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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선티플님의 서재입니다

죽어도 살고 싶은 무림 지존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에선
작품등록일 :
2022.05.24 02:09
최근연재일 :
2022.08.26 18:15
연재수 :
29 회
조회수 :
2,541
추천수 :
51
글자수 :
173,027

작성
22.08.10 17:19
조회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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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1쪽

원죄의 아이(1)

DUMMY

한청천을 퇴원시킨 후, 송산은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전심내공과 수라를 연구하는 데 매진했다.

특히 실험의 성과가 나오기 시작한 사흘 전부터는 잠은 물론 씻지도 못하고 영약의 배합에 심혈을 기울인 송산은 의원 밖을 뛰쳐나가 두 팔을 높이 들고 소리쳤다.


“됐다! 드디어 완성했어!”

“선의님이 왜 저러시지?”

“내버려 둬. 공손 어르신이 이상한 애를 주워오더니 마을 사람들도 하나둘씩 맛이 가는 것 같아.”


과거 송산의 오라버니인 송암이 받았던 내단옥을 주축으로 만든 영약은 일시적이나마 수라의 족쇄를 느슨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17년 동안 제자리걸음이었던 연구에 드디어 활로가 트였다는 사실에 송산은 감격에 벅차 눈물까지 나왔다.


“다행이야. 또 사람이 죽는 동안 아무것도 못 할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그 꼬맹이가 돌아오면 좋아하겠다. 보름 동안 몸도 튼튼하게 만들고 왔겠지? 얼마나 효과를 볼지 벌써 기대되네.”

“마침 잘됐군. 직접 보니 어떤가?”

“엄마야! 크, 큰어르신?”


천군(千軍)이 행진하는 소리를 내며 다가온 원용은 의원을 슥 둘러보더니 적당한 자리에 한청천과 마희를 내팽개쳤다.


“선의님. 이런 모습으로 뵙게 되어 송구합니다. 쿨럭.”

“친지신명이시여···.”

“한가하지? 환자 두 명 받게나.”

“엄마···나 힘들어.”


불교의 윤회사상에 따르면, 과거의 업이 현재에도 따라온다고 하였다.

딱히 송산이 불교를 믿지는 않지만, 만약 윤회사상이 실제한다면 송산은 전생에 나라를 판 게 분명했다.

하필이면 한청천의 전문의가 되었으니 말이다.


.

.

.


“오랫동안 빌어먹게 신세 많이 졌습니다!”


산적 무리에게 탈탈 털리고, 또다시 객잔에 의탁하며 일을 한 동민이 주모에게 큰절을 올렸다.

손님들이 구경하는 한 가운데에 절을 받은 주모는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짐짓 부담스러워했다.


“절은 됐네요. 어차피 며칠 지나면 또 산적한테 털리고 돌아올 텐데 뭘. 요즘 세상에 내력도 없는 사람이 혼자서 어떻게 만륜문까지 간다는 건지. 정말 괜찮겠어?”

“현령님이 두목의 목을 벤 이후로 와해됐다고 하니 괜찮을 겁니다.”


단전이 박살 난 무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동민의 해맑은 표정은 서문현 주민들을 즐겁게 해주었고, 특히 바퀴벌레라고 놀려댔던 선견파 무인들도 미련 없이 떠나는 동민을 아쉬워했다.


“안 가면 안 되냐? 어차피 단전이 없는 무인은 사람 취급도 못 받잖아. 게다가 소문으로는 만륜문주를 심문하러 장군 둘이 갔다는데, 어째 영 돌아가는 모양새가 심상치 않단 말이야.”

“저는 문주님을 믿습니다. 떳떳하다면 그들도 돌아가겠지요. 그리고 최근 무림맹에 단전이 망가진 사람이 무림으로 복귀했다는 풍문을 들었습니다. 그 소문을 추적하다 보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죠.”

“고집 한번 완강하구먼. 하긴, 무인으로 태어났으면 최소한 무림에서 죽어야지.”

“가기 전에 딱 한 잔만 더 마시고 가! 내가 쏠게. 응?”

“괜찮습니다. 갈 길이 급하니 이만 떠나겠습니다.”


동민은 주민들과 짧은 이별을 고하고 짚신 몇 켤레와 간단한 비상식만 갖춘 채로 서문현을 떠났다.

서문현과 만륜문의 거리는 지름길로 가도 뛰어서 족히 한 달은 걸리는 거리.

무인이라면 몰라도 일반인이 탈것 없이 질주할 거리가 아니었음에도, 만륜문에 대한 충성심 하나로 동민은 불가능한 여정을 떠났다.

하지만 동민은 몰랐다.

이 여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거리도, 자본도 아닌, 본인의 타고난 불운이라는 것을.


“서문현에서 왔나?”


동민은 여정을 떠난 지 반나절 만에 산속에서 불한당 무리와 마주했다.

검과 활, 창, 도끼 등 다양한 무장을 갖춘 불한당 무리는 흐르는 내력의 양만 봐도 족히 4단에 이르는 실력자 무리였다.


‘그런데 이상하네. 왜 내력이 단전이 아니라 심장에서 느껴지지?’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며 도망갈 준비를 하던 동민은 왠지 모르게 익숙한 내력을 가진 무리를 피해 숲으로 발길을 돌렸다.


【전심내공(轉心內功): 축지(縮地)】


뚜둑!


“끄아악!”

“다음번엔 다리를 분질러주마. 서문현에서 왔나? 한청천이라는 자를 보았나?”


무리 중 한 명이 순식간에 동민의 앞으로 다가가 손목을 부러뜨렸다.

4단의 실력자는 창검을 든 일반인 백 명이 달려들어도 이기지 못하는 경지.

내력이 없는 현재의 동민은 상대하기는커녕 도망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동민은 불한당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침묵을 고수했다.


‘이 자들이 원하는 바를 곧이곧대로 대답해주면 죽는다.’


밤중에 이동하는 흉기를 든 무리.

마교로 구분된 내공을 부리는 불한당 무리가 자신을 살려둘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대답하지 않아도 죽는다.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동민은 승부수를 띄웠다.


“청천이를 아십니까?”


이들의 질문은 서문현과 한청천이라는 파편적인 정보밖에 없다.

즉, 한청천과 같은 마공을 부리면서도 정작 한청천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편이 타당했다.

만일 자신을 중요한 정보를 가진 사람이라고 판단한다면 죽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이 보이지 않기를 기도하며, 동민은 불한당의 대답을 기다렸다.


“우리의 기대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군. 쓸모가 있겠어.”

‘됐다!’


동민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불한당의 살기가 잠시 누그러졌으니.


“그러나 천마님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은 죄. 팔 하나로 갚아라.”


다만 상대를 잘못 만났을 뿐이다.

불한당이 검을 높이 치켜들자 차마 자신의 팔을 잘리는 걸 볼 자신이 없었던 동민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동민이 팔을 잘리는 일은 없었다.


【만륜공(萬輪功): 일륜(一輪)】


“크헉!”


4단의 실력자를 일격에 잠재운 사람은 쓰러진 동민을 일으켜주었다.


“사형, 여기서 뭐 해? 꼴은 이게 뭐야?”


아직 앳되면서도 싸가지 없는 소년의 목소리.

어깨까지 오는 땋은 머리를 만지작거리는 손.

적어도 만륜문에서 이 목소리의 주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일곱 살에 만륜문에 들어와 삼 년 만에 4단의 경지를 달성한 천재.

스러져가는 만륜문의 희망.


“고맙구나. 하후윤.”

“저 새끼들이 사형을 이렇게 만들었어?”

“아니다. 나는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 단전도 완전히 망가졌잖아?”

“하후윤! 이게 무슨 짓인가! 만륜문과 전심문은 분명 동맹을 맺었거늘! 감히 동맹을 공격해? 정녕 죽고 싶은 게냐?”


불한당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이 하후윤에게 소리쳤다.

일격에 쓰러진 사람을 포함해 눈에 보이는 인원만 열 명.

전원 한청천과 같은 전심내공을 쓰는 실력자들로 구성된 조직을 본 동민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너희들이 나보다 강하면 죽겠지.”


만륜문 최악의 싸가지 하후윤.

그가 만륜문에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문 사형에게 둘러싸였을 때도 딱 이런 분위기였다.

깨달음을 얻지 못했던 동민은 싸움에 끼지 못했지만, 그렇기에 하후윤이 싸우는 광경을 똑똑히 지켜봤다.


“이번 계약 내용은 분명 이랬지? 한청천을 만나 그의 전력을 끌어내라. 우리는 현재 한청천이 얼마나 힘을 발휘하는지 알아야 한다.”

“천마님의 이름을 감히 함부로···!”

“그런데 계약대로라면 굳이 이 많은 인원이 갈 필요가 있나 싶네.”


그때나 지금이나 하후윤의 말투는 사방에 적을 만드는 말투였다.

누군가는 성격이 괴팍해서 그렇다고 하겠지만, 하후윤의 몇 안 되는 친구인 동민은 알고 있었다.

그의 말투는 철저히 의도된 것이란 사실을.


“덤벼라. 서문현에 도착하기 전에 몸도 풀 겸, 사형의 손목을 꺾은 죄는 너희들의 목으로 대신하마.”


하후윤의 깨달음은 사투(死鬪)에 의한 성장.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죽음 따위는 하후윤에게 위협이 되지 못했다.


“네 놈이 감히 우리를 농락해!”

“동맹이라고 봐줄 거라 생각하지 마라!”

“그래. 적어도 그 정도의 각오가 아니면 재미가 없지.”


하후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투가 시작되었다.

불한당의 숫자는 숨어있던 병력을 포함해 총 열넷.

상식적으로 4단에 머물러있는 하후윤이 자신과 같은 경지의 실력자 열넷을 쓰러뜨리는 건 불가능했다.


“컥!”

“흐억!”


무인들의 단말마가 산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동민은 차분히 꺾인 손목을 어떻게든 끼워맞춘 뒤 하후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동민은 알고 있었다.

진작 넘었어야 할 4단의 경지를 넘지 못하는 이유는 하후윤이 약해서가 아니었다.


“사, 살려···!”

“네 이놈!”


그것은 탄생부터 새겨진 저주.

하후윤이 가진 무공의 정교함은 이미 6단에 올라도 손색이 없었다.


“많기도 해라. 무적의 전심내공이라더니, 생각보다 시시하잖아?”


열넷의 불한당을 전부 죽인 하후윤이 손에 묻은 피를 닦으며 동민에게 돈 꾸러미를 던졌다.


“만륜문에 가려는 거지?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말없이 가려면 한참 걸려. 요 근처에 꽤 큰 마을이 하나 있으니까 나귀라도 구해서 타고 가.”

“한청천과 싸울 생각이야?”

“그래야지. 꺼림칙하지만, 문주님이 마교와 손을 잡았으니 별 수 있나.”


돈 꾸러미를 주운 동민은 담담히 하후윤의 말을 들었다.

마교가 무림맹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는 소문을 애써 무시했지만, 마교의 일원이 하후윤을 동맹이라고 언급했고, 마지막으로 하후윤이 쐐기를 박았으니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다.

마교와 결탁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이상, 장군의 심문은 폭력 사태로 번질 가능성이 농후했다.

7단이 넘는 고수 사이의 격돌에서 동민 같은 일반인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한없이 무(無)에 가까웠다.


“그 돈이면 조용히 혼자 살 바탕을 마련할 수 있어. 잘 생각해. 요즘 만륜문은 옛날 같지 않아.”

“어쩐 일이냐? 네가 남 걱정을 다 하고?”

“싫으면 말던가!”


동민은 옷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문주님이 옛날 같지 않다는 사실은 진작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 역시 욕망에 눈이 멀어 손에 피를 묻히는 일을 자행했고, 지금은 사제의 걱정에 차마 눈을 마주 보지 못하게 되었다.

따라서 동민은 도망칠 수 없었다.

최소한 사제의 얼굴을 마주 볼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도.


“스승이 잘못된 길을 걷는다면, 제자가 최선을 다해 막아야지. 설령 그 끝에 죽음이 있더라도.”

“하여간 못 말려. 충성심만 보면 개가 따로 없어.”

“너야말로 조심해라. 네 실력으로는 천마를 이기지 못해.”

“나보다 강하면 죽어야지.”


동민은 하후윤의 입버릇이 허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생에 대한 집착과 죽음을 불사하는 성장.

두 사람을 모두 마주한 하후윤 입장에서 둘의 상성은 최악이었다.

마주친다면 둘 중 하나는 필히 죽음에 이르리라.

사제가 걱정된 동민이 입을 열려는 찰나, 하후윤이 등을 돌렸다.


“살아서 보자고, 사형.”


성장을 위한 끝없는 추구.

죽을 때가지 멈추지 않을 무모함을 지켜본 동민은 그에게 작은 응원을 보냈다.


“오냐. 몸조심해라.”


작가의말

원래 휴재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올리고 싶어져서 올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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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장군(1) 22.08.25 40 1 12쪽
27 안한자적(3) 22.08.23 43 2 12쪽
26 안한자적(2) 22.08.22 40 1 12쪽
25 안한자적(1) 22.08.19 47 1 13쪽
24 원죄의 아이(5) 22.08.18 47 1 13쪽
23 원죄의 아이(4) 22.08.16 44 2 12쪽
22 원죄의 아이(3) 22.08.15 48 1 12쪽
21 원죄의 아이(2) 22.08.12 45 1 16쪽
» 원죄의 아이(1) 22.08.10 48 2 11쪽
19 용과 왕(3) 22.08.08 49 1 14쪽
18 용과 왕(2) 22.08.05 48 1 14쪽
17 용과 왕(1) 22.08.03 54 1 12쪽
16 의로움이란 허상 아래(2) 22.08.01 83 2 12쪽
15 의로움이란 허상 아래(1) 22.07.29 54 2 13쪽
14 강호의 도리(4) 22.07.27 55 2 12쪽
13 강호의 도리(3) 22.07.26 65 2 13쪽
12 강호의 도리(2) 22.07.25 63 2 11쪽
11 강호의 도리(1) 22.07.23 73 2 16쪽
10 평화로운 서문현(2) 22.07.20 73 2 16쪽
9 평화로운 서문현(1) +1 22.07.18 76 2 14쪽
8 토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4) 22.07.11 76 2 14쪽
7 토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3) 22.07.08 80 2 13쪽
6 토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2) +2 22.07.06 100 2 12쪽
5 토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1) 22.07.04 113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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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살아야 한다(2) 22.05.25 229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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