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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죽재

마드라드의 나비는 폭풍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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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운
작품등록일 :
2019.06.28 09:02
최근연재일 :
2020.08.1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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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07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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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80화. 호향에서(3)

DUMMY

한창 달이 푸르고도 검은 바다를 비출 때 그들은 나간다.

오늘의 태양이 다시 제 모습을 비출 때, 고기잡이를 마친 배들은 비로소 항구로 밀려든다.

수산조합의 마법사가 만들어내는 얼음이 나무 판에 그득하게 담기고, 그 위로 갓 잡은 물고기들이 몸을 누인다. 미네바 수산 조합의 일원인 마튼은 제이미가 잡아온 물고기들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제이미, 오늘은 노래 좀 부르겠어?"

"자네에게 술 한 잔 살 정도는 된다네. 웬일인지 바다도 잠잠하니 멀리까지 나가도 된다네."

"어쩐지. 씨알이 굵은 녀석들만 잡았더라니."


마튼은 제이미가 잡은 농어를 차곡차곡 얼음상자에 담고는 이내 경매장으로 내보냈다. 최근 조업을 나갔던 것들로만 따지면 가장 수확이 좋았기 때문에, 자신의 친우는 충분히 자기에게 술을 사줄 수 있으리라.

무엇을 사달라 말할지 고민하는 그에게 제이미의 투덜거림이 들렸다.


"은화라도 두둑이 받았으면 좋겠구만. 토미가 물고기는 이제 질린다고 하지 않나."

"하하, 뱃사람이 될 녀석이 물고기에 질린다니."

"글쎄. 난 토미가 배를 타기 싫다 하면 말리진 않을 거야. 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힘을 다할 걸세."

"이거 참, 내가 실언을 했군. 어떤가, 미안하다는 뜻에서 내가 살 테니, 집에 가기 전에 한 잔 하겠는가?"


무언가를 들이키는 시늉을 하는 마튼을 보며, 제이미는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미안하이. 마누라가 뭐 좀 사오라고 해서 말이야. 그래서 그런데, 저건 버리는 거지?"


한 켠에 차곡차곡 모아져 있는 나무 조각들을 바라본 그가 말했다.


"맞네. 생선 담는 판때기인데 오래 써서 그런가 쉬이 문드러지더군. 저건 왜 묻는가?"

"땔감으로 쓰려 하지. 마누라가 사오라고 한 것들 중에 장작이 있었거든."

"다 가져가게나. 밧줄로 묶어주겠네."


제이미는 왼팔로 나무 판자 조각들을 한아름 안고선 시내의 가게들로 향했다.

마튼에게 받은 경매 대금이 허리춤에 달린 주머니를 무겁게 했다.

이것들만 있다면, 오늘은 토미에게 사탕을 한 움큼 사줄 수 있을 것이다.

아들내미의 웃는 얼굴이 눈에 선했다.


* * *


"오, 보기보다 장작 잘 팬다?"

"나도 너만큼 쏘다녀 봤거든? 부잣집 도련님으로 보지 말란 말이야. 장작 패는 거야 수백 번도 넘겠다. 시골 살면서 안 해본 사람이 있나?"

"쳇. 약골이라 놀려먹으려 했더니."


기름 지지는 냄새가 가득 퍼지는 공터의 한 켠, 현우와 벤은 장작을 패고 있었다.

장작용 도끼를 가지고서 한 번에 나무의 결을 따라 휘두르면, 그 무게에 나무는 반으로, 다시 1/4로 쪼개진다.

두 사람의 옆에 쌓여진 장작들이 꽤 많이 모일 무렵, 현우는 계속 굽혔던 허리를 쭉 피고는 뭉쳤던 근육을 풀어주었다.


"으아악! 에구구..."

"확실히 마드라드에서 수업만 들어서 그런가? 체력이 많이 약해진 것 같다?"


수업만 들은 것이 아니라 현우는 벤에게 당당히 쏘아붙일 수 있었다. 허나 그러기 위해선 그에게 풀어야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았기에, 현우가 할 수 있던 건 허리를 이리저리 돌리며 간단한 변명을 취하는 것 뿐이었다.


"마그누스 할아버지의 환갑 잔치일 줄은 정말 몰랐어. 나이를 많이 드시긴 했지만..."

"의외로 네 성처럼 그런 사람들만 사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우리가 막 그렇게 폐쇄적인 사람들로 보여? 그건 아니거든? 은근히 여기서 다른 대도시권으로 나간 사람들도 많고, 비슷한 곳으로 이사간 사람들도 있어. 생각해 봐."


장작을 패다 말고 현우는 부러진 나무껍질 조각으로 땅에 그림을 그렸다.


"여기서 대도시라 하면 하오란과 미네바잖아? 시골살이가 싫은 이들은 이 두 곳으로 많이 갔겠지. 그만큼 다른 마을과도 교류가 많았을 거고, 사람들 사는 곳이야 뻔하잖아."


그는 마을 옆을 흐르는 작은 강 너머로 좀 더 큰 마을이 있다며, 그곳과 교류가 많다 벤에게 말했다,


"거기는 정기적으로 시장도 열리거든. 요 주변에서는 꽤 큰 곳이야."

"오, 그러면 저기 고기 굽는 냄새도 거기서 사온 거야?"


현우는 킁킁 냄새를 맡았다. 짭조름한 내음 사이로 지글지글 고기 기름이 불에 타며 나는 그 특유의 향기가 났다.


"응. 아마도? 돼지고기인가? 꽤 비싸긴 하지만 마그누스 할아버지라면 뭐. 소를 잡아도 아깝지 않은 분이시니까."

"대단하신 분인가 봐. 네가 그렇게 말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거든."

"우리 마을에 유일한 치료사 분이셔. 어릴 적에 독초를 잘못 먹고 정말 죽을 정도로 아팠을 때, 그 할아버지 덕분에 살았거든. 이해됐어?"

"저기, 현우 오빠! 그리고 벤 오빠! 이제 장작은 되었으니까 와서 음식 좀 날라줄래?"


명연이 주걱을 들고는 두 사람이 있는 뒤뜰까지 와서 소리쳤다. 호향 향토 요리의 기본이 되는 장을 만드는 이인 만큼, 그녀 또한 오늘의 환갑연에 당당한 일원으로서 요리를 담당하고 있었다.


땀을 흠뻑 머금은 도끼를 내려놓고서 한창 요리를 만들고 있는 앞뜰로 나오니, 멋들어진 기다란 탁자 위로 여러 요리들이 그 자태를 드러냈다.


지짐이나 채소 볶음부터 시작하여, 현우와 벤의 침을 고이게 했던 돼지고기 요리와 이름 모를 생선까지. 명연을 비롯한 요리사들이 전해주는 음식들을 두 사람은 열심히 받아다 탁자 위로 날랐다.


어느덧 그 기다란 탁자 위를 빈틈없이 온갖 진미로 채웠을 때, 본 연회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인리히 마그누스, 치료사이자 약초에도 일가견이 있는 그는 호향에 정착한지 십여 년이 넘은, 이미 호향 사람들 사이에서 반 토박이로 인정받고 있는 노인이었다.


그들 중 노인에게 치료를 받지 않은 이가 손에 꼽았고, 사람이 60년을 넘게 산다는 것이 축복받을 일이 분명하지만 이토록 성대하게까지 연회를 여는 것을 보았을 때, 마그누스가 얼마나 호향에서 존경받는 인물인지를 알 수 있으리라.


"안녕하세요, 마그누스 할아버지."

"오, 현우 아니냐. 오랜만이다. 옆에 청년은 누구고?"

"아, 제 친구에요. 대학에서 이제 쉬는 기간이라 고향에 같이 놀러 왔어요."


인사를 하는 벤에게 껄껄 웃으며 덕담을 내린 마그누스는 다른 이들의 부축을 받아 상석에 앉았다.

노인이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그의 환갑연이 시작되었다. 각기 자리에 앉거나 선 채로 그들은 음식과 술을 즐겼다. 잔을 부딪히며 마그누스의 장수와 마을의 무탈함을 비는 그들의 얼굴에는 행복함만이 가득했다.


"얘야. 저것은 무엇이냐?"


돼지고기 요리를 맛보던 마그누스가 탁자에 올려진 생선 요리에 주목했다. 크기가 작지 않음에도 통째로 접시에 올려진 것이 여간 풍족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아, 할아버지. 미네바에서 온 농어에요. 솥에다가 쪘어요."


명언이 알맞게 쪄진 농어의 살점을 발라내 마그누스의 접시에 올려 놓았다.

하얀 살점을 그대로 입에 가져간 노인은 오물오물 씹더니만 눈을 번쩍 떴다.


"오!"


감탄사를 내지른 마그누스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옆에 있던 명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노인의 안색을 살폈다. 명연의 얼굴에 의구심을 넘어서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 오르려던 찰나.


"정말 맛있구나! 아주 부드러운 것이 일품이야!"


마그누스의 말에 정연은 안도의 한숨과 더불어 입꼬리가 씰룩 올라갔다.


"어우. 매일 이렇게만 먹는다면야 당장에 사신이 데려가도 여한이 없겠어."

"어우, 어르신! 농이 지나치십니다."


옆에서 다른 사람이 점잖게 말려보지만, 마그누스는 이미 좋아질 대로 좋아진 기분을 내려 앉힐 기색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는 현실로 일어났다.


* * *


쿵쿵쿵!


얇은 나무 판자를 엮어 만든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깬 현우가 급히 마당으로 나왔다.

무언가 긴박한 일이 일어난 듯 겉옷을 완전히 챙기지도 못한 사내가 문 밖에 서 있었다. 그는 현우를 보더니 환한 얼굴로 물었다.


"오, 사람이 있구나. 저기, 어머니는 지금 집에 계시니?"

"...어머니께서는 집에 계십니다만, 어쩐 일이시죠?"

"그게 말이다."


오늘 있었던 회갑연의 주인인 마그누스가 갑자기 정신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그, 급박한 일인 건 맞는데, 할아버지가 치료사시잖아요! 그런데 어머니는 왜요?"

"무슨 일이니, 현우야."


잠귀가 밝은 것인지 겉옷을 두른 채 어느새 현우의 어머니는 밖에 나와있었다.

현우를 봤을 때보다도 훨씬 더, 마치 무언가를 영접한 것 마냥 사내의 얼굴은 환하게 빛났다.


"장 부인. 마그누스 할아범이 쓰러져 버렸습니다. 혹시 지금..."

"네, 갑시다. 타이런 씨, 안내해 주세요. 현우야. 너도 그 친구랑 같이 따라오렴."

"네."


아직 자던 벤을 깨워 먼저 걸음을 옮긴 두 사람을 따라간 현우는 마그누스의 집에 도착했다. 이미 담의 주변에는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적잖은 수의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개를 이리저리 숙이며 마그누스의 집으로 들어간 현우는 그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침대에 누워있는 그는 숨이 막히지 않도록 혀가 입 바깥으로 빠져 나와있는 상태였다. 노인의 곁에서는 현우의 어머니가 그의 가슴께로 손을 얹어 호흡을 살펴보고 있었다.


"어?"


그녀의 손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에 현우는 작지만 탄성을 내질렀다.

분명히 그것은 마력의 움직임이었다. 같이 따라온 벤을 쳐다본 현우는 그가 보여주는 떨떠름한 반응에 자신이 잘못 보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단순한 배앓이는 아니에요. 그렇다고 심한 질병으로 보기도 어려운 것이, 심각한 전염병이었다면 이미 여기에 들어온 순간, 우리는 모두 병에 걸렸다 봐야겠지요."

"장 부인..."

"하지만, 저와 제 아들, 그리고 저기 계신 마법사까지. 체내에 무언가 급격한 변화가 감지되지는 않았어요. 그렇지, 현우야?"


이미 아들이 무엇을 생각하는 지 알고 있는 지, 현우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에 현우는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남는 것은 저주...같은 것이 마음에 남는데, 환갑연에서 누가 해코지를 하겠습니까. 제가 살펴봤을 때도 그럴 기미를 보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그래서 무엇이 문제입니까, 장 부인."


이미 아들에게 숨길 것이 없다는 듯 안나는 마그누스의 가슴을 마력을 끌어올린 손으로 덮었다. 그녀의 입술이 움직임과 동시에 녹색의 마력이 서서히 노인의 전신을 뒤덮었다.


"제가 생각한 것이 맞다면, 저주는 상당히 약화되어 있어요. 어르신의 체력이라면 충분히 털고 일어나실 겁니다. 늦다면 며칠 정도는 걸리겠지만, 간단히 체력을 보강하는 조치를 취했으니 금새 건강한 모습으로 뵐 수 있을 거에요."

"어, 엄마..."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꾸나, 현우야. 지금 그보다 급한 건."

"무엇 때문에 저 분이 저주에 걸렸나 하는 것이겠지요."


마그누스의 옆에 앉아 그의 냄새를 맡던 벤이 말했다.


"벤. 혹시 네 생각을 우리에게 들려줄 수 있을까?"

"흠. 제 경험으로는 보통 저주 같은 것들에 걸리는 건, 어딘가에서 부정한 물건을 가지고 오거나 선물로 받은 게 다수였어요."

"그건 말이 안돼, 벤. 오늘 마그누스 할아버지가 선물을 받은 적은 없었어."

"원래 치료를 받고 나서도 분에 넘치는 돈이나 선물은 거절하시는 분인지라, 연회가 끝나고 나서도 따로 받지는 않으셨을 거란다."


타이런의 말에 노인의 집에 있던 모두는 고민에 잠겼다.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다행히 전염이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원인을 명확히 찾지 못한다면 후에 큰 문제로 번질 수도 있음에 제각기 머리를 굴리고 있던 참이었다.


"거 어르신은 무사하십니까!"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끝없는 사고의 시간이 끝을 맺었다. 타이런은 문을 활짝 열어 대기하는 사람들에게 노인의 건재함을 알렸다.


"휴. 다행이군. 어르신께서 조금 쉬시면 괜찮아진다는 말씀이죠?"

"그렇다네. 다만, 어째서 어르신께서 그런 꼴을 당하셨는가를 알아야 하네."


마을 사람들 모두가 존경하는 마그누스였기에, 그에게 닥친 위협의 정도를 담 바깥에 있던 사람들은 여실히 깨달았다.


모두의 머리가 한 곳으로 모아져 끊임없이 돌아간다. 그들 중 누군가 수를 내었다.


"뭘 받은 것도 아니고, 우리 마을에 부정한 것을 끌고 올 이는 없을 테고."

"있다 하더라도 안나 씨가 해결했겠지."

"그렇다면 결국 음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외까?"


그럴듯한 이야기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현우는 슬쩍 바깥으로 나와 사람들의 논의에 합류했다.


"어르신께서 잡수신 음식에 뭐가 있는지 기억나는 사람 있소?"

"닭고기 볶음을 드셨소. 내 마누라가 만들었기에 기억하고 있지."

"장떡이랑 돼지고기 요리도 드신 걸 기억합니다."

"혹시 생선은 아닐까요? 생선 요리도 드셨거든요."


생선? 그러고 보니 분명히 마그누스가 생선 요리를 보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발언의 주인공을 찾아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명연이 무리의 바깥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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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96화. 붉은 먼지(3) 19.10.30 64 1 13쪽
95 95화. 붉은 먼지(2) 19.10.29 51 1 14쪽
94 94화. 붉은 먼지(1) 19.10.28 56 1 13쪽
93 93화. 실마리는 도화선이 되어(3) 19.10.25 65 1 13쪽
92 92화. 실마리는 도화선이 되어(2) 19.10.24 64 1 13쪽
91 91화. 실마리는 도화선이 되어(1) 19.10.23 150 1 13쪽
90 90화. 병마는 민낯을 낳는다(4) 19.10.21 65 1 13쪽
89 89화. 병마는 민낯을 낳는다(3) +1 19.10.18 84 1 13쪽
88 88화. 병마는 민낯을 낳는다(2) 19.10.17 55 1 13쪽
87 87화. 병마는 민낯을 낳는다(1) 19.10.16 55 1 14쪽
86 86화. 아웃브레이크(3) 19.10.15 62 1 13쪽
85 85화. 아웃브레이크(2) 19.10.14 55 1 13쪽
84 84화. 아웃브레이크(1) 19.10.11 58 1 13쪽
83 83화. 항구도시 미네바(3) 19.10.10 62 1 14쪽
82 82화. 항구도시 미네바(2) 19.10.09 56 1 13쪽
81 81화. 항구도시 미네바(1) 19.10.08 65 1 14쪽
» 80화. 호향에서(3) 19.10.07 77 1 13쪽
79 79화. 호향에서(2) 19.10.04 86 1 13쪽
78 78화. 호향에서(1) 19.10.03 74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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