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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죽재

마드라드의 나비는 폭풍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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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운
작품등록일 :
2019.06.28 09:02
최근연재일 :
2020.08.1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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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5,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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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30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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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96화. 붉은 먼지(3)

DUMMY

그의 말이 들리기 무섭게 시어도어의 이름을 들은 사람들은 복장을 정비하고 기립 자세를 바로잡았다.

적어도 이오니아를 지키는 군인이라면 한번쯤은 노인의 이름을 들었으리라. 지금은 한결 물러나 후학을 양성하는 데에 집중한다 하였으나, 탑주의 자리에서 내려온 지금은 다른 지역이나 집단의 자문으로 취임할 가능성도 높았다.


제 2함대와는 해룡 토벌 건으로 인연이 닿았던 적이 있어 수뇌부는 꽤나 기대하는 눈치였다. 회의에서 시어도어를 자문으로 모시는 것에 찬성표를 던졌던 조나단은 다시 한 번 수정구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볼티모어 백작님. 이 사건에 백작님까지 참여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일단은 귀족의 작위는 공석으로 둘 수 없어 아직까지 맡고 있네만, 내게 내려진 것이 아니라 어차피 마탑주에 귀속된 작위가 아닌가. 곧 있으면 이것도 내려놓을 참이야. 말을 낮춰도 되네, 조나단."

"그렇게 할 수는 없지요. 그래도 전쟁영웅이 아니십니까. 아, 아직 정보를 전해드리진 않았지만 마드라드 쪽에서는."

"여름이라 풍토병이 발생할 위험이 높은 철이기도 하네. 하지만 갑자기 미네바에 고열을 동반하되 낮은 치사율을 보이는 질병이 퍼졌다? 린델 교수도 그렇고, 이쪽에는 그다지 많은 지식은 없네만 도저히 일반적인 역병으로는 보이지 않는군. 역병을 두고 일반적이라 칭할 수 있는 지는 제쳐두고 말일세."

"마탑주 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약학부 교수인 벨 린델, 그녀 또한 침착한 목소리로 천천히 논지를 전개해나갔다.


"왜 역병이란 이름을 붙였겠습니까? 원인은 모르지만, 전염의 속도가 빠르고 그에 맞추어 이른 시간에 사망에 이르기 때문에 역병이란 이름이 붙었지요. 하지만, 미네바의 경우 이 논리를 벗어납니다. 아직까지 사망자가 보고되지 않았다?"

"아, 지금 들리는 소식으로는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대규모 정화 의식을 펼치려는 도중, 불의의 사고로 감염원이 폭주를 일으켰습니다."

"아, 그렇군요. 삼가 애도를 표합니다. 그것은 그렇고, 마법 연구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는 필시 누군가 만들어 낸 것이 틀림없습니다. 던전에서 유출되었든, 혹은 전쟁병기로 만들기 위해 제작한 경우 말입니다."


전쟁, 특히 단기간을 벗어나 중장기에 접어드는 국면에서는 부상자를 유발하는 마법이 훨씬 전쟁에 많이 쓰였다.

파이어볼을 맞으나, 고위 마법 중 하나인 헬파이어를 맞으나 사람이 죽는 건 매한가지였으니.

물론 헬파이어가 훨씬 범위가 큰 것은 맞으나, 어차피 그것을 쓸 마력이라면 차라리 수천의 마력탄을 날리는 것이 다수 간의 전투에서는 더 유용했다.


무엇보다도, 부상자를 만들어내어 적군을 분산시킨다는 점에서, 디버프 계열의 마법들은 계속해서 연구될 가치가 충분했다.


이번에도 그런 이유로 누군가에 의해 개발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 린델 교수의 추론이었고.


"맞습니다. 마드라드의 학생이 가져온 증거가 진실이라면, 도리아 제국의 정보부와 올 봄, 마드라드 테러 사건을 벌인 범죄 집단이 흑막으로 있다 하더군요."

"오..."


시어도어는 탄식을 내뱉었다. 노인의 제자 중 한 명이 그 범죄 집단에 있었으며, 마드라드를 친 장본인이라는 것은 아직 현우를 비롯한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조나단이 이를 언급하는 것 만으로, 최소한 어떤 연유로 미네바에 역병을 퍼트렸는지는 대략적으로 이야기가 그려지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일리가 있어. 마드라드를 공격한 일당이라면 다시 이오니아에 공세를 펼칠 만 하겠지. 하지만, 어째서 도리아 제국이 갑자기 우리를 건드리는 겁니까?"

"그것까진 아직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흑막으로 추정되는 두 세력 중 세가 적을 하나는 이오니아에 대한 반감으로 일을 저지른 거라 치자. 허나, 그렇다면 도리아 제국은 무슨 연유로 이오니아를 공격했을까.


단순히 적국이란 이유로 전쟁으로도 벌어질 수 있는 사안을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정도로 멍청한 작자들이었다면 이오니아는 아직 제국으로서의 깃발을 높게 올리고 있었으리라.


그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쉽게 나왔다. 단, 미네바 쪽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입에서.


"굳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레므슈 교수."

"간단합니다. 교전의 기본 원리 중 하나를 대입하면 됩니다. 사람이듬 군대이든 간에 자신만이 손해를 본다는 건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맞습니다. 경청하고 있습니다, 레므슈 교수님."


짧지만 분명히 그의 말을 듣고 있다는 조나단의 말에 레므슈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지금 드러난 상황을 보면, 도리아 제국의 정보부에서는 어째서 잠자코 있던 우리를 건드렸을까, 그것도 타 집단의 도움을 받아서...라는 것에 의구심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레므슈는 침을 삼키며 다음 말을 머리 속으로 골랐다. 여기서부터는 제대로 된 증거가 없는 추론의 영역, 국가 기밀과도 연관이 깊은 상황이었기에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는 건, 분명히 그들은 원하는 것이 있다는 말로 바꿀 수 있는데, 조나단 감찰단장님의 표정을 보면 정말로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명확히 밝혀주실 수 있으십니까. 제가 물질 생활만 해서 그런지 머리를 돌리는 데에는 조금 어렵다 생각이 드는군요."


점잖게 타이르는 말이었지만 빙빙 돌리지 말고 제대로 말하라는 소리다.


"전형적인 동으로 시선을 돌린 뒤, 서쪽으로 병력을 몰아 상대를 치는 전략입니다."

"네?"

"미네바에 주둔하고 있는 이오니아 제 2함대 소속 조나단 웨이퍼 감찰단장님."

"예."

"감찰단장님께서는 당신의 상사에 속하는 타 계급의 분들은 현재 임무를 수행하고 계시고, 자신은 미네바 역병 때문에 지금 이렇게 바깥에 나와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맞습니까?"


감찰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여기까지는 딱히 틀린 말은 없었으니.


"어째서 미네바의 일부만 병이 퍼졌는가. 그것도 미네바 관리청과 해군이라는 두 개의 관리주체를 떡하니 남기고서 말이지요. 그들이 정말로 혼란을 요구했다면, 역병을 파악하고 이를 일차적으로 대처할 것이 분명한 두 중추를 노리지 않았겠습니까?"


일부러 미네바 관리청과 제 2함대가 주둔하는 본부와 멀찍이 떨어진 곳에 발병을 일으켰냐는 말이었다.

확실히,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 그들은 각기 본부에 큰 피해가 없다는 것에 안심하면서도, 이곳까지 구호 물자와 인력을 파견하는 것에 적지 않은 투자를 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케인의 안색이 핼쑥해진다. 그는 레므슈가 하는 말의 뒷부분을 충분히 이해한 듯 싶었다. 이윽고 린튼과 조나단, 그리고 해군의 다른 사람들마저 하나 둘씩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파악하고 얼굴이 굳어져갔다.


"맞습니다. 도리아 정보부의 목표는 미네바에 있는 제2함대 본부. 지금이라도 빨리 본부에 경계 태세를 내리시는 것을 권합니다."

"조나단, 지금 신경이 쓰이는 곳이 한둘이 아님은 이해하고 있네."


시어도어의 말이 적절한 때에 치고 들어왔다. 고민에 빠져있던 조나단이 노인의 말이 들리자 다시 정신이 번쩍 깨어 수정구로부터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집중했다.


"짐작 가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문서암호명 '레테.' 이 건이 도리아 쪽에는 가장 먹음직스러운 군사기밀로 느껴지는 군. 조나단 웨이퍼 감찰단장,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는가?"

"예, 백작님."


적국에게 군사기밀이 유출 당할 수도 있는 상황, 적어도 이오니아 왕국 제 2함대에게는 역병보다 더 면밀히 다가오는 위협이었다. 더군다나 상대는 도리아 제국이 아닌가.

제국과는 단순히 육지만을 국경으로 마주보고 있지만, 성국을 넘어 그들이 바다와 배를 통해 쳐들어오지 말라는 법은 없었고, 더군다나 '레테'의 건을 노리고 달려들어왔다면 필시 만반의 준비를 했을 터였다.


이는 즉, 미네바에 주둔하고 있는 왕실 직속의 해군으로선 더 이상 도시에 퍼진 역병에 추가적일 힘을 쏟을 여유가 없다는 말과 상통했다.


"저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급히 들렸다. 린튼만을 내보낸 줄 알았더니만, 미네바 관리청의 융 서기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현우에게는 마음 속으로 미운 털이 박힌 인간이었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어느 정도 눈치챘는지 1차 회의에서 봤었던 모습과는 달리 사뭇 진중한 얼굴이었다.


"융 서기관님. 늦으셨군요."

"미안합니다, 조나단 웨이퍼 감찰단장님. 이 와중에도 미네바의 나머지 정상적인 부분은 돌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업무가 마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남아있는 이들의 임무라 생각되었습니다."

"마침 잘 되었습니다. 마드라드 측에서 도리아 제국이 노리는 것이 해군의 군사기밀일 수도 있다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회의 도중에 자리를 비우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만, 그나마 융 서기관님이 오셨으니 마음의 짐은 덜 수 있겠군요."

"네? 저, 저는 처음 듣는 소리입니다."

"미안합니다, 서기관님. 하지만 본부에 상위 간부가 많이 남아있지 않는 터라 임시 지휘체계를 구성하고 경계태세를 강화해야 하는 점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 말만 남기고선, 감찰단장은 주변의 다른 이에게도 고하고 말을 몰아 본부로 향했다. 다만 해군 소속의 마법사 케인은 남겨두는 것으로 보아, 멀리서라도 회의에 계속 참여할 의지를 보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크흠. 대강의 설명은 들었습니다."


린튼을 비롯한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회의에서 나온 말을 전달받은 서기관이 콧수염을 건드리며 말했다.


"차마 가지 말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군요. 그래서, 마드라드에 계신 마법사님들 및 볼티모어 백작님께 질문을 들겠습니다. 혹시, 발병 원인은 찾으셨습니까?"

"다른 이들의 증언을 들으니 붉은 먼지 이야기가 나오던데, 현장에서는 그것을 원인으로 본다는 이야기 아닌가요?"


여태까지 잠자코 있었던 윤화가 슬쩍 목소리를 내었다.


"예. 맞습니다, 벨 린델 교수님. 저 또한 붉은 먼지에 직접 노출되어 병을 얻은 당사자이므로, 그것에 대해 의심할 여지는 없는 듯 합니다."

"아, 천윤화 학생. 다행히 아직 거동에 무리는 없나 봅니다."

"심하게 정신을 잃은 적이 몇 번 있습니다. 주변에 계신 사제 분들의 성력을 이용한 치료술 덕분에 증상은 그 때에 비해 호전되었으나, 근본적인 치료는 미진한 상황입니다."


현우는 모두가 병에 걸렸던 상황을 되짚어 보았다.


병이 음식으로부터 전파되었는가? 그것은 아니었다. 병이 걸리고 증상이 일어나는 속도를 보면 감염이 된 즉시 온몸에 붉은 반점이 돋는 등 바로 증상을 보였다.

제이미 씨의 집에서 역병에 감염이 되었을 때, 윤화는 제이미 씨가 만든 스튜를 먹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병에 걸렸다. 먹는 것으로는 역병에 노출되지는 않는 것이 아닐까.


호향 마을에서 마그누스는 농어찜을 먹고서 병에 걸렸었는데, 이는 아무래도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붉은 먼지가 농어에 침투해 있었다면 얼추 설명이 되었다.


엘라인의 보고서에도 어떻게 병을 퍼트렸는지에 대한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역병을 일으키는 무언가의 조합에 성공하여 도리아 제국의 정보부에 넘겼다는 기록만 있을 분, 그 뒤에 짐작되는 전개 부분은 백지 상태였다.


그 이후에는 도리아 제국의 정보부가 전부 해결한 뒤, 그들로부터 엘라인은 팽을 당한 것이 틀림 없으리라.

어찌되었든, 작금의 상황에서 가장 유력한 것은 현우를 비롯한 감염자들의 눈에 보인 붉은 먼지였다.


"아."

"응? 왜, 현우야. 너도 할 말이 있어?"


엘라인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그녀가 했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그것까지는 그녀가 남긴 보고서에 기록되지 않았으니,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있으리라.


"안녕하세요, 마드라드 소속 마법사 장현우 입니다."

"안녕하세요, 장현우 학생. 아, 저번 학기에 약용식물학 수업을 들었던 학생 맞지요?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벨 린델 교수는 현우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더 이상 자신을 소개하며 엘라인의 말을 전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지 않아도 되었다.


"마지막까지 흑막 집단의 일원인 엘라인을 만났던 유일한 증인으로서 여러분들께 알려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겼던 유언이 있습니다."

"그걸 왜 지금 말하죠? 조금 전까지는..."

"일단 진정합시다, 다들. 현우야, 말해보겠니?"


엘라인의 유언이라는 충격이 커서일까, 다들 시어도어가 현우를 향해 부드럽게 이름을 불렀다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윽고, 현우의 입에서 그녀의 유언이 흘러나왔다.


"절대로 자신의 시신을 불꽃에 닿게 해서는 아니 될 것, 그리고... 수르츠 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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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97화. 붉은 먼지(4) 19.10.31 59 1 13쪽
» 96화. 붉은 먼지(3) 19.10.30 64 1 13쪽
95 95화. 붉은 먼지(2) 19.10.29 50 1 14쪽
94 94화. 붉은 먼지(1) 19.10.28 56 1 13쪽
93 93화. 실마리는 도화선이 되어(3) 19.10.25 64 1 13쪽
92 92화. 실마리는 도화선이 되어(2) 19.10.24 64 1 13쪽
91 91화. 실마리는 도화선이 되어(1) 19.10.23 150 1 13쪽
90 90화. 병마는 민낯을 낳는다(4) 19.10.21 64 1 13쪽
89 89화. 병마는 민낯을 낳는다(3) +1 19.10.18 84 1 13쪽
88 88화. 병마는 민낯을 낳는다(2) 19.10.17 54 1 13쪽
87 87화. 병마는 민낯을 낳는다(1) 19.10.16 54 1 14쪽
86 86화. 아웃브레이크(3) 19.10.15 62 1 13쪽
85 85화. 아웃브레이크(2) 19.10.14 54 1 13쪽
84 84화. 아웃브레이크(1) 19.10.11 57 1 13쪽
83 83화. 항구도시 미네바(3) 19.10.10 61 1 14쪽
82 82화. 항구도시 미네바(2) 19.10.09 56 1 13쪽
81 81화. 항구도시 미네바(1) 19.10.08 64 1 14쪽
80 80화. 호향에서(3) 19.10.07 76 1 13쪽
79 79화. 호향에서(2) 19.10.04 85 1 13쪽
78 78화. 호향에서(1) 19.10.03 74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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