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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Mom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9.17 23:25
최근연재일 :
2021.06.17 12:00
연재수 :
6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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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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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
글자수 :
354,049

작성
20.10.08 10:00
조회
181
추천
7
글자
14쪽

추억은 아름다워

DUMMY

“아들아.”


나를 ‘아들아’라고 부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여성 입에서 나오는 진실의 음성, 진실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음성을 들었다. 그 어떤 것도 감추지 않는 조용한 저음. 난 그때 여자가 어떤 사람이란 걸 알았다. 그보다는 목소리가 가늘고 높은음에 친절했었다. 그때는 낮고, 좀 굵었다.


“내 말 잘 들어. 이제 우린 죽게 된다. 죽는다. 피가 나고 목숨이 끊어진다. 우리 둘 다 죽음이 뭔지 모르지만, 적어. 이 모든 것은 끝나고 시체가 돼. 저 아래층의 남자는 너의 아빠를 죽였다. 칼로 아빠의 몸을 마구 찌르고 아빠는 쓰러졌다. 그리고 이제 우릴 죽이러 올라올 거다. 난 그 남자를 봤다. 누군지 안다. 하지만 우린 저 남자를 이길 수 없다. 막을 수가 없어. 내 말 듣고 있니?”


“네.”

“이해가 돼?”


“알 것 같아요. 그런데 왜 아빠를 죽이려고 하지?”


“그건... 네가 이해를 못 할 거야.”

“그럼 어쩌죠?”


“지금 내가 하는 말이 그 말이란다. 우린 죽는다. 신을 믿니?”


신. 하느님이라고 해도 감이 올까 말까. 신이란 단어는 낯설었다.


“몰라요.”

“내 생각에 신은 없다. 있으면 좋겠지만 죽으면 끝 같아.”

“......”


“너는 초등학생이다. 나는 힘없는 여자다. 저 남자가 다락방으로 올라와 한 대만 후려쳐도 너나 나나 죽는다. 저 남자는 우리를 찌르고도 남는다. 자기가 한 짓을 본 사람을 놔둘 수가 없기 때문이야. 우리를 죽이지 않으면 평생을 감옥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하자고 말하고 싶다. 우린 약하다. 하지만 대항하자. 싸우자. 혹시 싸우지 않고 항복하면 살려줄 것 같니? 내 생각에는 아니다. 난 저 남자를 알고, 내 남편이자 너의 아빠를 칼로 찔러 죽인 것도 안다. 아래는 피바다야. 반드시 우릴 죽인다. 우린 선택해야 해. 듣고 있어? 정신차려.”


“네......”


“우리가 죽더라도 저 남자를 때리고 찌르는 거다. 저놈도 죽던지, 아니면 상처를 내서 여기에 피를 흘려 아빠를 죽인 사람이 누군지 밝히고 우리도 죽는 거다. 저놈이 피를 흘리면 도망쳐도 잡혀! 우릴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면 어떻게 생각하니. 저놈이 장례식장에 와서 눈물을 흘리며 연기하는 걸 상상하고 싶니. 난 절대 그러지 않았다고. 가는 형님과 가족을 돌보고 아끼는 사람이었다고 하는 게 상상이 되니? 미친 거지?”


“사람을 죽이고 장례식에 와요?”


“들어봐. 그냥 죽는 것과 저놈이 교도소에 들어가게 하는 것. 그걸 떠나서 우리나 아빠나 왜, 누구에게 죽었는지를 모르는 것이, 세상 사람들이 모르게 되는 것이 난 억울하다. 저 사람은 자기가 그랬다고 절대로 인정하지 않아. 그건 내가 확신해. 사람은 본디 자기를 위해서 본 것도 안 본 척하고 안 본 것도 봤다고 한다. 내 말을 믿어라. 너도 저 사람에 대한 지난 기억을 지워. 너에게 잘해줬다고 생각하지? 그래서 믿기가 힘들지? 알아. 나도 알지만 내 진심을 믿어달라는 거야.”

“......”


“난 새엄마고, 넌 나를 엄마라고 부른 적이 한 번도 없어. 모자람이 있겠지만 난 널 욕하거나 박대한 적이 없고 좋게 먹이고 잘 자라길 노력했다. 난 널 아들로 생각한다. 실제로, 난 너 외에 자식을 낳은 적이 없어. 넌 유일한 아들이고 난 죽는다. 마지막으로 날 엄마로 생각해라. 해다오. 그리고 딱 한 번만 내 말을 따라라.”

“......”


그렇게 여성이 내 귀에 속삭이는 일은 평생 없을 것 같다. 난 그녀를 좋아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난 여자가 못마땅했지만, 사실, 그녀는 따스하고 다정했다. 다만 나는 새엄마라는 실제를 인정하기 싫었다. 이 여자가 나가야 엄마가 돌아온다고 생각했다.


그 여성도 온기와 향기가 있는 사람이고 여자고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인 걸 알았다. 다만, 이 생각은 한참을 지나서 안 것이다. 그 당시는 그냥 좀 이상했다. 느낌이 이상했다. 하지만 내 귀에 속삭이는 상태가 밉지 않았고, 계속, 말해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내 귀에 누가 속삭인 것은 그녀가 아직까지도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녀는 항상 진실했고 나는 못 알아듣고 있었다.


“지금 저놈은 술에 취했다. 하지만 잠시, 정신이 돌아오면 이 위에 올라올 거다. 문을 막고 있어서 우린 못 나간다. 나만 죽이고 널 살려둘 수는 있으나, 그마저도 저놈이 여기 올라오면 너도 목격자가 된다. 너도 죽일 거야. 네가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닐 거야. 완전히 다른 사람을 보게 될 거야. 그래서 말인데, 내가 이 작대기로 얼굴을 찌를 거야. 내가 싸워서 널 살리고 싶다. 난 남자와 싸울 것이고, 이 입구에서 최대한 안으로 오게 할 거야. 입구 뒤에 숨어."

"..."

그때 넌 도망가. 너무 좁아서 모르기는 힘들 거야. 너를 발견하면 너도 싸워야 해! 알았어? 세상에 널 도울 건 자신밖에 없어. 못 알아들을 나이가 아니야. 나는 널 살리기 위해 저놈과 싸우는 거고, 넌 너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싸우는 거야. 놈이 나와 바둥거리게 되면 바로 도망가. 그나마 힘이 더 센 내가 죽으면 내가 먼저 죽을 것이고, 넌 그 다음이다. 그러니 넌 기회가 있다.”

“......”


“선택하자. 그대로 죽겠니? 아니면 싸우다 죽겠니.”

“몰라...”


“그러면, 가만히 죽는 것과 가만히 안 있고 죽는 것 중에 뭐가 나으냐.”

“가만히 죽는 건 싫어요.”

“그렇지!!!”


나는 쥐었다. 손에 쥐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기억해. 나도 칼에 맞으면 어떤지 몰라. 기억하고 약속해. 칼에 맞아도, 정신만 있으면 그놈을 물어뜯고 찌르고 피를 봐! 우린 바보가 아니라 인간이야! 손을 쥘 힘만 있으면, 정신만 있으면 살을 뜯고 질러! 약속할 수 있어?!”


“어떻게 해요?”


“저 남자의 하얀 살이 보이는 곳을 그어. 아니면 그냥 죽는 거야.”


“하겠어요. 할게요.”


아이가 눈이 오길 바라듯이

비는 너를 그리워하네


다음 날, 난 등교하다 논두렁에 피투성이로 쓰러진 남자를 봤다.

나는 엄마 말대로 지나쳐 등교했다. 못 봤다고 했지만 봤다.


새엄마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경찰이 오기 전에 넌 신고하지 말라고. 내가 커터 칼로 남자의 목을 찌른 걸 절대로 말하면 안 된다고. 피투성이로 입과 볼이 찢긴 채로 나에게 말했다. “넌 찌른 적 없다... 네가 찔렀다고 하면 넌 거짓말이다. 넌 아무것도 안 했다. 자... 엄마를 따라 해. 난 아무것도 안 했어요. 어서!” 우리나라에서 정당방위 같은 건 없고, 넌 사람을 찌른 놈이란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남이 안 본 건 안 본 거라고.


나는 혼자 상복을 입었고, 상조회사에 최저단위로 주문한 음식은 남고 남았다. 근처 호실들은 화환으로 성벽을 쌓고 시끌벅적했다.


발인 전날, 거대한 밥통을 열어봤더니 밥이 반도 넘게 가득 차 있었고 육개장은 한 양동이가 남아 있었다. 특히 밥통. 대형 밥통의 밥은 왜 그렇게 먹음직스럽고 든든해 보이는가. 먹고 싶지만, 이상하게 먹을 수 없었다. 부풀어 그 윤기 나는 하얀 알곡들을 보면서, 그 질감과 김과 냄새를 맡으면서, 나는 새로운 감동에 젖었다. 거기 인간이 있었다. 난 열려진 밥통을 계속해서 바라봤다.


발인 전날 새벽 두세 시. 잠깐, 거기 아무도 없이 나만 있었다. 자정도 전에 문상객이 없어 상조회사는 잠을 자러 갔다. 행사를 진행해주던 친척 몇 명도 어디 가고 없다. 더는 아무도 오지 않음을 예고하듯 사라진 사람들은 말끔히 치우고 갔다. 형광등이 밝게 빛나는 공간에 냉기가 돈다. 휑~했다. 국화와 사진 액자 두 개.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이 많은 밥은 다 버리는 건가.’


만약 저 밥과 육개장을 쉬지 않게 간직할 수만 있다면 내가 보름은 먹을 양이었다. 새 밥과 새 국이다.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반찬 같은 건 눈에 안 들어온다. 결국, 버려질 것 같았다.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방. 조의금이 봉투째로 든 가방. 친척이 그랬다. 저게 가장 중요한 거라고. 이제 저게 가장 중요하다고. 본인 자신도 믿지 말고 다른 친척도 믿지 말라고. 너 잠깐 한눈팔면 저거 없어진다고. 친척들 몇을 지정해 수고비 액수도 지정하고, 그 나머지는 절대로 가방을 끌어안고 다니며, 그 가방은 가장 친한 - 정말 믿을만한 친구에게 승화원에서 행사가 끝날 때까지 맡기라고. 그 친구 역시 가방을 몸에 두르고 절대로 풀면 안 된다고.


자기 말이 과한 것 같지만 축의금 조의금은 친척들이 훔쳐 가고, 그게 평생의 원수가 된다고. 누군지 알지만 말도 못 하는 것이 그거라고. 자신도 결혼식 축의금을 입으로 말할 수 없는 어른이 가져갔고, 평생 말도 못 하면서 속으로 미워한다고. 산 사람이 살아야 한다는 말은 진실이라고. 정신 차리고 저 가방을 지키라고.


너무나도 복잡한 말이었다. 내가 감당할 수준의 정보가 아니었다. 내 친구라 해야 초등학생이 아닌가. 그 친척은 아예 그 가방 손에도 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인간은 견물생심이야.”


그 사람은 가방을 잡으면 사심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사심의 발생 자체를 멀리한 꽤 그럴듯한 사람이었다.


승화원에서 나는 가방을 그 친척 아주머니에게 드렸다. 충고자는 무척 놀라며 계속 마다했고, 우리의 신갱이는 다른 친척들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아주머니는 그런 충고를 해서 내가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눈독을 들인 사람이 있었다. 그를 바라봤다. 난 이제 어른이 무서운 아이가 아니었다. 내가 어린 것은 사실이지만, 세상의 어떤 단계가 있다면, 탐욕의 눈으로 바라보던 남자를 난 정확히 인지한 단계였다. 그 남자는 촌수도 몰랐지만 자기가 관리를 해주겠다고 관리까지 했고, 가방을 바라보는 여러 눈길이 있었다. 그게 얼마나 된다고. 그게 씨벌 얼마나 된다고. 결국, 봉투 하나만 내 것으로 챙기고 그 아주머니에게 화를 내면서까지 드렸다. 왜냐하면...


그 아주머니의 말은 사실이었고, 난 탐욕의 눈을 보았다. 그리고 그 (친척의 부인으로 나와 피가 섞이지 않은, 그리고 그 남편인 친척도 돌아가신) 그 아주머니는 친척 중에서 가장 가난했다. 말도 못 하게 가난했다. 결국 억지로 드렸다. 아주머니의 아들이 나중에 갚으면 된다고 했다. 간절하지만 손을 대지 않는 인간. 드문 사람을 어려서 일찍 보았다. 잘 드렸다. 그 여자만이 탐욕이 없다.


내가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다.


그리고 돌아섰을 때 나는 처음으로 변화하는 세계를 보았다. 살아 숨 쉬는 세상을 보았다. 어쩌면 세상은 원래 거기 있었으나 나에게만 비로써 생동감으로 다가왔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몸서리쳤다. 세상은 정지된 것이라고 착각했나보다.


승화원 밖은 단풍 끝물의 낙엽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상(喪)은, 상주(喪主)는, 마지막 사람이 떠나고 드디어 혼자가 됐을 때 구슬프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밀렸던 잠을 오래도록 자고 일어난 직후가 구슬프다. 너무나도 허탈하고 허무하고 텅--빈 기분이 가시질 않는다. 옆에 가방을 지킨 작은 친구가 자고 있었다. 잠에서 깨니 세상이 서늘하다. 죽은 사람도 처지가 구슬프지만 남겨진 처지도 구슬프다. 한숨 자고 일어나 재미 삼아 영화를 재현하기로 했다. City of god. 난 친구가 일어나자 물었다.


내가 인생에서 믿은 두 사람. 그 친구와 그 아주머니.


그 친구는 얼마나 친한지 내가 잘 몰랐다. 우연히 왔다가 가방을 지켰다. 그리고 내 결정에 잘 줬다고 했다. 자기 눈에도 믿을 사람은 그 아주머니밖에 없다고 했다.


“운동화 받았니?”

“아니, 안 줘.”


음. 뭐 그렇구나.


집과 방이 텅-빈 기분. 친구의 말에 난 또 다른 세상을 본다. 이미 그 너머 세상은 초면이 아니다. 난 성인 남자를 쓰러트릴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너무나도 쉬웠다. 내가 가진 손아귀와 힘으로고 충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겁이 많다.


두렵다. 하지만 어떤 말을 들으면 뭘 하고 싶다. 뭘 보면 어떻게 하고 싶다. 사이코패스가 아닌 내가 더 무섭다. 어쩌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교묘하다. 그런 사람들은 머리가 있는 고학력자와 그냥 하는 좀 모자란 사람으로 나뉜다. 그 나뉨의 중간에 내가 있다.


그날 밤, 시내 일진이 죽었다.


왜 갑자기 죽었는지 모르겠다. CCTV가 없는 곳이라 아무도 몰랐다. 여러 학교의 힘쓰는 사람들이 불려갔지만 내가 다닌 학교에는 아무도 안 왔다. 내가 다니고 있던 학교는 동요를 부르는 곳이니까. 선생님은 밖에 나돌아다니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날 밤 인간극장을 보며 울었다.

울다 보니 내가 웃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찾아온 친구에게 운동화를 주었다.


“어떡하려고.”

친구는 물었다.


“사람은 모른다고 노력하면 모르게 돼.”


다시 물었다. 왜 그래야 하냐고.

난 비로써 성인의 말을 했다.


“한 놈은 나쁜 놈이고 다른 한 놈은 안 나쁜 놈이기 때문에.”


불꽃 같은 기분이네

불가에 앉아

불꽃 같은 기분이네


아무리 불가에 있어도

등이 서늘하므로

난 영원히 불꽃처럼 타오른다.

그 불꽃이 꺼지려면 죽는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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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마지막 백반 2 20.10.23 123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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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공장의 하루 2 +1 20.10.21 136 5 8쪽
26 공장의 하루 1 20.10.20 164 6 13쪽
25 돼지 도살 4 20.10.19 141 4 11쪽
24 돼지 도살 3 20.10.17 135 4 9쪽
23 돼지 도살 2 20.10.16 151 4 11쪽
22 무인 산악에서 3 20.10.15 143 5 9쪽
21 무인 산악에서 2 20.10.14 141 5 10쪽
20 무인 산악에서 1 20.10.13 188 5 10쪽
19 사랑할수록 2 +2 20.10.12 143 5 10쪽
18 사랑할수록 1 20.10.10 175 6 10쪽
17 돌아오지 않는 퇴근 20.10.09 186 7 11쪽
» 추억은 아름다워 20.10.08 182 7 14쪽
15 돼지 도살 20.10.07 212 6 14쪽
14 산에서 온 남자 10 20.10.06 216 7 11쪽
13 산에서 온 남자 9 20.10.05 199 8 11쪽
12 산에서 온 남자 8 20.09.30 217 6 11쪽
11 산에서 온 남자 7 +2 20.09.29 199 8 12쪽
10 산에서 온 남자 6 +2 20.09.28 221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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