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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그코크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입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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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그코크
작품등록일 :
2023.05.11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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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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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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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점

DUMMY

어비스의 외형은 새끼 북극곰으로 보였다.

왜 인간형이 아닌지는 이해는 가니 딱히 상관없고 그중 왜 곰인지는 잘 알 것 같다.

전생에서 곰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으니까.

하얀 건 그저 그때 당시에 피부가 하얀 편이라 그런 것일 테고.


“꽤 빨리 모습을 갖췄네. 어비스. 나는 한 5년 정도는 기다려야 될 줄 알았는데.”

“확실히..”


인도 나머지 다른 인격들도 어비스가 안정화되고 인격이 생성되며 모습을 갖추는 것까지 이 모든 작업이 5년이 걸릴 거라 예상했다.

네인의 부정적인 부분이기에 안정화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며 인격이 생성되는데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볼 테니 여기서도 시간이 더 오래 걸릴 테니까.


“빨라서 안 돼?”

“아니? 그건 아니지.”


하지만 어비스는 태연하기만 했다.

자신의 근원 정도는 잘 알 텐데.


“네인은 괜찮아?”

“괜찮아. 문제없어.”

“정말?”


어비스의 되물음에 네인은 어비스에게 다가가 머리에 손을 올렸다.


까드득..


“네인..?”


갑자기 이빨을 가는 네인 그리고 당황하는 인.


“아직 완전히 안정화된 건 아니네.”

“응.. 그냥 급하게 나왔어.”


어비스를 만진 네인은 갑자기 속이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죽고 싶다.

왜 살아야 하지?

나는 쓸모가 없잖아.

잠깐 만진 정도로 평소에 가졌던 부정적인 사념이 몸을 잠식했다.

하지만...


폭!


네인은 어비스를 안았다.


“네인!”

“네인?”


인의 외침에 네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어비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

그런 상황에서 네인은 어비스의 몸에서 흘러들어오는 부정적인 사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비스는 네인에게 벗어나려고 버둥거리지만 그럴수록 네인은 더 세게 붙잡아 놓지 않았다.


“인!”

“... 일단 기다려 보자.”


인은 일단 네인을 믿어보기로 했다.

더 정확히는 네인의 ‘저주’를.

1분 정도 흐른 시점에서 네인은 어비스를 놓아주었다.


“네인!”

“네인. 괜찮나?”


눈을 뜨고 주변을 돌아보는 네인.

인은 네인의 변화를 눈치챘다.


‘눈동자가 돌아왔어?’


네인의 동공의 초점이 평범한 사람처럼 돌아왔다.


“역시..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건가?”

“네인.”

“와.. 근데 이게 정답이었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네.”

“네인.”

“어 왜? 인.”

“몸은?”

“괜찮아. 변한 점은 없어.”

“정신은?”

“괜찮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옛날로 돌아온 느낌이 들어.”


여기서 네인이 지칭한 옛날은 아마 전생일 것이다.

상황에 따라 보면 좋은 상황이기도 하며 더 안 좋은 상황이기도 하다.


“옛날이라...”

“설마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는 속담을 체감하게 될 줄 몰랐는데.”

“...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말은 한 이유가 그거군.”

“뭐.. 그렇지?”


네인의 전생에서 삶의 반 이상은 자기 혐오감에 파묻혀 있었다.

현생의 네인은 그런 전생을 회피하고자 당당하면서 나름대로 긍정적으로 부지런하게 살아왔지만, 결과는 전생이 더 나았을 거로 생각할 정도로 참담했다.

전생에서 없는 불안요소 또한 존재하기에 이런 도박을 했지만 역시 도박은 하는 게 아니다.


“네인?”

“어.. 괜찮아.”


어비스를 쓰다듬으며 네인은 어비스를 진정시켰다.


“잦은 접촉은 하지 말아라.”

“알아. 하지만 이 정도는 괜찮아.”

“이제 다시 익숙해지려는 건가?”


자기 혐오감에 파묻혀 있던 전생의 네인은 자주 웃었다.

하지만 인은, 인격들은 그게 네인에게 있어서 어떤 신호인지 잘 안다.


“익숙해지긴 해야겠지. 살려면.”


인은 인간의 모습을 갖춰 어비스를 만졌다.

만지자마자 심장은 터질 듯이 뛰고 울화가 치민다.

신체와 정신은 그 원인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라 외치며 스트레스로 몸이 잠식되는 느낌이 들었다.


“M이냐고 드립치고 싶었는데 이건 그 정도가 다르군.”

“애초에 분야도 다르거든?”

“?”


이해하지 못한 어비스는 의문을 표했다.


“아니야. 사과 먹을래?”

“응!”


어비스는 네인이 주는 사과를 아삭아삭 씹어먹으며 구름을 구경했다.


“어비스는 데려갈 건가?”

“그래야겠지. 나는 어비스가 필요해. 어비스는 잘 모르겠지만.”

“잘됐군. 다른 인격한테도 맡기기 애매했으니까. 저런 몸이면 다들 안 맡으려 할 텐데.”


어비스는 네인과 인격들을 포함한 스트레스 덩어리.

보는 건 괜찮아도 닿는 건 꽤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큰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재의 네인에게 그만한 스트레스가 필요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네인의 말. 그 말은 시사하는 바는 단 한 가지.


“나태와 자기혐오 속에 살 수밖에 없는 건가? 네인.”

“어.”


열심히 살아갈수록 네인은 힘들어지고 자신을 혐오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앞날은 기대할 수가 없다.

네인은 이미 그런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어쩌면 그때의 폭주도 이런 경고가 아니었을까 싶다.”


폭주는 늘 무언가를 제어를 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일. 그 무언가는 항상 다르다.

힘일 수도 있고 감정일 수도 있다. 사람마다 다른 요소로 사람은 제각기 다른 폭주를 한다.

하지만 무언가를 억압하기만 했다면 그것은 억압 자체의 문제다.

억압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

그때의 네인처럼 말이다.


“아이러니하네.. 남들은 미칠 것 같은 자기혐오 속에 살아가야 일상생활이 가능해진다는 게.”

“이 세상에 그런 인간이 하나쯤은 더 있지 않을까?”

“없을걸? 어떤 목표가 없다면.”


복수라던가 복수라던가 복수라던가....

이런 세상에서 보통 자기혐오에 빠진 사람이 살아갈 목적이 복수 외에 생각이 안난다.


“그럼.. 저택으로 돌아가야 하나? 마탑은 지금 가면 파탄날 것 같은데.”

“네인, 안경은?”


인은 안경을 주워 네인에게 건넸다.


“흠.. 그냥 쓸까? 멋으로.”

“굳이?”

“그래.. 굳이긴 하지?”


애초에 내가 멋을 신경 썼나?

그럴 리가.

네인은 안경을 다시 쓰고 주변을 둘러봤다.

이제는 쓰나 안 쓰나 똑같은 시야.


“그냥 쓸란다.”

“굳이?”

“그냥. 옛날 생각나고 그러니까. 보이는 풍경은 전혀 다르지만.”

“... 마음대로 해라.”

“뭐야? 그 공백은.”


네인의 앞에 미르터 후작가 저택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돌아가자. 여기서 얘기를 계속하면 끝이 안나.”

“그래. 가서 할 것도 많으니까.... 아. 일이 너무 많은데. 귀찮아.”

“벌써?”

“앞날을 생각하면 귀찮은 일투성이야.”

“천천히 해. 여기 한국 아니야.”

“나는 한국인이야 임마.”


귀찮은 게 많아도 한국인의 피는 어디 안 간다.

근데 현재 내 몸에 한국인의 피가 있을까?

갑자기 한가지 가능성이 스쳤다.


“... 네인. 내 친부모 있잖아?”

“갑자기 왜?”

“친부는 저~기 황제라는 건 알겠어. 친모는?”

“....”


대답이 없는 인을 보니 갑자기 피가 식는 느낌이 들었다.


“뭐야? 왜 말이 없어?”

“살아있는 건 파악했다.”

“위치는?”

“위치 또한 파악했고.”

“근데 왜 말을 안 해?”“얼굴을 모른다.”

“... 네가?”


인이 볼수 없는 게 있다면 봉인 내지 봉인에 가까운 결계 정도다. 물론 어떻게든 보려면 볼 수 있겠지만 봉인이나 결계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인도 섣불리 그런 행동은 하지 않는다.


“파악한 건?”

“황제를 포함한 황족 몇 명과 극소수의 인간이 출입이 가능하다는 것 정도. 그 외에는 아는 것이라고는 그 안에 들어있는 게 황비라 불리는 여자. 그리고 해동국 출신이라는 것 정도.”


해동국.

해동이라던가 동국이라던가 과거 중국에서 한국을 부를 때 사용하던 단어.

그래서 그런지 느낌이 안 좋았다.


“황비가 왜 해동국 출신이지? 황후는?”

“고위 관료의 딸이지.”

“다른 황비는?”

“없다.”

“황후의 거처도 그런 결계가 있어?”

“없다.”


황후가 황비보다 신분이 높은 건 당연한데 황비의 거처가 황후보다 경계가 삼엄하다.

아니.. 삼엄하다기보다는 폐쇄적이다는 것에 가깝다.


“황비는 결계 밖에 나온 적이 없어?”

“내가 보기에는 없었다.”

“그럼, 사랑은 아니겠네.”

“그럴 수도 있지 않나?”

“있지.. 그럴 가능성 있지.”


사랑일 수도 있지만 네인은 사랑보단 어딘가 특별한 사람일 가능성을 더 높이 두고 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황비를 황후로 앉혀두려고 노력하겠지 가둬두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 갑자기 한국 얘기 꺼내서 머리가 아파지냐.”

“네인?”

“그냥... 갑자기 기분이... 느낌이 안 좋아서. 기분 탓이겠지 기분 탓. 근데 이러면 보통 플래그인데.”


이러니 더 불안해졌지만, 네인은 그냥 생각을 그만두고 인을 보며 말했다.


“그냥 돌아가자. 미르터 후작가 저택으로, 애들 다 거기 있을 거 아니야?”

“그래.”





그 후 며칠이 지났다.

마법에 관한 건 필가논 미르터와 이미 얘기를 끝냈다.

마법의 연구를 하긴 하겠지만 이전처럼 문어발식으로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행히도 이 얘기는 이걸로 끝났다.

마법에 흥미가 식은 건 아니지만 그것 외로 그저 무언가를 한다는 것에 의욕이 사라졌다.

어비스의 경우 네인이 어비스의 신체를 안정화해서 다른 사람과 인격들이 어비스를 만져도 부정적인 감정이 들지 않게 했다.

네인 자신은 예외로 했다.

에이, 퀸, 케이의 경우에는 놀긴 참 잘도 논다고 생각했지만, 네인이 내준 숙제만큼은 열심히 했다.

숙제도 열심히 하고 놀기도 열심히 논다. 열정적이라서 좋긴 한데 저기에 휘말리면 참 피곤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 뭐하지?”


방에 누워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

취미생활이라도 뭐 해볼까? 싶었지만 그저 귀찮다는 생각뿐이었다.

독서를 하기에는 볼만한 게 없고.

몸을 움직이자니 귀찮다.

먹는 건 배고프지 않아서 뭘 먹기도 그렇고.


“... 평화롭네.”


평화롭다.

딱히 열심히 뭘 할 필요도 없이.

긴박한 무언가도 없는.

그런 삶.

이런 삶이 좋은 거다.


“더 누워있을까?”

“그러다가 또 잠들 생각이냐? 네인.”

“... 할아버지.”


아무것도 안 하고 잠자고 깨고 반복하는 나날 동안 필가논 미르터는 내방에 자주 들락날락했다.


“할 일도 많으신 분이 쓸데없는 곳은 자주 오시네요.”

“쓸데없다라... 받거라.”


네인은 필가논 미르터가 건넨 서류를 대충 흩어보고 덮었다.


“다 안 보는 거냐?”

“대충 뭔지는 알겠으니까요. 그나저나 역시 다들 방향을 다르게 잡았네요.”


서류의 내용은 각 장로가 내세운 리미트 다운의 활용 방법이다.

과학이라는 분야에서 다양한 세부 분야가 있듯이 리미트 다운도 이와 같은 분야가 나누어질 수도 있으며 장로들은 자신의 특기에 맞춰 리미트 다운을 연구, 개발하고 있다.

그런 서류였다.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얘기했다면 너는 더 열정을 가졌을까?”

“모르죠 그건... 그래도 언젠가 이렇게 펑! 터지는 일은 한 번쯤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하긴 해요.”


흔히 번아웃이 왔다고 할법한 일이지만 잘 모르겠다. 경험한 적도 없고 그만큼 열심히 살았냐고 묻는다면 아직도 그 정도로 열심히 살지는 않은 것 같은데.


“언제까지 방안에만 있을 생각이냐?”

“몰라요. 그냥 될 수 있으면 평생 이러고 싶은데.”

“... 많이 게을러졌구나.”

“원래 게을렀어요. 최근... 환생이후 부지런하게 살려고 노력한 것뿐이지.”

“계속 그럴 수는 없을 거다.”

“알아요. 할 일도 많고 기다리다 지친 황제 폐하도 슬슬 복귀하라고 서신을 보내실 테니까요. 인.”


네인이 인을 부르자 필가논 미르터의 옆에서 걸어 나왔다.


“편지는?”

“여기.”


편지를 건네받은 네인은 봉투를 뜯어 읽어보았다.


“아... 좋은 시절 다 갔네.”


편지의 내용은 길었지만 요약하자면 이랬다.


쉴 만큼 쉬었으니 일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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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네인 이야기(3) 24.02.17 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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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네인 이야기 24.02.10 12 0 11쪽
101 검은색 24.01.30 1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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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폭주 전조 24.01.17 12 0 11쪽
98 실험 24.01.15 11 0 12쪽
97 방식과 방법 24.01.09 10 0 13쪽
96 인내의 시간 23.12.31 13 0 11쪽
95 지옥도 23.12.22 8 0 11쪽
94 죄와 속죄 그리고 정의 23.12.15 8 0 12쪽
93 마피아 게임 23.12.07 10 0 13쪽
92 해야할 일 23.12.02 11 0 12쪽
91 테스트 23.11.26 11 0 13쪽
90 인간의 방향 23.11.20 10 0 17쪽
89 신과 인간 그 어딘가 23.11.08 15 0 16쪽
» 원점 23.10.24 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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