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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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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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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3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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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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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88. 포격

DUMMY

*


원거리 공격 수단이 유효하게 있는 사람은, 일단 제냐와 체인이었다. 애니와 페인도 활이 있기는 했지만, 대단찮은 위력에 스킬도 별로 없었다. 구색을 갖추기 위해서 들고 다니는게 아닐까 생각이 될 정도였다.


애니와 페인 중에서는, 애니가 더 근력 스텟이 높은 듯했다. 페인도 낮은 편은 아니지만 애니는 본격적인 힘전사였고, 페인은 굳이 따지자면 민첩전사라고 부를만한 클래스였다. 전투의 방식을 따져 이름을 붙이자면 그렇다.


그런 면에서, 애니는 조금 더 무식하게 강하고 큰 활로 커다란 화살을 쏘아낼 수 있었다. 거기에 대단한 명중률이 있느냐는 논외의 이야기다.


가장 늦게 합류한 아르망디의 경우에는, 석궁류를 다루는 듯하지만 본격적인 화력 투사의 용도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견제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듯하다. 하긴, 암살자로서 솔로 플레이를 하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든 전투를 속행할 수 있어야 할테니 다양한 무구를 다루는 건 필수일지 몰랐다. 다만 제냐처럼 본격적으로 궁술 스킬들을 연마하고 시간을 들인 건 아닌 모양.


체인은 강력한 초상술사였다. 개중에서도 제냐가 보았듯 뇌전 계열의 원소형 초상 스킬들을 주로 쓰는 뇌전술사이다. 다른 스킬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가장 크게 상대에게 데미지를 입힐 수 있는 것은 그쪽 계열이었다.


시나리오 온라인에서 원소술의 원소는 추가 데미지와 같은 개념이었다. 만일 수생의 생물, 몬스터를 잡는다고 했을 때 그것에게 화염술사가 공격을 해도 데미지가 없지는 않았다. 상당한 타격을 받는다. 투사체는 곧 MP체였고, MP는 순수한 에너지이기 때문에 그렇다. 단단하고 질량도 높은 공을 먼저 형성한 뒤에, 그 위에 불꽃이 덮여진다고 생각하는 편이 편하다.


뇌전술을 쓴다고 어떤 종류의 몬스터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한다거나, 대응을 못하는 일은 적었다. 그 스스로 스킬을 전혀 다룰 수 없어서, 스킬 내의 성질 변화나 MP조절을 전혀 못하는 수준이 아니라면 말이다.


불꽃의 화기에 큰 피해가 없는 상대라면 열량을 줄이고 폭발력을 늘린다던가, 단순히 물질적인 파괴력, 관통력을 늘리는데 MP를 더 투입한다든가 하면 될 일이었다.


순수한 자연 현상으로부터 온 초상술이 아니며, MP를 조작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현상이기에 그렇다.


어쨌든 뇌전은 속도도 빠르고, 화력도 높은 스킬들이 많았다. 뇌전 계열의 스킬들은 주로 그렇다. 충분한 시간과 물약만 주어진다면 레드 오크들에게 괴멸적인 타격을 주는 게 가능하리라.


제냐 역시 원거리 타격에서 그다지 지지 않는 편이었다. 수십 미터는 되어 보이는 깎아 지르는 절벽 아래 분지에 레드 오크의 부락이 딱 때려 맞추기 좋게 형성되어 있었으니. 그대로 MP들만 퍼부어도 충분하리라. 저 아래에 있는 레드 오크들이 광분을 해서, 마을 앞쪽 계곡을 지나 분지의 바깥으로 돌아와서, 그들을 잡기 시작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일 테였다.


설령 숲 내에 형성되어 있는 느닷없는 분지 지형의 돌 절벽을 그대로 타고 오른다고 해도 화살이면 충분했고. 활로도, 초상 스킬로도 맞춰 죽일 수 있는 위치였다. 이렇기에 페인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최소한의 안전을 위해 사람들을 모으려 다닌 거였구나, 제냐는 납득했다.


어려운 싸움이 더 양질의 경험치와 스펙 업을 위한 풍부한 자양분이 되지만 가끔 이렇게 보너스 스테이지처럼 형성된 전장이 있다면 그대로 먹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애초에 제냐는 레벨에 비해서 전투력이 높은 편이었고. 이따금 레벨을 전투력에 맞춰주는 시간도 필요하다.


‘레벨’은 아무래도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고, 적합한 강함이나 능력을 갖추었을 때 레벨 제한이 조건으로 걸려 있어 퀘스트 상의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여태까지는 불편함이 없었고, 도리어 레벨이 낮은데 높은 전투력을 가지는 것이 더 희귀한 퀘스트를 얻기에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했지만. 눈 앞에 떡이 떨어져 있으니 집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게 함정이 아니라고 한다면.


일단, MP포션 중 일부를 제냐와 체인에게 일행들이 몰아주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그리고 다가오는 오크들을 나머지 셋이 완벽하게 원호하는 것으로. 제냐와 체인은 원거리 공격에만 신경을 쓰고, 화력을 투사하며 오크 부락을 부수는 데에만 전력을 쏟는 것으로 말이다.


아르망디가 조금 거슬리기는 했다. 지금까지 별다른 수작을 부리고 있지 않은 그녀였다. 눈은 착하게 뜨는 것 같았고. 공격적이지 않은 모습만을 보이면서 팀원들에게 아양을 떨고 있었다. 워낙 말이 없고 사교성이 없는 인간인지 그저 무게를 잡고 일행 속에서 거닌 것에 불과하지만. 갑작스레 칼침을 맞을 뻔한 제냐의 입장에서 본다면 가만히 있는 그 모습이야말로 더할나위 없는 가식적인 아양이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왔고, 또 보는 눈도 없으니 당장 험한 짓거리를 하지는 않을 테였다. 적당히 아르망디를 신경쓰면서 사냥을 하기로 했다. 페인과 애니가 함께하고 있으니, 무슨 일이 생기면 또 견제를 한다거나 이야기 정도는 해주겠지.


정말로 스쳐 지나갔던 상상처럼 이 셋이 아르망디가 미리 섭외를 한 암살자의 동료였다면 모르겠으나. 제냐는 간단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럼.”


페인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인벤토리를 열어 고급 MP포션을 제냐에게 주었다. 각기 세 명이 한 꾸러미는 되는 물약 더미를 반으로 나누어서 제냐와 체인에게 나누어주었다.


제냐는 인벤토리에 그것이 다 들어가지 않아서, 내부에 있는 몇 가지 잡다한 물건들을 꺼내야만 했다. 퀘스트 아이템이었던 괴물 사슴의 뿔은 버릴 수 없었고, 사슴을 사냥하다 나온 내장이나 고기 종류, 그 외 잡동사니를 조금 버려야 했다. 그대로 현물화되어 땅바닥에 버려지는 아이템들이다.


이런 고기 종류를 갖고 있는 것도 깨나 쓸만한 팁이기는 했다. 지독하게 현실적인 이 게임은, 회복하기 위해서 음식이 필요하다. 하루 정도는 초인적인 육체의 체력과 스테미나로 어찌어찌 버틸 수 있었지만, 단식이 장기화된다면 결국 HP가 깎이기까지 하며 게임 오버에 이른다.


도시로 얼마든지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눈에 보일 때 이런 물건들을 챙겨두었다가 요리를 한다던지 가공해서 먹는 것도 중요한 사냥의 절차 중 하나였다. 베테랑 유저들은 모두 요리 스킬 정도는 능숙하게 구사하기도 했고.


페인이 준 MP포션들은 제냐가 평소에 사서 마시는 것보다 조금 더 고급품인 듯했다. 화려한 장식의 병이었다. 일반적으로 포션 가게에서 물약이 담겨 나오는 병들은 특수한 공정을 거친 것으로, 쉽게 깨지지 않으며 사용자의 손에서 떨어져 버려진다면 자연 소멸하게 되어 있었다.


어지간히나 단단해서, 초기에는 파괴 불능 오브젝트가 아닌가 하는 말도 있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물약 상점의 물약병들 말이다. 어떤 재질인지는 딱히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고, 그 특이성 역시 플레이어들한테만 적용되는 설정인 모양이었다. 이렇듯 약간의 편의를 보장하는 게임성들은 비련의 시나리오를 아주 약간 더 즐길만한 게임으로 만들어준다. 난이도 면에서 말이다.


급할 때는, 포션 병이 잔뜩 담긴 자루 따위로 상대방의 공격을 막으라, 는 말이 있을 정도로 플레이어의 손에 들어갈 때 포션 병은 단단한 방어력을 자랑한다.


페인이 준 것은 투명한 재질의 병이 마치 고급 위스키류가 담긴 것처럼 생겼고, 금테로 장식이 되어 있었다. 색깔은 기본품의 그것고 크게 차이 없는, 진한 푸른색이다. 바다의 색깔과도 비슷하다.


제냐는 나머지를 인벤토리에 넣었고, 두 병 정도를 그대로 돌려 까서 입에 털어넣었다. 2, 300ml즈음 되어 보이는 용량이었지만 단숨에 들이켰다. 위장에서 포션은 소화되면서, 그대로 액체 내부에 담겨져 있던 MP가 사용자의 것으로 치환된다.


그들은 전투를 시작하기로 했다. 대형을 짠다. 수많은 오크들이 살 정도의 부락이 아래에 있는 분지 지형. 그들이 선 곳은 약간의 언덕 정도의 느낌이었지만, 오크들이 살아가는 곳이 일반적인 숲의 지형보다 더 깊은 지하인 듯하다. 깎아지르는 돌절벽이 단면이었고, 페인 일행이 선 곳은 평범한 숲의 모습이다. 듬성듬성 나무 또한 자라나 있었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잡초들이 무성하게 나서 발목 근처를 쓰다듬는다.


당연히 자연적 지형이므로 안전대 따위는 없는 낭떠러지의 끄트머리였고, 제냐와 체인은 그곳에 서서 초상 스킬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잡아야 할 레드 오크들이 아주 많았다. 저것들을 전부 철시로 잡으려 했다가는 화살을 지나치게 소모할 수가 있었다. 어차피 때려서 터뜨려야 하는 범위 또한 넓은 편이었고, 시간도 있었기에 천천히 한 발 한 발 과량의 MP를 투입한 초상 스킬을 난사하는 게 더 적절하다.


제냐는 흑사와 싸우면서 레벨 업한 썬더 볼트와, 이후 얻어낸 파생 스킬 하나를 사용하려 했다. 말했듯, 원소술 중 뇌전 계열의 스킬들은 속도가 빠르고 강력하다. 그야말로 전투에 어울리는 속성이라 할 수 있었다. ‘번개’에 대한 이미지가 이 게임의 개발자들에게 그렇게 잡혀있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지겹도록 자주 사용한 썬더 볼트의 스킬 레벨은 어느새 6단계, 드문Uncommon 수준이었다. 여러 번 기술한 바대로, 비련의 시나리오 상의 스킬 앞에 붙는 단계적 수사는 상당히 평가가 박하다. 아니, 지독하게 깐깐하다. 그런 기준에서 드문 수준의 스킬이라는 건 이미 능수능란한 구사가 가능한 전문가라는 뜻이다.


제냐는 썬더 볼트를 그러 모았다. 순식간에 그의 앞에 파즈즈, 하는 무언가 튀고 폭발하는 듯한 소리가 울리더니 번개의 공이 생겨난다.


썬더 볼트 다음으로 얻은 뇌전 계열의 파생 스킬은, 체인이 쓴 바가 있었던 ‘썬더 스피어’였다. 썬더 볼트보다 조금 더 큰 구체를 만들기가 쉬웠고, 소모 MP량이 높았으며 파괴력이 높았다. 완성된 투사체가 날아가는 모습은 길게 뻗어 마치 창과도 같았고, 썬더 볼트보다 조금 더 범위 공격력도 높았다.

모두 썬더 볼트를 강화 사용해서 얻어낼 수 있는 효과들이기는 하지만, 그것들이 스킬에 기본 장착되어 있는 값이라 더 좋은 효율로, 파괴력 대비 적은 MP소모율로 구현이 가능했다. 더 빠른 시간 내에 말이다.


만일 뇌전술의 달인이며 MP에 대한 지배력, 의지력 수치또한 탁월한 고급의 초상술사가 있다면 썬더 볼트를 시전하면서도 썬더 스피어와 아무런 차이가 없는 효과와 발현 과정을 구사할 수 있기는 했다.

제냐는 아직까지, 썬더 스피어를 쓰는 것이 더 강력하다. 그러나 썬더 볼트가 조금 더 구체적인 구사가 가능했다. 명중률이라던가, 그가 원하는 효과를 세세하게 짜맞추는 시전 과정에서의 조율이 말이다.


단순한 파괴력을 원한다면 썬더 스피어를 쓰는 것이 더 빠르고 쉬운 일이었고, 멀리에 있는 정확한 지점을 노리면서 전류의 양이나 썬더 볼트가 착탄한 뒤 퍼지는 범위, 또 관통력이나 열기 등 세세한 컨트롤을 따진다면 썬더 볼트를 쓰는 게 단연 앞서는 일이었다. 갓 배운 스킬과, 아주 오래도록 다루어 손에 익을대로 익은 스킬 간의 차이였다.


첫 발사는 썬더 볼트였고, 부락에는 마치 원시의 그것처럼 대강 지은 움막들이 있었는데- 그 사이를 걸어다니는 어느 레드 오크의 뒤통수를 향한 공격이었다.


오크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하더라도 득시글거렸다. 움막 내부에 몸을 숨기고 있을 놈들까지 생각하면 더욱 많을 것이다. 오크들 중에서는 강력한 부류라고는 하나 지금의 제냐에 비해서는 확실하게 몇 수 아래의 적들이다. 한 발에 한 마리. 단숨에 잡아내야 사냥이 성립할 테다.

지나치게 오래 끌어서는, 결국 저 놈들 중 대다수가 위로 올라와 상황이 어려워 질 것이었고.


제냐가 MP를 과량 투입했다. 번쩍거리면서 푸른 빛을 뽐내는 전기의 구체는 그 번갯줄기를 사방팔방으로 뻗어낸다. 양 손을 앞으로 뻗고 있는 제냐의 앞에 그것이 자신의 상체만한 크기로까지 이윽고 커졌다.

힘을 조절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더 많은 혼란과 파괴, 공포. 그것만이 레드 오크들에게 선사해줄 것이었으니까.


한 발에 한 마리가 조건이다. 그러니, 기왕이면 한 마리 이상을 잡는 것이 더 좋으리라. 부락의 가운데를 혼자 멍청히 걷고 있는 레드 오크를 향해서 첫 번째의 썬더 볼트가 날아간다.


*


쾅!


하는 귀가 찢어지는 폭음이 누워 있던 레드 오크들에게 들린 소리였다. 가까이서 들리는 굉음은 야수들의 정신을 흐트러놓기 충분했다.


제냐가 던져낸 썬더 볼트는, 먼 거리임에도 완벽한 정확도를 가지고 날아가, 어느 레드 오크의 두꺼운 뒷목 부근을 맞추었다. 그리고 거기서 끝나지 않은 거대한 구체는, 머리를 날려버리고 그대로 땅바닥에 충돌했고, 거리를 걷던 레드 오크의 옆에 한가로이 누워 있던 놈의 바로 옆에서 폭발을 했다.


이미 수 백 정도의 MP를 단번에 쏟아내는 일은 당연한 경지였다. 제냐는. 초상술사로서 일반적으로, 자신의 MP총량 중 10분지 1정도가 단발에 쏟아낼 수 있는 MP의 최대량이다. 그 이상으로 가면 의지력이 흐트러지고, 세세한 컨트롤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들을 감안하고서라도 거대한 MP를 다루고자 한다면 가능은 하겠지만, 캐릭터가 물리적으로 갖고 있는 수치적 의지력을 넘어서는 건 완벽하게 미지의 영역이었다.

프로그램도 제대로 계산해내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 말이다. 그건 곧, 캐릭터 너머에 있는 플레이어의 영역이었다.


캐릭터의 원본이 되는 유저의 현실적인 집중력, 의지력 따위가 전기 신호로 잡혀서 게임 내에 영향을 미치며 수치 이상의 의지력으로서 발현이 되는 것이다.

물론 그 정도의 정신적 기능을 가진 이들은 많지 않았다. 릿샤 애드윈은 그런 부류였고, 분명 별종이자 희귀종이었다.

제냐 또한 그런 류일까, 하는 건 아직 확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였고.


1,700정도가 들어간 썬더 볼트는 폭발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구덩이를 만들었고, 옆에 있던 오크는 반신을 잃어버렸다. 처음에 맞아서 머리가 날아갔던 놈은 땅바닥에 썬더볼트가 부딪히며 일어난 폭발에 하반신이 마저 날아갔고.


붉은 오크들. 기본적으로 오크들 중에서 가장 크다고 알려진 일반종이다. 그 외에 특수종이 콘란드 대륙 어딘가에 더 있을지는 모르지만, 일반적인 몬스터학 사전에 실려 있는 종으로서는 가장 거대하며, 또 가장 강했다.


기본적으로 가장 작은 개체가 2m50cm를 넘는 체구를 가졌다. 3m에 달하는 체구라는 건, 수치상으로 보면 그저 그렇지만 직접 마주하면 아득해지는 높이였다. 일반적인 건물 층계나, 농구 골대와도 비교가 될만한 높이였으니까.


거기에 호리호리한 놈들만 있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놈들은 거대한 체격을 가졌고, ‘돼지’라는 것에서 모티브를 얻은 생김새다운 체형들이다. 지방이 뒤덮여 있으나 그 내부에 있는 근육은 폭발적이고 또 폭력적이다.

야만이라는 걸 형상화한 듯한 모습이다. 사람의 얼굴은 확실히 아니었고, 말도 통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손재주를 가지고 있어서 인간의 무기를 들고 제대로 휘두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까다롭다. 거대한 체격에 인간의 무기. 앞에서 마주한다면 확실히 기사급의 무력이 필요했다. 일반적으로 초인, 이라 불리는 기사들은 레벨 3, 40은 넘어야 그렇게 불릴 테였다. 가장 규모가 작고 한미한 지방의 기사단이라 할지라도 기사들은 그 정도의 솜씨를 갖고 있었다. 로멜리아 가의 기사 견습, 페이브와 질리언이 그러했다.


거기에 오래도록 연마한 기술이 있다면 다소 체격의 차이나 근육량의 차이를 이겨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검이라는 1m안팎의 날붙이는 무궁무진한 효용과 길이 그 안에 담겨 있는 도구였으니까 말이다.


지금에 와서 제냐에게 해치우라고 하면 단연 쉬운 상대들이었으나, 썬더 볼트의 폭발과 함께 소란을 느끼고 기어나오는 오크들의 수는 어마어마했다. 얼핏 보아도 백은 넘어 보인다. 제냐는 서둘러 절벽 위에서 다음 썬더 볼트를 만들어낸다. 거리가 멀다 보니, 오크들이 아주 뭉쳐있는 게 아니라면 썬더 볼트가 더 용이한 면이 있었다.


파즈즈, 하는 전류의 소음과 함께 그 앞에 푸른 번갯불이 다시금 생겨난다. 높이라는 이점은 전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고, 또 편리한 요소였다. 상대는 그 높이차를 기어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고, 그만큼의 시간이 공격을 위한 준비 시간이 될 테니.


제냐는 마음껏 MP를 발휘했고, 다시금 자신의 상반신만한 구체를 굳이 압축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한 번 더 날려보냈다.


절벽 아래로 떨어지듯 날아가는 구체다. 그 옆에서 체인 역시 초상 스킬을 발현하고 있었다. 체인은 하늘로 손을 뻗고 있다. 그녀의 손으로부터 가느다란 전류의 줄기가 이어진다. 한 순간, 그건 아주 먼 하늘 위까지 이어지는 듯하다. 그녀는 ‘낙뢰’를 시전하려 하고 있었다.


쾅!


하는 소리가 폭음처럼 들렸다. 전류가 공기를 찢으면서 나는 소리였다. 강력한 열과 속도를 지닌 벼락이 소란을 듣고 모여들고 있던 오크들의 한 가운데를 때렸다. 땅이 패이고, 오크들 몇 마리가 넘어졌다. 한가운데 있던 놈들은 그대로 전류의 밥이되어 시꺼먼 숯덩이가 되었다. 체인의 뇌전술은 강력했다.


단숨에 죽지 않은 놈들까지도 벌벌 떨면서 감전의 영향으로 움직임을 잠시 멈추어야 했으니까. MP를 소모한 체인은 곧바로 다음 스킬을 시전하기 위해 준비한다. 그녀가 양 손을 앞으로 나란히 벌리고 손바닥을 서로 마주보게 했다.


서로 마주보는 손바닥 사이의 허공에 전류의 끈이 생겨나 마치 과학 실험을 하듯 이어진다. 스파크가 튀면서 붉고, 샛노란 전기 에너지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번개에 다양한 색깔이 있는 것은 신기하지만, 사용자에 따라서 그들이 발현하는 초상 스킬들도 다양한 색을 가지게 된다.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MP로 만들어진 인조적 현상물들이었으므로 말이다. 애초에 스킬 자체에 색깔이 포함되어 있는 것들도 더러 있었고. 그녀가 마치 엿가랏이나 설탕을 녹인 점도 높은 물을 손바닥 사이에 두고 늘어뜨린 것처럼, 가느다란 전류의 끈이 수십 수백 개가 생겨나 그 안에서 튀어댔다.


그 시점에서 제냐가 날린 썬더 볼트도 쾅! 하고 다시금 절벽 한 가운데를 처박았다.


아주 먼 곳까지 날아간 썬더 볼트였다. 수십 미터는 고사하고 수백 미터는 족히 날아가 박힌다. 오크들의 부락 입구, 계곡을 통해 바깥으로 가는 지점이었다. 오크들은 부서지는 돌더미와 전류의 성질을 품은 폭발에 땅바닥을 굴러야만 했다. 돌을 맞추어 길을 막으려고 한 것이라, 오크들에게 직접적으로 치명적인 피해가 가지는 않았다. 잠시 발길을 잡은 것에 만족한다.


제냐는 다시금 번개의 기운을 축적했다. MP가 돈다. 몸 안에서 돌고, 또 그것이 바깥으로 흘러나와 유형화된다. 하늘은 푸르르다. 어둠숲이었지만, 언덕 위쪽으로 올라온 상황에서 그 아래쪽보다 훨씬 하늘이 잘 보이는 광경이었다.

나머지 셋은 각자 무기를 꺼내든 채 두 명이 원거리에서 레드 오크들을 요리하는 광경을 처다보고만 있다. 페인은 롱소드를 양손으로 쥐고 이용하는 듯했고, 애니는 거대한 할버드를 들었다. 도끼창. 그녀의 키보다도 길다란 창의 끝에 자신의 머리보다 몇 배는 큰 도끼날이 달려있는 물건이어다.

은빛으로 빛나는 철제의 물건이 예사롭지 않은 예기를 뽐낸다.


아르망디는 이전에 제냐와 싸웠을 때 그러했듯, 짧은 한손검을 양손에 들고서 있다. 각기 포션 류를 꺼내어 마신 도핑 상태들이었다. 스테미나의 증가, 한시적인 체력 증가, 근력과 순발력 증가, 뭐 그런 효과들을 가진 약물들이었다.

약물들도 이 세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었고, 그것을 넘어서는 물건들은 부작용마저 있었다.


강대한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그만큼 고급의 소재와 다량의 MP, 또 솜씨가 좋은 인챈터와 제조사의 숙련된 손길이 필요했다. 어느것 하나가 부족하면서도 폭발적인 성능을 낸다면 강력한 부작용이 들어 있는 약물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이유로, 일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도핑류의 포션들은 어느 정도 그 성능이 제한적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쓸만한,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을 정도의 물건들은 값이 대단히 비싸다.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페인 일행이 쓰고 있지는 않았다.


제냐는 집중력과 순발력을 증가시켜주는 포션을 마셨다. 의지력에 보정이 조금 들어가고, 말단 근육을 조금 더 정교하며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크아아아아!”


저 절벽 아래, 오크들의 마을에서 레드 오크들이 괴성을 질렀다. 오크들은 야성에 살고 죽는 족속들이었고, 단순하며 폭력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다. 그들에게 공격을 해대는 인간들을 보았고, 곧바로 죽이기 위해서 달려나간다. 오크 부락의 입구는 페인 일행이 서 있는 절벽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곧바로 절벽을 향해 달려나갔고, 제냐는 그런 무리들이 뭉쳐서 나란히 달리는 곳에 다시금 뇌전술을 사용하고자 한다.


“썬더 스피어.”


스킬의 사용이 익숙하지 않을 때는 스킬명을 입으로 읊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집중력에 보정이 들어가고, 의지력의 부담이 덜해진다. 심상과 집중이 중요하다. 비련의 시나리오는 인간의 뇌파를 아주 깊은 부분까지 감지하고 게임에 사용하는 시스템이었다.


스피어, 라는 이름답게 일반적인 볼트보다 더욱 크고 빠르게 형성된다. 스파크가 마구 튀어대는 푸른 번개의 구체를 마치 찰흙처럼 조물한다. 그대로 모양을 만들어내어, 아까의 썬더 볼트보다 더욱 거대한 구체가 완성되었다. 그대로 쏘아 내기에는 조금 밀도가 낮다는 생각이 들어 한 번 압축을 시킨다. 제냐의 상체만한 정도의 크기.


그 정도가 딱 좋은 듯했다. 지금 시점에서는. 푸른 번개의 구체. 언뜻 보아서는 썬더 볼트와 별반 다름이 없었으나 더 적은 양으로 광범위한 파괴가 가능했다. 같은 MP를 사용했다는 의미는, 이전보다 더 폭발력 있는 탄환이라는 뜻이다.


그것이 날았다. 오크들의 부락에도 길같은 것이 있는 모양이다. 움막들의 사이로 가운뎃길이 있었고, 그곳을 오크들이 뭉쳐서 달려나간다. 제각기 무기를 꼬나쥐고, 철제니 가죽이니 하는 갑옷들을 입은 놈들이 달려나간다. 보통은 인간에게 빼앗아 입었다는 설정들이었다. 여기저기 엉성하게 그 신체를 덮고 있는 갑옷의 조각들이라고 하는 편이 더 낫겠다.


3m에 달하는 오크들에게 맞는 갑옷이 어디서 났는가, 하는 문제는 게임 상에서 그리 크게 신경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저 게임의 밸런스를 위해서 적당한 방어구를 입혀서 리젠시키는 모양.

오크끼리도 물론 성별이 있어 생식을 하는듯하고, 그들의 생태 역시 정해져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가끔 게임적 작법으로 적당히 넘어가는 부분들 역시 존재한다.


NPC들의 인식과, 플레이어들이 존재하지 않는 필드에서의 자연계적 양태가 있었고 플레이어들이 개입하고, 또 게임적으로 ‘그러해야 하는’ 부분들에 있어서는 게임성이 개입하는 것이다.

NPC들은 당연히 몬스터가 죽으면 그 사체가 미생물에 의해 천천히 분해된다고 이해한다. 그 시체들을 처리해서 장비의 소재를 모으는 것도 수작업이었고.

또한 괴수들 역시 다른 동물들과 유사한 생태가 있어 교미를 하고 번식을 한다. NPC들 역시 그렇게 알고 있으나, 플레이어들이 개입하는 필드에서는 단순하게 리젠이 된다거나 하는 식이다.


레드 오크 부락이 생겨나고, 그것들이 인간의 무구와 갑옷을 착용하고 있지만 그 갑옷과 무구의 연원까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는 않았다, 게임이.

NPC들은 그저 오크가 원래부터 그런 족속이며, 약탈에 능하기에 인류를 습격해 하나하나 모았다고만 알고 있었다. 어색한 부분이 있지만, 굳이 짚지 않고 넘어가는 식으로 게임은 형성되어 있다.


썬더 스피어는, 제각기 갑옷 따위를 걸친 오크들의 머리 위로 날아가 처박혔다. 그와 동시에 밀고 들어가면서 중심 지점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족히 반경 수 미터는 되는 넓이였고, 오크들은 짜릿한 전류에 감전되며 바닥에 누워 부들부들 떨었다. 그 폭발의 중심지에 위치했던 두 세마리는 단숨에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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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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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131. 수난 23.11.01 19 3 20쪽
131 130. 백마 23.11.01 16 2 19쪽
130 129. 헛웃음 23.11.01 18 3 11쪽
129 128. 저녁 비행 23.11.01 18 3 18쪽
128 127. 또 사냥 23.10.31 16 3 12쪽
127 126. 재접속 23.10.31 16 3 22쪽
126 125. 간밤의 습격, 그 끝 23.10.30 19 3 32쪽
125 124. 위검기僞劍氣 23.10.29 18 3 19쪽
124 123. 맥컬리 23.10.29 18 3 21쪽
123 122. 펠 파이든 23.10.29 19 3 21쪽
122 121. 골목길 23.10.29 16 3 23쪽
121 120. 미첼 카니브 23.10.28 21 3 17쪽
120 119. 튀어 23.10.28 22 3 24쪽
119 118. 오케이Okay 23.10.28 20 3 19쪽
118 117. 검기劍氣(2) 23.10.27 20 3 30쪽
117 116. 검기劍氣 23.10.25 22 3 28쪽
116 115. 파罷했음 23.10.25 21 3 34쪽
115 114. 돌아갑시다. 23.10.25 19 3 29쪽
114 113. 동행 23.10.23 22 2 32쪽
113 112. 박영식, 안드레 박 23.10.22 22 3 34쪽
112 111. 사슴의 고기 23.10.20 28 3 34쪽
111 110. 재료 수급 23.10.18 22 3 31쪽
110 109. 피츠 브래드 23.10.15 23 3 24쪽
109 108. 사내는 지난 시간을 등지고 돌아섰다. 23.10.12 21 3 18쪽
108 107. 아이젠 하우드 23.10.12 28 3 35쪽
107 106. 소란 23.10.10 24 3 16쪽
106 105. 귀족제 23.10.10 25 3 17쪽
105 104. 리액션 23.10.08 27 3 34쪽
104 103. 마무리, 재회 23.10.06 29 3 23쪽
103 102. 게임 오버 23.10.06 26 3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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