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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Mom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9.17 23:25
최근연재일 :
2021.06.17 12:00
연재수 :
69 회
조회수 :
13,417
추천수 :
341
글자수 :
354,049

작성
20.10.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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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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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1쪽

마지막 백반 1

DUMMY

‘새로 지은 원룸 타운...’

근처에 대학교. 조건 완벽.

그러나,


쪼그려 앉아 숨 좀 고르자. 손가락들이 욱신거린다. 몸 하나는 제대로 푼 것에 만족한다. 몸도 풀 겸 4층까지 외벽을 탔지만, 창문들이 모두 닫혀 있었다. 새로 지어서 정문은 번호와 카드키. 온몸에 땀이 흠뻑 젖도록 올라갔다가 옥상에서 담배 한 대 피우고 내려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정문이 CCTV 포함해서 꽤나 신경을 쓴 건물. 아무래도 창문도 일체형 전자장치가 아닌가 싶다. 어차피 목적은 옷과 신발이었지만, 생전에 도둑질은 영 아닌가보다. 차라리 닫혀 있었던 게 다행이다.


귀금속은 필요 없고 옷과 신발이지만, 일반 잡범과 다른 게 뭔가. 다른 건물? 아니. 포기하련다. 이거 도둑놈 맞다. 그리고 이렇게 쉬운 줄 생각 못 했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이라고, 내가 머리를 덜 굴리고 너무 빨리 행동했다. 아주 쉬운 걸 가지고. 내려와서 숨을 고르는데 바로 눈에 들어왔다.


의류수거함.

‘뭐 좀 있으려나.’


공사 트럭에서 가져온 철근을 낚시 고리로 구부려 옷들을 꺼낸다. 의외로 걸리는 게 두툼, 제법 나왔다. 예상대로 주로 겨울옷. 하지만 여자 옷은 무척 많은데 남자 것은 별로... 옷은 몇 통만 돌면 충분히 될 것인데 신발이 문제다. 지금 운동화가 이상하진 않지만, 공장은 알아본다.


‘좋아. 굿이야.’

예상대로 나온다. 낡기는 했지만, 조합하면 나쁘지 않다. 목표는 나이에 맞게 대학생. 그런데 내 면상이 대학생으로 보일까? 모르겠다. 나는 내 모습을 관찰하는 취미가 사라진 지 오래다. 색깔은 나온 것 중에서 어두운 것. 최대한 많이 보는 평범한 스타일로...

피팅 모델이 된 기분.


어? 어림 치수 비슷해. 흑청색 후드. 이 후드는 픽스, 재킷이 있으면 좋겠는데... 후드도 사실 튀는 옷이긴 한데. 일단 이걸로 상의.

뒤졌지만 나머지는 아니다. 다시 집어넣어. 여기 끝. 해보니 바지가 문제일 거 같은데? 하의는 거의 없고 상의만 많네. 원래 군복도 하의가 먼저 해지는 법이지.


옛날에 일본이 우리보다 훨씬 잘 살 때, 일본 사는 유학생들이 그랬지. 멀쩡한 걸 엄청 버린다고. 물가가 비싸서 자존심 버리고 그런 거 주워다 쓴다고. 가장 놀라운 건 작동이 멀쩡한 전자제품을 버린다는 거. 이제 우리나라도 그러고 있다. 제품이 멀쩡히 돌아가도 신상을 사면 자연스레 버린다. 작동이 멀쩡해도 외관이 오래되면 바꾸려 한다. 이 통의 옷도 냉정하게 보면 거의 멀쩡한 옷들이지.


자, 다음 통으로.

어디쯤 있을까 둘러보자...


잠깐만. 문간 옆에 저거, 신발. 오, 나이키 데스네. 테니스화. 어, 진짜네. 이런 걸 버려? 살짝 작아 보이는데? 요즘 가장 평범한 것이 청바지나 블랙진에 하얀 운동화.


‘에이...’


7-8년 신은 것 같다. 컴컴한데 하얀색이 빛나서 먹음직스러워 보였구나. 금이 열 개도 더 보이네. 발에 뻑뻑하다. 가죽이 맛이 갔다. 굳고 찢어졌어. 일단 챙겨봐. 신고 걸어 다녀도 이상하진 않다. 마스크, 마스크는 요즘 아주 쉽다. 항상 어디 구석에 떨어져 있다. 술집들 가까이 가면 마스크와 라이터는 항상 공짜다. 버린 것이 아니라 멀쩡한 것을 술 먹고 떨어트린 것.


라이터를 돈 주고 사는 놈이 이상한 놈이야. 유흥가 20분이면 일회용 라이터 다섯 개는 줍지. 한때 그런 놀이도 했었어. 사람 좀 버글거리는 바쁜 술집에 가서


‘어제 여기서 술 먹었어요. 죄송한데 지포 라이터 두고 간 거 같은데...’


그러면 2/3는

‘어떤 거요?’


여러 개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나는

‘글쎄. 제가 그날 선물 받은 거라서요. 그냥 하얗고...’


근사한 놈으로 골라잡는다.

꼭 멘트.

‘사례를 해야 하나요? 아무래도 이게...’


‘아니, 왜 그러세요. 우리 가게 또 오세요!’


다시 거기 간다고 문제 되진 않는다. 그런 얼굴 기억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라이터 원주인이 찾아올 수도 있으니까. 대체로 술집에 두고 간 걸 찾으러 오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렇게 친구들과 지포를 개비했다. 정확히 기억할 정도면 잃어버리지도 않았을 거니와, 유명 유흥가는 뭘 두고 오거나 떨어트린 사람이 근처에 사는 사람이 아닐 확률도 높다. 거기서 두고 온 것 같아도 멀리 살아서 포기할 거다. 한참 뒤에 가봤자 없을 거라 생각하고 물어보지도 않고.


여긴 더 없네. 눅눅한 색깔 체크무니 남방이 최곤데.

‘배운 걸 기억해. 내가 업자라면 여기 어디에 통을 두고 싶을까? 음...’


다시 새 통,


어, 이거. 미군 스키파카 짝퉁, 몸에는 맞는데... 단추가 반대야. 여자 거. 뭔 여자가 이렇게 커. 내가 요즘 애들에 비해 작은 건가. 괜찮다. 군용색. 누가 단추가 반대인 거 보냐. 모자도 반드시 주울 수 있다. 이 정도면 됐다. 쓰레기장에서 원서로 된 책이면 코디 완성. 책이 있으면, 가지고 다니다가 경찰이 나타났을 때 손에 들면 달라 보일 거다.


모자와 마스크는 동시에 하면 안 된다. 우범 분위기 난다. 마스크보다는 모자가 위장에 좋다. 모자는 하관과 이마 중 하나를 노출하지만, 마스크는 눈을 너무 노출한다. 상황에 따라서 조합. 마스크를 꼈을 경우는 스타일러로 머리를 세우면 기본적인 대삘이 날날이 삘 좋은데.

“오!”


군청색 바지. 음. 괜찮아. 옷은 또 찾아서 바꾸면 돼. 수거함은 널렸어.

일단 허리띠 풀고 갈아입자. 수거통. 화내지 마라.


‘내 옷 받아. 물물교환이다.’


匿名. 방랑자. a Wanderer. 겨울 나그네. Assassin. No man's land. 부재중(不在中). 낭인. 로닌. 가게무샤. Vagabond. 무기명.


고양이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혼자 숨어서 죽는다.


사람들은 잔인하게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범 같은 인간들에게 종종 ‘악마’라고 칭하는데, 그런 고급 단어까지 선사하기 위해 종교적 상상까지 해야 하나? 왜 인간이 한 짓을 ‘악마’라고 빠져나갈 구멍을 줘? 그건 그냥 그 인간이 그런 거야. 무슨 악마는 악마야. 그럼 천사는 어딨어.

고양이는 배가 고프다.


주머니의 돈을 움켜쥐고 저곳으로 간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 난 지금 먹어야 한다.

종류는 상관없다. 몸이 먹으라고 말한다.


산에서 생쌀을 물에 불려 먹던 생각이 난다. 불을 못 피워서? 아니, 해먹을 시간조차 없어서. 30kg, 어둠이 내렸다가 다시 밝아지면 도 이정표가 달라진다. 민간인 얼굴을 보면 사상총화 당한다. 루트도 인적이 전혀 없을 곳만 골라서. 민간인과 접촉한 사실이 밝혀지면 들어가서 죽는다. 정말로 죽을 수도 있다. 무차별 총화를 당한다. 민간인은 훈련목적 상 적이며,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국방부나 경찰에 신고하면 공작실패로 반 죽는다. 산을 타다 인적을 보거나 느끼면 피하거나 숨었다가 간다.


그 상태로 우리를 보면 ‘신고!’ 떠오른다. 우리가 우릴 봐도 그렇다. 훈련 전에 혹시나 그런 일이 불가결하게 생기면, 훈련 중인 특전사라고 주장하라 했다. 부대 이름과 함께 ‘군사보안!’이라 하라고 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지만, 과연 믿을까도 불안이었으나, 일단 작전에 들어가면 그런 생각할 틈이 없다. 다행히 뉴스와 언론에서 산에 땅 파고 걷고 그런 모습을 많이 보여줘서 믿을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쉬어도 텐트 없다. 제일 좋아하는 것이 천연 동굴. 특히 비 올 때는 동굴을 찾는다. 젖어서 떨고 제대로 서너 시간이라도 제대로 못 자면 다음 날이 힘들다. 낙엽을 깔 수 있다면 천국이다. 한두 시간 자면 또 깨운다. 경계를 서면서 쓰러져 자는 조원들을 보니 무슨 짐승 같은 기분이 든다. 내 모습도 저런가?


어깨가 부서지는 것 같고 허벅지 장딴지 근육이 터지고 관절이 비틀리는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잠깐 자고 출발한다.’


잠들기 전에 ‘내일은 못 간다.’ 내일 자살하던가, 도망가던가, 어떻게 되어야 한다. ‘내일은 못 간다.’ 실제로 눈을 뜨면 목도 손가락도 안 들린다. 일어난다는 것이 기적이다. 오늘은 못 간다... 그러나 또 가게 된다.


인간이 하룻밤에 갈 거리가 아니다.

하지만 가야 한다.


길과 방향을 잃으면 미칠 것 같았다.

난 산짐승이었다.


뱀 개구리는 특식이었다.

멧돼지를 칼로 찔러 죽여 포식하고 싶었다.


“배고프신가 봐. 많이 드셔?”

“하는 거죠?”

“네. 왜 이렇게 말랐어요!”

“보기보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요. 단단해 보이시네.”


“닫을 시간인가? 남으면 많이 주세요.”

“그러지 않아도 잘 드시면 잘 드려요.”


"하나도 남기지 않은 테니 반찬 꽉꽉 눌러서 한 번만 주세요.“


“젊은데 용하시네.”

“......”


“요즘 편식하는 애들이 많아서. 우리 같은 식당은 반찬 만드는 게 일인데, 안 먹는 반찬 있으면 좀 그래요. 식당은 안 남기고 다 먹는 사람 좋아해요. 쉬어서 버리는 것이 싫은데, 많이 줘도 어떤 반찬 손을 안 대면 맘이 안 좋거든요. 잘 드시는 양반들은 더 달라도 기분 안 나빠요. 제일 싫은 건, 한 젓가락 딱 대고 반찬 그대로 남기는 거. 외려 나이 좀 있는 양반들은 깔끔하게 다 드시는 편이죠.”

주방으로 가시면서도 말을 끊지 않는다. 초면에. 장사수완이 오래 되셨나...


“노인들은 어려서 다 굶어봤으니까. 내가 좀 옛날 반찬이긴 한데, 살짝 손댄 거 재활용하기도 뭐하고 버리기도 아깝고. 아예 손을 안 댄 반찬은 기분 상하고. 하하. 충분히 드릴게.”


바로 이럴 때 마무리 말이 난 안 나온다.

난 대화를 연장하고자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

억지로 대화를 잇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불편하다.


어려서부터 많이 들었다.


‘넌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넌 항상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내 앞에 누가 있는데, 없는 것도 같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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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마지막 백반 2 20.10.23 122 3 11쪽
» 마지막 백반 1 20.10.22 147 3 11쪽
27 공장의 하루 2 +1 20.10.21 136 5 8쪽
26 공장의 하루 1 20.10.20 164 6 13쪽
25 돼지 도살 4 20.10.19 140 4 11쪽
24 돼지 도살 3 20.10.17 134 4 9쪽
23 돼지 도살 2 20.10.16 150 4 11쪽
22 무인 산악에서 3 20.10.15 142 5 9쪽
21 무인 산악에서 2 20.10.14 141 5 10쪽
20 무인 산악에서 1 20.10.13 188 5 10쪽
19 사랑할수록 2 +2 20.10.12 143 5 10쪽
18 사랑할수록 1 20.10.10 175 6 10쪽
17 돌아오지 않는 퇴근 20.10.09 185 7 11쪽
16 추억은 아름다워 20.10.08 181 7 14쪽
15 돼지 도살 20.10.07 212 6 14쪽
14 산에서 온 남자 10 20.10.06 215 7 11쪽
13 산에서 온 남자 9 20.10.05 199 8 11쪽
12 산에서 온 남자 8 20.09.30 216 6 11쪽
11 산에서 온 남자 7 +2 20.09.29 198 8 12쪽
10 산에서 온 남자 6 +2 20.09.28 220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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