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청죽재

마드라드의 나비는 폭풍을 부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아라운
작품등록일 :
2019.06.28 09:02
최근연재일 :
2020.08.12 10:30
연재수 :
276 회
조회수 :
21,514
추천수 :
410
글자수 :
1,705,606

작성
19.11.01 07:36
조회
60
추천
1
글자
13쪽

98화. 약독화(1)

DUMMY

"버섯? 버섯의 일종이라고?"


왠 생뚱맞은 것이 튀어나왔다. 바다와 인접한 곳에서 임야에서나 볼 법한 버섯이라.

갑작스레 튀어나온 새로운 화두에 놀란 것은 마드라드 쪽도 마찬가지였는지 린델은 고개를 갸우뚱거렸을 정도였다.


양쪽 모두의 의견이 조금 진정이 되고 나서야 스발라가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코린티아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건 지금 자신뿐이었기에, 더욱 발언에 신중을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네. 저도 코린티아에 살았을 때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걸 생각하기 어려웠습니다. 정말 예전에 책에서 본 기억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지금 그걸 여기서 꺼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무리 보아도 그 여성이 남겼다는 유언이 코린티아 제국 공용어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버섯(Sopp)과 가게(Shop)는 아무래도 발음에서 차이가 많이 나지 않습니까?"


묻는 쪽에서 조금 감정이 섞여 들어간 것을 스발라는 결코 놓치지 않았다. 결국 그녀의 대답에서도 조금 짜증이 난 것이 여실히 느껴졌으니.


"스발라 알린 사제. 혹시 당신이 봤다던 서적의 내용을 아직 기억하고 계십니까?"


조나단이 과격하게 흘러갈 수도 있는 질의응답을 적절히 끊으며 말했다. 사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땅의 분노가 들끓는 곳, 그 붉은 액체를 토하고 난 자리에는 거인의 피를 먹고 자라는 버섯이 있다. 대지가 아직 거친 숨을 몰아 쉴 때, 그것은 제일 먼저 붉어진 땅에 머리를 들이밀고 태어난다. 아쉽지만 이게 전부입니다."

"...감사하네, 스발라 알린 사제. 이 사건이 끝나면 코린티아에 가서 관련 서적을 수입해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린델 교수의 의견은 어떤가?"

"예, 탑주님.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너무 자국 내 약용식물에만 집착했을 지도 모르겠어요. 갑자기 저는 보지도 못한 것들이 튀어나오다니. 교수로서 실책이 큽니다."


굳이 따지자면 그것은 벨 린델 교수의 실책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스발라도 말했듯이, 원산지로 추정되는 코린티아 제국 내에서도 문헌으로만 언급이 되는 버섯이기 때문이었다.

용암이 흐른 대지 위에 새로이 피어나는 버섯. 그 존재가 비현실적이라 생각하지 않은가.


물론 보름달이나 초승달의 빛을 머금어 음기를 채우는 달빛쑥 같은 녀석들도 존재하기 때문에, 화산이 터지고 난 뒤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들이라 용암이 흐른 곳에 피어나는 버섯이 있을 법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을 채취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조건이 한둘이 아니었다.


우선 화산이 있어야 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지형적으로 큰 무리가 있었다.


"흐음. 산이 폭발하고 땅으로부터 흐르는 불꽃이 솟아나는 현상 이야기로군. 내가 알기론 이오니아 내에서 그런 현상은 관측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네. 너무 자신을 타박하지 말게. 린델 교수. 나도 모르는 것이 많다네."


시어도어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화산은 이오니아 내에서는 구경조차 할 수도 없는 지형이었다. 코린티아 내에서도 일부 지역만이 솟아오르는 그 분노의 장관을 볼 수 있었고, 제국 이외의 곳으로 눈을 돌린다면 정말 극소수였다.


도리아 제국과 국경을 접하는 남부의 환영우림. 그 중 붉은 비늘을 가진 용이 사는 곳이 그것의 영향으로 화산 지형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는 있었다만, 용이란 화산보다 더 쉬이 볼 수 없는 것이었으니.


더군다나 화산도 이미 죽은 것들이 있었고, 맹렬히 하늘에 검은 연기를 뿜어대는 것들은 더욱이 그 수가 적었다. 책으로 남겨진 기록을 따라 묻고 물어 찾아가 보면 시간이 흘러 기록과 일치하지 않은 곳들이 꽤 되었다.


그리고 생각을 해보라.

때가 되면 계속해서 검은 연기를 뿜어대고, 산을 비롯한 주변의 땅이 계속해서 울리며 결국 땅에 붉은 불꽃이 흐르는 지역에서 태연히 땅을 갈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목숨을 걸고 그 근처에 머무는 미친 놈들은 없을 뿐더러, 쏟아지는 용암과 천지를 뒤흔드는 지진은 마법을 배웠다 한들, 용 정도의 강인한 육체와 저항력을 가지지 않는 이상 인간의 수준으로는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오죽하면 이를 모방한 마법들이 전부 고등 마법에 속하면서, 파괴력 면에서는 다른 쟁쟁한 마법들을 제치고 수위에 꼽힐까.

아무리 마법이 발달하고 학문이 정리된다고 할지라도 자연의 무자비함은 쉽게 따라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 극한 환경 속에서 간간히 발견되는 임산물이었다. 수르트의 버섯이 매우 희귀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 정도로 열이 많은 환경에서 태어나는 버섯이라면, 확실히 저주와 역병을 담을 모태로서는 더할 나위 없겠네요."


주술학과 전임강사 칼 힐베르트가 여전히 살짝 가벼운 목소리로 운을 띄웠다. 미네바 항구에 모인 이들로서는 알 수 없겠지만, 그가 안경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용암의 열기에 반응하여 피어나는 것들이라면, 내열성이 엄청 뛰어난 녀석들이 아니겠어요? 거기에 그 특성을 강화하거나, 혹은 불꽃을 피하는 밤의 저주 같은 거라도 걸면... 웬만한 불꽃이 아니라 대신전 같은 곳에 놓여진 성화(聖火) 까지도 잠시 동안이라면 버틸 수 있을 지 몰라요. 뭐, 정확한 건 시험을 해봐야 알겠습니다."


흑마법이 배척당한 상황, 저주술은 특정 마탑이 아닌 이상 공개적으로 학문으로서 자리매김하기 어려웠다. 그렇기에 마드라드에서는 이를 주술의 일종으로 취급해 연구로 포함시켰다.

제물과 숱한 재료들을 기반으로 쌓아 올라가는 누각의 기법은 민간 주술 등과 연관이 아예 없지는 않아 가능한 편법이었다.

아직 전임강사의 지위에 머물러 있지만, 그래도 마드라드가 계약하였으며 가장 자신 있게 선보일 수 있는 저주 계열의 학자가 힐베르트, 바로 그였다.


"붉은 먼지는 버섯의 포자로 보면 되겠지요? 독특한 접근 방식임에는 부정할 수 없겠어요."

"꽤나 머리를 썼어. 연구 인력도 풍부하단 이야기이네. 마드라드를 공격할 때도 그렇고, 범죄 집단의 규모가 상당히 큰 것 같아."

"도리아 제국에 직접적으로 반박을 하긴 어려운 상황이니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쪽을 일망타진해야겠습니다. 백작님, 혹시 얻은 정보가 있다면 공유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그 당시의 조사로는 이오니아 내에 있는 조직은 아니었네. 국제적으로 노는 녀석들이란 추측을 할 수 있어."


아직 밝혀진 것이 없다는 것에 속으로 조금 낙담한 조나단은 말문을 돌렸다.


"힐베르트 강사님. 그렇다면 저주를 푸는 게 가능한가요?"

"글쎄요. 직접 보지 않고서는 말씀을 드리기 어려워요. 하지만 제 지론은 사람의 손이 만들어낸 것이라면 당연히 사람의 손으로 풀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시간이 조금 걸리긴 하겠지만, 다른 분들의 도움을 받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사항이라고 보여지는데요?"

"해약을 제조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접 보지 않고서야 그 성분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직접 가고 싶긴 한데, 아무래도 그건 무리겠지요?"


흐음. 조나단은 고민을 거듭한 뒤에야 슬쩍 입을 열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미네바 공간이동 시설이 현재의 격리구역 내에 포함되어있습니다. 지금 그것을 사용하기 위해선 다시 마법사들이 마력을 불어넣어야 할 텐데, 더군다나 잠시 가동을 멈춘 상태라 약해진 체력으로 마력을 제대로 채울 수 있을지 우려됩니다."

"다른 방도는 있습니까? 미네바 정도 되는 도시가 공간 이동 시설이 하나만 있지는 않을 텐데요."

"물론입니다, 레므슈 교수님."


사실 아무리 큰 도시라 해도 수도 이온 정도가 아닌 이상 공간 이동 시설을 다수 짓는 것은 돈을 그냥 낭비하는 것이었다.

예외가 있다면 마드라드와 포트란의 관계로, 둘 사이의 거리는 다른 운송수단 없이 발로 움직여도 그리 멀지 않았다. 현우를 비롯한 포트란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걸어서 통학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왕국의 주요 연구 기관이자 지금 같은 경우와 더불어 이런저런 이유로 파견되는 경우가 많은지라, 빠른 이동을 위해 마드라드 내에 공간 이동 시설이 세워진 것이었다. 물론 다른 곳에 비해 유지 및 보수가 매우 쉽다는 것도 한 몫을 했지만.


"물론 다른 방도가 없지는 않으나 정확한 것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기밀입니까?"

"네. 군사기밀로 지정되어 있는 사항이며, 왕국의 지원을 받는 마드라드의 교수진 분들이라 할지라도 알려드릴 수 없는 점을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아, 물론 볼티모어 백작님은 접근이 가능하십니다."


노인의 웃음소리가 수정구로부터 들려왔다.


"저기, 제 생각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거나 실질적으로 무력을 통솔하는 이들끼리 이야기를 나눈 탓에 순간 회의에서 소외되었던 융 서기관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나름 미네바 관리청을 대표하여 이 자리에 나온 것이라, 모두들 그가 발언권을 얻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마드라드의 마법사 분들이 오기 힘들다면... 버섯 포자라고 했지요? 저걸 어떻게든 포장해서 전송시킬 수는 없겠습니까? 무게가 많이 나갈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지요. 간단한 서류를 보내는 것 정도라면 딱히 무리라 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요?"

"안됩니다. 보내는 도중에 감염이 될 우려도 있고, 마드라드까지 역병이 퍼지면 어떡하려고 그러십니까? 포트란에서 이온은 지척이란 것, 모르십니까?"


융이 쏘아낸 작은 제안은 모두의 반대를 달고서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 이후로도 여러 의견이 오가긴 했으나, 모두 현실적인 한계에 부닥쳐 제대로 진전되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럼 이것으로 2차 회의를 마무리하고, 조만간 계속해서 연락을 취하는 것으로 하지요."

"그럽시다."

"스발라 사제님,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아직 여기에 남으려 합니다. 아직 다하지 못한 일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들 들어가시고, 꼭 이번에도..."

"걱정 마십시오. 한 번 애들이 효과를 보더니 오히려 더 보챕니다."

"다행이네요."


회의가 끝나고, 이곳에 다시 회의 장소 겸 대책본부를 만들기 시작한다. 사제들의 축성을 받은 성물이 곳곳에 놓여지고, 바람이 불어 혹시 모를 버섯 포자가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해 방풍막이 세워졌다.


"이제 우리도 돌아가볼까? 사제님도 같이 가시죠."

"네, 알겠습니다 천윤화 양."


그들이 원래 있던 천막은 다른 천막들로 둘러싸인 채였다. 난전을 펼칠 때 햇빛을 가리기 위해 상인들이 사용하던 것들인데, 아무래도 누워있는 병자들을 위해 자신의 집에서, 혹은 상인 길드 등지에서 가지고 온 것이 분명했다.


"일이 이렇게 터질 줄은 몰랐네. 미안하다야."

"벤!"


다행히 벤이 정신을 차리고 현우 일행을 맞이해주었다. 아직 마력이 끊임없이 요동치는 것으로 보아 제대로 된 마법을 쓸 수 있을 정도로 회복하기 위해선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이나, 어찌되었든 정신을 차린 것만으로도 정말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명연과 알렉스 또한 반갑게 현우를 맞이했다. 폭발이 일어난 후, 스발라와 윤화를 만나 조나단 감찰단장을 비롯한 새로운 구호 인력들을 맞이했었다. 알렉스 쪽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자리를 비웠기에 엘라인과 만나기 전이 마지막으로 봤었던 순간이었다.


"정신을 차렸구나!"

"내 목숨이 그렇게 쉽게 갈 리가 있나. 아직 못 이룬 것도 많은데.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 이야기 좀 들려줘봐."

"응, 그럴게. 네가 정신을 잃은 이후로 어떻게 되었냐면은..."


레므슈 교수를 비롯한 마드라드의 교수진들이 회의에 참여했다는 점에서는 반색을 보였지만, 정확히 진전된 것은 없다는 결론을 들은 이들이 다시 시무룩해졌다.


"그 서기관 말도 일리가 있어. 어쨌든 연구를 해야지 약을 만들 수 있을 거 아닌가?"

"그렇지만, 지금 상태로는 오히려 병을 퍼트리는 꼴만 될 걸?"

"실드로 몇 겹을 감싸면 안되나?"

"윤화 누나, 그 상태를 유지하려면 옆에 계속 마법사가 버텨야 할 걸요. 지금 그런 여력이 되는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그것만 전송해서 보내면 실드를 쓸 수가 없잖아요."


학생 세 명의 머리로는 별다른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저기, 오빠."

"응, 왜?"

"나한테 생각이 있어."


명연이 자신에게 제안이 있다면서 현우에게 손을 번쩍 들었다.


"그냥 생각해 본 거긴 한데."

"뭐라도 좋아. 일단 떠올린 걸 말해볼래?"


사제의 치료와 약 기운에 취해 머리는 몽롱했다. 그래도 명연은 고민하던 사항을 현우의 앞에 드러내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았다.


"호향에서 할아버지가 농어를 드셨을 때, 지금 우리처럼 이렇게 아프진 않았잖아. 물론 좀 위험하실 뻔 했지만, 아주머니께서 거신 간단한 주문으로도 풀렸으니까."


아. 그랬었다.

그 때부터 그의 어머니는 저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현우에게 말했었다. 과연, 제대로 된 증거가 없었을 당시의 대략적인 예상이긴 했지만 경험은 무시할 수 없는 자산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비슷하지 않을까? 농어찜을 만들듯이 저것들도 쪄버리는 건 어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마드라드의 나비는 폭풍을 부른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7 97화. 붉은 먼지(4) 19.10.31 60 1 13쪽
96 96화. 붉은 먼지(3) 19.10.30 65 1 13쪽
95 95화. 붉은 먼지(2) 19.10.29 52 1 14쪽
94 94화. 붉은 먼지(1) 19.10.28 57 1 13쪽
93 93화. 실마리는 도화선이 되어(3) 19.10.25 65 1 13쪽
92 92화. 실마리는 도화선이 되어(2) 19.10.24 65 1 13쪽
91 91화. 실마리는 도화선이 되어(1) 19.10.23 151 1 13쪽
90 90화. 병마는 민낯을 낳는다(4) 19.10.21 66 1 13쪽
89 89화. 병마는 민낯을 낳는다(3) +1 19.10.18 85 1 13쪽
88 88화. 병마는 민낯을 낳는다(2) 19.10.17 55 1 13쪽
87 87화. 병마는 민낯을 낳는다(1) 19.10.16 56 1 14쪽
86 86화. 아웃브레이크(3) 19.10.15 63 1 13쪽
85 85화. 아웃브레이크(2) 19.10.14 56 1 13쪽
84 84화. 아웃브레이크(1) 19.10.11 58 1 13쪽
83 83화. 항구도시 미네바(3) 19.10.10 62 1 14쪽
82 82화. 항구도시 미네바(2) 19.10.09 57 1 13쪽
81 81화. 항구도시 미네바(1) 19.10.08 65 1 14쪽
80 80화. 호향에서(3) 19.10.07 78 1 13쪽
79 79화. 호향에서(2) 19.10.04 86 1 13쪽
78 78화. 호향에서(1) 19.10.03 75 1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