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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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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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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12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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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108. 사내는 지난 시간을 등지고 돌아섰다.

DUMMY

*


사내의 울분은 하루아침에 쌓인 게 아니었다.


어쩌면 이 일과는 그다지 관련 없는 과거까지 뒤섞여 나왔고, 한이 서린 외침에 사람들은 잠시 지나가다 눈길을 주었다.


아이젠 하우드가 괴성을 지르면서 의자 다리를 붙들고, 가게 앞에서 행패를 부리고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누군가에게 상해를 입히지는 않았다. 이내 관심을 잃어버린 행인들은 저러다 말겠거니, 하고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축제, 귀족제는 산슈카의 큰 행사 중 하나였다. 약 보름간 계속되는 축제 중에는 별에 별 소란과 사건 사고가 다 일어나기 마련이다. 외지인이나 사르삿의 토박이나, 온갖 데서 온 사람들이 다 섞여서 축제를 즐기고 또 그런 자리에 술이 있기에 그러하다.

새롭게 만난 인연들 사이의 싸움일 수도 있었고, 오래도록 함께하던 인간 관계 속에서 응어리 진 게 터져 나올 때도 있었다.

어느 쪽이던, 강도나 살인, 폭행처럼 치안대를 불러 올만한 일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미 가도는 곳곳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고 다양한 볼거리와 먹을거리들을 둔 채 소란스럽다.

아이젠 하우드가 질렀던 비명은 감정으로 따져 비통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이 소란스러운 도시의 한복판에선 그게 즐거워서 지르는 비명인지 괴로워서 지르는 것인지 알 도리도 별로 없다.


어떤 퀘스트가 발생하지 않을까 해서 아이젠이나 가게를 지키려 하는 노인장들을 구경하던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중부 대륙, 산슈카의 피스 시를 비롯해서 몇 개 스타팅 포인트는 아시아인들이 많은 편이었다. 그러나 많은 편이지, 절대 다수까지는 아니었다.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유저들이 아이젠 하우드를 지켜보다가 그들 역시 자리를 떠났다.

씩씩거리면서, 숨을 몰아쉬는 백인 장정을 앞에 두고 계속해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 제냐였다.

백인의 비명이 제법 깊은 감정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느꼈고, 그의 표정이나 기색에서 오랜 사연이 있음을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오래된 감정은 곧 오래된 이야기를 뜻했다. 이 게임의 이름이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이라면, 그런 서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결국 더 양질의 퀘스트를 발견해내고 더 클리어에 가까울 지 모른다.

제냐가 계산적으로 의도한 건 아니었으나, 그는 어쨌든 게임 속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계속 처다보았다. 어차피 여기는 현실이 아니어다. 이 세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구경하기 위해서 접속을 한 가상의 세계였다.


아이젠 하우드가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저 사내의 사연이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 때에 따라 선택이 다르기는 하지만, 모두 제냐가 게임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홀로 사냥에 몰두하고 여타 플레이어들과 조금 다른 독자적 스타일을 구축해보는 것도, 이런 식으로 NPC들의 세세한 변화에 집중해보는 것도 말이다.


“허억.”


아이젠은 숨을 토했다.


그의 입가 근처로 침이 떨어졌다. 푸들거리는 볼이다. 숨이 찬 모양이었다. 꺼끌한 수염이 그의 볼에 튀어나왔다. 그다지 단정한 용모는 아니었다.


툭,


하고 그가 손에 쥐고 있던 나무 조각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의 손에서 부스러기가 흩어진다.


아이젠은 정신을 차리려는 듯 고개를 휘휘, 저어댔다. 밤공기가 차다. 주변에서 번쩍거리는 불빛이 그의 시야에서는 조금 번지게 보인다. 익숙치 않은 술을 먹었던 여파로, 이제까지 정신이 잘 차려지지 않고 있었다. 열병을 앓는 것과 비슷한 증상이다.


아이젠은 제 손을 앞치마에 슥슥, 문질러 닦았다. 부스러기가 굵은 천에 쓸려 떨어져나왔다. 두툼한 손이었다. 오래도록 요리를 했다. 그 이전부터도 평탄한 삶은 아니었고. 굳은 살이 배겼고, 이제는 칼에도 뜨거운 기름에도, 불에도 그다지 감각이 없는 손이다.

물론 강철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칼날에 닿으면 베이기야 하지만. 처음 요리를 시작했던 어린 날의 그 때보다는 비교할 수 없을만치 둔탁해지고 무뎌졌다.


어둔 밤거리라고 하기 힘들 정도로 불빛이 많았다. 아이젠이 토해내는 괴성에 발길을 멈춰섰던 행인들도 어느새 다시 자기들의 발길대로 걸어가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가, 해서 다시금 잠깐 그를 구경했던 사람들도 오래 서있지는 않았다.

인파의 흐름 속에 아이젠이 잠시 외쳤던 비명이 흐려지듯 사라진다. 썰물에 모래 위 자국이 사라지듯이 그렇게 옅어지는 것이다.

단순히 아이젠의 비명만이 아니라 인간의 삶도 시간의 흐름 앞에서 그런 걸 지 모른다. 아팠던 감정조차도, 세월의 풍화에 낫게 된다. 그게 더 곪는지, 낫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건 하루하루 쌓여가다 보면 사람은 무뎌지게 마련이다.


아이젠에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할 지 모른다. 그런 무뎌짐의 필연적인 요소가 그에게 있어서는 유사, 그녀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그녀가 죽은 날로부터 수 년이 지났다. 그녀의 흔적이라고 생각했던 킨치 부부와의 관계도 이제는 아주 옅어졌다.

자신이 온 열정을 다 쏟아부어 만들어냈던 아이젠스 키친도 과거의 것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축제 때도 여김없이 쓰레기같은 음식을 만들고, 아이젠이 남겨두었던 레시피는 모조리 엉망으로 바꿔버렸다.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 가장 짜증스러웠다. 아이젠이 처음부터 끝까지 공을 들여 만들었던 레시피인데. 그 이름이나, 형태의 조각만을 남겨두고 최악의 것으로 열화시키고 변질시켜 버렸다는 게 잘 용서가 되지 않았다. 분이 풀리질 않았고.


아이젠은 멍한 눈동자로, 풀린 표정으로 가게의 간판을 올려다봤다. 4층짜리 높다란 목조 건물이었다. 3, 4층은 다른 상회에서 창고로 쓰는 건물이 하나 있었고, 사무실로 쓰는 것이 또 한 층 있었다. 1, 2층만 아이젠스 키친의 것이었다.

땅 자체는 아이젠의 소유였고, 그는 그것까지 모두 킨치 부부에게 넘겨주었었다.


저 이름이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줄 때 이미 다 떠나보낸 것이다. 킨치 부부의 쓰레기같은 음식에 화가 날 뿐. 그들의 무정함이나 속물적인 근성, 한 때 사위가 될 뻔했던 자신에게 아무런 인간적인 교류와 감정적 위로가 없는 점이 짜증이 날 뿐이지.


아이젠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두 노인을 바라보았다. 자신에 비해서는 반 정도 될까 싶은 체구의 인물들이었다. 50대 후반, 혹은 60정도. 아이젠에게 있어서도 부모뻘이라 할만한 사람들이었다. 유사 킨치는 그보다 나이가 어렸으니까, 이 시대의 풍습으로 따지자면 늦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본 편이리라.


베일리 킨치는 아이젠을 바라보며, 약간은 찡그리듯 약간은 불편하듯, 또 불쌍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야 킨치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렇다할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듯 착한 모습으로 몸을 떨고 있는 꼴이 가증스러울 정도였다.

저런 자들의 무얼 믿고 결혼을 하려 했을까. 유사 킨치와의 추억까지 이제는 다 희미해져 갈 지경이었다. 아이젠은 모든 것이 다 의미 없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휙, 딱.


아이젠은, 서서히 걸어가서 자신이 바닥에 툭 떨어뜨렸던 의자의 나무 조각을 멀리 차버렸다. 가게 쪽으로였다.


아이젠스 키친의 1층, 식당 내부에서는 여전히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축제 때, 대충 술과 함께 연금술사들의 실수로 만들어진 향신료 범벅을 해 둔 음식을 먹다 보면 그냥 그게 맛인 줄 알고 먹게 마련이었다.

영양가도 별로 없는 식재들이었고, 이 두 노부부는 늘 시장에서 최하급의 물건이나 돈 주고 잘 팔지 않는 것들을 떼어 와서 음식이라고 만들었다. 저런 것들을 마구잡이로 먹었다가는, 속이 좋지 않은 사람은 탈이 날 수도 있었다. 그런 걸 음식이라고 팔다니.

아이젠의 드잡이질과 잔소리로 그래도 오늘 이 때까진 좀 먹을 수 있는 것을 만드는가 싶더니, 축제날 들러보니 다시 그대로였다.


1층 내부는 여러가지 조명, 기계식 등 따위가 켜져 있었다. 환한 주광빛의 불빛이 실내와 바깥까지를 비춘다. 안쪽 깊숙히 들어찬 테이블에 손님들이 꽉 차 있었다. 축제 때는 모두가 들뜨기 마련이었고, 모든 사람들이 놀기 위해 사르삿을 찾는다.

음식점의 퀄리티가 중요해서가 아니라, 그저 앉아서 쉬고 자신들이 놀만한 장소를 찾기 위해 식당을 고른다. 거기에 적당한 술을 계속해서 내어주고 있으니 퍼질러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리라.

이 시기에 중앙 거리, 중심지구의 가도에 음식점을 연 곳 중에서 자리가 남아 있는 곳은 없었다. 모두가 호황이고, 모두가 장사가 잘 된다.

사르삿은 평소에도 많은 인구가 살며 그보다 많은 유동 인구가 찾는 거점 지역이었지만, 축제 날은 특히나 더 각 지방과 타국에서까지 여행자들이 와서 들르곤 한다.

귀족제가 오래간만에 열린다는 소식은 중부 대륙의 자유 연맹 각 국가들에게까지 전파가 되었고, 미리 그 이야기를 들은 여행자들이 사르삿을 찾는 것이다.


아이젠 하우드가 어릴 적 겪었던 삶에 비하면 아주 좋아진 것 같았다. 고작해야 이, 삼십 여 년 정도 전이기는 했다만. 그의 아버지는 마물 퇴치대에 들어가 목숨을 걸고 늘 싸웠어야 했다.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러다가 결국, 그가 아버지를 기억하기도 전에 목숨을 잃으셨고 말이다.

이전에 비하면 치안도, 괴물들의 분포도 아주 적어진 시대였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는 더 그럴 것이고. 자유 연맹은 국가들의 협력을 아주 공고하게 만드는 적절한 체제였고, 그 체제 아래서 중부 대륙의 각국들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었다.

산슈카는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다. 아이젠은 그렇게 생각했다.


여전히, 아이젠이 서 있는 자리와 가게 앞에 나온 두 부부, 반야와 베일리 근처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반원형 정도의 빈 공터가 만들어졌고,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었는가 보다, 하면서 이제는 그대로 그 공터의 외곽을 따라 지나가고들 있었다. 아마 이대로 더 있다보면 알아서 한 둘 정도가 안쪽으로 들어와 걸을 것이고, 그 때 막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인파에 쓸려 사라지겠지.

아이젠이 격정을 토해냈던 그 사실조차 말이다.


의자를 바닥에 내던져서 부쉈던 흔적들, 잔해들이 거리의 돌바닥 위에 남아 있었다. 아이젠은 그것을 툭, 고개를 떨구고 처다봤다. 반야와 베일리는 여전히 아이젠을 처다보고 별다른 말이 없다. 늘 그랬다. 저 양반들은.

이렇다할 말도 없이, 그저 자신들의 속내만 감추고 이러면 이러는대로, 저러면 저러는대로 굴었을 뿐이다. 유사 킨치와 사귀었던 몇 년 간의 시간과, 진지하게 결혼을 약속하고 미래를 논했던 그 시간들 속에서도 저 부부와의 깊은 교류는 없었다.

유사 킨치 역시 부모와 똑같이 그런 관계였을까.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다시금 정신을 명확하게 차려놓고 생각을 해보면, 그 몇 년 동안 정말 유사 킨치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평생을 같이 산다고 하더라도 모르는 것이 부부이며 사람 마음 속이라고 하던데. 아이젠은 아직 결혼을 해보지도 못했고, 기회를 놓쳐버린 노총각이기는 했지만.

그 나이를 먹는 만큼이나 듣게 되는 것도 많고 알게 되는 것도 많기는 했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 그에게 늘 지혜의 근원이 되어주셨었고 말이다.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는 그의 귀에 멀게만 들렸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알 수가 없다. 아이젠스 키친이라고 적혀 있는 간판을 다시 한 번 올려다 본다. 수 년 전, 아니 십 년 가까이 전에 저 간판을 만들어 주었던 단골의 얼굴이 기억이 난다.


아이젠은 실제 고개는 끄덕거리지 않았으나, 마음 속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할 만큼 했다, 고 느낀 것 같다. 그 스스로 생각하기에 말이다. 그는 마음을 먹고 베일리 킨치를 바라보았다.

노인,

유사의 아버지,

희끗한 머리에 마른 행색을 하고서, 불안한 눈동자로 그의 앞에 선 사내에게 입을 연다.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거리의 허공을 채우고 있었지만 아이젠의 말소리는 왜인지 베일리의 귀에 또렷하게 들렸다. 그에게 집중을 하고 있던 탓이리라.


베일리에게 아이젠은 어딘지 무섭고, 또 조금 혐오스런 사내였다. 애초에 생각하는 바나, 살아온 궤적이 그들과는 영 맞지 않았다. 딸 아이인 유사 킨치도 사실은 조용하면서도 유별난 구석이 있는 어린 아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많았는데.

딸 아이는 꼭 저같은, 속 모를 사내를 반려로 삼겠다면서 데려왔었다.

킨치 가문에 그를 들일지 말지, 계속해서 고민을 하다가 이내 결혼을 하겠구나 싶었었고··· 이내는 한 가족이 되지 못하고 이렇게 멀어졌다.

이렇게 멀어졌다, 고 원치 않게 그렇게 된 듯 묘사하지만 베일리 킨치의 마음 속에서는 사실 그러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는 아이젠을 조금 멀리하고 싶어하는 마음 뿐이었다. 그의 아내인 반야 킨치 역시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아이젠이 말한다.


“···이제, ······됐습니다.”

“···뭐?”


베일리 킨치가 입을 다물고 화를 내던 사내를 바라보다가,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싶어 되물었다. 노인에게서 나오는 음색은 의외로 또렷한 편이다. 그는 보여지는 것만큼 기력이 없는 편인 사내는 아니었다. 아직도 정정하고, 기력도 남아 있다. 그들 부부는 아마 살 날이 깨나 많이 남았을 테였다. 베일리는 60이었고, 그의 아내는 59세다. 당장 죽음이 눈 앞에 와있다고 느끼는 나이는 아니었다.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른다고, 마음 속으로 짐작이나 염려 혹은 대비를 하게 되는 나이이기는 했지만 충분히.


그런 베일리는 가는 귀가 먹지 않았고, 아이젠의 말을 들었다. 주어도 목적어도, 여러 가지가 빠진 말에 한 번에 알아듣기 어려웠다.

아이젠 하우드는 그에게 이익이 되었던 사내였고, 딸 아이를 잃어버린 뒤에는 그럴싸한 재산마저 이제 남이 될 그들에게 주었다. 그런 면에 있어서는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본능적으로 서로 다르다고 느끼는 무언가는 쉽게 좁혀지기 어려운 거리감이었다.


아이젠은 흐린 눈동자로 여기저기를 다시 처다보다, 베일리와 반야의 눈동자를 똑바로 보고 이야기했다.


“···이제, 마음대로 하십시오. 됐습니다. 아이젠스 키친은······ 이미 내가 버린 이름이고. ······. 후우. ······.


······.


유사도 이러길 원치 않을 것 같아요.

당신들이 유사한테 어떤 부모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어떤 약혼자였는 지 모르겠습니다.


······.


마음대로들 하십시오.”


아이젠은 혼자서 술에 취한 것처럼 중얼거렸다. 한 반쯤은, 베일리와 반야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나머지 반은 허공이나 밤 하늘에 뜬 달, 혹은 자기 자신에게 중얼거리는 되뇌임이었다.

긴 뜸들임 사이에 주절주절 뱉은 말들이었고, 아이젠이 하지 않은 그 쉼표에 어떤 내용이 들어 있을런지, 베일리와 반야가 알 도리는 없었다.

그러나 확실히 한 가지는 기색으로 알 수 있었다. 아이젠은 더 이상 그들에게 관여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이젠스 키친이라는 이름에도 말이다.

애초에 그렇게 원했던 것이었다. 귀찮게 구는, 요식업계에 유별난 신념을 가진 정력적인 젊은이가 없다면 그들은 저들 좋을대로 장사를 하고 이내 가게를 팔아 치울 생각이었다.

아마 앞으로는 수년 내, 짧으면 한 두 해 내에 그렇게 될 테였고.


베일리와 반야는 아이젠이 무슨 일을 하려는가, 그 기색을 가만히 살핀다. 주시하고 경계하는 것이었다. 서로 다르다고 느끼는만큼, 이해나 공감은 많지 않았다. 서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굳이 따지자면 별종이나 원수를 보는 시야이다.

아이젠은 베일리와 반야 두 부부에게 더 이상 무언가를 하고 싶지 않았고. 그럴 기력도 없었고, 그럴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분풀이였을 지도 모른다. 축제 중에,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밤거리에 괴성을 지르면서 난동을 부린 것은 말이다. 유사 킨치의 부모에게 일말의 공감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을 지도 모르고.

없다, 라고 생각이 더 들었다. 스스로도 시끄러운 짓을 할 의지가 사라졌다.


아이젠은 두 부부의 모습을 마지막에 담지 않았다. 자신이 꾸몄던 인테리어와, 외관에서 다소 바뀌었지만 구조는 그대로인 식당을 눈에 담는다. 그리고 그는 그냥, 나머지 부서진 나무 잔해들에 다가가 퍽, 퍽 하고 발로 차버렸다.


아이젠은 장정이었고 또 힘이 좋았다. 일반적인 사람보다는 확실히 말이다. 운동을 열심히 한, 헬스 클럽을 몇 년은 이용한 남성의 근력 수치를 보통 10으로 두고 있는게 비련의 시나리오의 스탯이었다. 그것을 기준으로도 13, 14는 되지 않을까.

아이젠은 그의 아버지를 닮았다. 마물 사냥꾼, 해수 퇴치꾼이었던 부친 빈 하우드는 그런 직업을 감당할만한 건장한 남자였다. 타고난 근력도, 반사신경도, 순발력도 모두 뛰어났다. 거기에 베테랑으로서의 경험치가 더해져서 훌륭한 병사로 번햄에서 이름을 떨쳤고.

그가 주기적으로 토벌을 나섰던 번햄의 외곽 마을에서는 그에게 고마워하는 이들이 많았다. 실력 좋은 용병이 지역 정규군에 합류해서 도시의 안위를 위해 열심히 헌신을 해주었었으니까.


아이젠은 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하고, 실제로 만나본 적도 없지만 그의 생김새에 대해서 어머니에게 수도 없이 듣고 특징들을 상상해보긴 했었다.

어쩌면 지금 정도의 나이를 먹은 그의 모습이 예전 빈 하우드와 비슷할 지도 모른다.

아이젠이 발로 그리 세게 민 것 같지도 않은데, 그의 발길질에 나무 의자 하나가 부서진 조각들이 저 멀리 가게의 입구까지 밀려 들어갔다. 툭, 툭 거리면서 대강 잔해를 치운 그는 천천히 가게를 떠났다.

등을 지고 돌아서는 그 뒷모습이 왜인지 쓸쓸하다. 별 일도 아닌 것 같지만, 제냐는 그런 아이젠 하우드를 주변 사람들 사이에 섞여 바라보고 있었다.

터벅이면서, 말도 없이 인파들 사이로 사라지는 아이젠 하우드의 모습을 눈에 담던 제냐는 괜스레 그런 마음이 들어 그의 뒤를 쫓아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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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129. 헛웃음 23.11.01 18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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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127. 또 사냥 23.10.31 16 3 12쪽
127 126. 재접속 23.10.31 16 3 22쪽
126 125. 간밤의 습격, 그 끝 23.10.30 19 3 32쪽
125 124. 위검기僞劍氣 23.10.29 18 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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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122. 펠 파이든 23.10.29 19 3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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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119. 튀어 23.10.28 22 3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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