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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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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최근연재일 :
2024.06.09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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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4,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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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5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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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8쪽

116. 검기劍氣

DUMMY

*


뭉게구름처럼 연기가 뻗어나온다. 커다란 솥에서 끓어오르는 연기였다.


무쇠 솥.


한 남자는 그 앞에서 국자를 들고 있다. 장소는 실내였다. 약간 어두컴컴한 느낌이 들만치 조명이 어둡다.

체격이 제법 탄탄하고 두꺼운 사내, 백인, 약간 가닥이 많이 빠져버린 갈색의 곱슬머리. 아이젠 하우드였다.


하우드는 골똘히 생각을 하듯, 미간을 슬쩍 찌푸린다.


킁.


그가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후각으로 음미되는 향이 짜릿하거나, 혹은 향기롭다.


제법 넓은 방이었다. 칸막이 하나 없이 통으로 이루어진 실내였고, 조도가 낮은 곳이다. 전체적인 톤은 시커먼 색, 혹은 회색이거나 흰 색의 타일들. 석재로 이루어진 건물의 내부였고, 깔끔하게 마감이 되어 있어 거슬리는 데 없이 요리에 전념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사르삿의 일반 지구, 싸게 나온 건물을 그가 장기 임대해서 요리를 하는 데 사용하고 있었다. 일종의 작업소다.


천장은 그리 높지 않으나 공간이 널찍하다. 벽면 한 켠에 자리한 솥 앞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국자를 들고 있는 그였다. 방 안의 바닥 여기저기에는 다양한 기구들이 놓여 있었고, 한 쪽의 단상처럼 보이는 곳에는 식자재들이 쌓여 있다.


단상은 자동 온도 조절 기능이 달려 있는 아티팩트였다. 요식업계에 종사를 하다 보면 사용하게 되는 물건이었다. 여기는 사르삿이었고, 산슈카 제일의 발달된 도시였다. 저런 물건 역시 구하고자 한다면 다른 데보다는 훨씬 쉽고 또 싸게 구할 수 있다.

이전에 그가 사용하던 물건보다는 조금 질이 떨어진다. 가장 좋은 것은 아이젠스 키친의 점포 내에 두었었으므로. 지금은 킨치 부부가 사용하고 있는 물건이었다. 그는 가게를 내어줄 때 단순히 건물과 공간만 준 게 아니라, 곧바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그가 사용하던 모든 제반 사항들을 함께 넘겨주었다.


멀쩡한 인간들인 줄 알았었는데, 넘겨주고 나니 요리사의 ‘ㅇ’자도 꺼낼 자격이 없는 인간들일 줄은 몰랐다.

그런 부부 아래서 유사 킨치는 어떻게 정상적으로 컸던 건지.


아무튼,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다.


회한은 이미 충분히 가졌다.


아이젠은 다시금 코를 벌름거리면서 냄새를 맡았다. 구수한 냄새. 약간의 시큼한 냄새. 여러가지 향신료와 주재료가 되는 고기가 섞여서 풍미가 아주 깊은 냄새를 만들어냈다.

이건 사르삿 인들이 좋아하는 향기이자, 맛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사르삿 인’이라고 국한되는 취향은 물론 아니다. 아마 중부 대륙 인근, 산슈카 국경 근처의 인접국 사람들까지도 한 번에 사로잡을 수 있는 종류의 향과 맛일 테였다.


이 사람들은 이렇게 풍부하고 기름진 음식을 좋아한다. 약간의 산미가 곁들여져 있고, 짠맛과 단맛이 어우러지며 감칠맛이 함께 뿜어져 나오는 그런 것.

여기에 취향에 따라 쌀밥을 곁들일 수도 있고, 빵을 곁들일 수도 있을 테다.

생각보다 사슴 고기는 다루는 데 까다로운 면이 있었다. 이전까지 많은 요리 연구를 해보지 못한 것도 있겠지만,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공수해 온 살아있는 느낌의 흰뿔 큰사슴 고기는 그 육향이 어마어마했다.

마치 어둠숲을 활개치던 그 생명력이 느껴질 정도로.

그게 곧 ‘맛’이 되기도 하지만, 과하게 넘쳐 흘러서 밸런스를 무너뜨린다면 곧바로 비위가 상하는 비린 맛이 되어버린다.


여러 공정을 거쳐서 고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찌고 삶고, 직화로 열을 가하고, 그 과정 중에 다양한 향신료와 부재료들을 첨가했다.

마지막 단계가 커다란 솥에서 허브와 뿌리 채소를 한가득 넣고, 오래도록 이렇게 삶는 것이다. 콩을 발효시켜 만든 간장 소스와 담수어를 삭혀 만든 생선의 액젓 역시 들어갔다.


그마만큼 많은 것들이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고기 고유의 향과 맛이 남아있다는 게 경이로울 지경이다. 깎아내기 어려운 커다란 원석을 발견한 느낌이었고, 그만한 원석이 기술자한테 주어진다는 건 곧 기쁨이기도 했다.

왜냐면, 커다란 모양만큼이나 다양한 구조를 시도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조막만한 재료에서는 아무리 애를 써봐야 조막만한 결과물밖에 나오지 않는다. 물리적으로, 인풋In-put이 적으면 아웃풋Out-put이 그마만큼 적어지는 게 맞는 것이다.


제한된 조건에서도 자신만의 남다름으로 특별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장인들이 무수하게 많은 것을 안다. 그러나, 아이젠이 하고 싶은 방향성은 다른 것이었다.

그 역시 좋은 기술을 가졌다. 자신의 입으로 말하고 다니지는 않지만, 제법이었다.

그의 요리를 스킬로 따지자면 ‘고급 요리’ 스킬의 보유자였고, 개중에서도 유니크 급의 요리 스킬을 갖고 있었다.


‘섬세한 미각’, 구분하는 코’, ‘두꺼운 손’, ‘요리사의 감각’, ‘셰프의 육감’ 등. 요리사 계열의 다양한 패시브 스킬들을 익히고 있었는데, 개중에는 타고난 것도 몇 개인가 있지만 대부분은 후천적으로 습득한 것들이었다.


아무튼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일류 요리사 중 한 명이었고, 그는 그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할만한 거대한 재료를 원한다.

흰뿔 큰사슴은 적당히 특이했고, 생소하고 희귀했으며, 도전해볼 만한 향과 맛을 지닌 식재다.

고기를 완벽하게 다루어냈다고 생각하면 나중엔 다른 부위나 뼈까지도 사용해 요리들을 만들어 볼 셈이었다.


아직 일단, 도시 외곽의 육류 창고에 보관한 것 중 일부만 요리 작업소에 가져다 둔 상태다.

2mX2m짜리 온도 조절판에 수북히 올라선 식재들이다. 그것들을 다 다루어낼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다.


그는 섬세하게 코를 사용해 맛을 점쳤고, 국자를 넣어서 안개 속의 국물을 조금 펐다.


후우우우우우우


혀가 데이지 않도록 충분히 바람을 불어 식힌 뒤에 한 모금을 맛보았다.


*


아이젠 하우드가 자신의 요리 작업실에서 솥을 끓이고 있을 때.

아이젠의 요리실이 있는 사르삿 일반 지구 한적한 거리, 어느 건물의 지붕에서는 뿌연 연기가 쉴 새 없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건물 근처를 지나는 주민들, 혹은 축제를 맞아 여행을 온 외지인들이 자신도 모르게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그 근처를 맴돌거나, 입맛을 다시고 있을 즈음.


제냐 킴 역시 마침 로그인을 해서 사르삿 거리에 있었다.


여관 근처에 있는 작은 연무장이었다.


대도시는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모이고, 다양한 사정을 가진 인간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그런 이들의 필요를 모두 만족시키겠다는 듯, 여러 개의 장소와 사업들이 혼재했다.


이렇듯 얼마 안 되는 돈을 내고 너른 공터에서 장비를 가지고 무술 연습을 할 수 있는 연무장 역시 존재한다.


연무장의 담벼락에서 조금 떨어지면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어른들도 채 보이지 않는 정도의 높이의 석재 담벼락이다. 어느 건물 지붕이나 2, 3층 따위에서 본다면 훤히 들여다보이기는 하겠다만.

아무튼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을 필요는 없었다.


제냐는 한낮의 사르삿에서 검을 들고 서 있었다.


무언가를 깨닫고자 하는 움직임이었다.


그는 궁도가이자, 초상술사였다. 개중에서도 원소 계열로 따진다면 번개와 화염의 기운을 다루는 패도적인 워메이지.

물론 현실의 김서원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야기다.

로그아웃을 해서 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다는 소리를 대학교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 나눴다가는 이상한 눈동자로 바라봄을 당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게임 내에서, 서원은 진지했다. 그만큼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이 현실적인 감각을 김서원에게 선사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검이라고는 식칼 외에는, 그리고 문구용의 커터칼 외에는 잡아본 적이 없는 젊은이가 진지하게 검도를 고민하게끔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만큼 제냐 킴으로서 들고 있는 작은 철검 하나의 무게와, 그것으로 펼쳐 보일 수 있는 무예의 다양성이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제냐의 검술 스킬은 어느덧 중급2를 지나고 있었다. 중급1은 8단계에 이르렀다. 훌륭한Excellent, 수준.


중급 외날검술1의 8단계.

어줍잖은 경지처럼도 보이지만, 콘란드 대륙의 시스템이 일컫는 스킬의 평가는 아주 또 아주 박한 편이었으므로, 실상 그는 검도에 있어서 일각 정도는 깨우친 본격적인 검술가라고 보는 편이 좋았다.


중급의 검술만 하더라도, 실전에서 깨나 실력 발휘를 할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까 말이다. 일반적으로 검의 길을 오래 걸었다고 하는 프로페셔널한 기사들이 중급 무기술의 수준에 많이들 다다르고 머무른 채 있었다.

NPC들은 실제 그들의 삶을 시뮬레이션 내에서 갈아넣었다고 하지만, 제냐는 얼마 되지 않는 시간만에 극한의 실전 감각만으로 그것을 끌어올린 셈이니 제법 어려운 일을 해낸 것이었다.


하류검술, 기초검술, 대거Dagger술, 로멜리아 류 검술, 외날검술 등.


검법과 관련된 여러 스킬들이 있었다. 개중에서 가장 전통적이고 정형화된 것은 로멜리아 류일 것이다. 이것도 아마 깊이 익히다 보면 파생 스킬이 나오고 다음 스킬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아직은 단순히 로멜리아 류 검술의 4단계였다. 쓸만한Usable 단계로, 단기간 내에 그 정도를 익혀낸 것만 하더라도 성취가 빠른 편이다.

아마 기본적으로 검을 다루어 온 시간이 있기에 다른 것들과 함께 상호 작용을 하며 경험치가 급속도로 올랐을 테다.


가장 수준이 높은 것은 외날검술이다. 도刀. 투박하면서도 그 푸른빛이 새어 나오는 검신을 보고 있자면 세밀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칼이 비스트 슬레이어였고, 그것을 종일 들고 다니며 몬스터들을 베어댔으니 당연한 결과이리라.


지금은 스탯의 우위가 아니라, 단순히 칼을 들고 검술만으로 겨룬다고 하더라도 이전처럼 기사 유닛들에게 크게 뒤쳐질 것 같지 않았다.

초보자, 혹은 중수 근처에서 로멜리아 가의 인원들과 만났을 땐 질리언과 페이브, 줄리앙에게 모두 검술로는 뒤지는 상황이었던 반면에 말이다.

아마 귀족가의 기사처럼 보였던 어둠숲에서의 암살자들이 다시 오고, 그들과 검술 승부를 한다고 해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만한 자신감은 있었다.


그런데 아직 부족하다. 여러모로.


그런 마음에서 이렇게 난데없이, 사르삿 도심 한복판에 연무장을 빌려 혼자 철검을 든 채 있는 중이었다.

그가 평소에 다루던 비스트 슬레이어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연무장 창고 한 구석에 있던 놈들 중에서는 가장 비슷하게 생긴 놈으로 골라 잡았다.

날이 하나 밖에 없는 도였고, 비스트 슬레이어보다 가볍고 폭도 얇았다.

연무장에서 연습용으로 쓰는 것이다보니 제대로 날이 서 있지도 않았고, 관리 상태 자체도 썩 좋지 않다.

그러나 그런 건 부차적인 문제이다.


축제 기간 중에 연무장에서 혼자 무술에 대한 고민을 하며 썩을 인간은 제냐밖에 없었던 것인지, 다행스럽게도 그 혼자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중앙을 쓰지 않고 한구석에서 혼자 서 있다.


연무장의 창고와 담벼락이 직각을 이루며 있는 모서리 근처였다.


제냐는 고요하게, 철도 하나를 옆으로 들었다.

근력은 완벽하다.

완벽이라는 말을 감히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냐의 생각에는 그러했다. 근력이 부족해서 검술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아마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그럴 테였다.

현실에서 무술을 익힌다고 하면 신체 단련이 거진 8, 90퍼센트 이상의 비율을 차지해야 할 테고, 그 이후에 고급 단계가 있을 테지만.


이 세계에서 유저들의 신체는 가히 초월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몸뚱이였으므로.

이미 범인의 한계에서 아득히 멀어져 있는 근력과 온갖 신체 기능들이다.


어쨌든, 그 완벽한 근력으로 지저분한 철검 하나를 잡아 턱 즈음 되는 높이로 가로눕혀 들었다. 정확하게 지면과 수평이 되듯, 1자를 그리듯 만들어 고요하게 두었다.

오른손 한 손으로 가볍게 그립을 잡고 있지만 떨림은 조금도 없다. 그런 점에서 완벽하다고 한 것이었다.

못해도 키로그램 단위가 될 터인 철검인데, 그 말단인 그립을 한 손으로 잡고 그렇게 떨림이 없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원래 현실적인 인간의 육체라면.


제냐는 천천히 숨을 쉬었다. 아주 천천히, 낮게, 조용히.

마치 암습을 준비하는 야생 동물만치 느리게 쉰다.


천천히 호흡을 빼고, 숨으로 인해서 오르락 내리락하는 가슴의 움직임이나 몸의 떨림을 최대한 제어했다.

마지막 순간에는 잦아들던 숨이 멈춘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제냐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흔들림이 거의 없었다.


검이라.

검은 무엇인가.


얼척 없는 생각이었고, 현대인이 던져야 할 화두나 풀어야 할 과제는 아니었다. 현대전의 기본 단위는 보통 화약 무기로 이루어진다. 현대전에도 물론 검이 있기는 하지만, 당연히 주는 아니다.

전시에 요긴하게 쓰라고 단검류가 주어져 총열의 끝에 꽂혀 창처럼 쓰게 되기도 한다. 총검술 역시 군인의 교본 안에는 들어 있는 내용이었고. 그러나 진지하게 검술을 훈련하는 군인은 없다.


군인 스스로 검도가라면 모르겠으나, 군인으로서 요구되는 기본 소양은 아니었다.


전쟁에서 멀어진 검은 자기 수양의 도구로서 퇴화, 혹은 변화되었다.

스포츠로써 검을 익힌다.

스포츠로서.


게임에서 검을 배운 주제에 현실의 인생을 바친 검도가들에게 정통성에 대한 얘기를 따지고 들 생각은 아니었다.

시대가 번해 검이 퇴색되었음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것처럼, 실전 검술을 놓고 보자면 퇴화라고 할 수 있지만 의미만을 따진다면 도리어 그러고도 살아남은 것이 놀라운 업적처럼도 보인다.

심신을 단련하기 위한 도구로써는 최고인 것이다.


검은 살상도구였다. 만들어진 모양새와 기능은.

자기 수양을 위한 소품으로써 대하는 것 역시 아주 중요하지만 본질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지도 모른다.


대상이 필요한가? 싸울 대상 말이다.


아닌 것 같았다.


햇살이 그 위에 떨어져 부서진다.


제냐는 녹이 슨듯도 보이는 투박한 철도刀의 칼날에 기력을 흘려보냈다. 푸르스름한 색이 그 위에 번졌다.

황야 지룡의 발톱 대거를 사용하면 붉은 색의 기운이 솟구친다. 비스트 슬레이어를 쓸 때는 푸른 색이었고. 아이템에 따라 기력술의 성향이 바뀌는 경우도 물론 있기는 하다. 기력술, 곧 콘란드 대륙에서 스킬은 SP의 작용이었고 아티팩트 수준의 아이템들에도 SP가 들어 있었으니까 말이다.


제냐의 원래 성질과 성향이 어느 쪽이냐 하면, 푸른 빛인 모양이었다. 그 색깔로 무언가 유의미한 정보를 알아낼 수는 없었다. 말 지어내기 좋아하는 어떤 자들은 기력술의 발현 시 드러나는 MP의 빛깔을 정리해 플레이어의 유형, 성격 따위를 나누기도 하지만 그리 신빙성이 높지는 않았다.


대지.


연무장의 굳은 흙바닥과 정확하게 수평이 되어 누운 철검의 아랫단부터 검극까지 서서히 푸른 빛이 올라간다.


MP가 소모된다. SP를 쓰는 것, 초현실적인 에너지를 사용하는 건 즐거운 감각이었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남자들이 게임을 하는 거니까 말이다. 자신의 감각대로 움직이는 무언가를 다루고 그 반응을 보는 것.

탁월하게 어떤 도구를 다루어서 결과값을 도출해내는 것. 정복하는 것과도 비슷한 일이었고, 남정네들이 선천적으로 좋아할만한 일이다.

단지 남자에게만 남성성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튼.


뜻대로 잘 움직이는 도구를 다루는 건 누구에게라도 재미있는 일일 것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을 만날 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괴로워하지만.

철검의 검날에 스멀스멀, 올라가는 푸른빛이 검신 전체를 덮었다.

한쪽에 푸르스름하게 맺힌 기력술의 칼날이 더욱 진하다. 외날도라서, 날쪽에 습관적으로 더욱 강하게 맺히게끔 만든 것이다.

비스트 슬레이어를 손 안에 두고 다룰 때의 버릇이었다. 어차피 다른 쪽에 더해봤자 파괴력으로 연결되는 효율이 떨어진다.


제냐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숨은 조금쯤 쉬고 있었지만 아주 근처에 다가와 손가락으로 그 콧구멍에 대어 본다던가, 손목을 짚어 본다던가 하지 않으면 그가 숨쉬고 있다는 것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미약하고 천천한 소음만을 내고 있었다.


생동하는 혈류나 호흡, 몸에서 도저히 지울 수 없는 박자라는 것이 있었다. 그건 선천적이고 자연적인 것으로 보아야 할 테였다. 원래 그러한 것.

컴퓨터나 핸드폰 따위를 사면 거기에 애초에 깔려 있는 빌트인Built-in 어플리케이면이나 비슷한 셈이다. 김서원은 개인적으로 영혼이 있다고 믿는 편이지만, 어쨌든 물리적으로 육신이 존재해 뇌가 있어야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호흡이 있어야 그가 검을 휘두를 수도 있는 것이고, 검술도 그 위에 존재한다.


그런 자연적인 흐름, 움직임 따위는 개인이 의지로 아무리 지워내려고 해도 지울 수 없는 그야말로 자연적인 것이었다.

초자연적인 기술, 스킬을 쓰면 남들 눈에 보이지 않게끔 조작하는 일 역시 가능하다. 과학적으로도 얼추 비슷한 게 가능할 지 모른다. 단순히 타인의 감각을 속이는 정도라면.

그러나 본질적으로 제냐가 완벽하게 멈출 수 있는가.


제냐에게 흐름과 움직임이 존재하듯이, 그를 둘러싼 주변에도 흐름과 움직임이 있을 것이다. 현실에서라면 불어오는 바람, 대기 속에 존재하는 무수한 물질들, 온도의 변화, 그로 인한 순환. 습기, 물, 뭐 이런저런 여러 요소들이 왈츠를 추듯 오케스트라를 만들듯 제각기 호응하면서 자연계를 형성한다.


그 내부에서 살아가는 동물들, 식물들 역시 무수하다. 사람들은 제각기이며 자기들의 개성대로 세상을 망치기도 하고 무언가를 만들기도 한다. 검술도 그런 부딪힘과 소음 속에서 나타난 어떤 예술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단순히 죽이기 위한 기술이기는 하지만, 형이 있고 무예술로 정립이 가능하며, 그 안에 의미를 담을 수 있었다. 검술 전체가 예술이냐, 고 묻는다면 애매하다. 실용적 기술로서 얼마든지 나쁘게 써먹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검술 중 일부가 예술이거나 예술이 될 수 있냐고 묻는다면, 얼마든지 그러하다.


그러면 검술가는 예술가인가?


제냐가 예술에 대해서 조예가 깊은 편은 아니었다. 그는 그냥 중앙대학교의 경영학과 학생일 뿐이다. 더군다나 요새는 수업에 자주 참여하지 않았다. 땡땡이를 쳤다는 말은 아니었고, 그냥 학점 조절을 해서 학기 중 시간표를 조금 줄여버린 것 뿐이다.

그동안 힘든 놈들, 혹은 무언가 다른 할 일이 있는 녀석들은 많이들 그렇게 해왔다. 제냐는 도리어 성실하게 모든 학점들을 꽉꽉 채워 이수를 했었고. 이제사 한 두 학기 정도 여유를 부린다고 졸업이 늦어지지는 않는다.

중요한 건, 졸업을 하고나서 무엇을 해야할까에 대한 답이 없다는 것이다.


그 기로에 김서원이라는 인물이랑, 제냐가 서 있는데.

정말로 딱히 답은 없다. 젊은이라는 건 모두가 그런 법인지도 모른다. 그저 세상을 유랑하듯 던져져서 여기저기 헤매이고 다니거나 할 뿐이다.

부모님한테 잘해야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사르삿의 바람이 살랑이며 제냐의 볼과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상쾌하고, 습기가 그리 많잖고, 조금 시원한 바람이었다.

오후의 햇살은 여전히 연무장을 쨍쨍하게 비추었다. 그림자도 잘 지지 않을 정도로 밝은 곳이다. 그러나 그 곳의 한 구석에, 제냐는 칼을 혼자 수평으로 든 채 묵묵히 서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다시 돌아와, 검술이 과연 뭐냐.


제냐는 자문하며 검을 움직였다.


검을 움직이는 게 검술인가. 움직이지 않는 게 검술인가. 수평으로 든 것을 주욱 뻗어 앞을 향하게끔 만들었다.


가상의 상대가 있는 것처럼 검극이 연무장의 중앙부를 향한다. 머릿속으로 희끄무레한 형체를 그렸다. 그보다 더 큰 상대. 제냐가 물리 계열 스탯이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체형이 극단적으로 변하지는 않았다. 현실의 그것보다는 조금 더 탄탄한 체형이기는 하지만, 체격 자체는 비슷하다.

그런 평이한 체구의 제냐보다는 조금 더 키가 크고 두꺼운 몸집의 상대를 생각한다.


가상의 상대는 그저 소재일 뿐이었다. 집중해야 하는 건 그가 들고 있는 검날이다.


전투라는 건, 사랑이랑도 비슷해서, 상대에게 결국 검을 맞추어야 하는 일이었다.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호응해서 움직여야 하고. 그러니까, 검의 달인이라는 건 결국 상대의 흐름을 타고 그것을 넘어설 수 있어야만 했다.

그것이 상대를 죽이기 위해서냐, 혹은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냐, 가 다르기는 하지만 결국 자기 자신에게 국한되지 않고 타자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에서 검술의 자세는 소통의 그것과도 닮은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냐가 지금 당장 봐야할 건 그 스스로의 검이었다. 스스로를 알지 못하면 상대도 알지 못하기에. 결국 사람이라는 건 비슷하게 생겨먹은 구석도 있고, 자기 자신의 내면적 관찰과 성찰 가운데서 도리어 타인을 더 이해하게 되는 일도 있다.

어느 방향으로 가던, 끝까지 하라는 뜻이었다. 타인을 바라보던, 자기 자신의 꼴을 한 번 바라보던. 도중에 그만해서야 아무것도 이룰 수 있는 게 없을 테였고.


검극에 맺힌 푸른 검력이 일렁거린다. 일렁거린다는 뜻은 아직 기력술이 검기의 경지에 미치지 못했다는 걸 의미했다.

이렇게 세세하게 경지를 나누어 놓은 것 또한 웃기기도 하고, 경탄스럽기도 한 일이었다. 고작 게임 하나에 과도하다고까지 보이는 디테일과 노력을 살려서 만들어 두었다.

비련의 시나리오는, 언뜻 보면 정말로 이런 세상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현실과 닮아 있다.

그러나 진지하게 이론을 풀어 보자면, ‘이세계’라는 것이 만일 존재한다면 이세계는 도리어 현실과는 가장 다른 모습일 확률이 높다.

현실적인 부분이 많고,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모습이라면 그건 현실의 다른 비유일 뿐이다.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둔 세상의 모습이라는 말이다.


여기에서 ‘누군가’는 비련의 시나리오를 개발한 개발진들이 될 것이다. 시나리오 라이터, 디렉터, 프로그래머, 비쥬얼 아티스트, 등등등.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초인공지능 ‘만물박사’의 손과 발과 망치와 못 따위가 이 세계를 만들었고.


제냐는 검끝에 맺힌 검력을 보았다.

불길처럼 일렁거린다.

불꽃이 플라즈마였던가?

이과쪽 수업은 어릴 때부터 그리 집중하지 않았다. 재미가 없었을 지도 모르고. 복잡한 과학 수식들과 용어들이 단지 외우기 귀찮았던 이유인지도 몰랐다.

MP를 굳이 따지자면 그런 불꽃, 혹은 파장, 파동, 뭐 그런 걸로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대강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이면서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는 점에서 그럴싸한 상상일 지도 몰랐다.


제냐는 자신의 몸 근처에서도 기력술을 사용했다. 푸른 빛깔의 MP가 제냐의 팔 다리, 몸통, 머리 전부까지 감싸며 희미하게 새어나왔다. 곧이어 푸른 색의 반투명한 비닐, 혹은 옷 따위를 뒤집어 썼다고 비유해도 좋을만큼의 MP가 형상화된다.


MP의 형상화는 MP를 다루는 이들의 다음 레벨이라고 해도 좋았다. 기초적인 수준에서 초보자들은 MP를 쓰는 것만 집중하고, 중수 즈음이 되고 고수에 다가설수록 그것을 눈에 보이게끔 만드는 일에 능숙해진다.

고도로 밀집된 MP는 마치 형체를 가진 물리적 실체처럼 굴 수 있는 점이다.

거기서 더욱 안정화된 구조를 완성시키면, 일전에 레드 오크 부락을 사냥할 때 써먹었던 MP화살처럼 무기로도 써먹을 수 있게 되고.


그것이 곧 검기의 경지에 닿아 있는 기술이기는 했지만, 검기는 그것보다도 지속성이 더욱 높았다. 그 화살은 허공을 날아 상대에 꽂히고, 그 이후 잠시 동안만 물리적 형상을 유지하면 되는 것이었다. 검기는 스스로 깨거나 MP가 바닥나거나, 무언가에 큰 외부적 충격으로 깨지기 전까지는 반영구적 유지가 가능한 구조를 뜻했다.


제냐가 콘란드 대륙의 지식들이나 게임의 공략집 같은 것들을 찾아 읽은 건 아니었지만 알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들이었다. 이렇게 기력술을 계속해서 가다듬어가다 보면, 다음 단계는 무엇이겠구나.

그런 면에서 참 잘 짜놓은 게임이며 세계라고 감탄을 거듭 하는 것이다.


검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자를 소드 마스터Sword master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창을 다루면 스피어라거나, 권을 다루면 피스트라거나, 뭐 여러가지 이름이나 접두어가 다 붙을 수 있을 테다.

어쨌든 ‘마스터’라는 칭호로 불리며 그게 로멜리아 가의 가보를 다룰 수 있는 자격이 되기도 했다. 고대로부터 이어지는 어마어마한 성능의 아티팩트가 조건으로 삼을 정도이니, 유구한 역사를 지닌 칭호이거나 경지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자리에 닿는 자들은 당연히 기력술을 사용하는 초인들 중에서도 한 줌도 되지 않았고,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기사들도 대부분은 그 근처를 기웃거리는 데서 그치고 만다.

각지에서 천재들만을 뽑고 개중에서도 다시 가려서 훈련을 시키는 것이 결국 기사단일진데.


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무력 집단들을 꼽으라면 늘 떠오르게 되는 집단 중 하나였다. 기사단. 그 외에는 초상술을 사용하는 워메이지 전단이나, 뭐 그런 게 있으리라.

여러 가지 클래스가 있으니만큼 초상술사도 아주 많은 갈래로 뻗고 다양한 길드나 공동체가 있지만 가장 유명하며 통일적인 색채를 가진 집단은 그렇게 크게 두 가지일 것이다.


그런 기사단에서도 소수의 작자들만이 고수의 경지를 확실하게 넘는다. 가장 높은 수준을 가진 기사단들도 모든 평단원들이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지는 못한다.

그건 산슈카의 사정도 동일해서, 제냐는 알지 못했지만 이미 겪어보았던 검은 늑대단이나 왕실의 왕립 기사단도 그러하다.

마스터 이상의 기사들을 얼마나 보유했나, 에서 기사단이나 국가 군사력의 질이 결정되는 면도 있었다.


기력술은 역시 중급 기력술을 익히고 있었다. 검술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기력술에도 중급1, 2, 3이 있고 고급도 또 1, 2, 3등 스킬이 세분화되어 있었다.


지금은 중급 기력술1의 6단계. 드문Uncommon 정도의 실력이었다.


중수의 끝자락에 서서 다음 단계를 바라보고 있는 기력술의 베테랑을 두고 단순히 드문, 정도의 실력이라고 말하는 시스템의 박한 평가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시스템의 기준에서 가장 윗단계는 곧 이 시나리오 온라인의 클리어를 노려볼 수 있을만한 경지이고, 게임의 기획 단계에서 설정된 가장 강력한 수준의 스킬 사용자를 뜻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을 것 같기는 하다만.


검기 이상의 경지에 대해서 사람들이 이야기하고는 하지만, 콘란드 대륙 내에서는 뜬소문에 가깝고 유저들로서도 아직 확실하게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부분이었다.


적어도 레벨 200이 넘을 때까지는 계속해서 검기의 단계를 가다듬어 가는 과정이라고 보는 게 옳으리라. 그 레벨이 넘고 나서도 계속될 지도 모르고.


아무튼 당장은 그걸 구체화시키는 게 먼저다. 검기. 그의 칼날에서 푸른 빛이 더욱 거세어졌다. 빛은 안개, 불꽃, 플라즈마처럼 움직인다. 일렁거리는 그건 날개를 펴듯 검날 곳곳에서 자신의 몸집을 키운다.

머릿속으로 바라보고 있는 가상의 대상 역시 가만히 있다.

그러다가, 제냐의 상상 속 인물이 서서히 움직여 검을 든다. 어느새 바라보니 연무장 중앙에 있는 미지의 검술가는 검을 들고 있었다.


머리 옆으로 바짝 검을 세워 든다. 검도에서 말하는 상단세, 의 조금 비틀린 버전처럼 보인다. 뺨 근처에 곧추 세운 칼의 그립을 대었고, 얼굴 옆으로 검이 솟아 있었다.

그러나 만만히 볼 수 없는 건,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그의 자세였다. 제냐가 상상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는 일단 생각해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누군가를 생각했다. 얼굴은 없다. 그저 뿌연 형체와 움직임만이 있을 뿐이다.


가급적이면 NPC중의 누군가라고 보는 것이 설득력이 높으리라. 플레이어들은 정말로 수십 년 이상 검이나 스킬로 표현되는 어떤 기술에 몰두한 자들이 아니었다.

잠시, 현실에서 시간을 내어 이 세계를 빌리고 여행을 즐기는 이방인들에 불과했지.


스킬의 정수를 맛보고 싶다면 NPC에게서 무언가를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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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129. 헛웃음 23.11.01 18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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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126. 재접속 23.10.31 16 3 22쪽
126 125. 간밤의 습격, 그 끝 23.10.30 19 3 32쪽
125 124. 위검기僞劍氣 23.10.29 18 3 19쪽
124 123. 맥컬리 23.10.29 18 3 21쪽
123 122. 펠 파이든 23.10.29 19 3 21쪽
122 121. 골목길 23.10.29 16 3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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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118. 오케이Okay 23.10.28 20 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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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6. 검기劍氣 23.10.25 23 3 28쪽
116 115. 파罷했음 23.10.25 22 3 34쪽
115 114. 돌아갑시다. 23.10.25 20 3 29쪽
114 113. 동행 23.10.23 23 2 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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