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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죽재

마드라드의 나비는 폭풍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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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운
작품등록일 :
2019.06.28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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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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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09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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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82화. 항구도시 미네바(2)

DUMMY

"현우야! 어쩐 일로 여기를 왔어? 여기서 만날 줄은 정말 몰랐네."

"저기요, 생선 안 사실 거면 가시라니까요?"

"아, 네! 삽니다! 아저씨, 잠시만요! 누나, 잠시만요."


자신의 일행을 부르는 현우의 손에는 줄로 엮인 생선 한 마리가 들려있었다. 벤과 명연이 다가오자 윤화는 벤의 얼굴을 알아보고 말했다.


"어, 저번에 본 후배님이지? 그 아이는 오지 않았나?"

"안녕하세요, 선배님. 여기서 뵐 줄은 몰랐네요. 미아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이번에는 같이 오지 않았어요. 부모님을 뵈러 집으로 간다 하더군요."

"아깝네. 그 아이도 볼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무튼, 그럼 이 숙녀 분은 누구신가?"

"안녕하세요, 호향 출신, 이철웅의 맏딸 이명연이라 합니다. 현우 오빠와는 어렸을 적부터 한 동네에서 같이 지냈어요."


가슴에 손을 얹고 조신하게 인사를 하는 그녀에게 윤화가 살갑게 손을 흔들었다.


"아, 현우가 말한 그 동네 동생이 당신이군요? 만나서 반가워요."

"현우 오빠가 제 이야기를 했다고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명연의 손을 잡고 악수를 한 윤화는 입가에 손을 대어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다. 흐린 기억 속을 헤집고 그 날의 상황을 떠올린 그녀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꽃잎들을 가지고 마법을 부렸었지, 아마? 바람에 날리는 들꽃이 하나로 뭉쳐 미안하다는 단어를 이룰 때, 꽤 감동적이었어요. 덕분에 재미있는 구경도 했고요."

"저기, 윤화 누나. 여기서 그런 이야기는..."

"아하, 그래서 내가 그리 졸라도 쓰지 못하겠다 말한 거였구나? 아주 잘 알았어, 오빠."

"듣고 보니 쉽게 쓰지 못하는 마법 같은데, 다시 한 번 고마워 해야겠네? 고마워, 현우야."


두 여자의 말에 앞뒤가 모두 막혀버렸다. 진퇴를 할 수 없는 막막한 상황에서 현우를 건져 올린 것은 역시나 친구였다.


"명연 양, 그리고 현우야. 우리가 원래 하려던 목적부터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결국 뭔지도 모르는 생선만 산 채로 정보는 얻지도 못했잖아."

"정보? 무슨 일이라도 있니?"

"아, 그게..."


이마를 긁적이며 현우는 벤에게 눈치를 주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현우는 숨을 고른 뒤 윤화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무래도 이런 일에 대처하는 법이라면 그녀가 더 잘 알고 있을 거란 계산이었다.


"우선 그 할아버지 분이 무사하시다니 다행이네. 그래서, 이 아가씨가 봤다는 사람이 램버트 아저씨한테 생선을 사갔다는 거지?"

"램버트 아저씨요?"

"응. 나랑 어느 정도 알고 지내는 사이야. 걱정 마. 내가 도와줄게."


호언장담을 하며 윤화는 현우가 생선을 샀던 생선장수에게 걸어갔다. 그녀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는지, 서로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하다 윤화는 인사를 하며 제자리로 돌아왔다.


"정기적으로 자기한테서 생선을 사가는 사람이래. 별다른 일은 없던 것 같더라. 그런데 정말로 그 사람이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조금 전까지는요. 혹시나 해서 그런데 선배가 알고 계신다는 그 분은..."

"믿을만한 분이야. 적어도 내가 그 사람을 알고 있는 동안, 아저씨가 생선 같은 먹을 걸로 장난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까. 더군다나 단순한 배탈이 아니라, 저주 같아 보인다면서."


아침 식사 거리와 오늘 먹을 생선을 구하기 위한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시장 거리는 분주했지만, 혹여 다른 이들의 귓가에 이 의혹이 새어나갈 새라 윤화와 다른 이들은 소리를 죽이며 머리를 맞댔다.


"정말로 저주는 맞는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설명하겠어요. 불에 직접 구운 건 아니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요리한 거를 먹고 탈이 날 리가 없잖아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요리에 있어서는 남들에 비해 부족한 점이 그리 없다 생각해요. 아, 윤화 언니라고 불러도 되죠?"

"그러세요. 나도 명연아 라고 불러도 되는 거겠지?"

"그럼요."


여기서 계속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윤화는 자신이 묵고 있는 여관으로 이동해 제대로 자리에 앉아 토의할 것을 제안했다.


아무래도 그의 손에 달랑달랑거리는 생선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라서, 현우는 고개를 위아래로 정말 세게 끄덕거리며 그녀의 의견에 찬성했다.


윤화가 현우 일행을 데리고 간 곳은 '까마귀 둥지'라는 곳으로, 미네바에 거주하는 뱃사람이라면 으레 들를만한 분위기의 술집을 겸하고 있었다.


"바닷가에 왠 까마귀람."

"모르는구나? 큰까마귀 같은 애들은 바닷가 근처에도 둥지를 틀고 살거든. 갈매기만 끼룩거리는 게 아니라, 은근히 시장 구석에 생선 내장 같은 걸 애들이 잘 노리더라."


삐걱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바에서 업무를 보던 주인이 윤화를 보고선 아는 체를 했다.


"주인 아저씨, 여기 뒤에 있는 사람들은 제 손님이에요. 여기서 숙박하지는 않을 거지?"

"아, 저희는 이미 다른 곳에 숙소를 잡아놨어요."

"잠깐만 올라갔다 금방 내려올게요.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그러슈."


퉁명스럽게 답하는 주인장을 뒤로 한 채, 현우 일행은 윤화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오른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세 번째 떨어진 방문 앞에 다다른 그녀가 문을 두 번 두드린다.


"누구세요?"

"저에요, 천윤화. 알렉스 씨. 들어가도 될까요?"

"물론이죠. 잠시만요. 제가 문을 열어 드릴게요."


안에서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문이 열렸다. 훤칠한 키의 남성이 윤화 일행을 맞이했다. 그녀 혼자만 있을 줄 알았는지, 윤화의 뒤에 있던 세 명의 사람들을 보며 눈이 커다래진 그는 실례를 했다며 팔을 뻗어 그들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알렉스 씨는 신을 믿으시는 분인가 봐요?"

"네. 맞습니다. 그쪽은 윤화 씨와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마법사 분들이 틀림 없겠군요."

"저희의 마력이 느껴진다는 말씀이세요?"


마법을 쓰지 않는 상태의 마법사는 일부러 로브를 입는다던가, 완드나 스태프를 들고 있는 것이 아닌 한, 일반 사람들과 구별하기가 어려운 편이었다.

상시 체내에 쌓아놓은 마나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는데, 알렉스는 이를 간파하고 현우와 벤에게 의견을 물은 것이었다.


"아마 저쪽의 숙녀 분은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고요. 같이 동행하시는 일행인 것으로 보입니다만."

"대단하시네요. 이런 분은 처음 봅니다. 아니, 애초에 저는 사제 분들은 거의 처음 보거든요."


에블린 또한 현우와 처음 만났을 때는 신을 믿는 다며, 그의 앞에서 성력을 뿜어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래도 특이한 경우에 속하는 지라 정석적인 사제들로만 한정하자면 거의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이는 호향에는 신을 모시는 이들이 거주하는 곳이 없던 탓으로, 가장 최근에 사제를 만났을 때라면 다렌에서 다리가 부러졌을 때 정도였다.


"알렉스 씨는 성국에서 오신 분이야. 이번 미네바 지하 수로 청소 때문에 관리청에서 급히 모신 사제기도 해."

"거대한 바다의 포용력으로, 모든 이들을 어우르는 자비로운 아그룬 님을 따르는 미생, 알렉스라 불러주십시오."


양 손바닥을 붙인 채 인사하는 그의 모습에는 경건한 기운이 넘쳐 흘렀다. 그의 말을 듣건대, 아무래도 알렉스 씨는 바다의 신을 믿는 쪽으로 보인다.


"성국, 성국 이야기만 듣다가 처음으로 그 나라 출신의 사제 분을 만나게 되었네요. 저는 벤 팀버튼, 요기는 제 친구 장현우, 저기 여성분은 이명연 양입니다."

"하하. 다들 만나서 반갑습니다. 여러분께도 아그룬 님의 축복이 가득하길 빕니다. 무릇 신이시라면 모두를 어우르는 분이시니, 마법사 분들께도 제 기원을 허락해 주실 겁니다."


모처럼 만난 사제에게 현우가 질문을 던진다.


"성국은 한 분만 섬기시나요? 책 같은 걸 봐도 성국, 성국 이야기만 나오지, 정작 어떤 구조로 이루어지는 지는 나오지 않아서요."

"아무래도 폐쇄적인 성격 탓이겠지요. 다른 곳에 비해선 국가적인 교류가 떨어지긴 합니다."


자칫 민감한 질문임에도 알렉스는 너른 포용력으로 현우의 물음을 받아주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저희 성국에서도 사람들마다 각기 다른 신들을 모십니다. 애초에 신도들이 모인 이유가 믿음을 박해 받지 않기 위해서지요. 그런 이유로 세워진 나라에 유일신앙을 강조하는 건 전혀 옳은 일이 아닙니다. 아그룬 님께서도 그것을 원치 않으실 거고요."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아그룬 님께서는..."

"우리 너른 바다와 함께하시는 분입니다. 사람이 땅 위에 서서 만물을 누린다면, 아그룬 님께서는 그의 모토가 되는 바다의 풍요로움을 널리 퍼트리는 분이고요."


그의 설명을 들은 벤이 자신도 질문을 던질 수 있냐 물었고, 사제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에서 모든 것이 왔다는 이론, 아니 설명은 어떻게 증명되나요? 신의 말씀을 적은 경전에 그리 기록이 되어있습니까?"

"하하, 역시나 윤화 씨와의 첫 만남 때와 같은 질문을 던지시네요."

"알렉스 씨, 당사자 앞에서 무안 주지 마시죠?"

"네, 알겠습니다."


그는 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물은 많은 곳에서 적은 곳으로 흐르죠. 맞습니까?"

"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수가 많은 곳에서 적은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겠지요."

"마법사 분들이 자연을 탐구하는 방식을 차용해봤습니다. 그리고, 아직 많은 기록과 증명이 필요하겠지만, 확실히 바다에서 나는 것들의 수가 육지에서 볼 수 있는 것들보다 더 많습니다. 저희 교단에서 확인하였으니, 결과적으로는 육지의 것들은 아주 옛날이라 할지라도 바다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알렉스의 말은 타당해 보였다. 적어도, 현우나 벤이 생각할 수 있는 사고 방식의 한도 안에서는 그의 말에 무어라 반박할 흠이 없었다.

논리적으로 타당하게 연결되는 그 고리에 현우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쯤 되면 질문은 다 받은 것 같고, 저를 찾아오신 이유가 뭡니까, 윤화 씨?"

"아, 제가 설명할게요. 윤화 누나도 저희의 요청 때문에 알렉스 씨를 찾아온 거라서요. 혹시나 있을 왜곡을 줄이기 위해선 다시 당사자에게 듣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일련의 시간이 지나갔다. 도중 주인장이 슬쩍 올라와 정말로 자고 가는 게 아니냐 물었고, 윤화는 아직 해가 중천에 뜨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누가 자냐며 대꾸했다.

투덜거리는 주인장이 삐걱 소리를 내며 계단을 내려가고, 사건의 전조를 들은 사제는 입술을 오므리며 슬슬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빠른 조치 덕분에 어르신께서 떠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입니다. 윤화 씨. 제게 묻고 싶은 건 이와 관련된 것이겠지요?"

"아그룬을 모시는 교단에서는 바닷물고기 종류에 대해서 기록해놓은 사전이 있지 않습니까. 신의 은총을 받은 생물들이라 해서요."

"맞습니다."

"네? 그런 것도 가능한가요?"


명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혹시나 다시 여관의 주인장이 올라오지나 않을까, 입을 막은 채 주변 사람들에게 눈을 슬쩍 돌리는 그녀를 본 알렉스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아그룬 님의 권역 안에 있는 아이들 아닙니까. 아그룬님의 권속들을 파악하고 이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저희의 도리가 아닐까요? 예를 들면."


사제는 아까 전부터 자신의 방에 비린내를 풍기는 생선을 가리켰다.


"저 아이는 깊은 바다에만 있다가 새벽에 수면 쪽으로 나오는 아이들입니다. 지금은 좀 칙칙하게 색이 죽었지만, 막 잡았을 때는 은백색으로 빛나는 것이 잘 닦여진 명검과 같다 하여 펄션피시라 부르지요."

"아, 죄송합니다. 방 안에까지 이걸 가지고 왔네요."

"밑에 내려가 주인장에게 구워달라 하면 구워줄 겁니다. 맛이 담백한 것이 먹기에 나쁘지 않더군요."


사제의 말을 들은 현우가 문을 열고 급히 내려간 사이, 윤화가 남아있는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어때? 이 정도면 이 분이 전문가라는 것은 알 수 있겠지?"

"네. 그런데 사제님께서 저희에게 어떤 도움을 주신다는 건가요, 윤화 언니?"

"그... 물고기 이름이 뭐였지? 어르신께서 드셨다는 거가?"

"농어요."

"맞다, 농어. 알렉스 씨. 농어에 직접적으로 저주를 거는 게 가능한가요?"

"그 말씀은, 바다에서 잡힌 생선을 매개로 한 저주가 성립이 가능한 가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윤화는 알렉스를 향해 긍정의 의사를 표했다.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그는 눈을 감은 채 아그룬의 책에 나와있던 바닷물고기들을 하나 둘 씩 떠올리기 시작했다.

머리 속을 바다로 채운 사제는 일을 마친 현우가 다시 모습을 드러낼 때쯤 윤화의 물음에 답을 내렸다.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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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96화. 붉은 먼지(3) 19.10.30 64 1 13쪽
95 95화. 붉은 먼지(2) 19.10.29 51 1 14쪽
94 94화. 붉은 먼지(1) 19.10.28 57 1 13쪽
93 93화. 실마리는 도화선이 되어(3) 19.10.25 65 1 13쪽
92 92화. 실마리는 도화선이 되어(2) 19.10.24 65 1 13쪽
91 91화. 실마리는 도화선이 되어(1) 19.10.23 150 1 13쪽
90 90화. 병마는 민낯을 낳는다(4) 19.10.21 65 1 13쪽
89 89화. 병마는 민낯을 낳는다(3) +1 19.10.18 85 1 13쪽
88 88화. 병마는 민낯을 낳는다(2) 19.10.17 55 1 13쪽
87 87화. 병마는 민낯을 낳는다(1) 19.10.16 55 1 14쪽
86 86화. 아웃브레이크(3) 19.10.15 62 1 13쪽
85 85화. 아웃브레이크(2) 19.10.14 55 1 13쪽
84 84화. 아웃브레이크(1) 19.10.11 58 1 13쪽
83 83화. 항구도시 미네바(3) 19.10.10 62 1 14쪽
» 82화. 항구도시 미네바(2) 19.10.09 57 1 13쪽
81 81화. 항구도시 미네바(1) 19.10.08 65 1 14쪽
80 80화. 호향에서(3) 19.10.07 77 1 13쪽
79 79화. 호향에서(2) 19.10.04 86 1 13쪽
78 78화. 호향에서(1) 19.10.03 74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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