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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B

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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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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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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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CSAR 10

DUMMY

2.


“헬기 소리 들리면 몰려 온다!”


“보이겠어?”


삼켜도 삼켜지지 않는 침. 떨리는 손, 연동되어 같이 떨리는 무전기. 원사도 드디어 차분함을 잃고 체력도 선을 넘고 있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입술만 빨갛다. “후. 후.” 버튼을 누르고 입술을 댄다. 코에서 흐르는 피가 무전기에 떨어진다. 하지만 아무도 뭘 해주려하지 않는다. 모두 비슷하다. 귀에서 피가 흐르는 사람도 있다.


”로메오 탱고 43. 로메오 탱고. Right on time!“


무전기에선 이상한 잡음만 들린다. 역지로 말을 못 알아듣게 한 편집 같은 파편적인 교신음. 그 잡음 속에는 상공에서 일어나는 교신도 섞여 있으나, 이유모를 시끄러운 지글지글 잡음도 섞였다. 말소리는 분명 들린다. 하지만 영어를 좀 해도 못 알아들을 파편적인 소리들. 우왕 우왕 억양만 들린다. 강하고 높은 억양 외에 단어조차 식별이 어렵다.


”로메오 탱고. 로메오 탱고 43. 폴 버년. 폴 버년. 오버.“


끼룩끼룩. 타타타타. 전자기타 와우 와우 패달 같은 싱크로나이즈 전위음악 같은 별의별 잡음이 다 들린다.


”아 시끄러 씨, 진짜.“


”왜 대답을 안 해.“

”몰라요. 몰라. 수상한데.“


지역대장과 원사 사이에 상사도 끼어든다.


”뭐라고 뭐라고 말은 하잖아.“

”무슨 소린지 당체 못 알아듣겠네.“

”그거 혼신 아냐?“

”누가 방해전파 넣는다고?“

”모르는데 어쩌면.“

”원래 참가자가 많은 주파수는 이래. 특히 군용 주파수.“

”아래놓고 큰소리는 마구 쳤어!“


모두의 놀란 눈이 껌뻑이지도 않는다.


”아니, 상공과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더는 내려갈 수 없는 피난민의 표정들.


”한시가 급한데 지금 통신도 안 되면 어쩌라고.“

”뭐라고 계속 말을 해봐요. 계속 해봐요.“

”뭐가 떠서 오고는 있는 거야?“


먼지를 뒤집어쓴 원사의 입가에 침이 한줄기 내려간다.


”지금 퇴출 타이밍이야.“

”우리만이 아니니 그렇지.“

”뭐가 이렇게 복잡해. 젠장.“

”잠깐만, 이어폰 좀 끼고. 우리에게 말하는 것도 같은데, 일단 껴서.“


원사가 눈을 감고 이어폰 반대편 귀도 막는다. 모두 주시하는 가운데, 원사가 듣다가 갑자기 송신 버튼을 누른다.


”로저. 로저. 폴 버년. 왓, 유, 원. 오버?“

원사가 듣고 있는 침묵이 지독히도 길다.

”리핏! 왓. 유. 원. 오버!“


원사가 무전기를 내린다.


”왜 그래.“

“무슨 소리야?”


원사가 귀를 손가락을 떼고 굳었던 입을 푼다.


“우리를 못 믿는 것 같은데”


“뭐?”

“과정이 생략됐어. 그래서 안 믿어.”

“무슨 소립니까.”


“설명하면 아니? 알어? 니가 알아?”

“그니까 설명을 해보라고!”

“이 무전기로 안 되는 건가?...”

“뭔 소리야 지금.”

“이게 지금 뭐가 막혔다니까 새끼야.”

“안 들려서 그런 거야?”


“아니. 들리긴 들려. 소리 중에 우리를 찾고 말하는 놈이 있어. 누가 혼신도 일부러 넣는 것 같고. 안 들려서가 아니라 절차, 절차의 문제라고.”


“절차?”


“원사임. 조종사 무전기 어떻게 안 돼요?”

“서바이벌 무전기 예비배터리 없어?”

“없다잖아.”


“왜 없어. 원래 그거 조종사 조끼에 있는 거야.”

“예비배터리가 있다고?”

“있지! 그런데 지금 없다는 거 아냐!”

“자꾸 모를 소리만 하네.”


“소텍 받을 때 조종사들하고 토론하는 시간이 있어.”

“다 있는 거야?”

“뭔 소리야? 말 좀 똑바로 해 자식아.”

“말해보라고!”


“조종사들이 구조대를 부르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게 서바이벌 무전기야. 저 작은 워키토키가 얼마나 간다고.”


원사가 누운 서양인의 조끼를 지시한다.


“며칠은 쓰지 않아?”


“예비배터리가 있는데, 원래 한두 개 예비가 있어. 저 양반 말이 맞아. 근데 지금 없다고! 원래 저 생존 조끼 물품인데, 잃어버렸다고.”


“예비가 없다 쳐도, 아니 얼마나 교신을 많이 했길래.”


“여기 통신 주특기 없냐? 말이 통해야지. 다 죽게 생긴 마당에 내가 강의까지 하랴? 무전기 배터리 소모는 기본이 수신이야. 그러나 전력은 송신이 다 잡아먹어. 수신만 켜놓을 때 오래 가는 거야. 하나의 무전기는 수신 대비 송신율로 가동률 지속률을 치는 거라고. 배터리 사용 효율.”


“많이 썼다는 거야?”


“상사나 되가니고... 들어봐 이 자식아. 수신할 때 전력을 2를 쓴다면 송신할 때는 8이 넘어가. 넓게 전파를 방사해야 하니까. 송신이 많으면 배터리가 빨리 가는 거라고. 수신만 하면 저거 일주일도 충분히 가. 하지만 서바이벌 무전기는 듣는 라디오가 아니야. 무척 송신을 눌러야 하는 무전기라고. 너무 많이 쓴 거야. 우리에게 연락이 오기 전까지 일이 많았던 거야. 그렇게 안 섰으면 저 사람 죽었을 수도 있어. 폭격도 저걸로 부른 거야.”


“배터리 사용량을 몰라? 볼트 암페어 체크 하는 기능 없어?”


“이 무식한 놈아. 무전기에 그런 기능을 달면 그 기능 때문에 전력을 또 잡아먹는다고. 그게 무전기라고. 군용무전기는 화려한 디스플레이와 LED를 줄이는 이유가 전력 때문이라고. 야전 무전기! 기지국 무전기 말고. 군대 야전 무전기는 항상 배터리 부족이야.”


지역대장이 복잡하다.


“그만 하세요. 이미 끝난 거야.”

“전혀 안 켜져?”

“켜지기는 켜지는데, 송신 누르고 말하면 꺼져.”

“그게 전력이 거의 끝난 상태의 증상이야. 그마저도 조금만 더 하면 끝날 거야.”


“왜 조끼에 예비배터리가 없대?”

“흘렸나 봐.”

“돌겠네 진짜.”


“이대로 가면 우리 못 버텨. 우리가 여기까지 피해를 감수하고 버틴 건, 여기로 헬기가 날아온다는 조건이었어. 여긴 우리가 완전히 숨을 수도 없어. 우리가 산으로 가지 않는 이상, 언젠가 발견돼. 이제 어쩌라고! 어째!!!”


“내가 그랬냐 이 새끼야.”


“우리 지역대는 열에서 여섯으로 줄었고, 원사님네 둘과 저 사람! 저 사람 포함해 아홉입니다. 아홉 남았습니다. 지역대장님. 어떻게 합니까. 이걸로 뭐 어떻게 합니까.“


포기. 구출작전 중단을 말할 순 없다. 그 말까지 할 순 없다.


”원사님. 더는 안 됩니까?“


”이제 응답도 안 하려고 하네. 정확히 말하면, 내 느낌으로 말하면, 우리 영어 수준하고 발음이 문제야. 저들이 듣기에는 마치 북한인 같은 거지.“


”거, 강압에 의한 그거?“

”그러.“


”연특사에 연락관도 없나? 한국말로 편하게 하면 통역해주는.“


”잠깐만.“


다시 원사가 손가락으로 귀를 누른다.


지역대장은 ”사주경계. 총 내리지마.“

그러나 눈은 원사에게 다시 돌아간다.


”기다리라는데?“

”기다려?“

”응. 기다리래.“

”왜.“

”우리를 직접 보고 판단할 수도 있대.“

”헬기가?“


”야, 헬기가 왔으면, 헬기가 우리 눈에 보이면 망원경으로도 볼 수 있지. 레스큐는 현장에서 처음 하는 일이 그 사람 사진하고, 키와 체구는 기본이고, 저 양반 입고 있는 복장을 북한이 친히 준비하겠냐? 외모가 대충 들어오면 조종사 개인 암구어, 확인 가능한 질문을 받아. 본인 아니면 대답을 못 하는. 그걸 헬기가 오기 전에 확인하려는 거야. 위험하니까.“


”뭘 물어봐.“


”그건 저 사람 본부와 본인만 아는 거야. 고향의 햄버거 브랜드가 뭐냐. 그런, 서로 약정한.“


”그럼, 완전히 오지도 않고 어떻게 정확히 봐!“


”아무래도, 위성이나 그런 게 있나 봐. 그런 말로 들었어. 근데 프레데터 같은 것이 여기 뜰 수 있나? 그 정도는 느려서 격추될 텐데.“


”위성인가 보네. 그렇다고 여기서 다 보이는 데로 나오라고?“

”기다리면 나오라고 알려주겠대.“

”언제까지 기다리라고!“

”내가 아냐, 내가 알아?“

”그래서 지금 폭격도 더는 안 하는 거야?“

”지금 폭격하면 위치만 알려. 레스큐 오기 직전에 다시 폭격해야지.“


폭스트롯! 유타! 찰리! 킬로!


”내 생각엔 지금 우리 떠야 돼. 그나마 다 죽어!“


”저 사람 들고 가자고? 들것 안 돼. 부러졌어. 못 걸어. 지금 다시 만들 수도 없어. 지금 병원 안 가면 살아도 외다리야. 부축해서 얼마나 어디까지 가? 저 사람 끌고 가다가 우리도 죽는 거고.“


”조용히 좀 얘기해. 들어. 애들이!“

”애들은 이거 봐서 모릅니까? 생각이 없어?“

“어쩌라고요. 다리가 나갔는데, 두고 가요?”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그건 아냐. 그건 절대로 아냐.”


“절대로 아니면 뭐합니까. 방법이 없는데. 낮에 이런 산자락에 나와 있는 게 죽자는 소리죠. 포기하고 가려면 지금 당장 출발을 하던가.”


“왜 못 믿지?”


원사가 권총 실탄을 확인한다.


“마구잡이로 그런 거 아냐. 절차가 생략돼서 그래.”

“무슨 절차.”


“이 소텍 무전기는 그냥 무전기일 뿐이야. 내가 북한군인지 어떻게 알아. 상대가.”


“뭐래는 거야.”


“이 소텍 무전기는 보안장비, 보안 무전기야. 이 무전기가 있어야 소텍 항공중계와 연결돼. 그래서 이것만 있으면 감청도 쉽지 않아. 우리 통신주특기 장거리 무전기는 비-보안화로 펑펑 뚫리는 무전기고. 그래서 암호 음어를 쓰는 거고. 이건 달라. 군용 보안전파는 위상변조 플러스 파편조합이라 그런 기능이 없으면 잡음으로 들려. 그러니까 무전기 자체는 믿는 거야. 이 무전기가 아니면 다른 무전기로 북한군이 흉내내기 힘들어. 믿을 수밖에 없는 소텍 무전기야. 송신 전파에 시리얼 넘버가 뜰 거야. 그쪽에.”


“정말로?”

“요즘 군사 통신보안의 기본이다.”

“그러니까 왜 그러냐고.”


“문제는, 소텍 받은 사람, 시리얼 넘버에 맞는 항폭 유도관의 ID가 있어. 호출부호를 대면 그다음이 항폭유도관 개인 인식이야. 내가 그걸 몰라. 물어보지 않고 들고 온 거야.”


“각각 개인의?”

“각각 무전기 주인 개인의.”

“아니 원사나 되셔서 그러면 어쩝니까.”

“야. 이 무전기 주인이 전사했다고. 죽었다고!”

“인계도 안 하고?”

“쉐키야 사람 죽은 게 광고냐.”

“그건 미안한데, 왜 모르냐고.”


“이건 내 무전기가 아냐. 내가 주인이 아니라고. 그냥 전사했지. 죽을 걸 알고 인계하냐? 보안 사항이야. 유사시만 인계하게 돼 있어. 팀원이 잡혀서 불면 안 되는 사항이라고. 평상시에 그걸 누구에게 인계를 안 해.”


“ID가 어떤 건데.”


“ID는 일종의 암호인데, 포로 시 그 ID 불면 골 때린다고. 북한이 이걸로 항공기 불러서 격추해 버리는데 딱이라고!”


“아무도 몰라?”

“지역대장님.”

대리 지역대장이 인상을 긁고,

상사는 점차 차분해진다.

“이런 씨...”


“이게 그렇게 허술한 줄 아냐? 수백억짜리 고가 전폭기들이 날아와서 억 수십억 단위 폭탄 떨구고 미사일을 쏘는데. 그냥 고폭탄은 껌값이지만 유도폭탄과 특수폭탄과 미사일이 싸도 10억이야. 유도 관통폭탄 20억짜리도 있어. 한 발에. 그게 제일 싼 거야. 이게 부르기는 쉬워도 아무 데나 다 폭격하고 도와주고 그러는 거 아냐. 무한정 폭격해주는 거 아냐. 우리 부중이 이거 쓸 때 폭격 안 해준 것도 있었어. 목표자 작아서. 물량보급의 배분이라고. 지금 재고를 거의 다 쏟아붓는 지경이지만 기본적으로.”


“그래서, ID 어떻게 못 알아내?”


“전시 소텍은 ID만이 아니라 상대방이 이 무전기 주인의 소택 ID 플러스, 다시 말해 소텍 암구어가 있다고. 그게 아마 ID와 연관될 걸 거야. 나는 여러 번 들어서 호출부호만 아는 것이고. 이 무전기 전파가 일련번호를 포함하고 있어서, 전파를 발사할 때 자동으로 시리얼 넘버인가를 같이 송신해. 그것과 호출부호가 일치하면 일단 아군으로 가정하는 거야. 그러니까 이 무전기 주인에게 2차 확인을 하고 폭격을 결정하는 거야.”


“아니면 안 믿어?”


“들어봐. 보라고. 그다음, 첩보보고나 그런 걸 보내고 받고. 처음 암구어로 신뢰도를 확인하는 거야. 그 식별 암구어는 형태가 여러 개라 나도 몰라. 문제는 이 무전기를 꽤 오래 안 썼어. 그게 수상한가 봐. 난 10년 전에 교육받았고. 그게 아마 ID에서 숫자 빼고 더하기 같은 걸로 암구어를 할 거야. 하지만 달라졌을 수도 있다고! 그게 옆에서 듣기에는 아주 잠깐인데, 내가 알아야지.”


“유추도 안 돼?”


“숫자 같은 것이 날짜에 따라 변하기도 해. 그 안에 포로로 잡혀서 억지로 했을 때 알리는 ‘강압에 의한 신호’도 있을 거야.”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잡혀서 배신하거나 북한군이 사용한다는 가정을 하는 거네.”


“그렇지. 미군 입장에선 비싼 항공기와 폭탄, 훈련 잘된 프로 구조대원들을 잃는 거라고.”


“구해라 놓곤 지랄이야.”


“여기가 너무 북한 깊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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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8 kj*****
    작성일
    21.03.30 15:40
    No. 1

    미군이 허술하게 만들리 없지 ㅠㅠ
    일이 안될라니까 별개 속을 다썩입니다. 작가님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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