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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그코크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입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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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그코크
작품등록일 :
2023.05.11 21:42
최근연재일 :
2024.05.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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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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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5.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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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

DUMMY

세상은 참 바쁘게 돌아간다.

인간 사회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까 싶지만 매일 자라나는 나무라던가 그 아래 개미 그리고 날아다니는 새를 생각하면 굳이 인간이라는 단어는 필요해 보이지 않았다.

짐꾼들이 짐을 옮기고 사용인들이 각자 할 일을 하는 걸 보면서 네인은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 느긋하게 있어도 되나?”


지금 상황에서 바빠야 할 당사자가 가장 느긋하니 네인은 새삼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무도 이 상황이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았고 딱히 시키는 것도 없다.

누가 귀족 자제에게 일을 시키겠냐마는 그래도 주변이 바쁜 상황에서 할 일이 없다는 건 꽤 눈치 보이는 일이다.


“마탑이라도 가던가.”

“거긴 빡세.”

“하긴.. 네가 해놓은 일이 많으니까.”


적탑의 리미트 다운을 활용한 연구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까도 까도 계속 나오는 소재에 적탑 연구진들은 환희와 광기의 기쁨을 보이고 있다고 하는데 그건 알 것 없고 문제는 정작 네인 본인은 그 이후 마법 연구를 하지 않아서 마법 성과는 하나도 없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새로운 기억을 계속해서 받아내고 있지만 마법과 관련된 기억은 정리도 해야 하고 개량도 해야 한다.

마법 관련 기억은 기억의 것 그대로 쓰기에는 위험한 것들이 너무 많으니까.


“귀찮아... 생각해 보면 할 일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이건 굳이 할 이유가 없잖아.”

“마법사의 위상?”

“필요 없어.”

“그렇겠지. 네가 명예를 원하냐 돈을 원하냐.”

“잠이나 잘까?”

“잠이 오냐?”

“와.”


침대에 누워 이불 덮고 눈을 감으니 1분 만에 네인은 잠에 빠졌다.


“저거 진짜 자네..”


네인은 잠이 필요 없다.

능력으로 피로를 지우면 잠을 잘 필요가 없고 지난날 동안 계속 그렇게 해왔으니까.

다만 마스터에 오르고 네인은 잠을 자기 시작했다.

불규칙적으로 잠에 빠지고 또 불규칙적으로 일어난다.

한 시간 정도 잠들다 일어나는 경우도 있고 이틀을 내리 잔 경우도 존재한다.

최장 수면시간은 일주일이었다.

그것도 사람들이 걱정되어서 깨워서 일주일이었지 깨우지 않았다면 한 달은 채웠을 것 같은 감이 왔었다.

깨우면 일어나고 깨우지 않으면 계속 잔다.

조금씩 잠을 자던 네인은 계속 잠이 늘어나고 지금은 깨우지 않으면 스스로 못 일어날 정도로 잠이 든다.


“정기신... 인건가?”


정신과 육체, 기(마나)의 조화.

기는 네인이 과거 만들었던 심법 때문에 느리긴 하지만 운기조식 없이 숨만 쉬는 걸로 축적되는 심법이다 보니 경지에 비해 높고 육체는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 환골탈태까지 이룬 상태다. 압도적인 기에 걸맞는 최소 조건을 채웠을 것이다.

정신은 옛날부터 전생의 그때에 머물러있다.

잠은 이런 육체와 기에 비해 부족한 정신의 부조화를 따라잡기 위한 본능적인 조치라고 생각한다.


“육체도 그렇게까지 대단하다고 생각 안 했는데.”


네인의 육체는 경지에 비해 그다지 뛰어나다고 볼법한 육체는 아니었다.

마나의 순환 속도는 빠르지만, 도검불침이나 한서불침, 심지어 독에 대한 내성도 전무하다.

내성을 쌓는 행위도 하지 않았고 이에 대한 기연조차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네인은 이를 방관했다.

실제로 그렇게 육체를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신체적 특성이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런 고민도 생각해보면 할 필요는 없다.

강함은 네인에게 의미가 없고 생물에게 태생적으로 존재하는 수명도 의미가 없다.

아마 생물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욕구조차 네인에게는 아무런 의미를 줄수 없을 것이다.

그런 능력이니까.

어비스는 네인의 분신으로써 이 상황에 대해 큰 의문이 들었다.

정확히는 여기까지 도달한 네인에게 주어진 과정 전부다.


네인에게 처음부터 능력이 주어지지 않은 점.

에이가 네인을 발견해 힘을 주려 했었던 점.

인간이 멸망하려는 미래를 읽은 점.

황제와 거래를 하려는 점.

북부로 올라가 아스트라 공작가와 설인과 설녀의 불행을 막으려 했던 점.

현재 기사 서임식에서 네인은 아무것도 반응하고 있지 않다는 점까지.

큰 맥락만으로 이 정도 의문이다.

지구에서의 네인이라면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을 것이다.

그냥 다 무시하고 능력을 얻은 시점에서 은둔했을 것이다.

세상을 떠도는 것도 좋을 것이고 한곳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기억을 지우고 그곳에서 살았던 흔적을 지우고 지워진 흔적과 기억은 다른 것으로 대체한다.

그러면 아무도 이상하다는 의문은 가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네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현생의 기억이 없었다는 점이 문제가 되어버리네.”


어비스는 탄생에 주된 원인은 네인의 부정적인 감정이다.

현생의 네인은 어비스가 태어날 때부터 만들어지기 전까지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 적이 거의 없었기에 현생의 네인이 없었고 네인의 현생을 알기 위해서 네인에게 기억을 직접 주입받았다.

기억만을 주입받았기에 그때 상황에 대한 감정은 알수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고.

그때의 감정이 없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추측은 가능하다. 특히 네인에 대해서는 꽤 높은 정확성으로 추측이 가능하다고 어비스는 자신할 수 있다.

인간성.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살아가고 인간으로 남으려는 존재의 고민.

답은 간단하다.

인간으로 살거나 인간을 포기하거나.

네인은 둘 다 선택이 가능하지만 애초에 선택 자체가 가능하단 시점에서 인간으로 살기에는 글렀다.

선택이 가능한 시점에서 이 얘기는 선택이 아닌 줄다리기나 다름없으니까.

계속해서 인간으로 남고 싶어 하는 자아와 그걸 포기하라는 듯 주어지는 상황과 유혹 그리고 편리함.

이 상황에서 네인은 철저하게 중립은 아니고 조금씩 비율을 정해놨다.

오차범위 ±10%.

네인이 정한 가장 안정적인 비율이다.

조금은 넘어도 상관없을 것이다. 그것까지 감안한 비율이니까. 15%가 넘으면 위험하겠지만 거기까지는 자신이 네인을 구속하면 어찌저찌 넘어갈 것이다.

물론 거기까지 가지 않는 편이 좋다.

그쯤 되면 다른 인격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으니까.


“이런 상황 자체가 운명 같다고 하면 좀 그러려나?”


운명은 좋아하지 않는다.

정해진 건 늘 재미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만큼 편하다.

그러니 운명이 불완전하다는 소리를 듣는 거다.

정해져있되 바뀔 요소는 충분한, 그리고 그걸 바꾸는 건 어디까지나 그 운명에 속한 이들의 의지에 달린 것.

당연하고도 당연하지 않은 소리다.

이게 무슨 X소리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어쩌겠나.

세상은 그런 이상한 걸로 넘쳐나는데.





네인이 잠든 지 삼일 째 되던 날 오후 황궁에서 편지가 도착했다.

네인 레비탄은 당장 입궁하라는 명령이었다.

어비스는 네인의 대타로 갈까 싶었지만, 그것보단 네인을 깨우는 걸 선택했다.

황제는 황제고 네인은 여전히 사람처럼 굴기 때문에 이는 예의 문제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네인 일어나라.”

“.. 왜.”


네인은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황궁에서 입궁하라는 편지가 왔다. 가봐야 할 것 같은데.”

“뭔가 문제가 있나?”

“인에게 매일 전해 들은 얘기로는 제국 내의 문제는 아니야. 외국 혹은 네 얘기 관련이겠지.”

“..가야하나?”

“가야겠지. 강제로 끌려가고 싶지 않으면.”

“졸린데... 네가 가면 안 되냐?”

“우리가 닮았다고 해도 은근 티 난다?”


네인은 직접 단련했다 보니 팔다리가 굵었고 어비스는 네인보다 팔다리가 가늘었다.

그 외에는 분위기나 하는 행동에 차이가 있다 보니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라면 금방 눈치챌 정도라 연기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물론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냥 서로 귀찮아서 안 하는 것이니까.


“같이 가냐?”

“가도 되나? 부른 건 네인 너 하나잖아.”

“상관없지 않을까? 인간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 눈에는 사람처럼 보이니 안 될 것 같은데.”

“사람만 아니면 되나?”

“그러면 수단은 있지. 손 줘.”


어비스가 네인의 손에 자신의 손을 올리더니 어비스의 몸이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손만 남은 상태에서 크기가 점점 줄더니 형태를 바꿔 개미의 모습으로 변했다.

크기도 모습도 온전히 똑같은 개미의 모습이었다.


“이러면 상관없겠지.”

“말은 또 똑바로 들리네. 그래.. 가자.”


네인은 오랜만에 미르터 후작가 저택을 나왔다.





저택에서 수도의 거리를 걷고 황궁으로 가는 길은 평온했다.

몇몇 시선이 느껴졌지만, 네인은 무시했다.

목적이 감시여도 무시했다.

그냥 황궁으로 가는 길이었고 그 밖에 다른 무언가는 하지 않았으니까.

불쾌하진 않았다.

나는 내 목적대로 저 사람들도 각자의 목적대로 하는 일이었었으니까.

그걸 방해할 이유는 목적이 충돌할 때 하면 된다.


‘졸려..’

“길에서 자면 안 된다?”

‘안자.’


한 시간 정도 걸었을까.. 드디어 황궁 앞까지 도착한 네인은 문지기에게 편지를 보여주고 황궁에 입궁했다.


“황궁이 이렇게 작았었나?”

“키가 커서 그렇게 느껴지는 건 아니고?”

“그게 맞긴 할 텐데 그래도 좀 작다고 느껴지네.”


황궁이 변한 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안다. 다만 일전에 왔던 황궁이 커 보였었기에 지금 느껴지는 그 차이는 꽤 생소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성인의 모습으로 왔던 적도 있었기에 더더욱 생소하게 느껴졌다.


‘뭔 차이가 있어서 이러는 건지 원..’


감각의 이질은 문제가 아니다. 당장 목적은 황궁 응접실 중 한곳.

현재 황제가 기다리고 있는 곳에 도달하는 게 목적이니까.


“으아.. 귀찮아.”


네인은 평온하게 발걸음 옮겼다.

조금은 빙빙 돌아가긴 했지만 아무도 마주치는 사람 없이 목적지에 도착하고 네인은 방문을 열었다.


“왔나?”

“제국의 가장 큰 태양을 뵙습니다.”


평소와 다르게 네인은 예의를 갖춰 무릎을 꿇고 황제에게 인사를 건넸다.


“일어서게.”


황제의 말에 따라 네인은 일어섰다.


“공식적인.. 아니지. 네인 레비탄으로서 온 자리라 예의는 차리는군.”

“예.”

“무슨 일로 부른지는 아나?”

“모릅니다.”


모른다는 말에 황제는 한숨을 쉬었다.


“자네는 여타 다른 사람과 참 많이 다르단 말이지.”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우선 자리에 앉게.”


자리에 앉으면서 주변을 살피니 황제의 뒤에서 호위하고 있는 황궁 기사단장 테르도 카이드가 보였다.


“용건부터 말하지. 자네. 1황녀와 약혼할 생각 없나?”

“없습니다.”


뭔가 했더니 예전부터 말하던 얘기였었다.


“거절하겠습니다.”

“어허..! 한 번이라도 제대로 생각해보라니까?”

“제대로 생각한 판단입니다. 누누이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는 누구를 사랑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지난 3년간 쉬었다고 해서 계속 쉬었던 건 아니다. 종종 가서 일을 하기도 했고 덕분에 세상구경 참 많이도 했으니까. 그러다 보니 주고받는 말이 많았고 그중 하나는 결혼문제였다.


“정말로 그리 생각하나?”

“그게 아니더라도 저는 제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카란벨 이상의 철벽은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생각을 잘못했군.”

“죄송합니다.”

“자네가 거기서 죄송하다고 하면 내가 뭐가 되나?”“?”

“.. 됐네. 진짜 용건은 그게 아니었으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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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네인과 인격의 관계 24.03.20 7 0 11쪽
110 에이와 대련 24.03.18 9 0 12쪽
109 행동원리 24.03.13 10 0 11쪽
108 세계 24.03.07 8 0 11쪽
107 불행한 자들의 낙원 24.03.02 8 0 12쪽
106 불광불급 24.02.28 8 0 16쪽
105 네인 이야기(4) 24.02.21 8 0 12쪽
104 네인 이야기(3) 24.02.17 8 0 11쪽
103 네인 이야기(2) 24.02.15 9 0 11쪽
102 네인 이야기 24.02.10 12 0 11쪽
101 검은색 24.01.30 12 0 11쪽
100 침식 24.01.24 11 0 13쪽
99 폭주 전조 24.01.17 12 0 11쪽
98 실험 24.01.15 11 0 12쪽
97 방식과 방법 24.01.09 10 0 13쪽
96 인내의 시간 23.12.31 13 0 11쪽
95 지옥도 23.12.22 8 0 11쪽
94 죄와 속죄 그리고 정의 23.12.15 8 0 12쪽
93 마피아 게임 23.12.07 10 0 13쪽
92 해야할 일 23.12.02 11 0 12쪽
91 테스트 23.11.26 11 0 13쪽
90 인간의 방향 23.11.20 10 0 17쪽
89 신과 인간 그 어딘가 23.11.08 15 0 16쪽
88 원점 23.10.24 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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