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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lbetter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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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lbetter
작품등록일 :
2022.07.23 17:16
최근연재일 :
2022.08.11 18:00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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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79
추천수 :
195
글자수 :
147,641

작성
22.07.23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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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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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글자
13쪽

<2화: 히든 스테이지(2)>

DUMMY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나는 방금 한강대교가 보이는 노들역 근처의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했다. 이곳은 내가 사는 오피스텔 근처의 단골 가게 중 하나였다.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며 창가의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리고 팔을 들어 시계를 봤다.


[PM 06:50]


이제 약 10분 후면 어비스가 약속했던 시간이다.

잠도 푹 잤고, 뜨끈한 국밥도 먹었겠다. 카페인을 잔뜩 충전하고 집으로 돌아가 멸세탑에 접속할 생각이다.


히든 스테이지라...


과연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설마 영광의 탑에 100층이 존재하는 걸까. 안 그래도 탑이 99층이라는 게 좀 찝찝했다.

만약 그렇다면 그곳에는 또 얼마나 강력한 존재가 있는 걸까.

모르긴 몰라도 그 스테이지의 보상은 무조건 신화급 무장 이상일 것이다. 어쩌면 지금은 획득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태고급 무장을 얻을지도 모른다.

신화나 전설을 탄생시킨 태고의 힘이 깃든 무장이라면, 제우스와 같은 최상위격 성좌들조차 한 수 접고 들어갈 것이다.


아니지, 아니야...


멸세탑의 개발자가 그렇게 뻔한 것을 히든 스테이지로 만들었을 리 없었다.

어쩌면 히든 스테이지는 완전히 다른 세계관들이 있는 또 다른 차원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영광의 탑에 없는 세계관이...


“이은태 씨...?”


등 뒤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은은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나는 반사적으로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청아한 얼굴에 시원한 인상의 미인. 아는 얼굴이었다.


“ ...최정윤 씨?”


“역시 이은태 씨가 맞았네요. 정말 오랜만이에요. 이게 대체 얼마 만이죠?”


그녀가 자연스럽게 나를 마주보며 테이블 반대편에 착석했다. 그녀의 손에는 일회용 커피 용기가 들려 있었다.

아마 테이크아웃으로 커피를 사서 나가려다 나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한, 오년쯤 됐죠."


"벌써 그렇게 됐나요. 은태 씨는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하지 않았네요. 그래서 단박에 알아봤어요."


최정윤은 예전에 내가 계약직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게임 회사의 직원이었다.

그 당시 그녀는 인사팀에서 근무했다. 신입인데도 불구하고 에이스로 불릴 만큼 일도 똑 부러지게 잘하고 평판도 좋은 사람이었다.

게다가 성격도 상냥하고 친절해서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기가 좋았다.

생각해 보니 그 당시 나도 그녀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 같다. 신입이라 인사팀에 문의할 일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그녀는 항상 친절한 상담과 구체적 조언을 해줬다.

그러다 보니 친해져서 가끔 밥도 먹는 친구 사이가 되었다. 아무래도 동갑에 입사시기가 비슷하다 보니 공감대가 많았던 것 같다.

오년 전쯤에 코인이 대박나고 회사를 그만두면서 그녀와는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그런데 이렇게 뜻 밖의 장소에서 그녀를 다시 마주치다니.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 당시 그녀는 풋풋한 대학생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세련되고 성숙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인가요?”


“저 최근에 이 동네로 이사왔거든요. 오늘은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었어요. 하루 일과 마치고 잠깐 커피 좀 사려고 들렀죠. 여기가 제 단골 가게이거든요.”


단골 가게라...


묘한 우연이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그녀와는 취향이 비슷했던 적이 종종 있었다던 것 같다. 최정윤이 다시 말했다.


“설마 은태 씨도 이 근처에 사는 거예요?"


"네, 근처의 오피스텔에서요. 잠시만요. 커피 좀 받아올게요."


카운터에서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받아서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손목의 시계를 힐끔 쳐다봤다.


[PM 06:59]


이런...


벌써 어비스가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최정윤이 내게 물었다.


"무슨 중요한 약속이라도 있어요?"


"아, 그게... "


그녀에게 대답하려는 그때였다.


—쿠구구구구...


갑자기 지진이라도 난듯 주변이 흔들거렸다.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테이블 아래로 몸을 숨겼다.


"은태 씨, 위험해요."


최정윤이 테이블 밑으로 몸을 숨기며 내 팔을 아래로 잡아당겼다. 그녀를 따라 테이블 밑으로 들어가려는 그때였다.


—쿠구구구구구궁!


주변이 한층 강렬하게 흔들거렸다. 그와 동시에 한강이 보이는 카페의 통창으로 저 멀리 정체불명의 거대한 물체가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광화문 광장이 있는 방향이었다. 어쩐지 알 수 없는 기시감이 스쳤다.


저건 설마...


"도대체 저게... "


최정윤이 말을 잇지 못했다. 어느새 그녀도 테이블 밖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저게 뭐야...?"


"저거 탑 같은데...?"


"맙소사... "


카페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대체로 최정윤과 비슷한 반응이었다.

이윽고 지진이 멈췄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 정체불명의 탑이 솟아났다. 그 첨단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것의 표면은 칠흑보다 어두웠고.

그것의 첨단은 하늘을 꿰뚫었으며.

그것의 크기는 인류가 지은 그 어떤 조형물보다 거대했다.」


멸세탑의 시작과 함께 탑이 솟아오르며 흘러나오는 문구였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이 현실에 오버랩되며 전율감을 느꼈다.


저건 틀림없는 [영광의 탑]이었다.


불현듯 어비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히든 스테이지는 실전이라고 했었다.


설마 그게 이런 뜻이었나...?


옆에 있는 최정윤이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열심히 검색하고 있었다. 그녀의 스마트폰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실시간 검색어에는 대통령과 고위 관료들 실종 따위의 키워드가 보였다. 아마 영광의 탑이 청와대가 있던 자리에 솟아나며 그곳에 있던 대통령과 대부분의 고위 관료들이 사망한 것이리라.

이윽고 라이브 동영상이 흘러나왔다. 영상에서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의 전 세계 도심에 솟아오른 거대한 탑이 보였다. 그 탑들은 모두 동일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멸세탑에서도 게임 시작과 함께 전 세계 도심 곳곳에 탑들이 생겨난다. 모든 탑은 하나의 공간으로 연결되는 입구였다. 전 세계 어디에서 탑으로 입장해도 동일한 공간으로 들어선다.


[새로운 미션이 도착했습니다.]


+


<메인 미션—탈출>


난도 : F

성공 조건 : 멸망하는 세계로부터 탈출해 영광의 탑으로 입장하시오.

제한 시간 : 24시간

보상 : 1,000H

실패 시 : 사망


+


귓전을 울리는 메시지와 함께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멸세탑에서 늘 보던 그것이었다. 나는 눈앞에 손을 휘휘 저었다.

손가락 사이로 고운 빛 입자들이 흩어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뭉치고 있었다.


"미션...?"


최정윤의 목소리였다. 카페 안의 다른 사람들도 미션 메시지를 받은 듯 웅성거렸다. 시간을 보니 이제 일곱 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끼기기기기기기긱!


창밖으로 소름끼치는 음파가 터져 나왔다. 영광의 탑에서 발생된 소리였다.

나는 귀를 틀어막았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귀를 틀어막으며 당황하는 모습이 보였다.


또 다시 기시감이 뇌리를 스쳤다.


나는 영광의 탑을 바라봤다. 탑이 부르르 떨며 거세게 진동하고 있었다. 언뜻 보면 발작을 일으키는 듯한 모습이었다.

탑으로부터 정체불명의 물체들이 분출되듯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것들은 새카만 포물선을 그리며 사방으로 포탄처럼 떨어져 내렸다.


설마 그게 시작되는 건가...?


―쿠콰콰콰쾅!


창밖으로 폭발음과 함께 연기가 자욱이 일었다. 탑으로부터 뿜어진 정체불명의 물체가 떨어진 것이다.

사람들이 신기한 듯 그 주변으로 몰려드는 그때였다.


―촤아아아악!


날카롭게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피바람이 일었다. 그 주변에 서있던 사람들이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들의 머리가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이내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순식간에 거리는 아비규환이 되었다.


"무슨...?"


그 참혹한 광경에 최정윤이 입을 가린 채 몸을 가늘게 떨었다. 이윽고 연기가 잦아들고 괴생명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칠고 번들거리는 피부.

2미터를 훌쩍 넘는 체고와 사족보행.

등뒤로 돋아난 4개의 강철 같은 촉수들.


[그훈]이었다.


그것은 뒤틀린 황천의 피조물이라고 불리는 악마종 크리처였다.


거대하게 솟아오른 영광의 탑.

눈앞에 떠오른 반투명한 창.

그리고 창밖에 나타난 그훈까지.


이제는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 말도 안 되지만...


멸세탑이 현실이 되었다.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사방으로 그훈들이 잇따라 떨어져 내렸다. 그중 하나가 카페의 통창을 향해 날아들었다.

나는 최정윤의 손목을 이끌어 창문에서 물러났다.


―쿠콰콰쾅!


창문을 깨고 들어온 검은 물체가 카페 한가운데 충돌했다. 이윽고 자욱한 먼지 사이로 그훈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그훈의 촉수가 사방으로 움직였다.


—촤아앗! —촤아아앗!


피보라가 일며 주변에 서있던 사람들의 몸이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카페 안은 순식간에 피바다가 되었다.


"아아...... "


최정윤이 공포로 얼어붙었다.


—두근! —두근!


나 역시 심장이 거세게 요동치며 몸이 뻗뻗하게 굳는 느낌이 들었다. 게임에서 마주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압박감이었다.


공포와 두려움이 심장을 조여오는 그때였다.


[당신에게 첫 번째 특전이 부여됩니다!]

['냉철함'이 '특성'으로 부여됩니다. 이제부터 당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얼음과 같은 냉정함을 잃지 않습니다.]


특전...?


그러고 보니, 어제 어비스가 특전이 주어진다고 말했었다. 이게 그 특전인가 보다. 특전은 세 가지라고 했었다. 그럼 두 개가 더 있다는 말이었다.


어쨌든 냉철함 덕인지 빠르게 마음이 진정되었다. 미친듯이 뜀박질하던 심장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방금 전까지 심장을 옥죄던 공포와 두려움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마치 게임을 할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훈에 대한 설정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우선 그훈은 암모늄에 취약했다. 총알조차 뚫지 못하는 놈의 단단한 신체는 암모늄에 닿하면 눈처럼 녹는 구조로 되어있었다.

그렇다고 놈들에게 오줌을 갈기라는 말은 아니었다. 그랬다간 볼일 보다가 황천행이다. 그걸 어떻게 아는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멸세탑의 개발자는 항상 주변에 단서를 남겨 두었다. 나는 서둘러 주변을 살폈다. 카페 구석에 비치된 소화기가 보였다.


저거다...!


소화기의 분말은 [인산암모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혹자는 고등학교만 졸업한 내가 그런 정보를 어떻게 아는지 의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답은 간단하다. 그건 멸세탑에 나오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멸세탑의 설정에 대해서라면 논문 백 편이라도 우습게 쓸 정도로 박식했다.

멸세탑의 공략을 위해 과학 지식은 물론, 수학, 미술, 음악, 암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섭렵했다.


아무튼 소화기를 확보하면 그훈을 제거할 수 있을 듯했다.


문제는...


그훈이 소화기가 있는 길목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밖으로 도망칠 수도 없었다. 밖에도 역시 그훈들이 드글드글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살길은 소화기를 확보하는 것밖에 없었다. 나는 결심을 굳히고 그훈을 마주보고 섰다.


—크르륵...?


그훈이 잠시 학살을 멈췄다. 그리고 의아한 듯 낮게 그르렁거리며 나를 노려봤다. 놈의 새빨갛게 번들거리는 네 개의 눈이 나를 관통했다.

그 틈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카페 밖으로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냉철함(특성), 당신의 마음이 '평정심'을 유지합니다.]


무섭지 않았다. 냉철함 덕분인지 마치 게임을 하는 것처럼 마음이 차분했다. 아니, 오히려 자신감마저 들었다.

그동안 내 모든 노력의 결실이 마치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존재했던 것처럼 말이다.


머릿속에 이미 그훈의 공격 패턴은 숙지가 되어 있었다. 과장이 아니라 눈 감고도 놈의 공격을 피해낼 자신이 있었다.

멸세탑에서 하던 대로만 하면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게다가 지금 나는 최상의 컨디션이었다.

그훈을 지나쳐 가기 위해서는 시야를 교란할 필요가 있었다. 놈의 눈은 적외선을 감지한다. 따라서 강렬한 빛을 쏘이면 한순간 시야를 차단할 수 있었다.

나는 스마트폰의 전등을 최대 밝기로 켜고 뒷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 바닥에 나뒹구는 의자를 집어들며 그대로 그훈을 향해 달려들었다.


—촤라라라랏!


눈앞에 네 개의 촉수들이 짓쳐들어오는 게 망막에 맺혔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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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8화: 세레나데(2)> 22.08.07 152 5 15쪽
18 <17화: 세레나데(1)> +1 22.08.06 168 6 14쪽
17 <16화: 최후의 만찬(3)> 22.08.05 185 5 15쪽
16 <15화: 최후의 만찬(2)> 22.08.04 201 6 15쪽
15 <14화: 최후의 만찬(1)> 22.08.03 216 6 13쪽
14 <13화: 그것(4)> +1 22.08.02 243 8 13쪽
13 <12화: 그것(3)> +1 22.08.01 251 8 13쪽
12 <11화: 그것(2)> 22.07.31 259 7 14쪽
11 <10화: 그것(1)> +1 22.07.30 279 9 15쪽
10 <9화: 낚시(4)> 22.07.29 292 10 16쪽
9 <8화: 낚시(3)> 22.07.28 287 10 14쪽
8 <7화: 낚시(2)> 22.07.27 301 10 14쪽
7 <6화: 낚시(1)> 22.07.26 324 9 15쪽
6 <5화: 한강 대교(2)> 22.07.25 378 10 15쪽
5 <4화: 한강 대교(1)> 22.07.24 403 13 14쪽
4 <3화: 히든 스테이지(3)> 22.07.23 448 14 15쪽
» <2화: 히든 스테이지(2)> 22.07.23 507 14 13쪽
2 <1화: 히든 스테이지(1)> 22.07.23 590 15 13쪽
1 <프롤로그> 22.07.23 679 13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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