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카그코크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입니다 아마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카그코크
작품등록일 :
2023.05.11 21:42
최근연재일 :
2024.05.28 08:00
연재수 :
115 회
조회수 :
7,088
추천수 :
69
글자수 :
604,358

작성
24.02.17 23:00
조회
8
추천
0
글자
11쪽

네인 이야기(3)

DUMMY

네인과 어비스는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으니까.

그저 지금 눈에 담고 싶은 풍경을 보면서 대화를 이어나갈 뿐.


“가족에 관한 얘기. 전생 얘기 조금?”

“조금?”

“사춘기 관한 거. 근데 그거 진짜로 해도 됐냐? 웬만하면 좀 숨기는 게 더 나았을 텐데.”

“그냥. 궁금하잖아. 과연 그들이 나에 대해 자세히 알아버린 상태로 나를 가족으로 받아줄지 아니면 밀어낼지.”

“너는 그 남을 시험하는 태도는 좀 어떻게 좀 해라.”

“하하하.”


네인은 웃었고 어비스는 질색했다.

이후 어비스도 웃었다.

왜 웃었는지 어비스도 모른다. 웃고 싶었고 웃음이 나와 웃었다.


“아주 그냥 능력 때문에 위에 있는 그 태도가 완전히 정착되어 버렸네.”

“어쩔 수 없잖아.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닌데. 그럼 내 멋대로 해?”

“그것도 그러네.”


운명.

정해져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바꿀 수도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는 그것.

네인은 운명에 대한 견해는 중립이다.

필연인 것도 있고 바뀌는 것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네인은 다른 사람에게 개입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이미 잔뜩 개입해 놓고 이런 생각을 가지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이것도 자제하는 편이다.

전 세계의 지성체의 운명에 대해 개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러고 보니 마스터에 올랐을 때 얻은 깨달음이 뭐였어? 웬만한 건 계기가 안 됐을 텐데.”

“공(空).”

“공? 불가의 교리의 공?”


공(空)

불교의 근본 교리 중 하나로 만물에 대한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사상으로 우주 만물은 인연(因緣)에 의하여 일시적으로 생겨나서 곧 없어지고 마는 것이라는 게 기본 설명.


“설마 등한시하던 불교의 가르침에서 깨달음을 얻을 줄은 몰랐는데.”


네인이 불교의 가르침에 대해 등한시 하던 이유는 별거 아니었다.

그냥 안 맞는다.

태극이라는 직관적이고 다양한 관점이 있는데 다른 거 신경 쓸 이유도 없고 불교의 가르침은 네인 개인적으로 워낙 복잡해서 뭐가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고정불변, 정해진 것 없으며 변하지 없는 것이 없다. 어느덧 그 말이 생각나면서 깨닫게 되어버렸더라. 시작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고 끝은 어디까지가 끝인가.”


시작이라 믿었던 것이 시작이 아니었고 끝이라 믿었던 곳이 끝이 아니라면 과연 도(道)는 무엇인가.

그러한 의문에서 네인의 깨달음이 다시 정리가 되었다.

만류출초(萬流出初), 만류귀종(萬流歸終).

모든 것은 하나에서 시작되고 모든 것은 하나로 귀결된다는 네인의 깨달음.

그렇기에 네인은 기본에 집착했고 하나에 집착했었다.

그런 와중 공에 대한 깨달음으로 네인은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처음에 대한 의문, 끝에 대한 의문.

처음이 과연 어디부터 처음이고 끝은 과연 어디까지가 끝인가.

한 명의 인간의 삶에서 처음은 아기인 것인가. 아니면 그보다 더 뒤의 무언가에서부터 시작된 것인가.

사람 인(人)

한문의 저 두 획이 사람 두 명이 서로 기대는 모습을 빗대어 만든 글자 혹은 두 발로 서있는 사람을 표현한 글자라 말한다.

사람에 따라 그 생각이 다르겠지만 네인의 생각은 전자라 생각한다.

아니.. 후자여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혼자 있을 수 없다는 말임과 동시에 두발로 서는 존재라는 의미 두가지가 존재하게 되니까. 어떻게 보면 두 발로 선다는 의미가 혼자라는 의미를 벗어나는 느낌을 주니까.

두 발, 두 명의 인간.

그 시작과 끝은 어디인가.


“내가 내린 결론은 ‘없다’ 야.”


호모 에렉투스나 호모 하빌리스라던가 그런 거는 잘 모른다.

네인이 판단한 건 어디까지나 ‘시작과 끝’.

시작이라고 볼만한 그 지점과 끝이라고 볼만한 지점은 존재하는가.

알 수 없다고 판단할 수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어림짐작.

거기까지 생각하니 앞을 봐도 뒤를 돌아봐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 보였다.

전후좌우 돌아봐도 보이는 끝없는 길.

누군가 걸었고 또 누군가는 걸어갈 길.

내가 걸어갈 수도 있는 그리고 걸어갈 길.

거기서 깨달았다.

시작은 모르고 끝은 정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누군가의 죽음이 누군가의 시작이 되듯.

끝은 늘 끝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발전을 위해 불필요한 것을 쳐내다가 발전을 위해 그 불필요한 것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전진과 후퇴.

목적을 위해 나아가다 좌절할 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좌회전, 우회전.

혼자일 때가 있으면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때가 있다.

길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너무나도 많은 길이 엮여 무한한 황야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길은 여전히 존재했다.

혼자서 그 길을 걷지도 않았다.

모두가 어디선가 만날 길을 나도 걷고 있으니까.


“언제 어디서 시작된 ‘나’는 모르고 그 끝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 끊어진 길은 어디선가 이어지고 이어진 길은 어디선가 끊어질 수도 있고 이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유한하면서도 무한한 굴레일지니.”


사람이 존재하기에 유한하며 사람이 존재하기에 무한한 가능성.

음, 양, 태극, 삼재, 오행, 마, 정.

이것 또한 사람의 길이라면 유한하며 무한한 하나이자 복수의 길.


“사람의 길, 인간도(人間道). 내가 만든 무공의 이름.”

“그렇게 정했냐?”

“뭐. 마나의 색도 검은색을 띠니까. 어울리지 않아?”


세상 모든 색을 섞으면 검은색이 되듯 지금까지의 인간이 걸어왔던 모든 길을 긍정, 받아들이는 네인의 인간도에 알맞은 색이었다.


“잘 어울리네.”

“아! 그러고 보니 문제가 있어.”

“뭔데?”

“무공이 부족해.”

“... 인간도 그거?”

“어. 다른 문제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거고.”


인간도의 만든 깨달음으로 마스터까지 온 것 자체는 좋았지만, 그 인간도를 지탱하는 기본 무공이 너무 부실했다.

현재 네인의 깨달음은 음, 양, 정, 마, 태극, 삼재, 바람.

많다고 볼법하지만, 인간도를 제대로 쓰기에는 부실한 상황 게다가 다른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인간도의 중심이 되는 무학이 하필 마공이야.”


흑마공.

이 세상에서는 천마신공의 기본 무공 되는 마공이지만 생각보다 마공의 색을 띠지 않는다.

천마신공은 신공절학을 논할 때 한 손에 꼽는 무공이기에 비교할 수도 없지만 비교가 되는 부분이 있다.

안전성과 응용성.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에서만큼은 천마신공보다 우위라 판단해 볼 법했다.

신공절학과 비교가 가능한 기본공이라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마나가 쌓이는 속도는 기본적인 삼재심법과 비교해서 좀 더 우위인 수준. 근데 안전과 응용성을 생각하면 어쩌면 흑마공은 천마신공하나에 국한된 기본공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 부분에서 흑마공을 인간도의 중심 무학으로 채택했지만 여기서 큰 문제는 흑마공으로 무학의 중심을 잡을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무학을 채울 무공 자체가 부족했다.


“천마신공을 얻던가 기본 무공을 많이 익히거나. 둘 중 하나만 해결하면 확실히 신공절학이라 부를만한 심공이 될 것 같은데..”

“그 기본 무학의 문제 당장 해결 방법이 있잖아.”

“기억에 관해서는 사적으로 쓰고 싶지 않은데.”


기억.

네인에게는 두 종류의 기억이 있다.

네인 본인의 기억과 타인의 기억.

타인의 기억을 갖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네인 개인의 호기심 그리고 일종의 대가로 타인의 기억을 받아들였다.

개수는 일일이 따지기 힘들 정도로 많았고 개중 무공에 관한 기억은 섞어내도 몇만에서 몇십만은 있을 것이다.


“급한 건 아니라서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아.”

“안 하면 어떻게 되는데.”

“주화입마로 죽어.”

“... 어떻게 보면 너다운 대답이네.”


육체적인 죽음은 더 이상 네인에게 의미가 없었다.


“물론 아무것도 안하고 그대로 있을 경우야. 조절하고 배우고 그러다보면 나아질거고.”

“완성되면 어떨 것 같냐.”

“몰라. 지평선 너머를 볼수 있는 인간은 없으니까.”


아직 그만큼 인간도는 멀고도 멀었다.


“터무니없는 걸 만들었구나.”

“만든 건지 발견한 건지 모르겠다.”



그 뒤로 네인과 어비스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이제는 볼 수 없는 풍경을 눈에 담는 일에만 열중할 뿐.

밤하늘에 높게 들어선 건물의 빛이 환할 때, 그 빛이 점점 사라질 때 그리고 하늘에서 햇빛이 들기 시작할 때.

그때가 돼서야 어비스가 입을 열었다.


“이제 슬슬 갈까. 우리는 인식 못하게 해놓긴 했지만, 사람은 가급적이면 마주치지 않는 편이 좋으니까.”

“그러네.”

“그러니까 문 열어. 가자.”


네인이 손을 뻗어 미는 시늉을 하자 그림같이 문이 열렸다.


“먼저 간다.”


어비스가 먼저 문 너머로 떠났고 네인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이제 이곳에 오는 일은 없겠네.’


한번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아마 한참 뒤의 일일 것이다.

네인은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오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같이 들었다.





-----





한바탕 소란스러웠던 테스트 이후.

레비탄 백작가의 사람들이 네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마스터라는 경지에 도달한 것도 이유라면 이유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일전의 테스트에서 보인 네인의 기괴함과 어비스의 힘 때문이었다.

웃는 얼굴로 비명을 지르는 검술은 기사들 마음 한켠에 어떠한 이물감을 느끼게 했고 어비스가 보인 힘은 그 자체만으로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네인과 어비스는 그런 시선을 무시한 채로 지냈다.

대화를 하기에는 본 것이 있으니 믿기 힘들 것이고 이건 대부분 시간이 약이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걱정은 따로 있다.

있었다.


“... 나는 왜 여기 있는 걸까.”


당분간 황제한테 일을 안 받는다고 선언하고 쉬려고 할 때 백작가 영지에는 일이 불어닥쳤다.


‘서류의 산이 쌓이는군.’


서류를 한 뭉텅이 해치우면 두 뭉텅이가 늘어난다.

와! 일이 복사가 된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산수다.

일이 많아지니 실수가 많아지고 실수가 많아지니 일이 더 늘어난다.

특히 계산에서 실수하는 사람이 많아 이 뒤치다꺼리를 네인 혼자서 하고 있었다.


‘계산기.. 계산기라도 만들어야하나.’


최소한 주판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생각했지만 그것보다는 계산기 쪽이 더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계산기 만들고 난 뒤 후폭풍?

아~ 몰라.


“미안하구나. 이럴 때에 너만 한 인재가 없다 보니.”

“괜찮아요.”


방의 가장 안쪽에서 네인과 같이 서류의 산과 싸움하는 레비탄 백작.


‘어째 백작가에 있으면 서류와 씨름하는 일이 많네.’


머리로는 딴 생각을 하고 있지만 눈과 손은 서류를 해결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나는 왜...”


그리고 네인의 앞자리에는 어비스가 있었다.

레비탄 백작이 네인을 불러 서류작업을 시켰고 네인은 어비스를 불러 동귀어진을 시전해 지금 방안에 세 명의 남자가 서류를 보고 있었다.


“이야~ 그래도 세 명이라고 빠르긴 하네.”


평범한 사람 20명이 해야 하는 일을 세 명이 하니 죽을 맛이지만 그럭저럭 괜찮다.


“네인. 인도 불러서 서류작업 시키자.”

“지금쯤 보고 튀었겠지.”

“젠장.”


평범한 오후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인간입니다 아마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비정기 연재로 전환하려고 합니다. 23.07.23 36 0 -
공지 잠시 휴재에 들어가겠습니다. 23.07.12 29 0 -
115 제안 24.05.28 4 0 11쪽
114 무지 24.05.24 6 0 11쪽
113 앞으로의 일 24.04.01 6 0 11쪽
112 이해 관계도 24.03.22 7 0 11쪽
111 네인과 인격의 관계 24.03.20 7 0 11쪽
110 에이와 대련 24.03.18 9 0 12쪽
109 행동원리 24.03.13 10 0 11쪽
108 세계 24.03.07 8 0 11쪽
107 불행한 자들의 낙원 24.03.02 9 0 12쪽
106 불광불급 24.02.28 9 0 16쪽
105 네인 이야기(4) 24.02.21 8 0 12쪽
» 네인 이야기(3) 24.02.17 9 0 11쪽
103 네인 이야기(2) 24.02.15 9 0 11쪽
102 네인 이야기 24.02.10 13 0 11쪽
101 검은색 24.01.30 13 0 11쪽
100 침식 24.01.24 11 0 13쪽
99 폭주 전조 24.01.17 12 0 11쪽
98 실험 24.01.15 11 0 12쪽
97 방식과 방법 24.01.09 10 0 13쪽
96 인내의 시간 23.12.31 14 0 11쪽
95 지옥도 23.12.22 9 0 11쪽
94 죄와 속죄 그리고 정의 23.12.15 8 0 12쪽
93 마피아 게임 23.12.07 11 0 13쪽
92 해야할 일 23.12.02 11 0 12쪽
91 테스트 23.11.26 12 0 13쪽
90 인간의 방향 23.11.20 10 0 17쪽
89 신과 인간 그 어딘가 23.11.08 15 0 16쪽
88 원점 23.10.24 9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