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카그코크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입니다 아마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카그코크
작품등록일 :
2023.05.11 21:42
최근연재일 :
2024.05.28 08:00
연재수 :
115 회
조회수 :
7,081
추천수 :
69
글자수 :
604,358

작성
24.05.24 20:00
조회
5
추천
0
글자
11쪽

무지

DUMMY

네인의 몸을 움직이는 드래곤은 침대에 벗어나 홀로 일어섰다.


“흠.. 조금 움직이기 불편하군.”

“인간의 몸은 어색하나?”

“평소에 드래곤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까. 인간의 모습으로 오래 있지는 않는다. 애초에 남의 몸인 것도 이유라면 이유겠지.”


드래곤은 한 걸음 내딛자 곧바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휘청거리는 드래곤을 부축하려고 어비스가 손을 잡자 드래곤은 반사적으로 어비스의 손을 뿌리치고 그대로 넘어졌다.


“... 아.”

“미안하군.”

“아니야. 그건 어쩔 수 없는 반응이었으니까.”


드래곤은 왜 자신이 반사적으로 어비스의 손을 뿌리쳤는지 의문을 가졌지만, 어비스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아무래도 장갑이라도 껴야 하나?”

“신체접촉에 반응하는 건가?”

“보통은? 근데 옷 위로 만져도 그런 반응이 나오긴 할 거야. 워낙 강렬한 감각이다 보니.”


어비스는 얼얼한 손을 털고 드래곤을 바라봤다.

몸을 어떻게 움직일지 가늠하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몸 여기저기 꿈틀거렸다.


“얼마나 걸릴 것 같아?”

“곧. 오래 안 걸릴 것이다.”


조금씩 천천히 몸을 움직이는 드래곤은 어색한 움직임으로 스스로 일어서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처음 일어서기 시작하는 아기 같은 모양새네.”

“비슷하지. 이 몸으로 움직이는 건 처음이니까.”


드래곤은 천천히 몇 걸음 걸어가더니 곧바로 어색함 없는 걸음걸이를 보였다.


“이 정도면 충분해 보이는군.”

“그래 보이네.”


당장은 뛸 수는 없겠지만 금방 적응하면 문제는 없을 것이다.


“계단을 걸어 내려가는 건 가능해?”

“당장은 무리지만 몇 걸음 걷다 보면 가능할 것 같군.”

“그럼, 조금 걷자.”


미르터 후작가의 저택은 넓다.

네인이 배정받은 방이 계단에 가장 먼 복도 끝방이니 그 정도면 충분히 몸에 익숙해질 것이다.


“흑마법사의 말을 들었지만 정말 신기한 몸이군.”

“흑마법사?”

“네인의 정신에 많은 영혼이 있지. 사람이었다면 미쳐버렸을 정도의 숫자가.”

“아~ 기억.”

“자네와 네인은 영혼을 기억이라 칭하는군.”

“틀린 말은 아니니까.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훨씬 편하거든.”


벽.

드래곤도 보았고 흑마법사도 보았고 네인이 만든 정신세계에 도달한 모든 이들이 한번은 보았던 거대한 벽.

벽을 통과하고 정신세계에 도착했을 때 몸 전체에 하나의 막이 씌워지는 걸 느꼈다.

아마 그 벽과 통과했을 때 씌워진 막이 네인과 그 외 영혼들을 구별하는 요소일 것이다.


“나는 영혼이든 기억이든 편한 대로 부르겠다.”

“마음대로.”


어비스와 드래곤은 중앙 계단을 통해 필가논 미르터의 방으로 향했다.

도중에 마주친 이들이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흠...”

“역시 들켰나?”


드래곤의 존재를 눈치채고 경계 한 필가논 미르터 때문이었다.


“힘으로 뚫어도 되나?”

“그 몸으로 할 수는 있고?”

“자네는 자네 본체의 몸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군.”

“뭐가?”

“본체의 몸이 얼마나 신비롭고 대단한 육체인지.”


드래곤은 필가논 미르터가 경계의 의미로 뿜어낸 마나에 아무런 저항을 느끼지 못하듯 편안하게 나아갔다.

필가논 미르터는 마나로는 소용이 없다는 사실은 직시하자 결계를 펼쳤으나 이마저도 아무런 저항 없이 드래곤은 통과했다.


“대단한 마법사야. 강대한 마나를 몸에 지니고 있음에도 그걸 허투루 사용하는 일이 없어. 마법의 종주라 불리는 드래곤도 이 정도로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건 장로급 그 이상에서도 몇 없는데 말이지.”


드래곤은 이 정도 수준으로 마나를 다루는 몇몇 존재를 떠올렸지만, 현실에서는 이미 자연의 일부분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 외에는 네인의 정신세계에 거주하는 거주민들이 조금 떠올랐다. 다만 그들과 목적지에 있는 마법사와는 엄청난 시간 간극이 있으니 재능으로 따지면 이쪽이 한 수 위라 생각된다.


똑똑!


“들어가도 되겠나?”


필가논 미르터는 대답 대신 마나를 거뒀다.

외인을 거부하는 듯한 마나가 사라지고 드래곤은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처음 보인 것은 한줄기 섬광.

그 섬광을 인지한 순간 몸을 데우는 열을 느꼈지만, 드래곤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저택을 건드리지 않는 섬세한 마법에 감탄이 나왔다.


“대단하군. 이 정도 위력에 이 정도 조절. 타고난 감각인가?”


강대한 마나를 가지고 섬세한 조절을 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특히 공격에 조절을 겸하는 것은 낭비에 가까웠으니까.

인간의 마법의 경우 틀에 정해져 있는 술식이 있다고 했다.

사용한 마나의 양에 따라 규모는 다르지만, 정형화된 술식을 사용해 정해진 규모의 마법을 사용한다.

드래곤의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정리라 생각했지만, 인간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마법을 정했다.

그것은 타인이 아닌 자신이 자신을 해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제약과도 같아 보였다.

인간은 약하다.

마나를 담은 육체는 단련이라는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 이상 나약하고 또한 마나를 담는 그릇으로도 형편없는 효율을 보인다.


‘공예품? 예술품? 원석이 더 가까우려나?’


인간이라는 종족의 비효율에 대한 드래곤의 질문에 네인은 이러한 대답을 내놨다.

필요하면 붙이고 필요 없는 건 떨쳐낸다.

완성 혹은 완성에 가까운 무언가에 도달하기 위한 작업.

그렇게 도달한 1% 혹은 0.1%는 구태여 사람이 아니더라도 매료시키는 무언가가 있다.

붓을 잡지 않은 사람이 어떤 그림을 보고 붓을 잡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어떤 조각을 보고 정과 망치를 잡는 조각사가 있듯이.

어떤 결과물을 보고 사람은 매료되고 빠져들고 그게 시작으로 이어진다.


“대단해.”


시작은 인간 사회가 정한 규칙으로 시작했으나 그 끝은 규칙을 벗어나 자유를 보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결과물은 아직 결과가 아니었다.

더 나은 결과물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살을 붙이고 불필요한 것을 쳐낸다.

그래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이 정도 마법이면 구태여 용언을 연구할 필요가 없을 텐데.”


눈앞의 마법사는 도대체 자신에게 무엇을 더 붙이려고 용언을 연구하는 걸까.


“대답해 보게나 인간을 초월한 마법사야. 너는 무엇을 얻기 위해 용언을 연구하려는 거냐.”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손자란 놈은 몸을 험하게 쓰는군.”


질문과 연관 없는 대답이었지만 드래곤은 긍정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생각보다 더 험하게 쓰는 편이기도 하지.”

“네인에 대해 잘 아나?”

“대답을 들으려면 이전에 했던 내 질문에 먼저 답하는 게 순서네.”

“모르기 때문이다.”


드래곤은 떠올렸다.

네인의 정신세계에서 자신과 네인의 대화에서 네인이 용언에 대해 질문했을 때. 드래곤이 하나 질문했었다.


‘용언이라면 이미 알고 있지 않나? 구태여 나에게 질문하는 이유는 뭐지?’


네인은 정신세계에 거주하는 주민의 기억을 전부 기억하고 있다.

드래곤의 기억에는 용언에 대한 정보도 있으니 네인도 용언에 대해 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런 네인이 드래곤에게 용언에 대해 질문하는 행동은 드래곤으로써는 이해가 되지 않는 행위였다.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모르니까.’


지식에는 한계가 없다.

알고 있다고 정해놓는 순간 더 나아갈 지식의 길은 무지로써 남는다.

알고 있기 때문에 연구하는 것이고 모르기 때문에 그것은 탐구하는 것이다.

세상은 변한다.

세상이 변하기 때문에 발전하고 발전하는 것은 비단 생명이나 기술 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언어에도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는 말은 딱히 쓰기 싫은데 뭐.. 그때는 지금과 비교해서 엄청 먼 과거니까요. 궁금하잖아요? 과연 용언은 바뀌지 않고 그대로 있을지 혹은 바뀐 부분이 있을지. 그리고 과연 인간이 바꿀 수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시작된 이 연구는 네인의 여러 가설로써 계속해서 머릿속에 쌓이고 있었다.

정작 네인은 잡생각이라 넘기지만 하나하나 가능성이 있는 것이고 그 지식은 네인의 정신세계에 거주하는 드래곤에게도 전해져 있다.


“충분하군.”


시작은 늘 무지다.

무지(無知)이며 무지(無地)다.

알지 못하며 기반도 없는 시작.


‘모두가 그렇게 시작했지.’


시작은 늘 무지에서 비롯된다.

그걸 모르는 이유는 시작의 환경이 그 무지를 해소해 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른다.

모르는 걸 알려주며 가르쳐주는 환경이 있기 때문에 사람은 이런 시작을 모른다.


“네인에 대해 잘 아냐고 물었나? 그건 나를 비롯한 다른 네인안의 거주민이라면 같은 대답을 할 테지.”


눈앞의 마법사는 이런 무지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는 모양이다.


“안다. 그리고 모르지.”


세상은 여전히 무지하다. 그리고 무지할 것이다.

변하는 세상은 여전히 살아가는 이들을 무지하게 만드니까.

그러니 살아가는 이들은 지식을 원한다.


“뜬금없겠지만 용언에 대해 알려주지.”


무지가 앎으로써 변하니 지식은 곧 변화를 의미했다.

모두가 그걸 당연하게 알아 오히려 모르고 있었을 뿐.





다시 정신을 차린 네인은 자신이 아직 침대 위라는 것에 의문을 가졌다.


“.. 어쩌다가 다시 누워있는 거지.”

“일어났느냐.”

“오셨어요?”

“계속 같이 있었지.”


침대 옆에 의자를 놓고 앉아있는 필가논 미르터가 보였다.


“얘기는 잘 끝났나요? 자고 있어서 잘 모르겠는데.”

“잠을 안 잔다고 들었는데.”

“안 자도 생활할 수 있기는 한데. 이제는 자고 싶을 때 그냥 자요.”


정신을 잃었을 때 2번도 있고 어비스도 있으니 네인은 그냥 잠을 자는 걸 선택한다.

정신세계에 가는 것도 좋겠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혼자만의 시간은 네인에게 소중하기에 아무것도 안 한다.

가끔 남들 잘 때 자는 게 나으려나 생각하지만, 아직 잠에 대해 애매한 입장이었다.

잠이 필요하던 육체라면 잠이 우선이었지만 지금은 굳이 필요한 육체가 아니었으니까.


“용언에 대해 혼자서 연구하고 있었던 모양이구나.”

“연구는 아니고 그냥 잡 생각 좀 했어요.”


그저 이러면 어땠을까 저러면 어땠을까. 여러 가설과 다른 가설을 따와 혼합한 결과물이 어떨지 그냥 생각만 종종 했을 뿐이다.


“네인. 너는 뭘 하려는 거냐.”

“.. 갑자기요?”

“예전에는 알고 있다고 생각도 했었고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근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상하다고 할법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야.”


네인은 남을 위해 살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기 자신을 위해 살고 있다고 보기 힘들었다.


“너는 예전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했었지.”

“네.”

“그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느냐.”

“네.”


아무것도 라는 말은 정해지지 않은 무언가다.

역설적이게도 네인에게 아무것도라는 말은 자기 자신처럼 들리는 말이기도 했다.

정해지지 않았으며 특별한 것도 없는.

아마 네인의 안의 네인은 그런 식으로 정해져 있을 것이다.

이마저도 바뀔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나는 너를 모르겠구나.”


필가논 미르터는 의자를 원래대로 돌려놓고 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살면서 과연 네인을 진짜로 이해하는 날이 올까? 하고.

평생 그런 날이 안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 일이시지?”


당사자인 네인은 그저 평온하기만 한 날이었고 주변인은 그 어느 날보다 혼란스러운 날이었다.


작가의말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인간입니다 아마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비정기 연재로 전환하려고 합니다. 23.07.23 36 0 -
공지 잠시 휴재에 들어가겠습니다. 23.07.12 29 0 -
115 제안 24.05.28 4 0 11쪽
» 무지 24.05.24 6 0 11쪽
113 앞으로의 일 24.04.01 6 0 11쪽
112 이해 관계도 24.03.22 6 0 11쪽
111 네인과 인격의 관계 24.03.20 7 0 11쪽
110 에이와 대련 24.03.18 9 0 12쪽
109 행동원리 24.03.13 10 0 11쪽
108 세계 24.03.07 8 0 11쪽
107 불행한 자들의 낙원 24.03.02 9 0 12쪽
106 불광불급 24.02.28 9 0 16쪽
105 네인 이야기(4) 24.02.21 8 0 12쪽
104 네인 이야기(3) 24.02.17 8 0 11쪽
103 네인 이야기(2) 24.02.15 9 0 11쪽
102 네인 이야기 24.02.10 12 0 11쪽
101 검은색 24.01.30 12 0 11쪽
100 침식 24.01.24 11 0 13쪽
99 폭주 전조 24.01.17 12 0 11쪽
98 실험 24.01.15 11 0 12쪽
97 방식과 방법 24.01.09 10 0 13쪽
96 인내의 시간 23.12.31 14 0 11쪽
95 지옥도 23.12.22 9 0 11쪽
94 죄와 속죄 그리고 정의 23.12.15 8 0 12쪽
93 마피아 게임 23.12.07 10 0 13쪽
92 해야할 일 23.12.02 11 0 12쪽
91 테스트 23.11.26 12 0 13쪽
90 인간의 방향 23.11.20 10 0 17쪽
89 신과 인간 그 어딘가 23.11.08 15 0 16쪽
88 원점 23.10.24 9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