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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Mom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9.17 23:25
최근연재일 :
2021.06.17 12:00
연재수 :
69 회
조회수 :
13,414
추천수 :
341
글자수 :
354,049

작성
20.10.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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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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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사랑할수록 1

DUMMY

남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 좋아.


이렇게 슬쩍 남의 주거에 끼어드는 기분이 재밌어. 이런 곳에 자주 들어왔지. 아주 잘 사는 집 서재에도 들어갔었고. 내가 왔다는 자국은 전혀 못하도록.


“보자. 보자.”


여기서 뭘 건진다는 생각은 안 한다. 건져봤자 사진이나 그런 거? 귀중품 뭘 가지고 나온 적은 없어. 소소한 뭘, 없어져도 큰 지장이 없거나 값이 안 나가는 걸 들고 나온 일은 있지.


나는 못 사는 집이 더 좋아.


그런 집이 이사를 떠난 직후나, 오랫동안 집을 방치했거나 그런 상태가 좋지. 그렇다고 폐허를 좋아하는 건 아냐. 지저분한 거 좋아하는 취향은 아니거든. 꼭 독특한 새끼들이 있지.


벽지는 뜯어져 있고 곰팡이들도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어 떠났는지 딱딱하게 굳었다.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어야할 잡다한 것들이 마구 던져지고 바닥에 흩어져 있다. 자그마해도 한 때는 다 필요한 물건들이었다. 종이들이었다. 플라스틱들이었다. 인적이 없으면 가옥이 무너진다는 전통적인 말이 있지. 대들보도 인적의 힘으로 버틴다는. 폐허는 꼭 건축이 부실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인적, 인간의 기가 빠져나가면 집이 기력을 잃고 무너진다고.


‘여기가 거기냐? 낯설다.’


꼭 그렇게 여자에게 처절하게 차인 것처럼 속에서 음기가 돈다.


이렇게 쓰던 물건들이 좀 널려 있는 집안을 돌아다니며 꼼꼼히 구경하는 것이 좋아. 왜 재미가 있는지 흥미가 있는지 모르겠어. 내 어렸을 때 집이 지저분하긴 했거든? 그래서 그런가, 하여간. 난 천천히 방 하나하나 구경해. 벽에 붙은 것들도 보고, 화장실 세면실에서는 어떤 것이 붙어 있고 어떤 것들을 사용했었나. 화장실 유리에 어린애가 붙인 스티커 같은 게 꼭 있지. 가장 재미 있는 건 아이들에게 이렇게 해라, 왜 말을 자꾸 까먹냐 써 붙인 엄마의 메모. 벽지에 아이들 낙서도 있고.


항상 하는 몽상처럼, 안방 문을 여니 다른 나라가 있는 거야.


사람이 떠난 지 한 달 정도 되는 서양의 농장이면 아주 재미있을 것 같아. 문화가 다르니 구경할 것도 많고. 녹도 좀 슬고... 거 왜 있잖아. 이사를 꼼꼼하게 한 것이 아니라, 확실히 필요한 것만 들고 떠난 집 같은. 그게 참 재미있단 말이야. 도망친 집안? 하하.

바스락 바스락. 내 운동화에 밟힌다.


책상. 책상이 그대로 있네.

어머나. 사진.


왜 이 사진이 여기 떨어져 있나. 이 사진을 누가 가져가려다가 휙 던지고 말았나?


오래된 사진. 언제까지는 앨범에서 잘 관리하던 것이었지만, 쓰레기장 비슷해진 이곳에서 낱개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닌다. 군대 사진. 표정. 이때는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었지? 누구나 펄펄 끓을 때니까. 이분도 봄처럼 청춘은 피어나고 무서운 것이 없었겠지. 허리에 손을 얹고 도전적이다. 위장무니 없는 카키색 군복. 검게 빛나는 군화. 옛날 군모를 챙을 들어 쓰고. 군기 빠지게. 술 한잔 하고 찍은 사진인가.


내가 기억하는 모습과는 다르게, 허리가 잘록하고 얼굴에 살이 없다. 검은 얼굴에 군복은 촌스럽다. 하지만 표정이 밝다. 밝은 정도를 떠나 전형적인 “너무 젊어서 미치겠어.” 얼굴에 드러난다. 누군지 모르지만 무척 친해 보이는 전우와 어깨동무를 하고 찍었다. 밝은 대낮. 공휴일이거나 휴가 외박 나왔나? 뱃살이 하나도 없어서 둘 다 상체가 약간 앞으로 구분 체형. 배경도 생소하다. 어디 개발되기 전에 곧 헐릴 것 같은 가옥과 식당 간판. 슬쩍 보이는 행인의 행색도 낯설다. 쇠고기 무 국밥. 메뉴 좋아.


“오우...”


제3자 입장에서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사진이랄까. 내가 정이 있나? 사진은 군인이라서 눅눅하지만 젊기에 밝다. 그리고 그는 늙었다. 그리고 죽었다. 일찍 죽었다. 자기가 죽을 줄 알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만은, 그 모든 스토리를 아는 입장에서 보면 뭐 이리 인생이 우울한가 모르겠다. 인생은 길게 볼 필요도 없는 거야. 어렸을 때 젊었을 때처럼 ‘뭘 이룬다?’는 건 힘들어. 그냥 사는 것도 인생이란 걸 깨닫기까지 젊음은 고통을 받지. 왜 나만 이런가 화도 나고. 그리고 이건 누구나야. 누구나 겪는 평범한 모습이야.


You don't know me

You don't know me

You don't know me


사진의 눈은 말한다.

‘이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세요?’


나도 똑같은 말을 당신의 눈에 하고 있어.


시대의 궁금증이 몰려온다. 이때는 어떤 옷을 입었나. 어떤 음악이 유행했나. 어떤 노래가 젊은이들의 심금을 울렸나.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시대가 앞으로 가면 여자가 남자를 물리적으로 허락하는 시간이 더 길지 않았나. 요즘 성의 천국이라 말할 정도로 사귐 = 성교로 어이지는 시대는 아니지 않았나? 이때도 원나잇을 많이 했나... 다 부질없는 생각이다. 어떤 문헌이나 기록이나 등등을 봐도, 성은 항상 문란했다고 치부한다. 누구에게? 그 다음 세대에게. “요즘 애들은 문란해!”


그 시대가 더 폭력적이었나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성은 그런대로 유추의 근거가 된다. 물론 연애경험도 크게 없이 결혼하고 맞춰 산 사람들이 앞대로 가면 많긴 할 거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성은 어떤 괴물처럼 할 거 다 하고 사는 거였다. 시대를 초월해서. 이런 거 말하는 사람 없겠지만, 어느 회사에 신입사원 여사원이 좀 반반하게 생겨서 교육 끝나고 어느 부서나 가봐라. 보내봐라. 유부남들 1번 타깃 된다.


능숙한 그들에게 언제 넘어가는지 스톱워치가 필요할 뿐이지. 이런 말 하는 인간이 없으니까 좋게 보이지. 다만 신입여사원에게 목을 건 총각이 칼을 들 일이 있을까봐, 그보다 먼저 넘겨서 쉬쉬하며 데리고 놀던가 하겠지. 칼을 들 놈이 생기면 간단히 포기하고. 조그만 회사에 들어가면 높은 직급이 다 어떻게 하지. 안 그런 회사에 근무하셨다고? 아이고 대단하시네요.


성에 지대한 관심이 있어 그런 생각이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고 뚜렷한 결과물이 있기에 그런 생각을 한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가장 많이 숨기고 있는 것. 하지만 관심은 거기까지다. 그러거나 말거나. 애나 어른이나.


시대가 그렇게 차이 나나? 그렇게 다른가. 물론 내 나이에서 20을 뺀 사진으로 보면 촌스럽다. 난 의식주보다 사람의 행동이 많이 안 다를 거라 생각한다. 난 어려서부터 내가 너무 별다르지 않나 생각했었다. 예전이 좀 답답했던 것은 사실이고, 가부장적이었으며, 현재는 그때에 비하여 이혼이 엄청 많고 쉬우며 민감한 거 안 참는다. 나는 그런 제도적인 것보다 그냥 인간. 먹고 싸는 인간을 배경으로 본다. 그중 가장 볼만한 것은 역시, 나이 먹은 사람의 20대 청춘 사진을 보는 것.


이것이 무대라면 무대로군.

재현하라고 권하지 못할 무대.


그래. 여기에 누가 살기 싫었겠지? 누가 살겠어! 이 시골에서 사람이 피를 철철 흘리고 죽은 집을... 모르는 사람이나 그러겠지. 자, 여기 내가 돌아왔다. 내가 떠날 때부터 아무도 살지 않았군. 왜. 이 집이 뭐가 어때서. 응? 여러분 여기 뭐 묻었습니까? 더럽습니까? 무섭습니까? 귀신이라도 나옵니까? 이상하네요. 귀신은 바쁘신가. 내 꿈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어요. 있다면 나 한번 안 찾아오고 너무한 거 아닙니까?


어떻게 집이 이대로 입니까. 아무도 탐내지 않는 집, 저가로 사서 부수고 새로 지어도 되잖아. 누가 샀지만 엄두를 못 냈나? 모르지. 이 집의 땅은 아마 남의 것이었지? 어떻게 이리도 그대로 있는 거죠? 훔쳐갈 건 없겠죠. 워낙 사는 게 그랬으니까. 난 오히려 이 집을 떠나서 잘 먹고 잘 살았지. 나에게는 군대 짬밥처럼 식기에 대충 퍼줘만 주어도 좋은 거니까. 귀신으로라도 좀 나타나 보시구랴. 함 보고 싶소. 있소? 여기 있소?


몇 년 만에 이 다락에 올라왔는가. 왜 그분의 것은 하나도 없지? 내가 그때 어디다 놔뒀나? 가방 같은 데 모아서 치웠나? 긴요한 것은 이놈 저놈 다 와서 가져갔나?... 남자의 것은 이 군대사진으로 됐다. 여자의 것은 없나. 누가 심심찮게 와서 옷들이나 뭐를 골라냈나. 난 기억에 없는데. 모르지. 한 번씩 들러서 슬쩍 슬쩍 했는지. 뒤지다 보니 나중에 입으려고 짱박아 놓은 속옷 세트라도 있을 수 있잖아. 놔두면 썩을 거.


사람이 살았던 자리. 내가 살았던 자리. 나는 여기 ‘살았다’ ‘내가 거기서 살았어.’란 말... 별로 안 좋아한다. 산다는 말조차 말에 섞을 수 없었던 현실에서 그저 살았다니. 그저 연명했다? 아등바등 살기는 했다?


나도 여기 있었지. 하도 여기서 밥을 먹고 잠을 잤지. 여름에 더웠던 것과 겨울에 추웠던 것 외에는 별 게 없어. 다른 사람은 이런 것이 추억이 되어 큰가? 내가 느끼는 것보다 많이 큰가? 사람이 과거의 장소에 들르는 건 나한테 좀 그러네. 약간의 흥미 외에 감동이 없어. 부활의 사랑할수록이란 노래 가사가 왜 이다지 똑같나... 기가 막히네. 한참 동안을 가보지 않은 저 언덕 너머 거리에... 가사 쓴 사람의 스토리는 무엇이었나.


노래는 좋은 거야. 이 모든 걸 아름답게 만드니 말이야. 부활의 노래를 여기 배경으로 깔아봐. 여기 온 기분이 결코 나쁘지 않아. 어쩌면 비극을 희극으로 바꿔주는 게 음악이고 노래지. 사람에게는 그럴듯한 희석장치가 필요해. 세상 좀 험하잖아? 안 그래? 기쁨과 행복은 애써 노력해서 만들어야 가능한 거야. 특히 부모의 희생. 하지만 자기애가 커 가는데 정신세계가 청소년인 사람들 적지 않아.


‘이제 가나? 음? 왜 그걸 내게 물어. 가면 가게 돼.’


작가의말

밤 8시 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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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마지막 백반 1 20.10.22 146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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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공장의 하루 1 20.10.20 164 6 13쪽
25 돼지 도살 4 20.10.19 140 4 11쪽
24 돼지 도살 3 20.10.17 134 4 9쪽
23 돼지 도살 2 20.10.16 150 4 11쪽
22 무인 산악에서 3 20.10.15 142 5 9쪽
21 무인 산악에서 2 20.10.14 141 5 10쪽
20 무인 산악에서 1 20.10.13 188 5 10쪽
19 사랑할수록 2 +2 20.10.12 143 5 10쪽
» 사랑할수록 1 20.10.10 175 6 10쪽
17 돌아오지 않는 퇴근 20.10.09 185 7 11쪽
16 추억은 아름다워 20.10.08 181 7 14쪽
15 돼지 도살 20.10.07 211 6 14쪽
14 산에서 온 남자 10 20.10.06 215 7 11쪽
13 산에서 온 남자 9 20.10.05 198 8 11쪽
12 산에서 온 남자 8 20.09.30 216 6 11쪽
11 산에서 온 남자 7 +2 20.09.29 198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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