은 셀 수 없이 많았고, 그 덕분에 지방 도시의 외곽 마을은 조금 더 안전하고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도시에서도 조금 떨어진 마을에 아이젠 하우드의 집이 있었고, 그의 어머니가 있었다.

그런 마을에서 나고 자란 시골 처녀였던 어머니였고, 자신이 사는 땅을 지키기 위해 애를 썼던 어떤 사내의 흔적은 그가 죽고 나서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아이젠은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했으며, 또 마음 속 깊이 묻었다. 묻었다, 라는 말은 잊었다라는 단어의 정반대의 말로, 절대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중요한 보관소에 잘 두었다는 뜻이다.

어머니의 표정, 말, 행동, 사상 하나하나에서 아버지의 존재가 느껴졌다. 그가 자랄 때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가 어머니에게 어떤 존재였는 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어머니의 얼굴에서 아버지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그녀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 속에서 아버지의 성격을 알 수 있었고 말이다. 아버지가 없이 자랐지만 누구보다도 확고한 부친의 상像을 머릿속에 갖고 자라난 그였다.

당연스레, 남자라는 게 으레 어때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확고하게 깨달으며 컸다.


그에게 있어 남자라는 건,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슬픈 일이 있을 때 물론 무너질 수 있겠지만, 또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외롭고 추운 새벽녘에 울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목표한 바가 있다면 끝까지 걸어가고 이뤄내는 자의 이름이었다.

설령 그 골에 도달하지 못하고 도중에 힘이 다해 쓰러져 죽는다고 하더라도, 마지막까지는 걸어가야 하는 게 그가 갖는 남자의 상이었다.


아이젠은 강한 어미의 아래에서 자랐고, 그의 어머니는 그를 정성스레 가르쳤다. 학식이 깊은 여인은 아니었으나 품성의 격은 나름대로 다져진 여성이었고, 그래도 아이젠은 크게 모자란 것 없이 일상적인 삶을 이어나갔다.

현대의 산슈카 왕국은 어느 정도 기본 교육이 활성화된 상태였다. 이전, 한 두 세대 전에 비해서는 크게 나아진 게 현재의 사정이다. 문화와 기술이 계속해서 양적으로 질적으로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삶에도 여유가 조금쯤은 생겨나기 시작하는 와중이었다.


지방 도시의 변두리 마을에서 살고 있던 아이젠이라 할 지라도, 기초적인 문화, 역사, 법 따위의 것들을 배울 기회는 충분히 주어졌다. 아주 싼 값에 다닐 수 있는 학교가 있었고, 그것은 정부 곧 왕실의 지원금과 각 지방을 호령하는 대영주들이 모아 낸 기금에서 운영비를 제한다.

나라가 어느 정도 여유를 갖게 되었기에 가능했던 제도였다.


아이젠의 어머니는 마음에 비해서는 몸이 약한 여인이었고, 지병을 앓고 있었다. 아이젠 하우드는 해로운 괴수에게 아버지를 잃었고, 병마에 어머니를 잃었다. 그러나 유년기를 지나 청소년기에 접어들기까지 그가 배웠던 가르침들은 남아 있었다.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 역시 남아 있었고.

소년은 좌절하지 않고 세상 속에서 이리저리 넘어지며 삶을 살아냈고, 기어코 사르삿까지 살아 기어 들어와 요식업계에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기에 이룬다.


그렇게 강인하게 살아온 사내였지만, 어쩔 수 없이 곁에 누군가를 두고 싶어하는 본질적인 외로움은 있었다.

그런 그의 부족함을 달래줄 것 같았던 인연이 바로 유사 킨치였고, 그녀를 잃은 뒤 아이젠은 크게 낙담을 한다.


반야와 베일리 킨치는 아이젠에게 여러 가지 당부를 듣고 그의 가게를 인수하기에 이른다. 거의 거저나 다름 없는 가격에 가게를 이어받을 수 있었다. 아이젠은 그간 모은 돈으로 휴식을 하고자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에 대해서도, 잠시 떨어져서 본다면 새로운 영감을 얻게 될 지도 모른다.

일로서의 요리가 아니라 순수하게 혼자서 연구하는 요리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는 것이다.

계획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가게를 건네 받은 반야와 베일리, 킨치 부부는 아이젠과는 조금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었다. 딸은 나쁘지 않은 성품으로 잘 키워냈던 그들이었으나 부부는 본질적으로 타산적인 인간들이었다.

좋게 말해서 그러했고, 나쁘게 말해서 이렇다 할 철학이나 신념이 없다고 하는 게 좋았다. 진정으로 타산적인 이들은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서 때로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선행을 베풀거나, 양심껏 행동을 하기도 하니까.


그러나 그들은 일반 지구에서도 그리 성공하지 못한, 음식점 하나를 그저 근근히 이어나가던 이들이었다.

요리 솜씨도 아이젠의 생각보다 더 좋지 못했고, 요식업을 하겠다는 열정과 의지도 별로 크지 않았다. 신념도 열정도 없이 가게를 운영하다 보면 여러 문제가 일어나는 건 당연했다.

음식의 질이 떨어지고, 서비스의 질이 낮아지면서 오래도록 가게를 찾던 단골 손님들이 하나 둘 씩 떠나가기 시작했다. 아이젠스 키친이라는 이름을 듣고 가게에 오는 이들이었지만, 어느새 주인장이 모르는 이들로 바뀌었다는 걸 알고 나자 발걸음이 뜸해지기 시작한다.


킨치 부부는 아이젠의 레시피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그 점이 아이젠 하우드가 가장 화가 나는 부분이었다. 요리사에게 있어 레시피라는 건 결국 가장 중요한 근원이나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된 음식을 어떻게 조리해서 손님에게 가져다 주느냐, 그게 결국 요식업의 전부였다.

그 과정에는 어디에서 재료를 가져와 어떻게 다루며 어떤 식으로 요리를 할 것인가가 모조리 포함되어 있다.


두 부부는 아이젠의 신념과 달리 제대로 된 재료를 쓰지도 않았고, 한 번에 맛을 내기는 좋지만 그다지 건강상 좋지도 않은 싸구려 향신료 배합을 사용했다. 연금술사들이 실수로 만들어낸 물건이었는데, 맛이 강해서 소금이나 후추 따위의 맛과 풍미를 대신할 수 있지만 오래 먹으면 약간의 부작용이 있는 물건이었다.

정말 식재가 부족한 집안에서 이따금씩 사용하기는 하지만, 장기적으로 복용하면 과체중이라거나, 만성 피로라거나, 두통이라거나 하는 약간의 부작용이 올 수 있었다. 그리 심한 건 아니라 시중에 그대로 유통이 되고는 있었지만, 건강이라는 걸 주제로 논해보자면 쓸만한 재료는 아니었다.


두 부부는 싸다는 이유로 그런 물건을 아낌없이 음식에 넣어서 팔았다. 각 레시피에 주요한 재료로 들어가 있는 것도 단지 가격을 위해서, 더 저질의 물건들을 가져다 쓰기 시작했고.

신선도가 떨어지고, 또 애초에 재료의 질이 떨어지는 걸 모양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넣기 시작하는 것이다.

거기에 싸고 쓰레기같은 식재의 양을 늘리고, 비싸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식재의 양은 줄인다. 전체적으로 음식의 맛도 양도 줄어들고 가격은 그대로이거나, 혹은 올린다.

손님들이 줄어들수록 한 번에 파는 가격이 높아야 하니까 말이다.


그에 관해서, 아이젠은 처음에는 관여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킨치 부부가 그런 식으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고난 뒤에 조금씩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젠과 가까웠던 단골들이 이따금, 그의 집을 들르거나 거리에서 만나면 하소연을 했던 탓이다.

‘음식이 맛이 없어졌다.’ ‘더 이상 예전의 그 가게가 아니다.’ ‘먹을 만한 것을 팔고 있지 않다.’ ‘자네가 사라지고 바뀐 사장은 양심이 없다.’

오랜 지인들의 말을 들으면서 그는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고도, 아이젠스 키친의 이름을 바꾸지 않고 준 건 그의 결정이었기에 돌려 받을 수가 없었다. 아이젠이 그 가게를 부부에게 헐값에 팔아 넘긴 건, 딸을 잃어버렸을 그들의 상심에 대한 위로이기도 했으며 한 때 유사 킨치와 결혼까지 생각했던 사내로서의 어떤 도리라고 생각했기에 한 일이었다.

자신은 이제 가게에서 손을 떼고 잠시 쉬려 하지만, 가게의 구조와 레시피와 명성은 여전히 남아 있으니까. 외동딸을 먼저 보낸 가난한 노부부에게 좋은 선물이 되겠거니 해서 준 것이었다.


그러나 킨치 부부는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적잖이 다른 사람들이었다. 한 때 장인과 장모가 될 뻔했던 사람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얘기가 통하지 않았고, 독선적이었다. 또한 속물적이었으며, 기본적으로 일을 하기 싫어했다.

요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왜 요식업을 선택해서 평생 가게를 꾸려왔는지 이해할 수 없는 정도였다. 아이젠스 키친은 단순히 요리 하나를 파는 곳이 아니라, 그 주변 거리의 주민들과 외지인들에게 건강한 식사와 영양가 넘치는 식단을 제공하는 곳이었는데.

쓰레기같은 음식을 팔면서 돈을 받아봤자, 조금도 기쁠 것이 없고 의미도 없는 짓거리였다. 설령 그렇게 해서 돈을 얼마 벌 수 있다고 해도 하면 할수록, 양심에 구멍만 나는 짓거리이다.


킨치 부부는 아이젠이 당부했던 모든 레시피를 엉망으로 바꿨고, 요리의 공정을 싸그리 무시했다. 적법한 절차에 의해 가져와야 했을 수많은 재료들을 버리거나 헐값의 물건으로 탈바꿈시켰고, 사람들에게 못 먹을 만한 물건들을 음식으로 팔았다.

아이젠은 거리의 소문이 그에게 들리기 시작한 이후부터 끈질기게 가게에 찾아가 두 노부부를 닦달하고 못살게 굴었다. 그들이 장사를 제대로 하고, 먹을만한 요리를 손님들에게 팔 때까지 말이다.


지금 아이젠스 키친이 그럭저럭 가게다운 모양새를 갖추고 음식을 팔아 먹으며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 또한, 아이젠의 노력 덕분이었다.

그들은 그저 중심 지구에 자리잡은 가게를 얻어서, 그 이름값으로 최대한 비싸게 장사를 하다가 적당한 때 건물과 땅을 팔려는 생각이었던 듯 싶다. 그것이 그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줄 알았건만, 그네들의 욕심만 확인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아이젠은 그들 부부에게 실망을 했고, 그 이후로는 킨치 부부와 계속해서 사이가 안좋아졌다. 아예 신경을 끄고 싶어도, 막상 자신이 만들었던 아이젠스 키친이 엉망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자 마냥 남의 얘기처럼 들을 수가 없었다.

아이젠이 실제로 그 가게에서 쏟아부은 열정과, 땀 따위가 고스란히 남아있었으니까 말이다. 멋들어진 나무 간판의, 솜씨 좋은 단골 도공이 그려낸 ‘아이젠스 키친’이라는 이름에는 말이다.


그렇게 몇 년을 이어져왔다.

아이젠이 가게를 떠났지만, 마냥 떠나지도 못하고 그 주변을 맴돌면서 킨치 부부에게 잔소리를 하고, 또 그들이 그나마 멀쩡한 음식물들을 만들게끔 하는 일들이 말이다.

그런 세월이 그렇게 길게 갈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건만.

애초에 망가졌던 인간들이었을까, 킨치 부부가? 아이젠은 확신할 수 없었다. 자식을 잃어버린 슬픔이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며 가슴을 깊이 할퀴어내는 흉악한 슬픔이라고는 하지만, 그것 때문에 사람의 인격이 달라질 수가 있는 것인가.


처음부터, 유사 킨치를 키워냈던 두 사람은 딸과는 다른 품성을 가졌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없었다. 돈이나, 배를 불릴 음식물만 있으면 족하는 양반들이었고 그 외의 신념들은 사치라고 느끼는지 모른다. 아이젠에게는 그토록 중요했던 가치였지만.

아이젠은 도리어 살아남기 위해 발악을 하면서, 하루에 먹을 음식물이 제대로 보장되어 있지 않은 생활을 하면서 더욱 소중해졌던 신념과 가치들이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만을 쫓지 말자, 라는 가치관들 말이다.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이 세상의 전부이며, 돈이니 당장 가지고 있는 재주니 하는 것들이 인생의 결말을 만드는 모든 요소라고 한다면 아이젠의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으니까.


그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이 번햄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을 하고 요리를 배우고, 또 사르삿까지 와서 이를 갈아대며 레시피를 개발하며 식당을 만들었던 그 모든 시간들을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치열함은 단순히 돈을 위해서 한 게 아니었다. 적어도 돈보다는 중요한 가치가 세상에 있어야만이, 그 시간이 보답받는다.

아이젠과 킨치 부부는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지점이 있었고,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생물이라고까지 느껴졌다.


킨치 부부는 그들 나름대로, 그저 주어진 것을 잘 활용해서 돈을 벌고 마지막까지 뽑아 먹다 팔겠다는 건데, 그걸 방해하는 젊은이가 괘씸하게까지 느껴졌다.


아이젠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들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못했고, 단순히 그가 그들 부부의 일을 방해한다고만 생각했다.

드러내놓고 악담을 퍼붓는 인간들은 아니었기에, 은근히 아이젠을 무시하며 계약서 상으로 아이젠스 키친이 그들의 것이었으니 아이젠을 멀리하는 게 그들의 방법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조금씩 쌓여온 골이, 터진 날일지도 모른다.


십 오 년 만에 벌이는 산슈카 귀족제의 어느 날은 말이다.


아이젠스 키친은 깨나 유명했다. 킨치 부부가 말아먹은 그 시간과 악평으로도 다 지워내지 못할 정도로, 이전에 거리의 주민들과 외지인들에게 널리 사랑을 받으며 음식을 제공했던 가게였다. 귀족 지구로까지 불리는 중심 지구의 번화가에서도 아이젠스 키친에 와서 밥을 먹고 가는 이들이 있을 정도였고, 반대로 일반 지구의 외곽에서도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모아 와 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격이 저렴한 편이었다.


맛 좋은 음식을 건강한 재료로 만들어 저렴하게 판다. 모든 요식업을 하고 있는 사업자들이 목표로 하는 가치라 할 수 있었다. 그것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느냐, 는 물론 늘 다른 문제이다.

개인의 욕심에 의해서, 게으름에 의해서, 혹은 구체적인 목표성의 부재나 실력의 부재에 의해서. 이상은 높지만 그것을 해내는 식당은 많지 않았다. 아이젠스 키친은 여러 종류의 장점을 한 번에 잡고 있는 거리의 명소였고, 아이젠은 그런 식당의 오너였었다. ‘였었’다.


자신이 왜 그렇게 멍청한 짓을 했을까, 후회를 한 적도 많이 있었다. 아이젠은. 그러나 유사 킨치의 얼굴과 그녀의 말들이 어른거리는, 아직까지도 헤어나오지 못하는 그는 그녀에 대한 유일한 보답이 부모님을 챙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부모조차도 제대로 챙길 새가 없이 사라져버렸던 인생을 산 아이젠 하우드다. 아이젠에게 유일한 달콤함이었던 그녀와의 추억처럼, 그녀의 부모님에게 어떤 물질적인 도움을 줌으로써 자신의 삶에도 약간의 보상이 되지 않을까 했던 생각이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준다는 게, 때로는 받는 것보다도 더 큰 위로나 기쁨이 될 때가 있는 법이었다. 그게 아이젠 하우드가 생각하는 삶의 올바른 가치와 방향성이었고.


킨치 부부는 생각이 늘 다른 듯 했지만.


회색과 갈색, 그리고 흰색이 섞여 있는 머리칼의, 볼이 움푹 들어간 노인인 베일리 킨치는 늘 그를 보면 인상을 찌푸리고 눈을 번뜩였다. 처음 볼 때도 그리 깊은 감정적 교류가 가능한 상대는 아니었다.

딸을 받으러 온 남자를 맞이하는 사내의 모습으로서,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유사 킨치와의 교제가 길어지고 또 오랜 시간 만나면서도 마음의 벽이 허물지 않았던 건 이해하기 어렵다.


비슷한 머리칼에, 갈색 눈동자를 가진, 또 마르고 히스테릭한 인상을 가진 여인인 반야 킨치 역시 아이젠에게 그리 편한 상대는 아니었다. 겉으로야 양식적으로 대하고 예의 바른 장인과 장모, 그리고 예비 사위의 모습이었지만 그들은 서로의 인생에 대해서 그리 잘 알지 못했다.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으나 겉도는 말들만 해댔고,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얘기를 한다거나 살아왔던 모든 장면들에 대해 소회를 나눈 적이 없었다.

약간은 불편하고, 섭섭할 정도로 쌀쌀맞고, 거리가 먼 그런 이들이었다. 킨치 부부는 아이젠에게.


아이젠의 나이도 어느덧 서른 후반이었다. 쉼없이 달려왔다고 생각했던 인생의 초, 중반부에서 이제 중후반부를 기약하며 쉼을 가지려 했다.

그마저도 제대로 쉬지 못한 것이 참 아이러니이며 낭패이기는 하다만.

스스로가 강인한 사내라고 끊임없이 되뇌며 살아왔지만 약간의 우울증도 좀 겪고 있던 것 같았고.


아이젠은 축제 날에, 술이 아주 약한 주제에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도수가 낮은 과실주와 맥주 음료를 벌컥대며 마셨다.

그의 지인들이 괜찮은가, 하는 표정으로 바라볼 때도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며 간을 흠뻑 적셨다.

그 결과로, 술에는 그다지 인연이 없던 그가 속이 뒤집어지고 말았다.

하루종일 열병을 앓고, 축제 날 중 1일을 통째로 날려버린 그다. 아픈 와중에 온갖 생각과 감정들이 소용돌이 치듯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기어코 그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멀쩡하지 못한 정신과 머리, 또 컨디션으로 아이젠스 키친에 들렀고, 여전히 그의 당부는 무시한 채 엉망진창의 레시피로 음식들을 팔아먹고 있던 킨치 부부를 보자마자 돌아버린 것이다.


수 년의 세월이었는데, 아직도 유사 킨치를 보내고, 또 아주 어린 날부터 시작되었던 고독에 대한 치유가 다 끝나지 않았는지. 아이젠은 그답지 않게 평정심을 잃어버리고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한 번도 떼를 쓸 곳을 찾지 못했던 사내의, 때늦은 반항이라고 해도 좋을만한 꼴이었다.

건장한 사내, 두터운 체격에 곱슬거리는 갈색 머리. 깊은 눈동자. 그는 약간은 초점이 없는 눈으로, 기어코 킨치 부부에게 성질을 내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번 토해내고 나니 겉잡을 수가 없었고, 자신도 다 알지 못했던 울분 따위가 한꺼번에 섞여서 나오는 듯했다.


아이젠은 그래서 외친 것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울림통이 좋은 청년은 제법 거리가 떨어진 여관에 있던 제냐를 불러낼 정도로 크게 소리를 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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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쓰고 보니, 몇 자 되지도 않는군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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