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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죽재

마드라드의 나비는 폭풍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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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운
작품등록일 :
2019.06.28 09:02
최근연재일 :
2020.08.1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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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5,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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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15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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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86화. 아웃브레이크(3)

DUMMY

"윤화 누나!"


잔경련을 일으키는 몸을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한 뒤, 현우는 윤화의 안색을 살폈다.

입술이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것이 전혀 그녀가 정상으로는 보이지 않음에, 그는 서둘러 옷의 소매를 걷어 피부를 살폈다.


"세상에..."


매우 작긴 했지만 붉은 반점이 위아래 할 것 없이 그녀의 손목을 넘어 팔뚝 전체에 돋아있다.

현우는 황급히 자신의 팔목 또한 확인해본다. 다행히 자신에게는 아직 증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곧이어 자신 또한 이런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현우의 등 뒤로 소름이 타고 오른다.


"저, 저기요! 도와주세요!"


자신들의 뒤로 들려오는 외침에 상점의 입구를 막고 대치하던 사람들이 뒤를 슬쩍 돌아보았다. 한 사내가 쓰러진 여성을 붙잡고 도움을 외치는 그 모습에 뒤쪽에 위치하던 무리 중 일부가 떨어져 현우를 향했다.


"무슨 일이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제 지인이 쓰러졌습니다."


척.


현우의 말에 다가오던 발걸음이 일제히 멈춰 섰다.


"왜 그러신가요? 많은 건 바라지도 않으니 부축하는 걸 좀 도와주실 수 있으신..."

"다, 다가오지 마쇼!"

"떽! 저리 물러가라! 어디서 아픈 사람을 이끌고 여기까지 나온 거야!"


매몰찬 반응에 현우는 그 이유를 몰라 당황스러웠다.

적어도 이유는 말해주어야 하지 않은가. 오직 그가 짐작할 수 있는 거라곤 제 어깨에 기대어 숨을 헐떡이는 윤화 뿐이었다.


"설마... 윤화 누나, 아니, 이 사람 때문에 그런 겁니까?"


서로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는 와중에 옷을 걷어 팔목이나 다리를 보여주는 사람들, 아무래도 제이미 가족의 경우와 마찬가지인 것일까.


"그걸 알면서 그러오? 척 보니 당신도 이제 글렀구먼!"

"그렇지 않습니다! 자, 보세요. 저도 그렇고, 이 분도 그렇고 저희는 그 붉은 반점이 없단 말입니다!"


현우는 서둘러 다시 소매를 걷으며 피부를 사람들에게 들이밀었다. 약간 밝은 살구색의 피부에는 잡티는 있을지언정, 그들이 수군거리며 그토록 확인하고자 한 붉은 반점은 보이지 않았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하! 붉은 반점이 있는데 잘 보이지 않는 거겠지."

"그럼 와서 보시던가요!"

"미쳤소? 우리도 그 꼴이 되란 말인가?"

"가족들이 아프시다 하면 결국엔 여러분들도 병에 걸린 게 아닌가요? 같이 생활하시잖아요!"


아픈 곳을 찔린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목을 가다듬으며 헛기침을 일삼는다.


"아직 눈에 띄는 증상이 없을 뿐, 여러분들 또한 어차피..."

"이 새X가 보자보자 하니까 정말! 어디서 욕질이야! 사람 목숨 가지고 그렇게 앞에서 험담이야!"


한 사내가 얼굴을 붉히며 팔뚝을 위로 들이밀며 위협을 날린다.

분명 저 사람이 먼저 욕을 한 것 같지만, 이미 화가 차오른 그는 그런 것은 아랑곳 않는 모양이다.


"저도 마찬가지겠지요. 이것 보니까 우리 쪽 일행만 병에 걸린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아닌가 보네요. 다들 급하신 거잖아요!"


그러나 현우의 말에 응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제는 그가 아예 없는 사람인 것처럼, 그들은 자기들끼리 잠깐의 대화를 나누더니 서둘러 자리를 피한 것이었다.

삽시간에 벌어진 일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고민하던 관리청 소속의 경비병들만 남긴 채, 그렇게나 약초 상점에 들어가기 위해 인파를 뚫으려던 사람들은 쏜살같이 모습을 감췄다.


여전히 바닷가 항구 특유의 생선 비린내와 소금기가 미네바의 공기 중을 떠돌아 다니지만, 아침에 그렇게도 붐볐던 거리는 황량하기 그지 없었다.


"저기, 경비병님들."


미네바 관리청 사람들도 똑같은 반응이다.

바로 현우와 눈이 마주친 어떤 사내는 바로 눈을 내리지를 않나, 그들의 장으로 보이는 인물은 옆에 있던 마법사에게 지시를 내린다.

마법사는 코를 막은 채 한 손에 든 완드로 마법진을 그렸다. 허공에 모습을 드러낸 마력탄이 그녀의 주변을 돌며 멀찍이 떨어져 있는 현우와 윤화를 노렸다.


"...이게 뭔 짓인가요? 미네바 관리청 소속 아니신가요? 어떻게 왕국민을 대상으로."

"지금 당장 여기서 물러가게. 곧 있으면 제대로 지원을 보내주겠어."


실드로 자신들을 둘러싼 채, 현우와 아예 접촉을 하지 않겠다는 듯 사내가 통첩을 날렸다.

붉은 기가 도는 검은 머리카락의 남자는 단호한 태도를 고수했다.


"그것 하나만 말해주세요. 이런 경우가 저희만 있는 게 아니란 말씀인가요?"


아무래도 저 쪽이 훨씬 더 사정에 밝을 것이라, 어떻게든 이 사태를 이해하고자 현우는 슬쩍 운을 띄웠다. 그러나 머리카락과 같은 색의 콧수염을 튕기는 남자는 그의 말을 바로 잘랐다.


"어허! 썩 물러가라 하지 않았는가! 당장 이곳에서 물러나지 않을 시, 마법으로 무력 저지를 할 수 밖에 없네."

"...알겠습니다."


더 이상 대화가 진행되지 않는다. 결국 현우는 뒤로 돌아 윤화를 부축한 채 걸음을 옮길 수 밖에 없었다.

여기서 제풀에 못 이겨 싸움을 걸어봐도 전혀 얻을 이득이 없다.

그나마 현 사태를 관리하는 인력의 소모만 극심해질 뿐이라 이 일을 해결할 힘이 달릴 뿐이리라.


"일단 집에서 출입을 금하고 버티고 있게. 관리청에서 마법탑으로 상황을 전달할 테니!"


현우의 어깨 너머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미 간단한 초소를 설치하기 시작했는지 무언가를 두드리고 나무와 쇳덩이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윤화는 경련을 멈추고 축 쳐져 있는 상태다. 아직 정신을 잃은 상태였지만 다행히 위험한 상황은 넘긴 것으로 보인다.

서둘러 알렉스에게 보여주는 것이 필요해 보이는지라 다시 제이미의 집으로 향하는 현우의 허벅지에 힘이 실렸다.


쾅쾅!


아직 알렉스가 문에 기대어 자고 있는지 응답하는 사람이 없다.

정신을 잃은 사람을 데리고 조금 전과 같이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현우는 결국 문고리에 손을 대었다.


큰 파괴력은 원하지 않는다. 단순히 잠긴 문을 열 정도만 되면 충분하니까.


"...칼날 돌풍."


정말 작은 규모로 전개된 바람의 칼날이 깔끔하게 나무 문의 손잡이를 도려냈다.

철커덕 하고 문이 열렸다. 부순 문은 나중에 필히 물어주겠다 그는 다짐했다.

아무래도 남의 사유재산을 부순 건 죄에 속하지만, 이 정도는 정상참작을 해주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품으며 현우가 제이미의 집으로 들어갔다.


"저기, 아!"


윤화를 부축해 그녀를 앉힐 자리를 찾던 현우가 알렉스를 발견했다. 문 근처가 아닌 화로 옆의 의자에서 졸고 있던 그를 깨우자, 사제는 놀란 눈으로 말을 버벅거렸다.


"아니, 현우 씨. 여기는 어떻게."

"제이미 씨에게는 미안하지만 문을 부숴서 들어왔어요."

"말씀을 드린 양초와 향초는... 사오지 못한 것 같군요."


현우의 손에 아무것도 든 것이 없음을 그가 확인했다. 옆에 축 늘어져 있는 윤화를 본 사제가 황급히 자리에 일어나 의자를 양보한다. 눕힐 자리는 이미 제이미의 가족을 비롯해 다른 사람들이 차지한 지 오래, 결국 의자에 앉혀 용태를 살필 수 밖에 없었다.


"어찌된 겁니까? 분명히 아까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지 않았나요?"

"그러게요. 저도 어떻게 된 건지 지금 갈피를 못 잡겠어요. 후우우. 알렉스 씨는 괜찮습니까?"

"자고 일어나니 기분은 한결 가셨습니다. 지금이라면 그래도 머리는 깨끗이 비워진 것 같군요. 하실 말씀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현우의 경험담이 알렉스에게 쏟아졌다. 일방적인 대화가 끝이 난 후의 사제의 얼굴은 볼이 핼쑥하게 들어가있었다.


"우선은 전혀 다른 증상으로 윤화 씨가 쓰러졌다는 것, 그리고 우리만 이런 일이 일어난 게 아니군요."

"저와 윤화 누나를 보고선 바로 미네바 사람들이 도망치던 것을 봐서는, 그 추론이 가장 정확해 보입니다. 정말... 그 관리청 사람들이 제게 마법을 겨눌 줄은 몰랐어요."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 사람들도 결국 아그룬 님의 아래 바다의 축복을 받아 살아가는 사람들 입니다. 뭔지 모를 무언가의 공포에 전염되고 싶지 않겠지요. 쿠, 쿨럭."


다시 알렉스가 기침을 시작하며 목을 꿀럭거렸다. 등을 두들겨주자 그의 얼굴의 주름살이 조금 펴지긴 했지만, 식은 땀이 이마에 물씬 배어 나오는 것이 다시 고통이 시작되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그 때였다.


에에엥-. 에에엥-.


마드라드에서 들었던 것과는 다른 종류의, 그러나 경고를 알리는 것만은 동일할 경보음이 현우와 알렉스의 귓가를 때렸다.

집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시끄럽게 울릴 정도라면 얼마나 그 소리가 큰 것일까. 아마 바깥을 돌아다니던 이들이라면 근처의 건물로 바로 대피할 정도이리라.


"아아-. 미네바 관리청에서 말씀 드립니다."


창문을 살짝 열어 바깥을 살핀다. 거리는 여전히 황량한 가운데, 좁은 시야로 보이는 사거리에 세워진 탑 형태의 건축물에서 이름 모를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우가 제이미의 집까지 찾아오는데 표지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 녀석이기에 그는 바닷가에서는 보기 힘든 그 특이한 형태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현재 항구도시 미네바의 모든 출입문은 통제된 상태입니다. 이와 더불어 선박의 출입 또한 엄밀히 통제될 예정이며, 이는 미네바 주둔 이오니아 제 2함대의 결정입니다."


현우는 이렇게 된 것, 저 소리라도 명확히 듣기 위해 창문을 활짝 열었다.

이미 이 질병이 많이 퍼진 것이라면 우리만 꽁꽁 싸매는 것은 별 효과가 없는 것이며, 이제 군인들까지 사태에 개입을 한다면 제한된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정보이기 때문이었다.


"미네바의 절반 정도가 현재 이름 모를 유행병에 감염되었습니다. 알려진 증상으로는 피부에 붉은 반점이 돋는 것, 경련에 떨다 쓰러지는 것, 입술이 푸르스름하게 변색되는 것, 이빨과 코에 출혈이 발생하는 것이 보고되었습니다. 미네바 시민 여러분들은 해당 증상이 발생한 경우, 무조건 집에 대기해 주십시오. 다른 이들과의 접촉을 삼가고, 문 앞에 전에 나눠드린 붉은 깃발을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붉은 깃발이 있어요?"


그에게는 처음 듣는 소리였기에 그나마 이에 대해 알고 있을 사람에게 묻는다. 다행히 알렉스는 이곳을 와본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지 현우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답해주었다.


"붉은 깃발과 흰 깃발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적어도 미네바의 집들은 다들 있을 거에요."

"관리청은 군과 협력하여 최대한 마법사와 사제들을 파견할 예정이며, 현 사태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마드라드를 비롯한 연구 기관과 협의를 할 예정입니다. 다행히 유행병은 치사성이 적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종탑에서 들리는 목소리에는 뚜렷한 호소력이 실려있었다. 아무래도 왕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인 만큼, 그것은 끊임없이 병에 걸린, 혹은 아직 증상이 발현되지 않은 이들에게 안심하라는 말을 전달했다.


"아직 환자가 발생하지 않은 집안은 재빨리 하얀 깃발을 내걸어 주십시오. 타인과의 접촉을 삼가고, 죄송합니다만 우선은 식수와 식량을 확보하시길 바랍니다. 어떤 경로로 병이 전파되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그렇기에 물을 비롯한 식량은 모두 끓여서 드시기 바랍니다."

"그나마 저건 제대로 하는 군요."


알렉스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말했다.


"바닷가라 물은 많아도 마실 수 있는 담수는 많은 편이 아닙니다. 우물이나 강물을 길어서 마시는 경우가 많으니까, 거기에 조금만 수를 써도 이렇게 될 수가 있지요."

"하지만 알렉스 씨는 그것까지."

"네, 그렇습니다."


그가 우선적으로 제이미 씨의 아내와 토미를 치료한 다음에 했던 일에는 분명히 물을 길은 동이를 확인하는 것이 있었다. 이것까지 생각을 한 것인가. 경험을 역시 무시할 수 없다고 현우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내질렀다.


"마실 물은 정화했습니다. 제가 보기만 해도 이게 오염되었다 아니다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물은 깨끗하니 목마를 걱정은 덜었네요."

"대단하군요. 그런데, 우리는 객이지 않습니까. 제이미 씨가 깨어나면 자리를 비워줘야 할 텐데요."

"아하하... 혹시 자비심을 살짝 보여주지 않을까요?"

"글쎄요."


머리를 긁적이며 사제가 열린 창문을 바라본다. 아직까지도 종탑에서 들리던 목소리는 마지막 말을 남기려는 듯 더욱 힘찬 발성으로 모두의 기운을 북돋았다.


"우리는 이겨낼 수 있습니다. 저희 미네바 관리청과 이오니아 제 2함대를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정해진 규칙을 반드시 지켜주시고, 서로 주의한다면 이 재해는 반드시 큰 피해 없이 지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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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97화. 붉은 먼지(4) 19.10.31 59 1 13쪽
96 96화. 붉은 먼지(3) 19.10.30 63 1 13쪽
95 95화. 붉은 먼지(2) 19.10.29 50 1 14쪽
94 94화. 붉은 먼지(1) 19.10.28 56 1 13쪽
93 93화. 실마리는 도화선이 되어(3) 19.10.25 64 1 13쪽
92 92화. 실마리는 도화선이 되어(2) 19.10.24 64 1 13쪽
91 91화. 실마리는 도화선이 되어(1) 19.10.23 150 1 13쪽
90 90화. 병마는 민낯을 낳는다(4) 19.10.21 64 1 13쪽
89 89화. 병마는 민낯을 낳는다(3) +1 19.10.18 84 1 13쪽
88 88화. 병마는 민낯을 낳는다(2) 19.10.17 54 1 13쪽
87 87화. 병마는 민낯을 낳는다(1) 19.10.16 54 1 14쪽
» 86화. 아웃브레이크(3) 19.10.15 62 1 13쪽
85 85화. 아웃브레이크(2) 19.10.14 54 1 13쪽
84 84화. 아웃브레이크(1) 19.10.11 57 1 13쪽
83 83화. 항구도시 미네바(3) 19.10.10 61 1 14쪽
82 82화. 항구도시 미네바(2) 19.10.09 56 1 13쪽
81 81화. 항구도시 미네바(1) 19.10.08 64 1 14쪽
80 80화. 호향에서(3) 19.10.07 76 1 13쪽
79 79화. 호향에서(2) 19.10.04 85 1 13쪽
78 78화. 호향에서(1) 19.10.03 74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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