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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선티플님의 서재입니다

죽어도 살고 싶은 무림 지존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에선
작품등록일 :
2022.05.24 02:09
최근연재일 :
2022.08.26 18:15
연재수 :
29 회
조회수 :
2,539
추천수 :
51
글자수 :
173,027

작성
22.07.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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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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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평화로운 서문현(2)

DUMMY

반 시진 동안 끈질기게 민폐를 끼친 결과, 한청천은 속죄의 기회를 받아냈다.

무너진 벽을 진흙과 벽돌로 보수 중인 한청천에게 대장장이는 눈길도 주지 않고 말했다.


“대인 얼굴을 봐서 기회를 주는 거야. 아직 용서하지 않았어. 알아들어?”

“아유, 그러믄입죠. 나리의 자비에 감사할 따름입니다요.”

“비굴해지는 자세는 마음에 드네. 꼼꼼하게 고쳐. 날씨를 보니 저녁에 비 오겠다.”

“넵! 분부대로 하지요!”


당연하게도 한청천이 집을 지어본 적이 있을 리가 없었다.

부수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는 한청천이었지만, 정작 본인도 나무 밑이나 동굴, 폐가를 전전하며 살았던 터라 작은 구멍을 메꾸는 데에만 한참이 걸려 점심 무렵에야 끝낼 수 있었다.

첫 작업이라 손에 물집이 잡힌 한청천은 땀을 닦으며 대장장이에게 결과를 보고했다.


“다 고쳤습니다! 이제 용서해주시는 건가요?”

“무슨 소리야? 용서는 얼어 죽을. 내가 벽 부쉈냐? 너 때문에 부서진 벽인데 당연히 네가 고쳐야 하는 거 아니야?”


대장장이는 못마땅한 자식 대하듯 혀를 끌끌 차면서 한심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보면 정말로 한청천이 벽을 부쉈다고 생각할 법한 대장장이의 발언에 한청천이 어이가 없어 말을 더듬어가면서 항변했다.


“아, 아니, 부순 건 당신이잖아요.”

“쓰읍! 어른이 말씀하시면 ‘그렇구나.’하고 받아들이는 거야. 꼭 그렇게 일일이 따져야겠어?”

“네가 먼저 따졌는데···.”

“그런 건 난 모르겠고, 봉 고치기 싫나 봐? 말꼬리나 늘어잡고 말이야. 요즘 세상 참 좋아졌어?”


한청천은 간신히 미소를 잃지 않고 평정을 유지했다. 알고 있다. 세상에는 자기 잘못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타인의 약점을 빌미로 장난치는 사람도 넘쳐난다.

한청천 자신도 그랬으니까.

인과응보라. 모든 업(業)은 사라지지 않고 주인에게 돌아오는 법. 과거의 업보가 그대로 자신에게 돌아오는 현 상황에 한청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그럼 제가 뭘 하면 될까요?’

“족보에 먹물도 안 마른 새끼가.”

“문장 부호 바꼈다.”

“제대로 한 건데?”

“허허, 이런 싸가지 없는 놈.”


딱히 반성하지는 않았지만.

한청천을 약 올리려다가 되려 한 방 먹은 대장장이는 더 이상 말싸움을 하기보다 이 상황을 끝내기를 택했다.


“대인의 부탁이기도 하고, 나도 천년만년 내 걸작을 방치할 생각은 없어. 대신 일이나 하나 도와줘라.”

“무슨 일인데.”

“내가 지금 이름 모를 영감이랑 같이 살고 있거든? 나는 대장간에서 돈 버는 담당. 영감은 밭일해서 먹을 거 수확하는 담당. 초여름이라 한창 바쁠 시기니까 오늘 하루만 영감 도와서 밭일 좀 도와줘. 그러면 용서해줄게.”

“간단해서 좋네. 금방 끝내고 용서받아주겠어!”

“오냐, 얼른 가라. 꼴도 보기 싫다.”


한청천이 부리나케 밭으로 향하자, 마침내 조용해진 대장간에는 불씨가 타닥이는 소리만이 들렸다. 대장장이 황지심은 망가진 봉을 들었다. 7단 이상의 내력에는 버티지 못하는 것이 유일한 오점이었던 해암봉(海暗棒). 한청천의 비아냥이 짜증 났던 이유도 그의 비아냥에 어느 정도 사실이 포함됐기 때문이었다.


“더 단단하게···.”


황지심은 구석에 방치했던 먼지 쌓인 상자를 열었다. 과거 벼슬아치 시절에 우연히 손에 넣었던 세 개의 내단옥 중 마지막 하나.

한청천이 밭에 도착했을 때 즈음엔 대장간에 화로의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쪽은 밭 역시 마찬가지였다.


“꺄아아악!!!!”

“여기 사람들은 왜 다들 소리부터 지르고 보냐? 귀청 떨어지겠네.”

“당장 꺼져!”


【사계(四季): 화왕지절(火旺之節)】


불을 내뿜는 괭이와 난동 부리는 노인, 그리고 모든 일의 원흉인 한청천.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뭐라고? 크게 말해. 잘 안 들려.”

“이 할배는 왜 말귀를 못 알아들어! 나 일손이라고! 할배 일 도와주러 왔다고!”


농사꾼 화전은 손톱에 낀 흙을 털어내고 귀를 후벼팠다.

당장 죽을 것처럼 새하얀 얼굴에 남의 밭을 아무렇지도 않게 밟으면서 달려온 소년의 첫인상만 봐도 태어나서 농사를 해본 적이 없는 티가 났다.

그렇다고 딱히 글공부를 한 모양새도 아니었지만, 화전은 어떻게 해서든 일하는데 방해되는 꼬맹이를 치우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했다.

귀를 후비던 도중, 문득 묘안이 떠오른 화전은 입을 틀어막고 음흉하게 웃더니 누가 봐도 방치된 땅을 가리켰다.


“저기 오이밭에 잡초가 많이 자랐는데 그것 좀 뽑아줘. 난 허리가 아파서 숙이기 힘들어.”

“저기 있는 풀떼기들 뽑으면 된다 이거지? 알았어. 별로 어렵지도 않네.”


한청천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잡초하고 자갈이 무성한 땅을 향해 달려갔다.

화전의 판단은 옳았다.

실제로 한청천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었다. 한청천에게 농사란 입이 심심할 때 마침 근처에 자라있는 과일이나 채소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한청천은 본인이 속은 줄도 모르고 방치된 자갈밭에 있는 잡초를 뽑았다.

약 한 시진 뒤,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면서 달려온 한청천이 해맑게 소리쳤다.


“다 뽑았어!”

“그래? 이상하네. 하루 종일 해도 모자랄 텐데···.”


화전의 계획은 절반만 들어맞았다.

한청천은 농사를 모르기에 자갈밭에 있는 잡초를 내력까지 써가며 신속 정확하게 뽑았다.

하지만 자갈밭 옆에 정성 들여 가꾼 진짜 오이밭이 있었고, 용서받기 위해 한창 의욕이 넘치던 한청천이 오이밭에 있는 잡초를 뽑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어때? 깨끗하지?”


한청천이 자랑스럽게 보여줄 정도로 밭은 풀 한 포기 없이 깨끗했다.

화전이 자식처럼 소중하게 심은 오이도 남김없이.


“꺄아아악!!!!”


.

.

.


이러해서 화전에게 간신히 목숨만 건진 한청천은 선견파라 적힌 객잔에 들어갔다.

어쩌냐. 되는 일 하나 없어도 밥은 먹고 살아야지.


“주인장, 제일 맛있고 양 많은 걸로 하나요. 값은 공손중 어르신 이름으로 달아두시고.”

“행색을 보니 이번에 주웠다던 아이구나? 많이 먹고 건강해지라고 두 배로 줄게. 물론 대인에게 값도 두 배로 받고.”

“이곳 주인장은 말이 좀 통하네.”

“말주변이 없으면 굶어 죽는 직업이 객잔이지. 동민아! 국밥 하나 큰 거로 내와라!”

“네! 곧 갑니다!”


객잔을 열심히 뛰어다니던 청년은 주방에서 받은 국밥을 들고 한청천에게 다가갔다.

손님 전부를 맞이하느라 정신없이 돌아다니던 청년의 시야는 매우 협소했고, 아무 생각 없이 한청천의 바로 앞까지 다가간 청년은 그을린 머리카락과 새하얗게 질린 한청천의 얼굴을 보자 뒤로 놀라 자빠졌다.


“선견파 국밥입니다. 맛있게 드아악!”


【전심내공(轉心內功): 음전양변(陰轉陽變)】


엎어지는 국밥을 가까스로 잡아낸 한청천은 바닥에서 덜덜 떠는 청년을 무시하고 숟가락을 들어 국밥에 코 박듯 머리를 박고 식사를 시작했다.


“오늘따라 사람들이 소리를 많이 지르네. 맛있다.”

“너는 그때 그 반송장? 어, 어, 어떻게 살아있는 거야? 죽었잖아?”

“죽긴 누가 죽어. 멀쩡히 밥 먹고 있는데. 그러는 너는 누구길래 아는 척이냐?”

“나 기억 안 나? 공손중 장군과 치열한 접전을 펼쳤잖아. 치열한 접전 끝에 한 수가 밀려 단전이 망가졌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난 만륜문의 천재 무인 동민!”

“아, 첫날에 날 파묻으려 했던 바퀴벌레? 접전은 개뿔, 한 방에 나가떨어졌으면서. 크어어. 쥑이네.”

“푸풉!”


한청천의 치명적인 작명 솜씨에 객잔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입에 물던 음식을 뿜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푸하하하! 어떻게 사람 별명이 바퀴벌레야?”

“동민아! 여기 앉아서 자세히 좀 들려줘라!”

“만륜문이라서 바퀴벌레야? 크하하하! 앞으론 그렇게 불러야겠다!”

“공손 어르신한테 주제도 모르고 덤빈 천재 동민님! 바닥에 그만 붙어있고 빨리 국밥 한 그릇 더 주세요! 하핫!”


안 그래도 태극권 하위호환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던 것도 모자라 최근 만륜문이 마교와 결탁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져 만륜문에 대한 인식은 나락까지 떨어진 지 오래였다.

그런 만륜문을 바퀴벌레로 비유하니 객잔에 있던 사람들이 통쾌해하며 동민을 손가락질하자, 동민은 눈물을 글썽이다가 객잔 밖으로 뛰쳐나갔다.


“다 미워! 사형한테 말할 거예요! 다들 두고 봐!”

“동민아. 갈 땐 가더라도 품삯은 받아야지. 돈 필요하다며.”

“·········.”

“저거 고민하는 것 봐.”

“진짜 추하다.”

“저렇게까지 살고 싶을까?”

“선의한테 치료받고 약값도 안냈다며?”

“시끄러워요!”


객잔 주인의 손에 쥔 세 냥을 낚아챈 동민이 떠난 다음 날, 산적에게 속옷만 빼고 다 털린 채 터벅터벅 객잔으로 돌아온 이야기는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아무튼 식사를 마치고 배가 부른 한청천은 어떻게 해야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싸울 때와 제자 등쳐먹을 때 빼고는 사용된 적 없는 머리가 맹렬히 움직였고, 한청천의 눈에 바둑을 두는 두 사내를 포착했다,


“저대로 보내도 될까? 요즘 만륜문 분위기 심상치 않다며?”

“괜찮을 거다. 내력도 없는 놈이 밤새 뛰어가봤자 한참은 걸릴 테니. 네 일이나 잘해라. 산적은 대체 언제 잡을 거냐?”

“거 되게 보채네. 좀만 기다려 보쇼. 미행을 붙였으니까 본거지를 알아내는 건 시간문제야. 내기할까? 누가 먼저 일을 마치는지?”

“내기할 생각이면 빚이나 갚아라. 네가 나한테 바둑으로 진 빚만 해도 10관은 된다.”

“에이 왜 그래. 쌀쌀맞게. 우리가 남이야?”

“누구세요?”

“형제끼리 되게 냉정하네.”


바둑.

본인이 머리가 돌아간다고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 도전한 오락임과 동시에 ‘에이 씨벌 더러워서 못 해 먹겠네. 뭐가 이렇게 어려워?’하면서 때려치운 가상 전쟁 오락.

제자 한운에게 바둑을 배운 한청천은 나름 바둑에 자부심이 있는 축에 속했다. 비록 친구가 없어서 대국을 치른 적은 한운에게 깨진 게 거의 전부였지만, 일흔두 살에 이르러선 무려 여섯 살 바둑 영재와 한집 반 차이로 이긴 자랑스러운 전적이 있었다.

해결책을 찾은 한청천은 객잔에서 바둑판과 바둑알을 빌리고 아직 연기가 피어나는 오이밭을 향해 달려갔다.


“남자답게 바둑으로 결정하자.”


아직 분이 풀리지 않은 화전은 한청천을 보자 밭의 잔불이 순간 일렁였으나, 바둑이라는 단어에 그의 눈빛이 변했다.


“내가 이기면 오늘 있었던 모든 소란을 용서해주는 대신, 네가 이기면 얼마든지 나를 부려 먹어도 돼. 어때?”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송장을 어찌 써먹어?”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는 말 몰라?”

“모른다.”

“난 알아. 그러니까 그런 줄 알고 있어.”

“뭐 이런 뻔뻔한 놈이 다 있어?”


바둑이라는 한청천의 선택은 유효했다.

특히나 농사 외에는 마땅한 취미랄 것도 없는 농부에게는 더욱이 그랬다.

오락을 하는 모든 사람이 그렇듯, 패배한 전적은 새까맣게 잊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허세를 떨었다.


“좋다. 너 같은 꼬맹이한테 내가 바둑으로 질 일은 없으니 괜찮겠지.”

“헹, 노망난 할배가 잘 두면 얼마나 잘 둔다고? 곧 질질 짜게 만들어주지.”


한청천의 선전포고는 대국이 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실현됐다.


“바둑두던 사람 어디 갔나. 야, 우냐?”

“안 울어! 재촉하지 마!”


한청천은 옷깃에 코를 풀며 거의 확정된 패배를 부정했다.

뭐, 특정 인물을 지칭하지는 않았으니까 본인이 질질 짜도 맞는 말이긴 했다.

한청천이 바둑을 못 두는 편은 아니었다. 단지 화전이 서문현에서 내로라하는 바둑 달인 셋 중 한 명이었고, 한청천이 자기한테 불리한 수에 바둑알이 지나칠 때마다 움찔거리니 오히려 지고 싶어도 지기가 힘들 정도였다.

몰릴 대로 몰린 한청천이 자충수를 두려던 순간, 귀에 익은 목소리가 한청천의 뒤에서 들렸다.


“곧 비가 올 날씨인데 밭 한가운데서 뭐 하고 계십니까?”


용이 지상에 강림하듯 나풀거리는 옷을 붙잡고 하늘에서 사뿐히 내려온 공손은이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의 조합에 신기해하며 물었다.


“아가씨!”

“은이구나. 둘이 아는 사이냐?”

“이번에 들인 식솔 비슷한 아이입니다. 대국 도중이셨습니까?”

“그렇지. 내가 거의 다 이겼어.”

“아니라고 했지! 두고 봐! 보란 듯이 역전할 테니까!”

“늦었다 이놈아. 설령 장자방이 온다 해도 이렇게까지 밀리면 역전은 불가능해.”


한청천과 화전이 다투는 동안 공손은은 차분히 판국을 읽었다. 평소 도박수를 즐겨두는 화전이 악에 받쳤는지 정석적으로 하수를 짓밟는 수를 뒀고, 한청천은 단 하나의 활로를 남겨두고 완전히 몰린 상황이었다.

공손은은 분에 못 이겨 눈물을 흘리는 한청천을 바라봤다.

첫날에 자칭 천마라고 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산 귀퉁이를 무너뜨린 존재가 바둑판에서는 어린아이같이 질질 짜는 모습이 꽤 귀엽다고 생각한 공손은은 한청천을 일으켜 세우고 대신 자리에 앉았다.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랫것이 곤란해하는 처지를 윗사람이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이 아이를 대신해 제가 대신 대국을 이어 나가도 되겠습니까?”

“네가 그렇다면야 나야 상관없다만, 아무리 너라도 이 판국으로는 못 이기지. 자신 있나?”

“비가 내리기 전에 끝내드리지요.”

“하하하! 좋아! 드디어 절름발이 노친네한테 자랑할 거리가 생기겠어!”

“패배를 자랑하고 싶으시다면 원하시는 대로 하시지요.”


화전은 처음에는 호탕하게 웃으며 공손은의 수를 관망했다.

어떤 수를 놓는다 한들 이미 충분한 대응책을 고려했고, 천지가 뒤집혀도 절대로 지지 않으리라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두 수가 진행되자 화전의 얼굴에는 여유가 사라졌고, 다섯 수에 다다라선 그 자리에는 조금 전까지 전장을 지배하던 장군은 온데간데없이 주름이 짙게 파인 노인이 대신해 앉아있었다.


“내가 졌네.”

“즐거운 대국이었습니다.”


넋을 놓은 화전을 대신해 바둑판을 정리한 공손은은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서 쭈뼛거리는 한청천의 손목을 붙잡았다.


“뭐해? 안 따라오고.”

“네? 저는 아직 대장장이한테 용서도 못 받았는데요?”

“대장간에 봉은 놔두고 왔지? 그럼 됐어. 지심 아저씨가 본인 작품을 망가진 채로 내버려 둘 리가 없거든. 무엇보다 굴뚝에 연기도 나고 있잖아. 앞으로 며칠은 피어오를 거야. 걱정하지 말고 빨리 와. 아버지랑 평이가 기다리고 있어.”

“어르신이요?”

“그래. 빨리 와. 네가 와야 수저를 들지.”


한청천은 부모에게 붙잡힌 자식처럼 맥없이 공손은의 뒤를 따라갔다. 공손은이 어째서 갑자기 나타났는지, 혹시 자신을 찾고 있었는지, 한청천은 묻지 않았다.

대신 공손은의 내력과 혈관이 움직이는 소리로 지레짐작할 뿐이다.

고작 사과하라고 보낸 사람이 점심이 한참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아 걱정한 걸까. 혹시 증세가 악화돼 또 쓰러진 것은 아닌지 염려된 걸까. 그래서 집안에서 가장 내력이 많은 공손은을 시켜 자신을 찾은 것은 아닐까.

지레짐작한 망상에 불과했지만, 공손중이 걱정한 얼굴을 상상하니 한청천은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네!”


200년 후의 미래는 한청천의 기대와 동떨어졌다.

스스로 단전을 파괴한 태극권의 고수와 의사, 대장장이, 농부, 눈앞의 여인까지. 과거였다면 역사에 한 획을 그어도 이상하지 않을 실력의 소유자였다.

그런 고수들이 하나같이 땡중마냥 시골에 은거하고 있는 형국만 보더라도, 세상이 혼란하다는 사실을 어렵지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한운의 유산을 악용하는 자들도 있다. 자신을 태워 후대를 비출 촛불이 되기를 원했던 제자의 뜻이 짓밟혔다.

곰을 죽일 땐 순간 이성을 잃고 죽음을 자초할 뻔했지만, 정신을 가다듬은 한청천은 다짐했다.


‘조금만 기다려라. 너희들의 유산을 온전히 돌려놓으마.’


한천, 한양, 한목, 한운.

자식과도 같은 네 제자의 뜻을 바로 세우리라.

그리고 다음에야말로 저승에서 회포를 풀리라.

나 정도면 그럭저럭 자랑스러운 스승이지 않았냐고.


‘150관은?’

‘닥쳐.’


작가의말

중국에 국밥은 왜 있냐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맛있잖아요

어차피 진짜 중국도 아닌데 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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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원죄의 아이(3) 22.08.15 48 1 12쪽
21 원죄의 아이(2) 22.08.12 44 1 16쪽
20 원죄의 아이(1) 22.08.10 47 2 11쪽
19 용과 왕(3) 22.08.08 49 1 14쪽
18 용과 왕(2) 22.08.05 48 1 14쪽
17 용과 왕(1) 22.08.03 54 1 12쪽
16 의로움이란 허상 아래(2) 22.08.01 83 2 12쪽
15 의로움이란 허상 아래(1) 22.07.29 54 2 13쪽
14 강호의 도리(4) 22.07.27 55 2 12쪽
13 강호의 도리(3) 22.07.26 65 2 13쪽
12 강호의 도리(2) 22.07.25 63 2 11쪽
11 강호의 도리(1) 22.07.23 73 2 16쪽
» 평화로운 서문현(2) 22.07.20 73 2 16쪽
9 평화로운 서문현(1) +1 22.07.18 76 2 14쪽
8 토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4) 22.07.11 76 2 14쪽
7 토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3) 22.07.08 80 2 13쪽
6 토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2) +2 22.07.06 100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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