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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그코크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입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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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그코크
작품등록일 :
2023.05.11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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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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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

DUMMY

문을 통과한 네인이 도착한 곳은 마수의 산맥 정상이었다.

왜 이곳에 도착했냐 하면 추운 곳이기도 하고 경치가 좋기 때문에 네인은 인을 통해 가끔 들른다.


“흠.. 조금 너무했나? 어떻게 생각해? 인.”

“너무하긴 했지. 애초에 대화의 가능성 자체를 차단해 버렸으니까. 불효자, 아니 불손자라는 말이 어울리겠군.”

“와.. 불손자라는 단어 조합 진짜 안 어울린다.”


뭐.. 이번건 네인도 너무했다는 생각은 한다.

저자세로 갔다면 분명 대화가 갔겠지.

근데 그러면 한 가지 문제가 생긴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떠먹여 줘야 하나?’


리미트 다운이라는 술식을 그저 하나의 ‘구조’로 파악한 이들은 이게 딱히 별 볼 일 없을 거라 생각할거다. 그리고 대부분이 그러한 ‘구조’로 인식했을 거고. 아.. 한명은 좀 달라 보였는데.


“인. 외할아버지는?”


네인은 친할아버지의 존재를 파악해서 이제는 인격들과의 대화에서 할아버지 얘기에서 친과 외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아직 회의실이군.”

“아직? 의외네. 뭔 일이지?”

“... 네인. 회의실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군.”

“진짜 뭔 일있냐?”


인은 말없이 게이트를 만들었다.


“가보면 안다.”

“네~네~”


네인은 게이트 속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니 아까까지 있던 회의장이 시야에 들어오고.


“그는 인간이 아닙니다.”


뒷담도 들렸다.

말 끝나기 무섭게 하프 엘프 장로와 눈이 마주쳤다.


“너.. 너는..!”

“네인?”

“아~ 뭔 일 있는 것 같아서 돌아와 봤는데. 저 오면 안 됐었나요?”


분명 그는 인간이 아닙니다라는 말에서 그는 분명 자신을 뜻하는 것 같았다. 근데 어째서?

아니 그것보다 두려워하는 표정은 왜 하는 걸까?


“네인, 너 어떻게?”

“저도 얘기 듣고 온건데.. 타이밍이 안 좋았나요?”


확실히 타이밍이 안 좋은 것 같긴 했다. 분명 나보고 인간이 아니라고 했으니까.


“왜 다시 돌아온 거냐.”

“인이 돌아가 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왔는데. 다시 나갈까요?”

“... 어쩌고 싶은 거냐?”

“네?”


필가논 미르터의 질문에 네인은 당황했다.


“뭐가요?”

“넌 어떻게 하고 싶어서 이곳에 다시 온거냐?”

“그걸 물으셔도... 진짜 말해요?”


뭘 어떻게 하고 싶은 건 있다. 하지만 정말 말해도 될까? 라는 의문은 있다.


“말해라.”


다만 외할아버지는 단호하기 말했다.


“그냥 제 정체 말하죠. 아! 전부는 아니고요.”


그 순간 회의실 안의 공기가 서늘해진 기분이 들었다.


“... 이유는?”

“불필요한 분란은 귀찮아서요?”

“네인.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안되죠?”

“근데 왜!”


마나를 담은 호통에 회의실 전체가 흔들렸다.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할 거다.”

“없어요.”

“네인!”

“제가.. 언제 이유가 있어서 행동했나요?”

“지금 너는 네가 얼마나 위험한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모른다라...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세요?”


네인도 안다.

아직 신뢰도 무엇도 없는 생판 남에게 내 정보를 준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건지. 아니.. 애초에 그게 문제가 아니다.


“제 능력까지 드러내면 참 많은 일이 일어나겠죠.”


네인은 능력까지 드러낼 생각까지 있었다.


“네인.”

“적탑의 장로라는 직위가 참 신뢰가 없네요~”

“네인.”

“저도 많이 귀찮다고요. 하고 싶은 연구는 많은데 인간관계도 정리하고 또 다른 친분을 쌓는건 어렵고.”

“네인.”

“....”

“네인.”


네인은 아무 말 없이 필가논 미르터를 바라봤다.


“하고 싶은 말은 끝난 거냐.”

“귀찮아요.”

“무엇이 말이더냐.”

“그냥.. 여러 가지요. 마법의 연구도 검도... 그냥 여러 가지요.”

“내가 너에게 많은 걸 바란거냐?”


네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글쎄요.. 많은 걸 바랬냐고 물으신다면... 저도 잘 모르겠어요. 과연 할 수 있는 일인지, 없는 일인지, 하고 싶은 일인지, 하고 싶지 않은 일인지.”


네인은 어느 날을 기점으로 공허함을 느꼈다.

전소하고 남은 재 같은 감상은 아니었다.

심장, 마음에 구멍이 뚫린 느낌도 아니다.

아니.. 애초에 어느 날조차도 아니다.

처음부터.

그동안 하고 싶은 게 많아 느끼지 못한다고 착각했던 것뿐이었다.

그래... 전생부터 지금까지의 일이었다.


“목표. 참 좋죠. 나는 대마법사가 될 거라는, 검성이 될 거라는 어린아이 같은 꿈. 저한테는 그게 필요했던 것 같아요.”


비슷하게 마법으로 하고 싶은 걸 찾고 무(武)로 하고 싶은 걸 찾는다.

전생하고, 사춘기가 지나고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이러한 행위 자체가 생존 본능인 느낌이 들었다.

네인은 안경을 벗었다.

안경을 벗으면 여전히 눈으로 보는 세상은 흐릿하고 물속에 들어온 듯 귀는 먹먹해졌다. 몸의 감각조차 둔해지는 느낌마저 드는 이 기분은 물속에 들어온 것 같다는 것 외에는 표현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인.”

“지쳤다? 같은 느낌은 아니에요. 그냥. 그냥... 방황도 아닌 것 같고.”

“네인.”

“귀찮은 건 맞는데. 왜 귀찮은지는 몰라요.”


귀찮은 이유를 찾아봐도, 되뇌고, 질문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딱히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삶이 귀찮아서 포기하고 싶어도 말이다.

그럼에도 삶은 포기하지 않았다. 살아야 할 이유가 있으니까.

있었으니까.


“지금도 잘 모르겠네요.”


적탑에 초대한 필가논 미르터의 의도는 잘 안다.

회의에 참석한 적탑의 장로가 네인의 태도에 분개할 거라는 것도 잘 알았다.

짜증이 났던 걸까?

잘 모르겠다.

아무것도 안 느껴지니까.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여흥에 끌려다닌 것도 여기까지예요.”

“네인.”

“죄송합니다.”


네인은 그렇게 적탑에서 사라졌다.

한편 남은 필가논 미르터는 낭패라는 얼굴을 숨길 수 없었다.


“결국에는 일어날 일이었던가.”


필가논 미르터는 네인과 연구를 시작하면서 한가지 느낀 점이 있었다.

그건 천재성도, 집념도, 여유도 아닌 공허였다.

네인은 연구를 할 때 여러 가지 시도를 한다. 한 분야만 파는 것이 아닌 여러 문헌과 자료, 경우를 예시로 들며 연구를 진행한다.

관련이 전혀 없는 분야까지 끌고 오지만 수확은 있었다. 아니.. 많았다.

누가 봐도 천재라고 할 법한 소행이건만 네인의 연구에 느껴지는 건 공허였다.

특히 리미트 다운이 그러했다.

리미트 다운은 확실히 대단한 술식 구조다.

천재한테 감히라고 말할 정도의 끝없는 변화를 일으킬 술식 구조였으니까.

여러 시각에서 바라본 마법이 이것일까?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근데.. 그 시각에 네인의 시각은 없었다.

분명 네인의 연구임에도 네인의 의견은 일절 없었다.

그래서 네인이 버린 연구들을 그 자료들을 전부 살펴봤다.

흑마법, 정령, 자연, 마나.

기상천외하면서도 네인이 관심에 두지 않을 법한 연구도 있었다.

이 연구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도 눈에 보인다.

연구의 위험 요소의 배제도 잘 되어있으며 누가 봐도 천재라 칭송할법한 연구이지만 눈 씻고 찾아봐도 이 연구가 네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저 네인이 천재를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어서 그런 줄 알았지.’


그 생각이 지금 너무 안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마수의 산맥 정상에 선 네인은 앉아서 그저 구름을 바라볼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네인.”


네인을 부르는 인의 말에 네인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런 네인을 두고 인은 계속해서 말했다.


“말하기 싫으면 그냥 들어라. 후회는 없나?”

“...”

“그럼 포기하는 것도 방법이겠지. 문제는 너는 포기하지 않을 거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너는 어지간히 고집이 세니까.”

“... 힘드냐?”


힘드냐.

참 많은 의미가 담긴 말이다.

네인은 힘든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게 아닐 수도 있다.

네인이 귀찮다고 표현하는 것은 그저 어떤 것을 회피하기 위한 방어기제로 귀찮다는 표현을 할 수도 있었고 정말로 귀찮았던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런 둘 사이에서 한 가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건 단 하나였다.

네인과 인은 아무것도 모른다.

네인이 어떤 상황인지, 어떤 상태인지, 어떤 생각인지.

인을 포함한 네인 본인도 모른다.

한참을 구름을 보던 네인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모르겠다.”


모르겠다.

여기까지는 인도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 뒤의 대답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그냥 전부 없애버릴까? 생각하기도 했고. 그냥 이대로 흘러가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했으니까.”

“... 그러냐.”


네인은 인의 생각 이상으로 한계였던 모양이다.


“근데 참 신기한 게 마음 한켠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는 브레이크가 걸리더라. 참.. 귀찮게.”

“귀찮겠지.”

“그치, 귀찮아. 그러면 보통 제거하면 그만인데 제거할 수가 없어. 진짜 화나게.”


화난다고 말하면서도 웃는 네인. 하지만 저 웃는 표정은 진짜로 화난 표정이기도 했다.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이건 진짜배기 저주야, 저주. 만화나 소설에서 볼 수 있는 해주가 가능하거나 어려운 저주가 아니라 해주라는 개념조차 없는 이게 진짜 저주지.”


올라간 입꼬리를 매만지는 네인.


“이게 진짜 저주지.”


네인은 생각했다.

웃는 얼굴에 침을 뱉지 못한다는 속담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웃으면 복이 온다는 속담은...

웃음을 싫어한 누군가가 만들어 낸 저주이지 않을까 싶었다.


“문제는 이 저주는 내가 스스로 건 거라서 할 말이 없고.. 가장 큰 건 역시 브레이크지.”


브레이크라고 표현했지만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네인이 악(惡)한 마음을 품지 않은 이유는 네인이 브레이크라 생각한 단 하나의 저주 때문이었으니까.


“하필 이름에 정(正)이 들어가냐.”


바를 정.

올바르게 살라는 의미에서 붙여준 이름 따라 네인은 나름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근데 네인은 그래서 이 이름이 더 싫었다.

세상에는 올바르지 않은 게 너무 많았으며 상황에 따라 올바르지 않은 것은 더더욱 많았으니까.

불편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원망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가끔 화가 나긴 하지만 딱 그 정도.

하지만 저주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있다.

구속.

말 그대로 행동과 생각에 제약이 걸린다.

그게 네인이 저주라고 말하는 이유다.


“가끔은 생각한단 말이지? 이런 이름을 갖고 태어나지 않았다면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물론 일어나지 않을 일이기에 깊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기도 싫고.

평행세계에는 존재하려나?

궁금하긴 하네.


“네인. 괜찮나?”

“뭐.. 그럭저럭. 근데 역시 인간관계는 힘들단 말이지? 정답이 없어.”


인간관계는 연구와 문제집의 문제와 다르게 결말이 없는 늘 현재진행형이라서 그런지 참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어진 환경에 맞게 정답은 늘 변하고 그걸 파악하지 못하면 오답을 내놓게 되니까.

이런 접근이 오히려 악효과만 내놓는다는 걸 네인도 알고 있긴 하지만 이래도 인간관계는 반은 간다.

이런 와중에 새로운 시도를 하는 도박은 좋지 않다.

더 안 좋은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어쩔 거냐?”


어떤 판단을 내릴지 묻는 인의 질문에 네인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어쩌고 자시고 다른 선택지가 있어?”

“있지. 네가 선택을 안 할 뿐.”

“못하는 거겠지.”


인의 말대로 선택지는 많다. 다만 그놈의 저주 때문에 선택지가 없을 뿐.


“와.. 진짜 답답하네. 정신병인 건가?”

“그러니 저주라고 생각할 수밖에.”

“아~ 진짜 뭘 못하겠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싶어도 가리게 된다.

어쩔 수 없다는 일은 가능하면 만들지 않는다.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일은 늘 가슴이 철렁거린다.

.. 장로회의 때 심한 말을 하긴 했지만 내심 이래도 되나? 라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필요한 일은 하긴 할 거다. 예를 들어...

살인.

전쟁은 일어날 일이고 분쟁이든 뭐든 살인은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만화나 소설 속 살인을 꺼리는 주인공도 결국 이야기의 중후반 부분에서 살인을 하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막 죽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들도 나도 살인은 하긴 해야 한다.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무언가.


“네인. 괜찮아?”


등 뒤의 앳된 목소리에 네인은 뒤를 돌아봤다.

하얀 눈이 뒤덮인 산맥에 두 발로 선 하얀 곰.

크기는 허리에서 배 정도까지 닿는 크기이니 새끼로 보이는 아기 곰. 그리고 네인은 직감적으로 저게 무엇인지 알았다.


“11번째.”

“맞아!”


11번째, 자기혐오.


“이름은 있어?”

“어비스.”


새하얀 아기곰. 그와 반대되는 이름을 가진 어비스(심연)의 등장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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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불광불급 24.02.28 5 0 16쪽
105 네인 이야기(4) 24.02.21 5 0 12쪽
104 네인 이야기(3) 24.02.17 5 0 11쪽
103 네인 이야기(2) 24.02.15 6 0 11쪽
102 네인 이야기 24.02.10 7 0 11쪽
101 검은색 24.01.30 8 0 11쪽
100 침식 24.01.24 8 0 13쪽
99 폭주 전조 24.01.17 9 0 11쪽
98 실험 24.01.15 8 0 12쪽
97 방식과 방법 24.01.09 6 0 13쪽
96 인내의 시간 23.12.31 10 0 11쪽
95 지옥도 23.12.22 5 0 11쪽
94 죄와 속죄 그리고 정의 23.12.15 5 0 12쪽
93 마피아 게임 23.12.07 6 0 13쪽
92 해야할 일 23.12.02 8 0 12쪽
91 테스트 23.11.26 7 0 13쪽
90 인간의 방향 23.11.20 7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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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원점 23.10.24 5 0 12쪽
» 저주 23.10.13 7 0 13쪽
86 파탄 23.10.05 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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