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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그코크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입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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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그코크
작품등록일 :
2023.05.11 21:42
최근연재일 :
2024.05.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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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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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3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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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원리

DUMMY

“아주 그냥 세계 통합이라도 할 생각이냐?”

“하하하...”

“어이!”


방금 현상에 대해 잘 아는 어비스가 방금의 상황에 대해 따졌고 그 일에 대한 사실을 전해 들은 일행들은 조금... 많이 식겁한 눈치였다.


“이젠 그냥 냅다 저질러 버리네 아주.”

“야야.. 그만 좀 해라.”

“그만? 말 다 했냐.”

“...”


보통 본체는 분신의 명령권자이지만 네인과 어비스는 그 관계가 사뭇 달랐다.

평소에는 평등해 보이지만 어비스는 철저히 네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니까.


“대답해봐!”

“죄송합니다..”


저런 모습을 보면 도대체 누가 분신인지 본체인지 헷갈리긴 하지만 백작가 사람들은 알고 있다.

저게 네인이 원하는 관계라는 걸.


“너도 사람이니 힘이라는 걸 쓰고 싶어 하는 건 아는데 그래도 사람이 정도가 있어야지?”

“시뮬레이션은 다 돌려봤고 이미 검증도 끝내긴 했는데...”

“그걸 왜 사람들 가까이서 쓰냐고.”

“반응이 궁금해서?”

“야 인마!”


하여간 정도가 없다고 중얼거리는 어비스 그리고 그런 어비스 앞에서 뻘쭘하게 웃는 네인.

사람들은 그동안 네인이 웃는 모습을 자주 봐 왔지만, 오늘만큼 웃는 얼굴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모습을 처음 봤다고 느꼈다.

물론 그 이전에 네인의 웃음에 이질적인 건 없지만 지금 웃는 웃음만큼 자연스러워 보였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길 정도의 웃음.


“하여간... 뭐 아무튼 잘 돌아왔네.”

“그러게. 이제 내일이면 곧 도착인가?”

“그 정도 거리지. 아. 그리고 이거.”


어비스는 네인에게 아이스크림 와플을 건넸다.


“먹고 후기 좀.”

“너 요리사 하게?”

“취미지. 그리고 다 먹으면 가족들에게 가봐. 왔다고 얘기는 해야 할 거 아니야.”

“... 그래.”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어비스의 입에서 가족이라는 말이 튀어나올줄 몰랐으니까. 하지만 잘못 들은 것도 아니었고 왜 그런 말을 한 것인지 이후 이해했다.


“가족이라...”

“슬슬 받아들여야지. 언제까지고 관망할 수는 없잖아?”

“그렇긴 하지. 언제까지고 한 발짝 뒤에 있을 수는 없으니까.”

“무서워?”

“어. 무서워.”


예나 지금이나 네인은 뭔가를 하기 무서워했다.

자신의 개입으로 더 나은 결과가 안 좋은 결과로 변질될 가능성을 무서워했고 네인으로써도 현상 유지도 좋다고 생각하니까.

더 나은 것을 추구하지 않으면 더 안좋은 일도 없다.

사람들이 변화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아마 이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일 거다.

진화에는 도태가 따라오고 앞서가는 자가 있으면 당연히 뒤떨어지는 자도 생기기 마련.

네인은 명백히 후자였다.


“아~ 진짜 무섭네.”


레비탄 백작가 사람들이 하는 일 그리고 성정을 보건대 네인을 배척하는 일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친족이었으면 뭔가 달랐을까 싶었지만, 그건 또 아니다.

이미 스스로 세워둔 벽에 의해 네인은 그들에 다가가지 못하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알고도 해결하지 못했지만 네인은 그동안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는 신경 써야 한다. 이제는 가족이라는 이들이 이 벽을 허물기를 원하니까.


“멀다~ 멀어~”


새삼 네인이 인지한 현재의 가족과의 거리가 너무나도 멀었다.

자업자득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 사실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레비탄 일행은 수도에 도착했다.

묵을 곳은 여전히 수도의 미르터 후작가의 저택이었다.

이곳은 여전히 변한 점이 없었다.


“어서 오너라.”


아무런 시중 없이 혼자 마중 나온 필가논 미르터.


“오랜만에 뵙습니다. 장인어른.”

“네놈은 오랜만에 봐도 된다.”

“하하하.”


필가논 미르터와 카란벨 레비탄의 묘한 신경전이 있을 때 백작 부인은 일행들을 지휘해 짐을 풀기 시작했다.


“뭐하지.”

“그러게.”


네이아는 마차에 내려서 저택으로 향했고

네인과 어비스는 그냥 마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할 것도 없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이럴 때는 아무것도 안하는 게 상책이다.


“네인. 마법 연구는 할거냐?”

“모르겠네. 검도 요새는 안 잡아서 뭘 할지도 의문인데.”


최근 네인은 무기력에 빠져 살고 있다.

일, 의뢰, 심부름같이 시키는 일은 잘하지만 남는 시간에 스스로 하는 행동이 점점 줄기 시작했다.

마스터에 오른 이후 꾸준히 명상 정도만 하면 검은 안 잡아도 된다.

마법도 벽에 막힌 것 같지는 않지만 흥미가 없으니 영 손에 안 잡힌다.

연금술이라도 해볼까 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복잡해서 흥미가 가셨다.


“정령술은 어때? 예전에는 정령에 관심 있었잖아.”

“옛날 일이잖아. 지금은 딱히 관심은 없어. 게다가 재능도 없는 모양이고.”


이지를 가진 자연의 일부라 불리는 정령은 흔히 정령사에 재능있는 이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애초에 재능은 뭘 하든 간에 필요하지만 여기는 최소 조건이 재능의 유무라 비교 대상이 못 된다.


“재능이야 만들면 그만이잖아?”

“그건 그냥 하기 싫고.”

“남들이었으면 그냥 저지르고 말걸?”

“이렇게 하나하나 다 신경 써야 나중에 큰일이 안 나지. 나중에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나도 모르는데 아무거나 막 할 수는 없잖아?”


뭐든지 가능한 건 정신적으로 상당히 피곤한 일이었다.

시스템은 뭘 하고 싶냐를 정하는 게 우선이 아닌 뭘 하면 안 되는지를 정해야 안심할 수 있으니까.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이미 몇 번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은 능력이다.


“너도 참 신기하다.”

“그러고 싶은 인간이니까.”


네인은 마차 벽에 기대 창밖을 내다봤다.

미르터 후작가 저택 주변을 둘러싼 건물의 숲이 빌라가 도열 되어 있는 서울 도심 같아 보였다.

실제로 여기도 도시가 맞다.


“그냥 잘까?”

“밖에 구경꾼은?”

“내버려 둬. 일하시고 있는데 그런 거 방해하면 여러모로 골치야.”


수도에 진입하고 여러모로 일행들에게 쏟아지는 시야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몇몇 무언가 찾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는 이들이 존재했다.

단순히 구경의 의미를 갖는 게 아닌 명백한 추적, 감시의 의미를 가진 움직임.

그런 행동을 보인 곳은 다섯 곳 정도 있다.

위치는 이미 인을 통해 파악해 둔 상태고 어비스는 네인이 허락하면 전부 잡아 족칠 것이다.


“정말로 내버려둘 거냐?”

“어. 귀찮아. 저 사람들 제압한다고 감시가 사라질 것 같지도 않고 내버려 둔다고 해도 감시 외에 뭘 더 하겠냐? 습격이라도 하려고? 수도 안에서.”

“마음대로 해라.”


어비스가 마차에서 내려서 필가논 미르터에게 말을 걸었다.

뭔가 흥미 있는 주제인지 필가논 미르터도 눈을 빛내고 저택으로 향했고 마차도 이제 저택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

“왜그러지?”


어비스의 아차 싶은 반응에 의문을 갖는 필가논 미르터.


“네인 이 자식 사라졌어요.”


네인이 있던 마차 안은 어느새 텅 비어버렸다.





가끔 네인은 자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모를 때가 있다.

공허하냐고 묻는다면 모르겠다.

고독하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모르겠다.

무언가 느끼지 못한 것이 공허라면 그 공허감조차 없어야 공허가 아닐까.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 고독하다고 하는 인간도 있는데 혼자 있다고 고독한 것이 진짜 고독인지 네인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럴 때 네인만의 팁이 있다.

일단 멈춘다.

행동을 멈추고 생각을 멈춘다.

생각은 멈추기보다는 반복적인 생각을 한다.

나는 뭘 하고 있는지 고민하고 뭘 하고 싶은지 고민한다.

답이 안 나오면 다른 생각을 해본다.

눈에 보이는걸 자기 자신에게 묻는다.

저건 뭘까.

시체의 산이 쌓여있고 그 위에 까마귀가 시체를 뜯어먹는다.

피가 땅에 강처럼 흐르는 게 눈에 보이고 하늘은 먹구름이 가득했다.

곧장 비라도 내릴 듯한 먹구름이었다.

어디선가 비명이 들렸다.

누군가의 기합이 들렸고.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번쩍!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번개의 굉음이 들렸다.

그 소리가 신호탄이라 듯 비가 내렸고 피는 비를 타고 더 멀리 흘렀다.


‘... 이게 뭐더라.’


아직도 눈앞의 상황이 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오늘은 뭐가 뭔지 모르겠네.’


네인은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눈을 감고 있으니 안보이고 귀를 막으니 안 들리지. 그러니 모르지]


푸확!


바닥이 사라지고 아래에서 바람이 밀려오는 것으로 네인은 한가지 알아챘다.

떨어지고 있다.


[다음에 보자 다음에는 눈감고 귀 막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그게 무슨..?!”




네인은 원래 이동하려 했던 레비탄 백작가에 도착했다.


“... 방금?”


네인은 방금전 상황을 파악했다.

전쟁터 같은 곳에 있었다가 떨어지고 누군가와 대화했다.

도대체 누구와?

애초에 거기는 어디였지?

비슷한 곳은 많았지만, 그곳에 대한 기억은 어디에도 없었다.


‘간섭? 아니야. 시스템에 간섭이라니 상식적으로 불가능해.’


하지만 다른 동일한 능력자라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네인보다 더 시스템에 대해 알고 있는 존재라면. 이런 일이 가능할 테니까.

근데 이게 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그런 존재가 이번 일을 일으켰고 왜 나에 대해 조언을 한단 말인가.


[눈을 감고 있으니 안보이고 귀를 막으니 안 들리지.]


눈을 감고 있다는 건 무슨 말이고 귀를 막고 있다는 건 뭔 뜻일까.

짐작 가는 게 너무 많아서 알기 어려웠다.


“... 나태? 아니면 포기인 건가.”


어느 쪽이든 말이 되니까 문제다.


“아무래도 뭔가 일어나려고 하는 것 같은데. 뭘 하기가 좀 그러네.”


네인은 현상 유지가 좋지만, 세상은 그걸 싫어하는 모양이다.

이게 운명이라는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일단 한가지 알 수 있는 건 결국 네인은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결국 재미인 건가?”


네인의 행동 원리에는 늘 재미가 붙어있다.

삶의 원동력으로 그것만 한 게 없었으니까.

책임감도 없었고 욕심도 있다고 해도 미약한 수준이었다 보니 행동에 갖갖은 이유를 대기 어려웠다.

결국 이유를 붙이다가 재미가 가장 알맞은 이유가 되었고 그렇게 재미를 원하게 되었다.


“결국 재미만으로는 역부족이겠지.”


재미라는 것도 일종의 자극이다.

자극은 여러 번 겪으면 결국 익숙해지고 나중에는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된다.

결국 이유가 재미라면 네인은 추후 더 큰 자극을 원해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를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해결법은 있다.

행동에 재미가 아닌 다른 이유를 만들면 된다.


“... 그게 될까? 된다고 해도 좀 무섭긴 하네.”


과연 재미를 버린 나는 어떤 이유로 행동 원리를 만들지.

그 이후에 나는 뭘 할지.

조금 무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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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이해 관계도 24.03.22 7 0 11쪽
111 네인과 인격의 관계 24.03.20 7 0 11쪽
110 에이와 대련 24.03.18 9 0 12쪽
» 행동원리 24.03.13 11 0 11쪽
108 세계 24.03.07 9 0 11쪽
107 불행한 자들의 낙원 24.03.02 9 0 12쪽
106 불광불급 24.02.28 9 0 16쪽
105 네인 이야기(4) 24.02.21 8 0 12쪽
104 네인 이야기(3) 24.02.17 9 0 11쪽
103 네인 이야기(2) 24.02.15 9 0 11쪽
102 네인 이야기 24.02.10 13 0 11쪽
101 검은색 24.01.30 13 0 11쪽
100 침식 24.01.24 11 0 13쪽
99 폭주 전조 24.01.17 12 0 11쪽
98 실험 24.01.15 12 0 12쪽
97 방식과 방법 24.01.09 10 0 13쪽
96 인내의 시간 23.12.31 14 0 11쪽
95 지옥도 23.12.22 9 0 11쪽
94 죄와 속죄 그리고 정의 23.12.15 8 0 12쪽
93 마피아 게임 23.12.07 11 0 13쪽
92 해야할 일 23.12.02 11 0 12쪽
91 테스트 23.11.26 12 0 13쪽
90 인간의 방향 23.11.20 10 0 17쪽
89 신과 인간 그 어딘가 23.11.08 15 0 16쪽
88 원점 23.10.24 1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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