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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Mom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9.17 23:25
최근연재일 :
2021.06.17 12:00
연재수 :
69 회
조회수 :
13,419
추천수 :
341
글자수 :
354,049

작성
20.10.19 10:00
조회
140
추천
4
글자
11쪽

돼지 도살 4

DUMMY

이치를 따지지 마라. 그 이치 이전에 서로 벡터가 다르다. 산술식이 다르고 변수가 다르다. 이치는 나와 맞는 사람하고만 논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와 정확히 일치하는 사람을 찾는 것부터 헛수고다.


이치는 수천 수억 존재하며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과 같다. 설득하려 들지 마라. 시간만 낭비된다. 나도 그 사람에겐 이상한 사람이다. 이치가 완성되었다는 사기꾼을 조심하라.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놈이다. 있다고 우기려 말이 많다. 가장 확실한 것은, 말로 하지 않는 것이다.


아파트촌에서 벗어나니 바람이 잔잔해진다. 고층건물 지대나 벌판의 신도시도 높은 건물 때문에 가을에서 봄까지 여간 바람이 매섭지 않다. 고로, 그런 고층지대에 집이 없는 사람이 지나가면 더 매몰찬 바람이 분다. 그래서 기분 더럽다.


이상하다.

말로 하면,

사는 이유가 없어졌다.


내가 믿어왔던 것에 등을 돌리니 사는 이유가 없다. 항상 무엇을 위해 죽어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등을 다시 180도 돌린다고 받아줄 곳이 아니다. 돌아가도 죽고 잡혀도 죽는다. 너 죽고 나 죽자.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체포되어도 내가 체포된 걸 아는 사람은 지구상에 없게 된다. 내가 왜 그랬는지는 설명할 수도 없고, 그래봤자 아무도 안 듣는다. 판결은 이미 내려졌다. 이제 끝났다는 건 명확하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배신자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배신했지만 여전의 충성하는 마음은 무엇인가. 더 이상 배신행위를 할 수 없다. 그걸로 끝이다. 우린 오래된 것에 적응하고, 거기서 못 벗어나는 것이 아주 안 흔하진 않지. 그런 걸 어떻게.


중요한 거 암기 끝났나?


핸드폰. 버려야 돼. 어떻게 버려야 안전하지? 어떻게 버려야 추적자를 기만으로 돌릴 수 있지? 그냥 꺼서 묻어도 되고. 위장을 한번 더 해도 되고.


지금 조장과 2번은 눈에 핏발이 서서 날 찾을 거다. 다른 조도 당연하고. 우리 공장은 모두 날 찾는다. 난리 났다. 날 찾을 때까지 비상은 종료되지 않는다. 책임은 일차적으로 우리 공장. 공장장. 과장. 찾아 죽일 거다. 일단, 의복을 갈아입자. 방법은 널리고 널렸다. 다만 어떤 형태가 가장 안전한가.


핸드폰은 기만을 하자. 번호판. 번호판 지방 걸 찾아. 트럭. 노가다 차량. 자가용은 핸드폰을 숨겨 넣을 수 없어. 차를 따고 따로 핸드폰을 넣기 좀 그래. 배터리 꺼질 때까지 좀 돌아다닐 차에. 무슨 일로 올라왔다가 지방으로 내려갈 공사 트럭을 찾아. 그런 트럭의 안 보이는 곳에 넣어. 배터리는 내일 낮이면 방전된다. 그때까지만 안 들키면 돼. 트럭에 실린 거 보면 언제 작업했는지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확인. 다 암기했나?’


충분해. 내 암기능력. 순서대로 70개. 명사와 숫자는 쉽고 형용사나 동사도 변형하여 명사형으로 넣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거 아나?

사람은 사는 이유가 없듯이

죽을 이유도 없어.

그것이 모든 것의 조건이야.


불 꺼진 거리. 큰길로 나가면 안 된다. 이미 캐치 되어서 와 있을 수도 있어. 와 있을 확률이 높지. 지금부터 헤드라이트는 무조건 피해. 골목을 돌면서 핸드폰을 넣을 수 있는 지방 차량을 찾아. 난 모른다. 내가 왜 이러는지. 그러나 난 철저하게 진심만을 떠올리고 행동한다. 나는 공작 중이야. 나는 무엇인가. 모르지 씨볼.


상처 때문에 힘들어한다?

상처를 서로 주고받는다...

여기까지는 흔한 말이지.


가장 편한 것은 권력을 쥐는 것이다.


내가 편하니까. 그러면서 내 아래 다수에게 상처를 주지. 오직 권력을 쥔 내 권리만 찾으며 돼. 아무도 말을 못 하니까 모르고 살아. 속 편해. 나는 그 모든 것을 떠나, 상처라는 단어 자체가 좆같아서 싫다. 상처란 단어 자체가 측은함을 유도한다. 왜 그런 단어를 만들어서 사람을 현혹하지? 구석기시대에도 상처란 단어가 있었나? 언제 만들어진 거야.


까고, 그런 건 없다. 원시시대가 아니라서 참고 살 뿐. 참는 게 상처라면 쪽팔리지 않아? 상처 비슷한 걸 줬다면 그냥 찾아가서 뒤통수를 까. 다만, 현대는 조금 까다로워졌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전혀 증거를 못 찾을 정도로 말끔하게, 그렇게 해결하는 사람은 만나기 흔치 않아. 지시는 힘의 균형이 달라야 먹힌다.


상처는 풀지 않아서 상처로 남는 거다.

풀면 상처가 아니지.


찾아가서 야 이 씨벌놈아 너 왜 그랬어, 뒤질래? 그래서 무릎을 꿇으면 상처는 아니지 않아?


어느 병신들이 복수는 새로운 복수를 낳는다는 개 헛소리를 하면서 자기 위안을 해. 그 정도로 선해? 치욕 모욕 무차별적 공격을 정말로 용서하고 잊을 수 있어? 그런 말 하는 새끼도 당해보면 씨발 씨발 하면서 고혈압 터질걸. 그래서 멀쩡했던 사람들이 다 살인을 하는 거야. 어디 마빡에 사람 죽이겠다고 쓰고 태어났냐. 토하면 고혈압으로 죽고 참으면 암으로 죽어. 상처가 그래도 인간답게 쓰이는 경우는 ‘그 사람 상처했어’ 정도가 아닐까.


더 깊숙이.

더 깊숙이......


떠나지 않는 이것. 어떻게 설명이 안 된다. 나는, 나는, 훈련을 받고 고통을 겪고 뭐가 변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근본이 있다. 그게 떠나지 않는 걸 어쩌랴. 없어진 것 같으면서도 아니다. 이걸 방지하는 길은 그런 종류에 다가가지 않는 것, 그런 기회를 내가 차단하는 것. 난 유명한 범죄자가 됐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입대가 날 살렸다. 누구도 모른다. 말할 수 없다. 나는 가장 아름다운 것을 꺾고 싶다. 아니, 짓밟아서 저며버리고 싶다. 내가 어떤 걸 느꼈는지 신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나도 아주 이상하진 않아서, 내가 왜 그런 것을 느끼는지 곰곰이 생각도 해봤다. 내가 가지고 싶고 - 왜 아름다운 걸 짓밟아버리고 싶은 건지 날 연구했다. 하지만 문제를 제기한 놈의 답을 내가 어찌 믿으라고. 가장 아름다운 것의 목을 쳐버리고 싶은 충동. 부러트리고 싶은 충동. 하느님이 계신다면 죄송하지만 이건 진실한 충동이다. 그런 행동이 올 바라서 ‘진실’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난 내가 분석할 수 있는 감정이 몇 안 된다. 그중 하나. 나에게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것.


나도 그 충동을 저주한다. 어쩌면 나도 그 ‘행복’이란 단어를 갖고 싶은 것이며, 역설적으로 그것을 모두 밟아버리고 싶은 것인가. 피하고 싶다. 정말로.


하지만 남들과 다르지 않게, 누굴 죽이는 것이 사이코패스처럼 껌이나 씹다 버린 것처럼 안 그렇다. 아마도 안 그럴 것이다. 해놓고도 맘이 편치 않다. 나라고 별수 있나,


아직까진 없지만, 흉악한 짓을 저지르면 악몽으로 잠을 못 잔다는데, 죽인 사람이 계속 꿈에 나와서 괴롭힌다는데, 내가 정말 세상일에 자기중심적으로 퉁명할 거란 생각 안 한다. 사이코패스처럼 자기가 퉁명하고 잔인할 거라 구라 치는 새끼들 많이 봤지. 해놓고 말해보던가. 사이코패스란 단어를 이용하는 놈들도 있어! 듣는 사이코패스 기분 나쁘게.


난 어릴 적 그것이 나에겐 남아 있지 않다. 난 이미 했다. 하지만 아무 감정이 안 남아 있다. 그리고 나는 사이코패스란 종류에 비웃음을 섞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난 그러지 않는다. 내가 정말 그랬는지 남의 기억을 대신하는 정도다. 하지만 충동은 무섭다.


충동이 시작이고, 시작하면 어디 말려들어 갈 것 같다. 내가 종류를 기억하지 못하고 분석할 수 없는 모종의 어떤 것. 뭐가 있어도 있겠지. 어려서, 너무 어려서 구체적인 감정을 못 떠올렸고, 상징적인 그림 몇 개만 명확하다. 청소년기에는 그 진한 그림을 봐도 감정의 동요가 없었다.


사진기를 들이밀었어. 창고 뒤에서. 그리고 웃으라고 했어. 갑자기 뭔 사진이야. 고참 형이 셔터를 누르는데 내가 안 웃으면 이상하잖아. 그런 거지. 렌즈는 고참인데, 렌즈를 보는 나는 신참이니까.


웃는 게 그렇게 힘든 줄 몰랐어. 너무 안 웃었나 봐. 당시 우린 사진을 찍어도 남이 보면 무척이나 노려보는 그런 모습이자 눈이었을 거야.


하나. 둘. 찰칵.

그 순간 죽이고 싶었어. 아주 단순해. 웃으라고? 안면 근육이 너무 힘들어. 내가 서명 안 하고 거기 남아 있었으면 넌 죽었어. 몸의 수분 뿜으면서 바들바들 떠는 모양을 보고 싶었어.


그게 나란 것이 밝혀지지 않을 기회를 기다렸어. 모가지가 얼마나 얇은 줄 아냐? 나에게 당하고, 얼마나 대단한지 보고 싶었어. 감히 누구더러 갑자기 웃으래. 감히... 만약 내가 조졌을 때, 그 순간에 당당하게 죽지 않으면 달려들어 아주 젓갈로 저몄을 거야. 폼은 잡을 대로 다잡고. 먼저 들어왔으면 다 ‘존경해야 하는’ 고참이야?


‘오. 저거. 적당한데.’


1부터 70까지 마지막으로 암기 점검. 핸드폰... 신상 다시 털어서 가족을 들먹일 것이고, 이제 곧 알게 되겠지. 털어봤자 없다는 걸. 모병과장은 그랬지. 가족 항목이 받아주기 애매하다고. 제대로 얘기해보라고. 아니면 그냥 가라고. 하나만 빼고 있는 그대로 진심으로 말했어. 어쩌면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가 참전자고 부친도 간부로 군에 있었던 것이 좋게 작용했을 수도 있고. 나도 아니면 어쩔 수 없다 생각했어.


전화기는 이제 거추장스럽다. 지우거나 부술 필요 없다. 포렌식으로 뒤져도 나올 것도 없고. 사적으로 단 한 통도 쓴 적이 없어. 여기 든 서류는 포렌식으로 나오려나? 포렌식을 어렵게 하려면 메모리 용량을 넘겨서 쓰고 지우고 엄청나게 반복해야 할 텐데. 그래도 나오는 건 나오지. 파편이라도. 우리는 모르겠지만 대졸 회사에는 전화기가 기지국으로 쏘는 전파를 식별해서 완전한 위치를 잡아내는 기계가 있을 거야.


이 트럭이면 됐다. 친절하게 업체 지역과 회사 이름까지. 뭐지? 우레탄. 콘크리트 뭐 섞은 것 같기도 하고. 방통인가? 재래식 방통이면 지방에서 올라올 수도 있지. 하여간 외장 종류 같다. 쉽게 들춰보지 않을 곳을 찾아. 좋아... 손을 털어.

“사요나라?”


자, 가자.

아니, 오늘 뛰기로 했잖아?!

지형. 큰길을 피해서.

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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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공장의 하루 2 +1 20.10.21 136 5 8쪽
26 공장의 하루 1 20.10.20 164 6 13쪽
» 돼지 도살 4 20.10.19 141 4 11쪽
24 돼지 도살 3 20.10.17 135 4 9쪽
23 돼지 도살 2 20.10.16 150 4 11쪽
22 무인 산악에서 3 20.10.15 142 5 9쪽
21 무인 산악에서 2 20.10.14 141 5 10쪽
20 무인 산악에서 1 20.10.13 188 5 10쪽
19 사랑할수록 2 +2 20.10.12 143 5 10쪽
18 사랑할수록 1 20.10.10 175 6 10쪽
17 돌아오지 않는 퇴근 20.10.09 185 7 11쪽
16 추억은 아름다워 20.10.08 181 7 14쪽
15 돼지 도살 20.10.07 212 6 14쪽
14 산에서 온 남자 10 20.10.06 215 7 11쪽
13 산에서 온 남자 9 20.10.05 199 8 11쪽
12 산에서 온 남자 8 20.09.30 216 6 11쪽
11 산에서 온 남자 7 +2 20.09.29 198 8 12쪽
10 산에서 온 남자 6 +2 20.09.28 220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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