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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Mom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9.17 23:25
최근연재일 :
2021.06.17 12:00
연재수 :
69 회
조회수 :
13,422
추천수 :
341
글자수 :
354,049

작성
20.09.30 10:00
조회
216
추천
6
글자
11쪽

산에서 온 남자 8

DUMMY

사람들은 세상에 이어져 있다. 그 이어짐은 부모 형제 친척의 보살핌 속에 출발한다. 하지만 나와 같이, 세상에 연결된 것이 아니라 세상 앞에 그냥 서 있는 사람도 있다. 서서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믿음과 냉정. 세상은 믿음으로만 바라봐도 안 되고 냉정으로만 바라봐도 정나미가 없다.


믿음으로 성장하여 냉정을 맞이하는 것이 좋은지, 그 반대가 좋은지도 누가 옳다 하랴. 난 냉정으로 시작했는데, 믿음을 바라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바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데 살았으면 좋겠다. 어렸을 때.’


어림잡아 30호? 30년은 넘을 골목 양쪽에 늘어선 가옥들. 입구에만 가로등이 있고 - 나머지는 가옥에서 나온 빛으로 적당히 비춘다. 요즘은 도망자들도 그냥 오피 같은 데 들어가 숨지 않나. 배달도 잘 해주고. 담배도 배달이 되나? 여기는 문패도 달법한 곳. 언젠가 또 업자들이 나서서 포클레인으로 깔아뭉개고 뭣이 들어설 땅. 지역.


예전에는 이런 주택이 있어야 부자라 했는데, 어지간애서는 단독주택보다 주상복합이 훨씬 비싸고 또 안전하기도 하지. 비무장지대가 아니라 가옥과 아파트를 뚫고 들어가는 교육을 받은 나로써는, 내가 도둑이라면 여기 집들은 오늘 밤 다 털린다. 하지만 이런 가옥을 갖고 싶다. 조그맣더라도 마당이 있고, 거기서 놀고, 여름에 호스로 물도 뿌리고. 오래된 것인지 집들은 크기가 적다. 평수가 적은 거지. 90년대에 지었다면 스티로폼이 들어가 벽도 두껍고 내부가 겉보기보다 좁다.


대문이 마음에 든다. 각을 짜고 대문 지붕도 좀 얹고, 담 높이가 저마다 다르지만, 이 정도는 3초면 넘는다. 담장 위에 손이 얹는 순간 이미 넘은 거지. 벽돌담도 있고 콘크리트 담도 있다. 1자 조적의 불안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튀어나온 기둥 같은 조적기법. 저건 더 타고 넘기 쉽다. 요즘엔 보기 힘들지. 여긴 있다. 담을 타고 넘어가기가 너무 편해서 요즘은 통짜 콘크리트를 많이 만든다.


‘아담하네. 동네가.’


여길 털어가는 놈은 나에게 좀 맞자. 저 건너편 집의 웃음소리. 아이들 소리. 아기 소리. 저런 걸 건드리는 놈은 나에게 좀 맞자. 그렇지. 세상이 아무리 험해도 저런 집을 건드리는 건 조져야 한다. 다시는 남의 집에 지문 하나 못 찍도록 뼈다귀 몇 대 부러지도록 패야지.


손목시계를 얼굴로. 야광은 10시를 넘었다.


‘저건, 치면 넘어가겠다.’


담벼락의 금. 이런 건 석회로 때워도 안 되지. 금 간 곳을 헐고 다시 블로크를 쌓아야 해. 요즘은 돈 있으면 과거로 회귀해서 적벽돌로 하는 집들도 있다. 더 비싸겠지?


키. 연령.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은 아직 하나도 안 지나갔다. 열 명은 지나갔지만 죄다 아니다. 이러다 공수래로 끝나는 건 아닌지. 저녁도 못 먹었어. 들어가서 라면이나 끊여? 공장이 좀 크면 모르겠는데, 우리 공장이나 우리 쪽의 미망인 되시는 분이 하는 작은 식당은 해 지면 퇴근한다.


그 아주머니 역시 우리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고 말도 안 건다. 그저 미소만 종종. 남편이 어쩌다 그랬는지. 우린 군무원님이라고 부른다. 여성이 있는 걸 보고 오자마자 충격을 먹었다. 어떻게 여자가. 과장에게 주의사항을 받고 나니 감이 왔다. 염색 때문에 나이를 알 수 없는 요즘, 과장이 단 둘이 있을 때 형수님이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취사병을 둘 크기가 애매하다.


배에서 꼬르륵은 없다.


꼬르륵은 하루 세끼를 항상 챙겨먹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소리다. 몸도 적응을 했는지. 굶기 시작하면 또 그대로 적응을 한다. 그럴 시간이 왔나봐... 몸도 생각한다.


그나저나 이 담벼락을 치고 싶다.


내가 치면 넘어간다.


‘저 웃음소리.’


유독 들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쉬운 거 아니지. 어쩌면 쉽게 접하는 것도 아니지. 저마다 힘들고 고통스럽고 또 행복하기도 하고.


그런 얘기가 생각나네. 임금이 밤에 세간을 암행하는데 어느 집안에서 요란하고 행복한 웃음소리가 이어지고, 슬쩍 안을 들여다보니 가난하지만 3대가 모여 즐겁고 화목하고. 그것이 너무 보기 좋아 - 더 행복하라고 - 다음 날 밤에 궤짝에 돈을 담아 창 너머 던져주었다고. 그래서 얼마나 더 행복해졌을까 다시 가니 곡소리가 들렸다고. 그 궤짝에 맞아 누가 죽어서 초상이 났고, 행복은 누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그대로 놔두는 것이 아니라는 것. 참 누가 지어냈는지...


칙. 칙~~~!!! 무전.


[36. 경계.]


투입조는 말을 못한다. 무슨 소리지?


[49. 36.]

어? 뭐?

[49. 36. 빨리.]


다가오는 그림자...

즉각 판단.

이건, 이건,

내가 나가야 한다.

그 집 대문으로 향하는 그림자.


표적.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복잡해진다.


[막아. 막아.]


난 그늘에서 골목으로 나간다.

어? 조장이 왜 안 나오지?


“뭔데?”

내가 누구냐고.

키 185가 넘고 체구가 엄청 크네.

뭐 먹고 씨발 이렇게 부풀었냐. 부럽다.

가슴이 빵 같고 팔뚝이 구렁이 같다.

놈이 날 우습게 (아래로) 내려 본다.


드디어, 내 입이 벌어지고 치아가 드러나고 내 진심의 미소가 나온다. 난 이럴 때가 좋아. 기분이 최고조로 오른다. 헬스 좀 했냐? 아주 좋아. 좋은 태도야. 조장에게 신호를 해? 아니. 혼자서 하고 싶어. 확실히 모르겠다. 표적이 맞다면 뒤통수를 만지는 신호를 해야 한다. 애매해. 일단 말을 해. 담배를 문다.


“안 피워요? 라이터 있냐고.”


너 아무래도 이 동네 오래 안 살았지? 도망 다니는 놈일 거 아냐?


“시비 걸지 말고 가라.”


기운이 승천하지? 몸빵 가오 승천하지? 그 팔뚝으로 한방이면 다 갈 거 같지? 사람 깔보는 미소를 짓네. 헬스의 힘은 뇌도 부풀렸나. 마지막 힘 완전히 소진되고 페어가 받혀주면서 ‘하나 더!’ ‘마지막 하나!’ 안간힘쓰고 일어나니 근육이 펌핑하면서 세상 무서운 거 없지? 자신에게 소름이 돋나. 치면 다 넘어가지, 그렇지? 보다보다 이런 표적이 다 나타났네.


“뭐냐고.”

이거 뭐라고 해야.

“존댓말로 가세요... 해봐. 그럼 가줄게.”


아니면 뭘 하나 가르쳐드리고 싶어서. 그 몸에 그 힘에 훌륭해. 하지만 잘 싸우려면 샌드백에 머리를 쳐 박아. 박치기를 연습해. 뭔 소린 줄 알아? 맷집을 연습하라고. 보통사람은 니 떠바리 무서워서 니 얼굴 치는 일이 별로 없을 거야. 머리에 종이 좀 울려봤나. 자 오늘 시험대에 오르는 거야 이? 준비 됐어? 머리가 좀 있어서 붙잡고 늘어져서 조이거나 꺾을 거냐?


‘잡거나 밀면 내가 불리하다.’


귀는 멀쩡허니 그런 쪽은 아니고. 그냥 주먹싸움으로 해보겠다고? 보충제 하루 몇 숟갈 먹냐. 빨리 시작해. 박치기를 연습하라니까. 누구더러 미트로 대가리를 팍! 팍! 좀 쳐달라고 해. 숫자 늘리면서 매일. 그러면 니 마음처럼 뭐가 될 거야. 목도 두툼하니 맷집을 받혀줄 거 같애? 맷집은 머리통이 버티는 강도이기도 하나, 많이 맞아본 사람이 버티는 거야. 그래서 격투기 선수들이 펀치 드렁크 먹어가면서 어지간해서는 같은 체급에게 한두 방으로 안 가는 거야. 그래 나도 니 대가리가 버티는 강도 궁금하다. 나는 니가 잡건 말건 너 두개골에 종 좀 울린다.


“뭘 봐. 봐서 뭐 남아?”


웃어?

이 귀여운 새끼 이거.


한때는 지식이 미천했지. 운동을 전문적으로 하지 않았지만 어지간하면 넘어간다고 생각했어. 어쩌면 제대로 된 놈과 붙어보질 않은 거지. 고정관념과 집착 같은 믿음은 참 여러 종류 두루두루야. 훈련부터 산까지, 처음에 1대 1로 붙었지. 거기서 훈련생끼리 글러브 끼고. 내가 저 놈에게 지면 좆된다는 기분이 팍 들어. 때려눕힌다 서로 생각하고 나와.


그리고 알게 되지. 개중에는 진짜로 싸움 한번 안 하고 들어온 애들이 있어. 운동 했다고 싸움을 많이 해 본 것도 꼭 아니고. 복싱을 꽤 했는데 착한 애도 있어. 나도 그런 무 운동 무 족보가 내 첫 상대. 붙었지. 해보니 확실히 내가 나아. 싸움이란 100% 때리는만 것도 없고 100% 맞기만 하는 병신들은 좆밥 되는 거지. 내가 네 대 맞고 여섯 대 대리면 이기는 거야.


생각보다 한방에 보내기 힘들어. 처음 몇 매 맞더니 악에 받혔어. 나한테 개 맞더니 눈이 변해. 놈은 그런 경험이 처음인 거야. 그리고 그 이후로... 시간이 기억 안 나. KO는 아니었지만 사실상 졌지. 수세로 일관하던 놈이 갑자기 마구잡이로 날 까기 시작하는 거야. 그 놈은 나보다 분명히 싸움을 못해. 눈이 변하기 전에는 내 펀치가 날아가면 눈을 감거나 고개를 숙였거든. 이제 고개 빳빳이 들고 날 칠 생각만 해. 칠라면 쳐라. 맞고도 날 똑바로 봐.


글러브 꼈고 시간은 정해져 있어. 중간에 포기한다고 그만뒀다간 정말 밟히거나 거기서 나가야 돼. 들어온 처음에는 모두 나가고 싶었을 걸. 상상과 현실은 달라도 한참 다르지.


그래도 엘리트 체육을 한 놈들은 버티는 한계가 높긴 높아. 굴러 봤으니까. 시간이 지나자 우리끼리도 경쟁심이 생기고, 수컷들이 그렇듯 수료하고 싶어지면서 다른 놈에게 지고 싶지가 않아. 알게 모르게 우리끼리 싸움 나지. 어느 순간, 못하던 놈들이 올라와. 평준화 비슷한 것들이 일어나면서 운동하던 애가 벅벅대는 일도 일어나. 그러니 조교들은 ‘할 거야. 난 하고 말 거야.’ 이런 놈들을 안 놓치지. 그런 놈은 결국 하는 거야.


그날 그 좆밥은 더 이상 좆밥이 아니었어. 2라운드부터 달려들어. 맞더라도 들어와. 둘 다 코피 터졌어. 둘 다 제정신 가출. 교관들은 격투술을 높이려고 시킨 것이 아냐. 일단 맞아보라고야. 맞아봐야 때린다는 걸 알고 있었지. 서로 개 패라고 시킨 거야.


문제는 뭐였는가 하면, 그 놈은 나와 체격은 비슷하나 그냥 촌에서 일하던 놈으로, 나와 다른 진짜 시골 진짜 농사짓던 애였어. 뼈가 굵고 맷집과 선천적인 체력이 강해. 싸움은 내가 더 잘했지만 결국 밀리기 시작해. 내가 다섯 개 휘두르면 놈은 일곱 개 열 개를 휘둘러. 결국 내가 밀리지. 내가 놈을 KO 시키지 않는 이상 밀리는 거야. 결국...


정말 존나게 맞았지. 하늘이 빙빙 돌아. 0.5초만 마음을 버리면 바로 눕고 난 KO패야. 나중에는 글러브를 가드도 턱에 붙이고 버텼어. 코너에 밀려 사방팔방 막 날아와. 옆에서 지르던 고함이 안 들려. 소리가 하나도 안 들려. 무릎이 자동으로 굽어지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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