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등에는 올라가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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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발이 달린 한동주는 결국 자신의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나는 국내 1위 랭커인 풍신 이세립 님이 길드장으로 있는 대전 한남 길드의 부길······.”
“우와, 풍신 님하고 아는 사이세요! 그럼 아저씨도 엄청 세겠네요?”
국내 랭커 1위인 풍신 이세립의 이름을 듣는 순간 하윤이는 눈빛을 반짝이며 갑자기 태세를 180도로 전환했다.
존경으로 빛나는 하윤이의 눈빛을 보고, 한동주는 목에 기부스를 한 사람처럼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었다.
“어험, 풍신 님이 길드장이고 내가 부길드장이니까. 내가 두 번째로 세지!”
“그럼, 국가 데스 매치에 나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건 A등급은 되야 하고······!”
“에이, 그럼 나하고 똑같은 B등급이겠네요?
반짝이던 하윤이의 눈빛이 경멸에 가까운 눈빛으로 변했다.
한동주는 같은 B등급이라도 자신이 신생 길드의 B등급보다는 훨씬 대단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야, 너 보스 몬스터 보기라도 했어? 그게 얼마나 큰가 하면 말이야······.”
“하하, 내가 보스 몬스터를 세 마리 잡았습니다.”
“뭐, 세 마리나?”
“린제이쿠스, 리자드사우르스, 아토모스! 린제이쿠스는 말이죠······!”
하윤이는 보스 몬스터 레이드에 대해 자랑스럽게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 한동주의 눈이 점점 커져 갔다.
***
KTX가 멈춰 선 구미김천역 광장에는 징발된 관광버스가 끝도 없이 줄을 서 있었다.
기차에서 내린 헌터들은 버스를 타고 주어진 목적지를 향해 분산 배치되었다.
헬칸 길드와 한남 길드가 함께 탄 버스는 북대구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서변대교를 지나 신천대로 위를 달렸다.
버스에 탄 헌터들은 창 밖으로 신천대로를 따라 흐르는 신천이라는 하천에서 거대한 거북이를 볼 수 있었다.
하천을 가득 메운 파란색의 거대한 청거북이가 입으로 물을 뿜었다. 엄청난 물 대포가 날아가 신천대로 옆에 늘어선 아파트 한 동을 때렸다.
쿠구구구구구쿵!
15층이 넘는 아파트가 미사일에 맞은 것처럼 반쯤 부서져서 무너지고 7층 정도만 남았다.
버스가 신천대로에서 멈춰 서고, 사태가 심각한 걸 인식한 한동주가 소리쳤다. 그는 자진해서 이 버스에서 리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모두 내립시다. 레이드는 길드끼리 알아서 하기 바랍니다.”
정부에 의해 긴급하게 강제 동원된 헌터들. 여기에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리더의 부재이다.
서로 다른 수십 개의 길드가 모이다 보니 이들을 통제하고 지시를 내릴 사람이 없었다.
한동주를 따라 버스에 탄 헌터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뒤에 멈춰 선 세 대의 버스에서도 헌터들이 내리고 있었다.
네 대의 버스에서 내린 180명의 헌터가 저 거대한 청거북이처럼 생긴 몬스터를 레이드해야 한다.
지오, 솔미, 수진, 하윤이를 제외한 나머지 헬칸 길드원들은 버스에서 내려서도 기가 질러서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다.
저렇게 거대한 몬스터를 직접 보는 것이 처음이니까!
“지오야, 저런 놈을 잡긴 잡을 수 있는 거니?”
넋이 나간 방소희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오를 보았다. 지오는 신천을 자기 안방처럼 여기고 있는 거대한 청거북이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이름 : 페닌슐라쿠터(Peninsulacooter)
등급 : 11티어
특성 : 수중 몬스터, 물 속성
스킬 : 워터 브레스, 백 스피어
강점 : 단단한 등껍질
약점 : 머리, 배
보스 몬스터도 아닌데 무려 11티어의 괴수.
그런데도 다른 길드들은 거침없이 도로의 가드레일을 넘어 아래로 내려갔다. 이들이 저렇게 서두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도시를 지켜라!’이벤트는 지금까지 한 번도 발생한 적이 없는 대형 이벤트. 그러니 각종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할 게 분명했다.
지금도 대구지역 방송인 TBS와 십여 명의 너튜버들이 드론을 띄워서 촬영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저 거대 괴수를 레이드하는데 큰 공헌을 한다면, 그 길드의 위상이 단번에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정부와 각성자협회로부터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180명이나 되는 헌터가 함께 레이드를 하기에 레이드의 실패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로지 높은 공적을 세우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오는 이런 대형 몬스터를 직접 본 적 없는 길드원들을 위해 천천히 움직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도 다치지 않고 살아남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상황에 적응하는 것부터가 먼저라고 생각했다.
헬칸 길드가 아래로 내려갔을 때에는 이미 강가에 늘어선 헌터들이 페닌슐라쿠터를 공격하고 있었다.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마법사들과 궁수들이 강가에서 파이어볼을 비롯한 각종 마법과 화살을 날렸다.
거북이처럼 생긴 몬스터라서 헌터들은 딱딱해 보이는 등을 피해 다른 부위를 공략하려고 했다.
하지만 배와 다리는 물속에 잠겨 있고 등과 머리만이 수면 위로 나와있는 상태. 그러니 공격은 머리에 집중되었다.
페닌슐라쿠터는 워터 브레스로 공격을 날려 버리다가 머리에 몇 방 공격을 당하자 아예 머리를 등껍질 속으로 집어넣어 버렸다.
파이어 레인을 얻고나서 자신감이 붙은 수진이가 지오에게 말했다.
“선배, 우리도 공격할까요?”
“그래, 등껍데기에 네 파이어볼이 통하는지 한번 테스트해 봐!”
지오는 1,200도씨가 넘는 수진의 파이어볼을 맞고 저놈이 어떻게 반응할 지가 궁금했다. 딱딱해 보이는 등껍질이 화염에도 내성이 있는지를 테스트해 보고 싶었다.
수진이가 코르넬의 스태프를 앞으로 내밀며 마법명을 영창하자 노란색 파이어볼이 날아갔다.
하천을 다 덮고 있는 페닌슐라쿠터의 등을 못 맞출 이유는 없었다. 놈의 등에 노란색 불덩어리가 붙어서 활활 타올랐다.
하지만 페닌슐라쿠터는 비명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지오야, 나도 공격할게!”
솔미는 알테마스의 활을 들고 놈의 머리를 노리고 쏘았다. 하지만 놈이 뿜어내는 워터 브레스에 맞고 화살이 허공에서 박살나고 말았다.
헬칸 길드의 원딜들이 자신의 공격이 통하는지 테스트를 하고 있을 때, 다른 길드에서는 근딜들이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100명이 넘는 헌터들이 각자의 무기를 들고 페닌슐라쿠터를 향해 다가갔다.
그걸 보고 지오가 명령을 내렸다.
“하윤이와 내가 먼저 가서 공격을 할 테니까. 다른 분들은 여기서 헌터들이 공격하는 것을 잘 지켜보세요!”
지오는 안철용을 비롯한 다른 근접 딜러를 공격에 참여시키지 않고, 일단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앞으로 나가려는 지오의 귀에 채은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등에는 올라가지 마세요!”
지오는 손을 들어 흔들어 주며 알았다는 표시를 했다. 그리고 하윤이와 함께 신천으로 들어갔다.
신천의 수위는 허리 정도여서 구태여 수영을 하지 않고도 놈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지오는 놈의 약점인 배와 머리를 차례로 쳐다봤다. 배는 수면에 가라앉아 있어 공격하기가 어렵고, 머리는 접근하는 헌터에게 강력한 워터 브레스를 뿜어 대서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민첩 스탯이 높아 보이는 헌터 다섯 명이 워터 브레스를 피해 머리를 공격했다. 하지만 놈의 머리는 그들의 공격이 닿기도 전에 등껍질 속으로 재빠르게 들어가 버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공격에 나섰던 대부분의 근딜들은 어떻게든 놈에게 데미지를 입히기 위해 놈의 커다란 등 위로 올라갔다.
페닌슐라쿠터의 등은 거북이 등껍데기처럼 독특한 무늬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헌터들은 갈라진 것처럼 보이는 선을 따라 공격을 퍼부었다.
이러한 공격에도 페닌슐라쿠터는 신천에 거대한 몸을 담근 채 그다지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등은 헌터들이 공격하기에는 가장 편한 장소가 되었다.
등에 올라가 있던 한동주가 등껍질 사이에 검을 박아 넣고는 크게 소리내서 웃었다. 앞서 공격과는 달리 이번에는 뭔가 다른 느낌이 나면서 자신의 검이 반쯤 아래로 들어갔기 때문.
“우하하하, 이놈 죽어라! 나의 검이 이놈의 살을 파고 들었습니다!”
채은아의 말을 들은 지오와 하윤이는 등에는 오르지 않고 물에 몸을 담근 채 할버드와 창으로 페닌슐라쿠터의 발을 공격하고 있었다.
한동주의 목소리를 들은 하윤이가 고개를 들었다.
“아니 저 자식은 자신이 이놈을 잡은 것도 아니면서 뭘 저렇게 자랑질을 하는 거야! 참, 내 더러워서!”
마침 한동주의 눈이 아래에 있는 하윤이와 마주쳤다.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린 한동주가 하윤이를 도발했다.
“어이, 신생 길드! 다른 헌터들은 모두 여기 올라와서 조금이라도 데미지를 주기 위해 노력하는데 너흰 물에서 물놀이만 하는 거야?”
하윤이의 이마에 핏대가 꿈틀거렸다. 지오가 뭐라고 할 새도 없이 사라진 하윤이가 한동주의 옆에 나타났다.
바르나울의 창을 높이 든 하윤이가 한동주를 노려봤다.
“흥! 그걸로는 찔러봐야 몇 센치 들어가지도 않겠네! 찌르려면 이렇게 기다란 창으로 찔러야 확실하게 들어가지! 블링크!”
하윤이의 모습이 다시 사라지고, 2m 높이의 허공에서 창을 꽉 거머쥔 채 나타났다.
“썬더 스피어!”
파지직 뇌전을 일으키는 붉은 창을 붙들고 하윤이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레이요의 반지가 충전된 상태가 아니라 그 위력은 많이 반감되었지만, 영웅 등급으로 강화된 창의 예기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쾅!
바르나울의 창이 등껍질 무늬 사이로 파고들었다. 창대의 반이나 밑으로 들어가 모습을 감추었다.
“쿠어!”
마침내 페닌슐라쿠터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들려주며 몸을 한번 꿈틀거렸다. 그러자 놈의 등껍질에서 난데없이 수백 개의 창이 치솟아 올랐다.
등에 올라타고 있던 80여 명의 헌터들이 동시에 비명을 내질렀다.
“크악!!!”
“으악!!!”
“컥!!!”
수십 명의 헌터들이 날카로운 창에 꿰뚫려 죽거나 중상을 입었다. 그 중에는 말 안 듣는 나하윤도 있었다.
등에 오르지 말라는 채은아의 말을 들었지만, 한동주의 도발에 참지 못하고 등에 올라간 나하윤.
스킬까지 사용해서 바르나울의 창을 아래로 깊숙이 박아 넣었지만, 갑자기 튀어나온 뾰족한 창날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의 특성인 블링크를 외칠 시간도 없었다.
창날에 왼쪽 팔을 크게 베인 하윤이는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비명 외에도 수십 개의 비명 소리를 동시에 들었다.
그리고 눈앞에는 대나무 숲처럼 펼쳐진 뾰족한 창들을 볼 수 있었다.
창대 사이로 처참한 헌터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 밑에서 갑자기 올라온 창날에 찔려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발등이 꿰뚫린 헌터, 허벅지가 꿰뚫린 헌터, 재수 없게 몸통을 관통당한 헌터도 있었다. 그나마 팔이 반쯤 잘려나간 자신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하윤이의 시선이 옆에 있던 한동주를 향했다.
기고만장하던 한동주는 왼쪽 엉덩이가 창에 꿰뚫려 있었다.
‘저 자식 잘못하면 앞으로 짝궁둥이가 될 수도 있겠는데! 그러면 걸을 때 뒤뚱뒤뚱거리며 걷게 되는 건가?’
그런데 한동주의 바지 가랑이 사이로 노르스름한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거덜먹거린 것치고는 겁이 많은 사람이었다.
한동주와 시선이 마주친 하윤이는 자신의 고통도 잊고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크아악!!!”
“으악!!!”
다시 한번 헌터들의 입에서 비명이 새어 나왔다. 자신을 찌르고 있던 창날이 갑자기 밑으로 빠져나가며 다시 한번 살을 베었기 때문.
지금까지는 창에 꿰뚫린 헌터들은 움직일 수 없었는데, 엄청난 통증이 다시 한번 발생했지만 이젠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걸을 수 있는 헌터들은 살기 위해 페닌슐라쿠터의 등에서 뛰어내리거나 굴러서 떨어졌다.
블링크를 연속으로 펼치며 탈출한 하윤이는 반쯤 잘린 왼팔을 부여잡고 솔미를 찾아갔다.
“꾸어어엉!”
도망치는 헌터들은 페닌슐라쿠터가 내지르는 승리의 포효를 들으며 침묵에 잠겼다.
180명이란 많은 인원으로 승리를 자신했지만, 처음 공격을 퍼부었던 원딜의 공격도 전혀 들어먹히지 않았고, 100명이 넘는 근딜의 공격도 마찬가지.
오히려 놈의 기습적인 공격에 근딜의 반이 넘는 숫자가 그대로 당하고 말았다.
헌터들은 이제서야 여기에는 A등급 이상의 랭커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이 없다는 게 이렇게 큰 차이를 가져올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동안 인간들의 공격을 받기만 했던 페닌슐라쿠터는 한번 잡은 승기를 놓치기 싫은 듯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던 새로운 공격 스킬을 선보였다.
방금 등껍데기에서 튀어나와 50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바로 그 창이 이번에는 등에서 발사되었다.
쒹쒹쒹쒹쒹쒹쒹쒹쒹쒹!
수백 개의 창들이 미사일처럼 사방으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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