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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그코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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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그코크
작품등록일 :
2023.05.11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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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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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와 대련

DUMMY

네인은 레비탄 백작가 연무장 구석에서 에이를 보고 있었다.

에이는 네인과 다르게 노력이란걸 한다.

강해지고 싶어 하고 그 이유도 있으며 그게 정답이라고 굳게 믿는다.

알고 있는 게 많음에도 그 생각은 여전히 굳건하게 에이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다.


“뭐하냐.”

“구경.”


에이는 강하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봐도 네인이 지금껏 봐왔던 그 누구보다 더.

기억 속의 인물들까지 생각해도 에이를 뛰어넘는 존재는 없었다.

에이의 힘을 제약한 건 어디까지나 에이가 힘 조절을 못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몸으로 드래곤 시절의 육체 능력을 고스란히 담아서 생긴 일이기도 하지만 몸 자체를 못쓰기 때문에 생긴 일이기도 하다.


“에이. 이제 익스퍼트 중급이었나?”

“그쯤 되었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군.”


드래곤이었다 보니 마나 컨트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힘 조절은 여전히 못 한다. 그래도 지금은 꽤 많이 나아졌다.


“이제 1%로 올려도 될 것 같네.”

“그런가?”

“지금도 힘 일정하게 사용하고 있는데. 이미 1%로 올렸는데도.”


쾅!


단순히 목검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폭탄이 터진 것 같은 큰 소리를 낸 에이는 부러진 목검을 보며 말했다.


“그렇군.”

“이야.. 이번 건 나도 놀랐네. 앞으로 목검 못 쓰는 거 아니야?”

“상관없잖아. 어차피 목검으로 기본 검술을 단련하는 건 힘 조절을 위한 일이었으니까.”

“그건 그렇지.”


기본검술 및 체력 단련은 어디까지나 에이가 인간의 육체에 빨리 익숙해지라고 네인이 내린 과제였다.

이제는 다음 단계의 과제가 필요했다.


“나랑 대련 좀 하자.”

“대련?”

“내가 이래저래 심란해서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거든.”

“그럴 거면 차라리 명상을 하는게 낫지 않나?”

“명상하면 생각이 더 복잡해져서 안 돼. 이럴 거면 차라리 몸 쓰는 걸 해야지.”

“그렇군.”


네인은 시스템으로 창을 만들어냈다.


“창?”

“한번 써보고 싶어서. 에이는 검이지?”


에이의 손에 부러진 목검이 철검으로 대체되었다.


“대련에 룰은 없어, 그냥 본인이 싸우고 싶은 대로 싸우는 것. 주어진 무기는 연무장 위의 것만 허용하고 마나도 사용한다.”

“출력은?”

“시스템으로 제한해 둘 거야. 조절할 필요는 없어.”

“그런가?”


에이와 네인은 연무장 양 끝을 향해 걸어갔다.


“그나저나 다행히 구경꾼은 없네.”

“백작이 없으니, 지금은 훈련보다 경계에 집중해야겠지.”


네인은 창이 이상한지 이리저리 휘두르고 찔러봤다.


“... 그럴 거면 차라리 검을 잡지?”

“어색해서 그래. 창에 관심이 아예 없지도 않았고 몇 번 사용해봤지만 아직은 좀 그러네.”


그렇게 네인은 창을 몇 번 더 휘두르고 자세를 잡았다.


“정말로 창을 잡아도 되겠냐?”

“어. 어차피 이기려고 잡은거 아니거든.”

“그래?”


탓!


한 번의 도약으로 네인의 코앞까지 도달한 에이가 검을 휘두르며 말했다.


“난 한번 이겨보고 싶군.”


상단에서부터 하단까지 깔끔한 선으로 이어지는 종베기가 보이자 네인은 옆으로 몸을 굴려 피했다.


“미친...”

“말했잖아. 이겨보려고.”


이번에는 복부를 향한 찌르기.

네인은 파고드는 검을 창으로 검면을 쳐내면서 찌르기를 비껴내고 연무장 중앙을 향해 달렸다.


‘뭐야 왜 이렇게 빨라?’


“당황하는 게 눈에 보이는군.”


이제는 오러를 발출해내면서 달려오는 에이을 보며 네인은 생각했다.


‘무섭다.’


그냥 무서운 게 아니다. 기백 자체가 무슨 태산을 앞에 두고 있다는 듯한 그런 기백이다.

솔직히 기백에 대해서 잘 몰랐는데 이렇게 직접 경험하니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근데 이런 식으로 경험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대련 안 하나?”

“야 너 같으면..!”


쾅!


이번에도 에이의 검을 비껴쳐 낸 네인은 손이 저리기 시작했다.


“뭔 말도 못 하겠네!”


창에 대한 숙련도 문제가 있어 밀리고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다.

지금 창을 잡고 있어서 그나마 이 정도 버티고 있다는 점이다.

전쟁에서 병사들은 창을 잡는다.

왜 그럴까를 생각하면 사거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사들은 검을 단련한다.

어떻게 싸우는지 궁구하고 병사보다 더 높은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싸운다.

기사라면 창의 사거리를 극복하고 파고들 수 있겠지만 일반 병사라면 파고들기 전에 창에 찔린다.

팔다리에 찔려도 고통 때문에 움직이기 힘들고 적이 눈앞에 있는, 거동이 불편한 상황은 곧 목숨의 위기나 다름없다. 사거리는 그만큼 중요하고 병사들은 그래서 창을 든다.

그걸 네인은 지금 여실히 체감하고 있었다.

네인에게 향하는 검날은 창으로 쳐내면서 한두 발짝 뒤로 물러선다.

찌르기는 쳐낼 수 있겠다 싶은 건 쳐내지만 애매하면 피하는 길을 선택한다.


“공격은 안 하나?”

“할 수 있겠냐고!”


에이의 공격을 쳐내고 거리를 벌려도 에이는 곧장 다시 간격을 좁힌다.

에이는 철저하게 기본 검술만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궤적이 눈에 보이고 또 예상이 가지만 문제는 궤적이 아니라 에이 그 자체에 있었다.

창으로 검날을 쳐내도 밀리는 건 쳐낸 네인 본인이었고 네인은 오히려 그걸 이용해 에이와 거리를 벌리려고 했지만, 에이의 다리는 그 거리를 간단하게 좁혔다.


‘역시 창만으로는 무리가 있네.’


알고는 있었지만, 에이와 그만한 격차가 있었다.

창에도 마나를 둘렀지만 공격해도 에이에게 유효타는 안 될 것이다. 검강으로도 생채기 하나 안 날 텐데 그저 창에 마나를 두른다고 아파할 녀석이 아니다.

네인에게 있어서 시스템이 아니면 이길 수 없는 승부.


‘좋네.’


오히려 이런 일이 네인의 재미를 이끌어냈다.

네인은 전신에 마나를 끌어올렸다.

탐색은 여기까지.

네인의 기세가 달라지자 에이도 저돌적인 공세를 잠깐 멈추고 마나를 끌어올렸다.


“이제부터 제대로 한다는 거냐?”

“아니. 난 한평생 뭔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거든.”


네인에게 진심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승부욕이라던가 탐욕에 대해서 크게 열망해 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때는 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없다.

원인은 알고 있다.

화를 억제하고 피하기 위해서 네인은 이렇게 발전해 버린 게 이유니까.

진심이 되어버리면 승부욕이 생기고 이에 따라 여러 욕구가 생긴다.

그중 네인이 가장 싫어하는 게 완벽이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능력은 없는데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싶어 하는 욕구.

그래서 네인은 진심을 다하지 않고 능력이 닿는 데까지 하는 최선을 선택했다.

마음이 꺾였다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화를 내기 싫어서 네인은 진심을 포기했고 차선으로 최선을 추구하게 되었다.

남들이 들으면 패배자나 도망자라고 힐난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지만 딱히 아무래도 좋다.

나는 이런 내가 좋고 이래도 상관없지만 지금은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나는 이런 사람이어야만 한다.

화를 내도 되는 이유가 없고 승부욕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으니 나는 하지 않는다.

화를 내지 않는다.

승부욕이 없어야 한다.

나는 꼭 이런 사람이어야 한다.

시스템을 가진 뒤로 이 생각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냥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는 거지.”


최선(最善).

그게 네인의 한계였다.

한편 에이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여전히 여력을 남겨두는 건가?’


에이가 봤을 때 네인은 늘 약간의 여력을 남겨둔다.

훈련, 연구, 공부 그 외 하는 행동 전부 더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다.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후 할 일에 대한 체력 분배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현명한 판단이다.

다만 에이가 보기에는 네인은 마치 족쇄를 단 듯한 모습이었다.

네인은 스스로 화를 잘 낸다고 한다. 그리고 그와 별개로 네인은 화를 잘 안 내고 잘 가라앉힌다.

가끔 언성이 높아지는 일이 있는데 네인은 그걸 화를 낸다고 판단하는 모양이다.

잘 가라앉힌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별거 아니다.

언성이 높아지고 1초간 말이 없어진 후 네인은 다시 침착해지니까. 그 후 행동이 게을러진다.

마치 화를 냄으로써 생기는 에너지를 가라앉히는 데 사용하는 느낌이었다.


‘지금도 그렇고.’


네인은 여전히 무언가에 묶여있다.

에이는 그게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걸 보는 에이는 조금 답답해 보였다.


“그럼, 모든 걸 쏟아내 봐.”

“아. 그건 무리고.”


할 수 없다고 속단하는 태도를 보면 네인도 자각은 하고 있는 걸까.


“그래. 해보면 알겠지.”


네인이 가끔씩 하는 말이 있다.

하다 보면 된다. 그러니 네인도 될 것이다.

되게 만들면 그만이니까.


쾅!


오러로 화한 마나가 아니어도 보통의 마나를 두른 무기의 충돌은 강렬하다.

이런 충격 속에서 에이의 검은 흔들리지 않고 원하는 검로를 그리고 있으며 네인의 창은 충격에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흔들린다.

누가 보면 네인이 밀리는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밀리고 있다.

기세를 몰아 네인을 몰아붙이는 에이.

네인도 패색이 짙다는 걸 알면서도 창을 휘둘렀다.

기세에서 밀리고 힘에서도 밀린다.

속도는 동등하고 네인이 이 대련에서 우위를 점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상함을 먼저 눈치챈 건 에이였다.


‘... 끈질기군.’


네인은 끈질겼다.

대련 중 네인은 에이를 상대로 파고들 만한 틈을 상당히 주었음에도 간격만큼은 철저하게 벌렸다.


‘빈틈이 없는 건 아닌데 이상하군.’


오히려 지금까지 대련한 상대와 그 강함을 저울질해 비교하면 네인의 빈틈은 지금까지 대련한 그 어떤 상대보다 더 많았다.

문제는 그 빈틈을 파고들면 빈틈이 아니었고 다른 빈틈이 생기는 점이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패턴이기에 일부러 네인이 유도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랬다면 계속해서 빈틈을 내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창에 대한 숙련도는 미흡하다. 다만 반응속도가 괴이할 정도로 간극이 있어.’


통상적인 검격에는 일정한 반응을 보이지만 약간의 변주를 주기만 해도 칼같이 반응한다.

네인의 반응을 보건대 의식한 반응은 아니었다.

한두 번이면 그러려니 하지만 벌써 10번은 그렇게 반응했다.

네인이 잡은 창은 여전히 사시나무 떨리듯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에이는 한가지 깨달았다.

그저 흔들리기만 할 뿐이었다는 걸.

충격에 창이 흔들려도 창이 움직이는 경로가 조금은 비틀려도 그 의도와 목적은 제자리를 찾는다.

검을 배우고 또 검을 단련하는 이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흔들리면 안 된다.

굳건해야 한다.

결국은 다른 것에 영향을 받지 않고 제 갈 길 가라는 소리였다.

네인은 달랐다.

흔들리기도 하고 때로는 쓰러지기도 한다.

이런 네인의 행동에 대해 의문을 표하니 네인은 이렇게 대답했었다.


‘검을 휘두를 때 흔들리지 말라는 건 검으로 무언가를 벨 때 검에 힘이 온전히 싣는 게 힘들거든. 하지만 베는 게 아니라면 흔들려도 상관없으니까.’


의도와 과정, 결과를 따로 보라.

과할 필요도 없고 충분할 필요는 없다.

충분하면 좋겠지만 최소의 역량으로 해낼 수 있다면 그것도 어떻게 보면 정답이다.

에이는 지금 네인이 흔들리면서 이 대련을 버텨내는 이유가 이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걸 깨달으면서 에이는 네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공격을 쳐내면 창의 다른 한쪽 끝으로 다음 행동에 대응할 생각으로 창을 움직였다.

충격으로 몸이 밀리면 충격받은 방향으로 크게 비틀리지 않게 몸을 움직이고 발은 절대로 고정되는 법이 없었다.

창을 휘두르면서 손과 손목만이 아닌 팔과 팔꿈치, 심지어 상체의 전반적인 근육을 이용해 창은 다양한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쾅!


네인이 밀리던 네인이 밀리지 않게 되었고 조금씩 여유로워졌는지 천천히 공세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이제 네인의 진심을 볼 수 있는 건가, 기대했던 에이는 지금 당장 직면한 상황에서 한 가지 당황스러운 사실을 알아냈다.

공세로 접어든 네인의 눈에 이지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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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네인과 인격의 관계 24.03.20 3 0 11쪽
» 에이와 대련 24.03.18 5 0 12쪽
109 행동원리 24.03.13 7 0 11쪽
108 세계 24.03.07 4 0 11쪽
107 불행한 자들의 낙원 24.03.02 4 0 12쪽
106 불광불급 24.02.28 5 0 16쪽
105 네인 이야기(4) 24.02.21 5 0 12쪽
104 네인 이야기(3) 24.02.17 5 0 11쪽
103 네인 이야기(2) 24.02.15 6 0 11쪽
102 네인 이야기 24.02.10 7 0 11쪽
101 검은색 24.01.30 8 0 11쪽
100 침식 24.01.24 8 0 13쪽
99 폭주 전조 24.01.17 9 0 11쪽
98 실험 24.01.15 8 0 12쪽
97 방식과 방법 24.01.09 6 0 13쪽
96 인내의 시간 23.12.31 10 0 11쪽
95 지옥도 23.12.22 5 0 11쪽
94 죄와 속죄 그리고 정의 23.12.15 5 0 12쪽
93 마피아 게임 23.12.07 6 0 13쪽
92 해야할 일 23.12.02 8 0 12쪽
91 테스트 23.11.26 7 0 13쪽
90 인간의 방향 23.11.20 7 0 17쪽
89 신과 인간 그 어딘가 23.11.08 11 0 16쪽
88 원점 23.10.24 5 0 12쪽
87 저주 23.10.13 8 0 13쪽
86 파탄 23.10.05 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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