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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Mom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9.17 23:25
최근연재일 :
2021.06.17 12:00
연재수 :
69 회
조회수 :
13,425
추천수 :
341
글자수 :
354,049

작성
20.10.06 10:00
조회
215
추천
7
글자
11쪽

산에서 온 남자 10

DUMMY

여느 깡패들의 밑바닥 말이 나올 것 같다. 너 이 새끼 밥숟가락 놓고 싶냐. 과장은 목구멍까지 나온 그런 말들을 참는 사람, 조종관 위치다.


4개 조를 실질적으로 총괄하는 사람으로, 손을 댄 적은 없으나, 만약 그런 일이 터지면 우린 일방적으로 모든 걸 감수해야 한다. 깨져도 아무도 모르고 하소연은 존재하지 않는다. 본인이든 우리 조장이나 최고 선배로부터 몇 시간 피떡이 되도 우린 침묵 속에 받아야 한다. 다만 안 보이는 곳에서 일어난다. 그 차이다.


조금만 더 쳐다보면 난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날 수도 있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인정되지 않는다. 말로 실수를 인정하고 점수를 깎고 시말서 쓰고 없다. 경고 그런 거 없다. 바로 발령 떠버린다. 내가 과했다.


“흔적제거 하겠습니다.”


표정은 아주 서서히 풀렸다. 아주 풀린 것도 아니다.


“그래. 말끔히.”


어둠 속에 나타난 군용 지프, 세 명이 내린다.


한 늙은 사람이 과장님을 향해 손을 들었다 내렸고, 과장님은 안대와 재갈과 수갑 케이블타이로 짐짝이 된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늙은이 뒤에 두 명이 서 있는데, 자세만 보고도 알 것 같다.


‘응?’


뒤에 두 명 중 하나에게 눈길이 간다.

바닥에 떨어진 걸 치우면서 자꾸 보게 된다.

한 명이 10kg 쌀포대 크기 비닐봉지를 편다.


“저기...”


우리는 바닥에 떨어진 모든 조각까지 들어다 그 사람이 벌리고 있는 비닐봉지에 그대로 넣는다. 나도 펜과 라이터를 들어다 그 봉지에 넣었다. 펜은 혹시나 침인가 달에 비춰보고 넣었다. 나머지 한 명은 주변을 수색 수거를 도왔지만 비닐봉지를 벌린 사람은 요동 없이 가만히 있다.


‘이 사람은 고참인가. 좀 이상하네.’


육군 군복에 베이스볼 캡. 어두운 데다가 챙 그늘로 얼굴이 턱 밖에 안 보인다.


이상하다. 물건을 비닐봉지에 넣은 순간, 나는 부지불식 멈췄다. 뭔진 모르겠으나 전혀 상이한 기분이 안 든다. 나도 모르게 비닐봉지 든 손을 본다. 오른손 중지의 돌기가 유독이나 크다. 강하게 지속적으로 단련된 주먹. 정권단련을 하면 보통, 검지와 중지 돌기가 구슬이 들어 있는 것처럼 두껍다. 단련할 때 손에 아무 것도 안 감으면 색깔까지 들어간다.


손과 주먹을 단련할 때는

1. 수도

2. 검지 중지 (정권)

3. 약지와 새끼의 두 번째 정권.

그 외에 등주먹 곰주먹 손날찌르기도 부수적으로 한다.


이종격투기나 권투를 배우면 이렇게 주먹의 네 돌기를 둘씩 나눠 수련하지 않는다. 그냥 ‘그립’이다. 구슬이 크지도 않다. 주먹에 색깔까지 낀 구슬이 있는 사람은 맨손단련을 한 거다. 복싱 오래한 사람도 구슬이 있는데, 대신 구슬이 거칠지 않고 색깔도 손과 동일하다. 복싱 구슬은 좀 예쁘다. 복싱이나 킥복싱의 구슬은 한 10년은 해야지 않나... 복싱이나 MMA는 글러브를 낀다.


무도식 단련은 손가락 2개 씩 나눠야 한다. 마구 치다가는 중지와 약지의 돌기 높낮이가 커서 중지가 부러지거나 큰 힘을 받는다. 모난 돌이 정 맞는 것처럼. 1/2의 경계가 애매한 타격이 지속되면 중지 돌기가 유독 두껍고 큰 구슬이 들어선다. 주먹을 쭉 밀면 중지가 가장 빨리 타격물에 닿는다. 정권/수도 단련도 간단하나마 지도를 받아야 한다. 한 손에 뼈가 35개 정도 되는데, 부러지면 원래대로 회복되지 않는 대표적인 뼈가 손뼈다. 헬스는 아무리 무거운 걸 들어도 겉 손이 착하고, 손바닥에 딱딱한 군살이 생긴다. 운동이 아니라 폭력을 쓴 사람의 손은 인식표.


‘어디서 많이 본 손인데.’


여기 나온 사람이 생짜 헌병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다.


‘저런 손이 많기는 하지.’


많이 봤다. 내 손도 똑같다. 어쩌면 당연하다. 이런 정황에 훈련도 안 된 사람을 보낼 리 없다. 군복은 육군. 계급장 없다. 부대마크도 당연히 없고, 아무 마크가 없다. 과장과 얘기를 나누는 저쪽 오야는 군복이 아니라 양복바지에 어두운 점퍼를 입었다. 짧은 머리에 가르마. 견적 바로 보인다.


난 묘한 상이함으로, 모자 챙 아래 어두운 안구를 주시한다. 이 사람이 내 얼굴은 제대로 보지만 나는 그림자만 본다. 상대도 날 보고 있다는 걸 안다. 이런 밤에 이런 일로 마주 서 얼굴을 보는데 상대가 왜 안 보겠는가. 기묘함은 자꾸 넘어선다. 기묘함을 느끼고 요동은 없으나 상대도 반응했다. 그렇게 뭉실뭉실 무엇이 감겨 오른다.


‘너 돌았니?’


너는 나와 붙었었다.

우리 둘만이 알지.

너도 돌았냐? 어떻게 본부에 왔지?

우린 동기조차도 모른 척 해야 하는 사이.


‘이 새끼가 왜 여기 있지...’


“과장님. 이거 오늘 밤만 넣어둬. 나 퇴근해야 돼. 내일 우리가 점심 전에 인수해갈게.”


과장이 끄덕였다.


“최조하지 말고.”

과장이 웃었다.


차는 한적해진 고속도로를 달린다.


“재래식이야.”


과장이 말을 꺼냈기에 언변이 가능해졌다.


“뭐가 말입니까.”

“난수를 썼나봐.”

“방송요?“

“그러니까. 요즘 시대에.”


단파 어느 주파수에서 ‘평양에서 서울의 삼촌에게’ 뭐 그런 소리로 호출하며 주절거리고는 숫자를 나열하며 방송했었다. 아예 대놓고 암호명을 부르기도 했다. 그건 급한 거다. 부여에 계신... 심지어 모란봉 18호?


난수표가 없기에 분석은 거의 불가능해도, 그 시점의 정황을 보면 무엇을 예상하기도 한다. 그 멘트가 나오는 시점이 중요한 분석이다. 과거, 그걸 수신가능한 단파라디오는 간첩의 상징이었다. 평범한 라디오는 주파수대가 고정되어 있어 못 듣는다. 우리나라 표준 FM과 AM 중간이나 아래로 보면 된다. 그래서 세운상가 등에서 ‘좀 수상한?’ 사람이 일제 단파라디오를 사면 의심을 받기도 했다. 그런 외제 단파라디오는 상당히 넓은 대역의 주파수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오래 전에는 일제 단파라디오가 품질이 가장 좋았고, 평범한 사람은 해외 라디오방송이나 햄 무선 같은 걸 듣기 위해 사곤 했다.


그 난수방송은 2000년대 중반이 오면서 거의 완전히 사라졌다.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 쓸 이유도 없고 정보의 전달양이 시간 대비 너무 적다. 30초를 떠들어봤자 10문장이나 될까?


이제 풍경이 아닌 불빛들이 쏜살같이 차창에서 사라진다.


“단파? 참 내.”


차 안의 사람들이 말은 안 해도 웃겼다. 단파에서 난수를 썼다고? 그 정도면 수신대상이 나이 70은 넘어야지 않나? 대상으로 보기에는 너무 젊다. 아들이야? 가업을 이었냐? 하하. 뭐야.


버릇대로 비누 없이 찬물로 조금 길게 샤워한다. 어깨와 주먹이 아린다. 찬물에 대고 열을 식히는 것이 씻는 것. 비누는 빼고 길게 닦는다. 내 버릇이다. 후딱 닦을 일이 워낙 많았다. 하루세 서너 번도 샤워를. 비누로 기름기를 깨끗이 닦아내면 좋지만, 내가 훈련을 받던 시절, 그렇게 닦으니 기운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내 몸의 기름기도 내가 먹은 칼로리 아닌가. 그 기름기를 닦아내면 몸의 순환은 좋아지지만, 몸 냄새는 없어지지만, 그 당시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힘들었다. 무척 힘들었다. 산에서 매일이 고비였고, 오전 오후가 고비였다. 교관들은 체력이 약하다고 무조건 ‘너 가라!’ 서약서 쓰고 방출하지 않았다. 지원해서 들어오는 사람도 적고 폭이 좁을뿐더러, 교관들은 해당 훈련자의 의지를 본다. 눈빛을 보고 ‘저 놈은 시키면 하겠는데?’ 그러면 의사를 존중한다.


일정한 훈련 기간에 도달하면 내보내는 것도 까다롭다. 그래서 초반에 나가는 사람이 많다. 거기서 있었던 모든 일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서약서도 살벌하지만, 그들은 나가기 전에 면담에서 분명히 경고한다.


‘입 열면 우리가 직접 찾아가서 너 죽인다.’


정확히 그런 말은 안 하지만 분명히 느낌으로 풍길 거다.


‘여기 사람이 너 직접 찾아간다. 특히 인터넷 조심해라. 항상 감시하고 있다.’


나가는 사람은 그때부터 타인이라 생각하며 무섭게 세뇌시킨다. ‘훈련받다 나간 동기’란 없다. 그건 동기가 아니다. 지금 그런 사람을 길가에서 만난다면 우린 아는 채 안 한다. 만약 나에게 아는 체했다간 맞아 죽을 수도 있다. 눈을 보고 서로 알아봤다면 그 사람이나 나나 모른 체하고 지나가야 한다.


우리 조, 세 명은 과장 앞에 선다.

“총화 없다. 결산 써라. 결산.”

찬물에 몸을 적셨으나 온기가 안 가라앉는다.

아니 불꽃 같은 열기가 떨어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나에게 실수를 했다.

지금이 내가 꾼 꿈이라면 내 현실은 무엇이지.


하늘이 암울하다.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하다. 오늘따라 그런가? 아니면 오래된 것인가. 모르겠다. 터질 것 같다. 산에서는 이런 적이 없는데, 노랑물이 난 변하게 했나. 복잡하고 생각이 많아진다. 우리 돼지들은 원래 생각하지 않는 존재다. 생각은 딱 하나, 주어진 목표. 해야 할 행동. 적을 향한 분노. 국가를 향한 목숨을 던지는 충성.


하지만 지금까지는 가상의 적이었다. 이제는 보인다. 적이 보인다. 칼을 돌리고 싶다. 던져 꼽고 싶다. 돼지가 되기 이전부터의 생각이 떠오른다. 그것은 끝도 없는 불만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에 무엇이라도 되려고 이 길에 들어섰다.


하늘이 울린다.

너를 증명하라.

너를 증거 하라.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

증명하라.


난 여기가 피 맛을 보는 줄 알고 들어왔다.

난 피가 그립다. 그 따뜻한 것이.

너도 몸에 피가 있고 나도 있다.

그 피를 걸어야 진짜 도박이지.

걸어야 진짜 혁명성이지.


‘죽이지 뭐. 뭐가 문제야. 목을 따야 진짜 돼지지.’


깃발을 혁명적으로 적시려면 피가 필요해

진짜 피가 필요해


민중의 기 붉은 기는 전사의 시체를 싼다

시체가 식어 굳기 전에 혈조는 기발을 물 들인다

높이 들어라. 붉은 깃발을 그 밑에서 굳게 맹세해

비겁한 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 기를 지키리라


원쑤와의 혈전에서 붉은 기를 버린 놈이 누구냐

돈과 직위에 꼬임을 받은 더럽고도 비겁한 그놈들이다

높이 들어라, 붉은 기발을 그 밑에서 굳게 맹세해

비겁한 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 기를 지키리라


붉은 기를 높이 들고 우리는 나가길 맹세해

오너라 감옥아 단두대야 이것이 고별의 노래란다

높이 들어라, 붉은 기발을 그 밑에서 굳게 맹세해

비겁한 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 기를 지키리라


여긴 돼지우리가 아니야.

난 지금 우리가 아니야.

돼지는 풀려나 있어.

돼지에게 물려봤나.

돼지가 무는지도 모른다고?


존스타운에서 돼지는 인간을 뜯어먹었다.


너희가 나를 아느냐.

너희가 정말로 제껴 보았느냐.

너희는 나를 모른다.

난 초등학교 때 이미 반열에 올라섰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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