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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Mom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9.17 23:25
최근연재일 :
2021.06.17 12:00
연재수 :
69 회
조회수 :
13,423
추천수 :
341
글자수 :
354,049

작성
20.10.09 10:00
조회
185
추천
7
글자
11쪽

돌아오지 않는 퇴근

DUMMY

당신은 현재를 버릴 수 있는가

정말로 버리고 떠날 수 있는가

이런 말만 하다 죽는 건 아닌가


삶의 힘겨움은 떠남을 떠올리지만

이 군더더기들을 버리고 어디로 가지?

이 군더더기는 내가 공들여 만든 얼룩

버리려고 하면 증오도 아름다워진다


‘허. 진짜야? 진짜로?’


이제 내가 정말 가는가.


떠오른다. 그 글이.


어쩌면 상대편의 똑같은 종류들을 알기 위하여 무장간첩 정찰국의 것, 또한 전연지대 적의 동태 습관을 알기 위하여, 우린 귀순자와 전연 근무자 출신의 기록을 읽는다. 북한군 제식과 노래를 완벽히 외운다고 되지 않는다. 습관. 습성. 은어. 불만 등등 최대한 더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린 전시목표가 뚜렷했고, 이를 위해서 올라가다 급하게 조우할 수 있다. 그때는 몸이 익히고 알고 있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계속 업그레이드판을 읽어야 한다. 우리나라 군대도 세대가 바뀜에 따라서 용어가 변경되고 은어들이 생긴다. 새로운 말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우린 계속 읽어야 한다. 첩보보고와 위성사진과 함께.


우린 목표지역의 해당 사투리를 교습받았고, “이 정도면 똑같습니다. 구분 못 합니다. 이거 천이 더 좋은데?” 제작되어 충분히 검증된 북한군복을 입고 AK를 들고, 평상시에도 북한군 용어와 규칙을 일상처럼 연습한다. 총은 총이다. 총알과 수류탄은 그 어떤 인간도 죽인다. 누가 우리를 먼저 보고 총구를 겨눈 상태라면, 제아무리 훈련이 잘된 사람도 죽을 수 있는 것이 총의 세계.


‘서보라! 뉘기야?’


질문과 대답 하나에 골로 가거나 그 말한 놈을 죽일 기회를 잡는다. 첫 억양과 선택되는 단어. 작전계획의 시나리오를 사용할 언어까지 줄줄 암기하고 있지만, 습관적으로 쓰고 있어야 한다. 말이 입에 익어야 한다. 그러면서 가장 힘든 것은 억양. 그 지역 탈북민의 증언 테이프를 들으며 따라 한다.


가장 기억나는 수기가 있다. 전연지대에서 DMZ을 넘어 귀순한 북한군 병사의 증언 기록. 넘어오면 [의거 귀순!]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던 시절이었다. 그 병사가 남으로 넘어오게 된 이유는 좀 잡다하고, 공개된 기록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귀순의 진짜 이유는 당시 안기부와 보안사 정도는 알 것. 겉으로 드러내기 수치스러운 이유들이 있기 때문이다. 금전 문제로 월북한 아군 대대장도 있었으니... 진짜 이유를 적당히 둘러대는 경우가 있다. 우리나 저쪽이나.


그 병사의 수기.

비무장지대에 가까운 전방지대 부대에 전출을 온 자체부터 이미 사상검증과 가족의 내력이 증명된 병사다. 조금만 내력에 이상이 있어도 전연지대 근무를 불허된다. 그런 병사가 모든 걸 버리고 남으로의 탈출. 도망이다.


그는 심리적으로 두 번이나 탈출 날짜를 놓쳤다. 실행하려던 날짜에 무엇이 계속 걸렸고, 이제 오늘 아니면 그 해에 사실상 기회가 없다. 전방은 그런 곳이다. 내가 올라간다고 해도 계절 기상 북한의 사정, 북한 경계태세 등 모든 것을 고려하면 날짜가 굉장히 좁혀진다.


예를 들어, 수령이 현지 지도를 위해 이동하는 기간은 민감하다. 남조선에 큰 사건이 일어나도 북쪽은 비상이 걸린다. 서해에서 교전이 일어난 후는 한참을 참아야 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공작대는 몰라도 우린 실제가 없었다. 조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도 정확히는 모른다. 누가 갔다 온다면, 그걸 아는 사람은 손가락에 꼽는다. ‘요즘’ 안 넘어간다는 말만 지속적으로 반복한다.


자기보호를 위해 자기 AK 하나만 들고 떠나는 병사.


마지막으로 소대 내무반을 떠날 때의 심정. 갑자기 누군가 일어나 이름을 부를 것 같고, 다리 한 걸음을 병사(내무반) 밖으로 옮기는데 천근만근 무겁고, 심장이 벌렁거리면서 손이 덜덜 떨리고, 누군가에게 발각되어 총 맞아 죽을 공포.


병사를 나가며 부대 울타리로 향하는데 누가 나타나, 너 이 시간에 뭐하냐 물을 것 같고, 등에서 무엇이 당기는 것 같고. 숨이 막히고, 몸이 떨리고, 이제, 배신자, 가족은 아오지탄광으로 끌려간다는 현실.


잡히면 총살. 공개총살.

그 글을 읽으면서도 긴장감에 숨이 가늘어졌었다.


나도 지금 첫 발을 뗀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생각만큼 다리가 후들거리진 않으나, 바로 일어나 떼로 날 잡을 거 같다. 하나하나가 이리 늑대. 떼로 물어뜯어 이빨로 난자되어 죽을 것 같다. 고요한 공장. 우리가 근무를 하진 않지만 근무자 위치는 잘 안다. 시간도 잘 안다. 어디 담을 넘을지, 그 다음에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안다.


우린 항상 지도를 암기한다. 여기서 서울까지 산만 타고도 간다. 그 산들은 우릴 위해서 암기한 것이 아니라, 아바이 리콘 애들이 들어갔을 때 잡기 위함이지. 산에 휘갈기는 암호도 해독하고. 그들이 암기하고 내려온 걸 대졸에서 불었고, 최신판을 우리도 읽는다. 그런 일에 노가다가 필요하면 우리에게 연락하기 때문이다. 연락하면 = 긴급. 1년 동안 세 번을 뛰었다.


사회는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지. 최근 평화로 가는 모양새 때문에 뉴스에 날 리가 없다. 하지만 기본적인 생각을 잊지 않으면 답이 쉽다. 저 공화국이 아무리 평화무드라도 가만히 있겠는가. 정보 공작을 중단한다고? 정보 공작은 ‘평시’가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권의 두 당도 항상 뒤를 캔다. 격침된 함정이 어떤 이유인가 아무리 토론해도, 기본 토대는 노리고 있던 가장 가깝고 위험한 나라를 범임으로 두어야 맞다. 그 상식을 버리면 답을 찾는 공식이 없는 거다.


오래 먹고 오래 쌌다.

하지만 나 이제 지루하다.

산도 끝났고 공장도 끝났다.

난 과거 현재 미래가 없는 사람이라니까.


“음...”


이제 여기도 끝인가. 난 어디로 갈 곳이 없다. 하지만 가야 한다. 별개의 새로운 사건을 만나기 위해서. 표적에 손을 댄 게 나란 사실은 누가 모를 리 없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피가 보였다. 우린 좀 다른 사람들이다. 이 계통이 그렇다. 사건이 벌어지면 전면보다 이면을 본다. 겉으로 들어난 것에서 증거는 보지만, 한번 꺾어서 더 아래 깊숙한 걸 보려고 한다.


우리의 표적들도 겉으로는 선량한 시민이다. 옷차림도 수수하고 말도 평범하다. 처음에는 눈에서 보고, 그 다음 말을 걸어서 또 깊은 걸 본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차렸다는 걸 표적이 깨달을 때가 가장 재미있었다. 드디어 스트레스 해소하는 시간이 온 거니까.


옛날에 남하한 인간이 대졸에 끌려가면 죽기 직전까지 패고 고문했다지. 인간본성이 나올 때까지. 가끔 그것도 통과하는 인간이 있지만, 그래도 좀 걸러. 정신이 아픈 것과 살이 아픈 것은 다르니까. 세상 좋아졌다. 다만, 우리가 관할하는 작은 세상은 아직 안 좋아졌다. 그러니까 생각보다 내 손이 먼저 간 거다.


안녕. 잘 있어. 밥 잘 먹고 간다.


우린 자기가 걸릴 줄 모르고 함정을 파지.


공사와 공장도 우리를 숨기는 함정을 팠어.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공작들을 해왔지.

우린 모든 것이 보안이지.

자, 나로 인해서 함정을 공개하겠어?

어둠 속에서 날 찾아야지 않아?


난 알지. 나를 공개수배 때릴 수 없어. 경찰에게도 정확히 말 못해. 나는 공개적으로 여기 존재할 수도 없고 밝힐 수도 없어. 내가 누구고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인지 어떻게 언론에 공개를 해? 나를 파면 욕은 국방부가 먹어. 줄줄이 별자리들이 옷 벗고 싶어? 알아서 해달라고.


아마도 강원도 어디서 내가 탈영했다고 나와도 나오겠지. 과연 그렇게까지 언론에 날 알릴 수 있겠어? 대놓고 할 수 있겠어? 한번 지켜보지. 내가 어느 정도 존재인지. 추적조들은 나를 죽이려고 쫓아오겠지. 이번엔 내가 표적이야? 나도 가만히는 못 있지. 날 보면 그냥 살려서 끌고 가겠어? 내가 했듯이 나에게도 똑같지.


이제 당신들과 나는 똑같은 아프리카 오지가 되는 거야. 이제 드디어 누가 강한지 한번 뜨는 거야. 셋 이상이 올 거야. 공장 전체가 올 수도 있지. 그렇게 공격해서 숨이 붙어 있으면 군병원에서 살린 다음 끌고 가겠지. 하지만 또, 날 군 교도소에 넣을 수 있어? 복무기한 초과로 사회 교도소로 이감하겠어? 가능하겠어?


내가 알기로 사회 교도소로 보내지 못한 군범이 있다고 들었는데. 사실 그거 불법이지. 군범을 복무기한이 끝나도 사회 교도소로 안 보내는 건, 거기서 뭘 떠들까봐 그렇지. 떠들면 퍼지고. 군대는 놀라운 일들이 아직도 철저히 가려지는 집단이야. 마지막으로 남은.


결론 : 날 죽일 거야.

그래. 이제 자유로워졌구나.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솔직히 모른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니 놈을 긋고 있었다.


“뭐하냐.”


어...


“과장님... 퇴근 하셔야죠?”

“집에 없어. 친정 갔어.”


공장 사람들은 사회 친구들을 안 만난다. 어떻게 생각하면 못 만난다. 우연히 만나도 술 안 먹는다. 항상 자기 입을 경계하는 삶을 산다. 만취의 실수를 피한다. 만취의 실수 자체를 피하는 방법은 자기가 자기를 세뇌하는 거다. 만취상태에서 자신도 모르게 떠들 말이 없도록 한다. 그리고 공작원은 절대로 만취해서는 안 된다. 말실수 뿐 아니라 여러 모로. 나를 노리는 사람이 있다면 술 마실 때를 기다린다.


과장. 복장이나 외모는 어디 가구공장에서 30년 일한 사람 같다. 그나저나 어인 일인가. 살 떨려 죽는다. 갑자기. 이미 말은 끝난 거 아닌가.


“밤공기 좋다. 오늘 수고했다.”

“공기 좀 마시고 있습니다.”

“오늘 좀 놀았나?”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항상 내일부터가 일이지.”


항상 말을 꼰다. 주제를 처음부터 꺼내지 않는다.


오늘 못 가는 건가?

아니다. 오늘 못 가면 영원히 못 간다.


“돼지우리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쉬어.”

“옙.”


과장이 사무실로 가는 걸 보니 내가 저지른 걸 아직은 못 봤다. 하지만 결국 본다. 아마도 한두 시간 후에 상태를 보러 갈 거다. 이미 명태가 된 걸. 그리고 누가 명태를 만들었을까? 나지. 지금 마주치기까지 했어. 사소한 이상한 것이 큰 것의 이유가 된다. 한둘 더 정리해? 실력 한번 볼까? 그러려면 다시 나오든가, 아니다. 사무실 당직까지 모두 정리해야 돼. 당직은 허당이다. 책 보는 기수.

과장의 뒷모습. 등이 보인다. 한다면 지금이다.


“노고단.”


갑자기 왜 뒤돌아...


“옙.”


“너... 산 좋아하나?”


무슨 생각을 하는 표정인가.


“산은 누구나의 고향 아닙니까.”


“잘해...”

“명심하겠습니다.”


알 수가 없어.


“새로운 임무 계속 투쟁하도록.”


......

당신,

말 한 마디가 목숨 구했어.

잘 있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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