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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그코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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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그코크
작품등록일 :
2023.05.11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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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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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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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식

DUMMY

무언가가 끊기는 소리와 함께 네인은 눈물을 흘렸다.


“하! 하하! 하하하하하하!”


그리고 더는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하하하하하하!”


네인은 다시 검을 잡았다.

손에서부터 검까지 검은 오러가 불타오르듯 피어올랐다.


쾅!


하얀 오러와 검은 오러가 부딪혔다.

이질적이게도 어비스가 소환한 분신이 하얀 오러를 뿜어냈고 네인은 검은 오러를 뿜어냈다.

어비스가 소환하는 분신은 대상의 트라우마, 부정적인 사념의 자기 자신이다. 하지만 현재 네인의 분신이 사용하는 오러는 인이 메모리한테서 받아온 정공의 심법.

네인은 마공의 심법, 서로의 상황이 바뀌었다고 생각할 상황이었다.


“하하하하하하!”


네인이 웃는다. 하지만 연무장 밖에서 네인을 바라보는 이들 모두 네인이 웃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화려한 오러의 난무 그 속에 네인의 입은 활짝 웃고 있으며 눈은 여전히 검을 쫓고 있지만 그 눈에서 흐르는 물, 그리고 점점 기괴해지는 웃음소리.

연무장에서 분신과 검을 맞대는 네인의 저 표정을 보면 저건 웃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누가 봐도 저건 울고 있는 것이다.

웃음은 비명이고.

네인이 지금 사용하는 이전과 다른 마구잡이식 검술은 마치 호소하는 것 같았다.

발을 내딛는 방식.

자세.

힘의 배분.

모든게 엉망이었다.

1, 2, 3단계에서 보여주던 간결하고 깔끔하게 보인 그 검술이 아닌.

마치 검을 처음 잡은 어린아이가 보여주는 검술과 같은 모습.

그럼에도 그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건 현재의 네인은 지금까지의 네인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저게 네인 도련님이라고?”


기사 한 명이 연무장 위의 네인을 보며 중얼거렸다.

연무장에서 날뛰는 오러의 충돌 소리로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았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연무장에서 검은 오러를 사용하는 사람이 정말 네인이 맞는 건가.

부정(不正).

바르지 않은 것.

그들이 바라고 또 봐온 네인을 부정하는 광경이 그들의 눈앞에 펼쳐졌다.

네인은 울지 않았다.

화를 내지도 않았고.

생각이 많았다.


“하하하하하!”


웃는다.

눈앞의 네인은 웃는 것 외에 그들이 봐온 네인과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울고, 화를 내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치 그것만이 전부인 듯 행동했다.

반면 네인을 상대하는 분신은 고요했다.

침착하고, 냉정하고, 네인이 보여주는 행동에 대해 생각이 많아 보였다.

그리고 웃지 않았다.

비슷하고 또 다른 두 네인에 대해서 그들은 더 이상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판단할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검은 오러를 사용하는 네인은 상당한 무리를 하고 있다는 것.


“밀린다.”


네인이 밀리고 있다.

검술에서도 오러에서도 판단 능력에 대해서도 전부 밀리고 있다.

화려하게 타오르던 검은 오러도 조금씩 화력이 줄어들고 하얀 오러가 조금씩 연무장을 잠식해 나갔다.


“하.. 하핫!”


네인은 아직도 웃고 있다.

눈물은 여전히 네인의 눈에서 흐르고 검은 오러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불리한 상황에서 네인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여전히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하하하하하!”

“부정.”


부정이라는 말소리가 들린 순간 네인은 웃음소리를 멈췄다.


“이제 그만 웃을 때도 됐지 않았냐? 네인.”


눈앞의 분신이 입을 열어 목소리로 네인에게 말을 걸었다.

그 목소리는 다른 사람도 들을 수 있었다.


“뭐가 즐거워서 웃는 거냐. 뭐가 신나서 웃는 거야? 그런 거 없잖아.”


네인은 그저 웃을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웃지 마. 너 그러다 살아. 죽고 싶은 녀석이 살고 싶어 하면 어떡해.”


분신의 말은 연무장 밖 기사들에게 똑똑히 들렸다. 더없이 선명한 목소리로.


“가족이 거슬려? 친구가 거슬려? 아니면... 인간 자체가 거슬려? 다 죽여줄까? 나라면 할 수 있어. 내가 너의 죽음의 장애물을 다 죽여줄게. 네 죽음을 방해하는 건 전부 없애줄게. 그러니까 죽자. 우리가 바래왔던 거잖아.”


파스스..


네인의 검은 오러가 꺼졌다.


“자 뭐부터 죽여줄까.”

“말이.. 너무 많은데.”


네인의 얼굴이 웃는 얼굴에서 무표정으로 변했다.


“너 누구야?”

“뭐?”

“이것도 계획인가. 아니면 뭐가 틀어진 걸까.”

“무슨 소리야. 나는...!”

“나겠지. 그것도 상당히 애매한 나.”


네인의 머릿속은 고요했다.

가득 찬 무언가가 빠져나간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활활 타오르던 불이 전소되어 남은 재와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것과 동시에 모든 게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분.

그래서 더 확신이 들었다.

저건 ‘애매한 나’다.


“미안하지만 나는 내 극과 극 정도는 잘 알아.”


이기적인 나.

이타적인 나.

이렇게 양극의 내가 존재한다.

이 양극이 서로를 당기고 밀치며 나를 유지하고 지탱한다.

마치 태극과도 같았다.


“아 미안, 말실수했네. 설마 나도 내 자신이 완전히 중립이라고 착각했을 줄은 몰랐으니까.”


이기심과 이타심이 완전한 평행을 이룰 거라 생각은 안 했지만, 대척점을 보니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나는 이타심 쪽으로 조금 기울었고 저쪽은 이기심으로 조금 기울어있는 상태라는 걸.


“네인.”

“왜?”

“너는 나를 부정할 건가?”

“아니? 내가 왜.”

“나는 너를 부정하고 싶다.”

“아... 그래? 그러던가.”

“너를 부정해서 나는 내가 진짜가 되겠다.”


분신의 하얀 오러가 검에 압축되기 시작했다.


“나는 네가 되겠다.”


오러 블레이드.

무협에서는 검강이라 불리는 마스터, 화경이라는 경지에 도달한 자들이 쓸 수 있는 비기 아닌 비기.

근데 나 아직 마스터 아닌데. 쟨 왜 저거 쓰냐.

설마 잠깐 남은 벽 넘어버린 건가?

큰일 났네.


스걱-


오러 블레이드가 일으킨 검품이 연무장을 두 동강 냈다.

연무장 바깥은 걱정할 필요 없다. 어비스가 있으니까.

오러 블레이드 정도로 어비스의 힘은 벨 수가 없으니까.


“큰일 났네. 싸우기 싫은데.”


대화가 가능한 것 같아서 재미있어질 것 같았는데 결국은 싸워야 하는 게 아쉬웠다.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지만.’


답답하겠지. 큰 힘을 가지고 그것을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큰 힘을 다루는 데 중요한 건 힘이 아닌 그것을 사용하는 의도와 의지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네인은 전지전능, 시스템을 사용하기를 꺼려했다.

지금보다 시스템을 더 이기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더 이타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네인은 그러지 않았다.

스스로에게도 불만이 있었지만, 네인은 그걸 억눌렀다.

눈앞의 분신은 그러지 않았고 지금 본체가 되려고 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저 녀석 진짜 내 분신이 맞아? 아니 그것보다...’


왜 저럴까.

왜 저렇게 본체가 되려고 하는 걸까.

네인은 분신이 휘두르는 검을 한 끗 차이로 피하면서 생각했다.


‘왜 저 녀석은 분신으로 남는 게 아닌 본체로 남으려는 걸까.’


신이라도 될 생각인가, 아니면 인간으로 살수라도 있나.

네인은 둘 다 안된다.

신이 되려고 해도 정이 많고 인간으로 살기에는 네인은 본인이 무능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시스템은 있어야 한다.

네인은 이 능력으로 하고 싶은 일이 아주 많았으니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시스템에 의존을 많이 하구나.’


네인은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검에 손을 댔다.


쾅!


오러 블레이드와 손이 부딪히면서 생긴 충격음. 그것보다 밖은 다른 의미로 경악한 상태였다.

맨손으로 오러 블레이드를 막았다.


“이상하네. 너는 시스템을 못 쓰나?”


대답보다 검의 압박이 더 세진 걸로 네인은 깨달았다.


“못쓰는구나. 마법도 못 쓰나?”


분신은 검을 거두고 이번에는 목을 노렸다.

네인은 목을 노리는 검의 궤적을 보았지만 구태여 막지 않았다.


카가각...


검이 닿아도 상처 하나 줄 수 없는 걸 알았으니까.


“마법도 못 쓰는구나.”

“X새끼...”

“어 맞아.”


네인은 분신의 반대편으로 이동한 뒤 생각했다.


‘왜 저렇게 처절한 걸까. 왜 저렇게 본체가 되려는 걸까. 그래서 이루고픈 무언가라도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라는 기억에 한해서 저럴 이유는 없다.

전생을 포함한 네인의 인생에서 처절했던 적도 없고 무언가 간절히 원한 적도 없었으니까.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바람 흘러가듯 살았다.

인생의 호불호도 크게 없었고 악의도 대의도 없다 보니 크게 뭘 하지 않았으니까.

근데 눈앞의 분신은 달랐다.

처절했다.

악에 받치듯 사는 게 눈에 보였고 매 순간 온 힘을 다하는 게 눈에 보였다.

눈부셨다.

그렇기에 의문이 들었다.

저것은 과연 내가 맞는가.

내 분신이었던 존재가 이제는 분신이 아니게 되었다.

어째서, 어떻게, 왜.

세 개의 의문과 함께 퍼져가는 가정들, 그리고 그 속에서 그나마 납득 가능한 하나의 합당한 추론.

네인은 검을 들었다.

자신에게 향하는 검을 보고 또 피하고 자세를 잡았다.


“내가 본체가 될 거야.”

“미안. 그건 안될 것 같아.”


검기와 검강이 부딪혔다.

보통은 검강이 검기를 잘라내고 검을 통째로 잘라냈겠지만, 이번에는 좀 다르다.


카가각-


네인의 검은 드래곤의 뼈로 만든 것이고 그 뼈의 주인은 에이다.

검강으로는 아무런 흠도 나지 않는다.

네인은 분신의 검술을 쳐다봤다.

처음 봤지만, 기억에 있는 검술. 그것도 상당히 고절한 검술이다.


‘설마 제왕검형(帝王劍形)을 이렇게 볼 줄은 몰랐는데.’


제왕검형(帝王劍形)

무협지 단골 주인공 가문 남궁세가에서 가문의 비기 하면 나오는 검술이다.

진짜 단골은 분류로는 천마인 주인공이 많지만 시작부터 천마는 아니니까.

개인적으로 남궁세가 무공 중 네인의 취향은 제왕검형보다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이지만 이쪽은 나름대로 무협지 오의라 부릴 검법이다.

네인의 검에 붉은 오러가 피어올랐다.


삼재태극

극양

일하하지(日下夏至)


불타오르는 붉은 오러와 주변을 짓누르는 기운이 충돌한다.

불처럼 타오르는 검기와 굳건한 검강이 부딪힌다.

화려하고도 서로를 죽일듯한 기세의 연무장의 분위기에 연무장 밖의 사람들은 네인과 그 분신에게 집중했다.


“슬슬 시동 걸어볼까.”


시동을 걸어본다는 네인의 말에 검에서 붉은 오러와 검은색 오러가 부딪히기 시작했다. 붉은 오러와 검은 오러가 서로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부딪히고 더 타오르고 이내 뒤섞인다.

붉은 부분, 검은 부분, 검붉은 부분.

하나의 오러에 세가지 색이 서로 공존한다.


삼재태극-마(魔)

극양극마

일하하지-천한(日下夏至-天旱)


천한은 가뭄이라는 뜻으로 여름에 가장 더울 때 비가 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세상은 지옥이 된다.

땅이 마르면 식물이 마르고 식물이 마르는 땅은 더 이상 생물이 살 수 없는 땅이 된다.

메마른다.

하늘이, 땅이 생명이.

그리고 그 안에 포함된 마나가.

네인을 짓누르던 압력은 검붉은 오러의 기세가 강해지면서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런 사술을...!”

“거 무협지 조연처럼 말하시네!”


검기와 검강.

본래 대등하면 안 되는 싸움이 성립되고 있다.

무기빨이 이래서 좋은 거다.


“슬슬 템포를 바꿔봐야 하나.”


수십의 합이 오가고 제왕검형의 짓누르는 기운이 서서히 줄어든다.

천한의 의념이 담긴 오러가 그 기세를 깎고 이내 상대의 영역을 침범한다.

제왕검형이 주변을 장악하는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기세는 어디까지나 시전자가 마나를 방출할 때만 유효하다.

짓누르는 힘을 유효할 정도로 방출하는 건 소모가 큰 건 당연하고 비효율적이다. 상식적으로는 오래 유지하기 힘들다.

네인의 천한의 오러의 경우 기본적인 방식은 방출이라는 건 똑같지만 유지 방식이 달랐다. 오러의 유지에 필요한 건 자신의 마나가 아닌 마나 그 자체.

보통의 불처럼 불에 탈 물질(마나)만 있으면 오러는 유지되는 방식이다.

어떻게 되는지 지금의 네인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가능할 것 같으니까 한 거다.


“소용없다!”


갑자기 연무장에 들이닥친 압력에 네인이 흩뿌리던 오러가 지워졌다.


“어떻게 이런 사술을 사용한 건지 모르겠지만 본좌에게는 소용없는 것이다.”

“... 결국 그렇게 됐나.”


완전히 무협지 고수의 말투 그리고 분위기. 진행상 그렇게 될 것 같더니 결국에는 기억에 먹혀버린 모양이다.


“그나저나 사술이라... 그러네 그럼, 이번엔 다른 방식으로 가볼까?”


네인의 검에 깃든 검붉은 오러가 이번에는 푸른색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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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행동원리 24.03.13 11 0 11쪽
108 세계 24.03.07 9 0 11쪽
107 불행한 자들의 낙원 24.03.02 9 0 12쪽
106 불광불급 24.02.28 9 0 16쪽
105 네인 이야기(4) 24.02.21 8 0 12쪽
104 네인 이야기(3) 24.02.17 9 0 11쪽
103 네인 이야기(2) 24.02.15 10 0 11쪽
102 네인 이야기 24.02.10 13 0 11쪽
101 검은색 24.01.30 13 0 11쪽
» 침식 24.01.24 12 0 13쪽
99 폭주 전조 24.01.17 12 0 11쪽
98 실험 24.01.15 12 0 12쪽
97 방식과 방법 24.01.09 10 0 13쪽
96 인내의 시간 23.12.31 14 0 11쪽
95 지옥도 23.12.22 9 0 11쪽
94 죄와 속죄 그리고 정의 23.12.15 8 0 12쪽
93 마피아 게임 23.12.07 11 0 13쪽
92 해야할 일 23.12.02 11 0 12쪽
91 테스트 23.11.26 12 0 13쪽
90 인간의 방향 23.11.20 11 0 17쪽
89 신과 인간 그 어딘가 23.11.08 15 0 16쪽
88 원점 23.10.24 1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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