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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선티플님의 서재입니다

죽어도 살고 싶은 무림 지존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에선
작품등록일 :
2022.05.24 02:09
최근연재일 :
2022.08.26 18:15
연재수 :
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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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4
추천수 :
51
글자수 :
173,027

작성
22.08.1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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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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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원죄의 아이(4)

DUMMY

‘이상하군. 나는 단전을 노린 적도 없는데 알아서 무너져 내렸어.’


당연한 상식이지만, 단전은 내력을 모으는 그릇이기 이전에 사람의 급소다.

사람의 육체는 급소를 보호하도록 설계되었고, 죽을 만큼 달리면 숨이 차 걸음을 멈출지언정 심장이 터지지 않듯, 단전 또한 내력을 최대한 끌어낸다고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

게다가 하후윤과의 전투는 일각도 걸리지 않은 나름 짧은 전투였다.

하후윤의 경지를 생각해봤을 때 아무리 무리한다고 해도 단전이 망가질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하후윤의 단전이 망가진 이유는 하나 말곤 없었다.

환골탈태, 혹은 주화입마.


“싸워라. 한청천.”


오장육부가 갈가리 찢기며, 잔존 내력이 혈액을 타고 몸을 태우고, 당장이라도 의식을 놓으려는 두뇌의 의견을 묵살한 하후윤이 넝마가 된 상의를 찢었다.

공손평만큼은 아니어도 다부진 육체였지만, 하후윤의 몸을 본 한청천은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무슨···!”


피부는 이미 몇 번이나 찢겼다 이어 붙인 흔적이 다분했고, 뼈는 몇 번을 기워 맞췄는지 몰라도 이미 정상인, 아니, 사람의 구조가 아니었다.

한청천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조차 횟수는 감히 짐작하지 못했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다섯 번의 환골탈태, 세 번의 주화입마.

하후윤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8년 전부터.


***


“우리 아들 천재네. 어떻게 그 나이에 내력을 스스로 깨우쳤대?”

“만륜문주님이 일곱 살만 되면 입문시켜 주신대! 잘됐다. 윤아.”

“아 호들갑 좀 떨지 마!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어!”


이제야 볼살이 겨우 빠졌을 다섯 살.

그야말로 하늘이 내렸다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재능과 부모의 사랑을 잔뜩 받고 큰 하후윤은 다섯 살의 나이에 단전에 내력을 불어넣었다.

아직 어렸던 하후윤은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지 못했으나, 자신이 강해지는 것을 부모가 좋아해 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그리하여 수련을 정진한 하후윤은 고작 일곱 살에 3단을 넘보는 경지에 다다랐고, 만륜문주의 눈에 들어 촉망받는 수제자로 발탁되었다.

당연히 이른 나이의 깨달음과 만륜문주의 특별 대우는 하후윤 주변에 적을 만들었다.


“쟤가 그 천재야? 듣던 대로 재수 없게 생겼네.”

“우리랑은 눈도 안 마주치는 것 봐. 다른 세계의 사람이다 이거지?”

“그래도 대단하지 않아? 어떻게 내력을 만드는지 물어볼까?”


질투, 시샘, 동경, 어른들의 다양한 감정이 담긴 따가운 눈초리를 받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다행히도 하후윤에게는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빠가 만든 반찬에 엄마가 해준 밥 먹고 싶다.”


재능과 흥미, 거기에 주변인의 응원이 받쳐주는 환경에서 하후윤은 열 살만에 4단의 경지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뤘고, 동년배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성인 중에서도 적수가 몇 없게 된 하후윤은 만륜문의 정식 후계자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정식 후계자로 임명되는 날, 만륜문주가 하후윤에게 물었다.


“모처럼 정식 후계자가 되었는데, 바라는 건 없느냐? 뭐든지 들어주마.”


비록 입지가 좁다곤 하나, 무림맹의 일원이자 문파의 문주인 만륜문주라면 기와집 한 채는 너끈히 사줄 재력이 있었다.

그러나 하후윤은 돈에는 흥미가 없었다.

그가 흥미 있는 것은 하나.


“집에 다녀오겠습니다.”


자신의 성취를 본인 일인 것처럼 뛸 듯이 기뻐하는 부모의 얼굴이었다.


“아들!”

“엄마, 아빠!”

“못 본 사이에 키가 엄청 컸네? 아빠보다 크는 거 아니야?”

“아빠는 원래 키 작잖아요.”

“못 먹어서 그래 인마.”


부모와 삼 년 만에 재회한 하후윤은 언제나처럼 자신을 맞아주는 부모를 보고 확신했다.

자신이 엄마와 아빠를 사랑하는 이유는 단순히 낳아주었기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힘들진 않아? 살이 좀 빠진 거 아니야?”

“엄마. 내가 거기서 먹은 소만 세 마리야.”


자신이 무에 재능이 없더라도, 설령 내일 당장 단전이 파괴되더라도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절대적인 사랑에서 비롯된 신뢰가 언제까지고 자신을 지탱해줄 것이란 사실을 확신했다.

하후윤의 확신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전혀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어라?”


4단에 도달하고 두 달이 조금 지났을 무렵, 하후윤은 자기 몸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내력이 무공을 따라가지 못했다.

지금까지 이랬던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도.

차라리 숨겼으면 좋았을 것을, 어린 하후윤은 곧장 문주에게 보고했다.


쨍그랑!


“설마···!”


만륜문주가 찻잔을 깨뜨릴 정도로 당황한 이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아니, 알기 싫어도 강제로 알게 되었다는 편이 정확했다.


“들었어? 부모가 내단환을 먹으면 그 자식도 4단의 경지를 넘지 못한데.”

“어쩐지. 내단환을 아무리 먹어도 5단의 고수가 안 나오나 했는데, 공짜는 없다 이 말이네.”

“전쟁 전까지는 내단환이 워낙 귀한데다 4단을 넘을 재능을 가진 사람도 몇 없으니까 부작용을 몰랐는데, 요즘 소문이 흉흉하더라고. 현재는 마땅한 치료법도 없다더라.”


마치 하후윤이 들으라는 것처럼 떠들어대는 사람들.

하후윤은 그들의 목소리에 반응하지 않았다.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절망해 미쳐가는 후계자가 그들이 바라는 구도일 테니까.

그러나 단 한 명, 하후윤을 측은해하는 단 한 명에 의해 하후윤은 이성을 놓고 말았다.


“재수도 없지. 부모를 잘못 만나서.”


그의 말에 조롱이나 비난의 의도는 없었다.

하후윤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것 같은 한 마디.

그 한마디가 지금까지 어떤 욕에도 굴하지 않던 하후윤을 무너뜨렸다.


빠악!


“커헉!”

“이 개새끼가. 어디서. 내. 엄마랑. 아빠를.”

“윤아! 그만해! 그러다 죽겠어!”

“이거 놔! 네가! 너 따위가! 뭘 안다고!”


동민이 필사적으로 하후윤을 저지한 덕분에 살인은 면했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행실이 만륜문을 맞기기에 부적합하므로 하후윤의 후계자 임명을 취하한다.”

“윤이가 잘못하긴 했지만 가차 없네.”

“멍청아. 더 키워봤자 쓸모도 없는 놈 후계자로 둬서 만륜문 망칠 일 있냐? 오히려 문주님 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이지. 몇 년 동안 수련밖에 안 해서 트집 잡을 게 없어서 곤란하던 차에, 자기가 알아서 내려갈 명분을 마련해줬잖아.”


어차피 후계자 자리에는 별 관심 없었던 하후윤이었기에 만륜문에 버림받았다는 사실에는 별로 상처받지 않았다.

하후윤의 정신은 언제나 단단했다.

그의 뒤에는 절대 무너지지 않을 사랑과 신뢰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하후윤은 안타까워하는 누군가의 한마디를 참지 못했다.


“아빠. 엄마.”


늦은 밤, 만륜문을 탈출한 하후윤은 무작정 부모의 집으로 달려갔다.

확인하기 두려웠지만, 확인해야만 했다.


“윤아!”

“울었어? 얼굴이 왜 그래?”


달빛은 해가 저문 밤에도 부모의 얼굴을 선명하게 비춰주었다.

절망적이게도, 하후윤의 예상은 적중했다.


“으아아앙!”


며칠 밤을 울었는지도 모를 충혈된 눈, 밥도 제대로 들지 못해 떨리는 팔, 그런데도 자신을 먼저 걱정하는 다정한 말이 가시가 되어 하후윤에게 박혔다.

이토록 과분한 사랑과 신뢰를 받았는데도, 더 이상 보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더 이상 과거처럼 온전히 사랑받지 못하고, 자신이 강해지지 못하는 이유가 부모 때문이라고, 부모를 향한 찰나의 원망이 가슴에 못을 박을 때, 하후윤은 무너져내렸다.


“미안하다. 아빠가 미안해. 아빠도 몰랐어. 할아버지가 내단환을 먹은 줄 알았다면 널 만륜문에 보내지 말걸. 미안하다.”

“울지 마. 윤아. 왜 울어. 엄마랑 아빠는 너 하나도 원망 안 해.”


사랑을 기꺼이 받는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하후윤은 너무 이른 나이에 깨달아 버렸다.

부모를 만난 이후로 하후윤은 내단환의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만륜문에서 금지한 비급을 익히기도 하고, 만륜문주의 권유로 환골탈태와 주화입마를 강제로 발생시키기도 했다.


“끄아아아악!!!!”


결과는 번번이 실패.

몇 년에 걸친 실험은 번번이 실패하고, 하후윤의 몸은 점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변형되고 있었다.


“헉, 허억, 허억.”

“계속할 거냐? 늘 말하지만 실패할 가능성이 압도적이고, 죽을 수도 있다.”

“내가 약하면 죽겠지.”


하후윤도 알고 있었다.

최초의 실험이 실패한 이상,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뿐더러, 이미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몸이란 것을.


“하지만 살면 강해진다.”


그러나 차라리 죽는 편이 나았다.

평생 부모를 향한 덧없는 원한을 안고 살 바에야, 사랑을 받는 것조차 못하는 삶을 살 바에야, 죽는 편이 훨씬 나았다.


“그만해라.”

“뭐?”


세 번째 환골탈태를 한 후, 하후윤이 요양차 집에 방문하자 하후윤의 아빠가 말했다.


“아빠. 그게 무슨 소리야?”

“처음부터 네가 무공을 하게 해선 안 됐는데. 아니, 네 엄마랑 결혼해선 안 됐는데. 더 좋은 사람과 만났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내 아버지로부터 이어진 원죄가 너를 가로막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


죽은 생선 같은 눈으로 자신의 모든 선택을 후회하는 아버지의 말을 들은 하후윤은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사랑과 신뢰가 무너지려고 한다.

사랑만큼이나 큰 죄책감이 마침내 빛을 가리려고 한다.

사랑과 신뢰를 거두려고 한다.


“아빠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사과해!”


콰앙!!!


집을 뒤흔들 정도의 위력으로 바닥을 내려친 하후윤은 지난 6년 동안 쌓아왔던 울분을 터트렸다.

터트리면 안 된다고 머리는 말하고 있었지만, 가슴이 더 이상 버터지 못했다.


“아빠가, 엄마가, 내가 무슨 잘못을 했어! 우리 중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어! 나는 이 원죄를 끊어낼 거야! 누구도 감히 엄마랑 아빠 탓을 못 하게끔 최고로 강해질 거야! 그리고 증명하겠어!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다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6년 동안 다듬고 다듬어도, 마지막엔 감정이 묻어버린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숨이 가빠 딸꾹질해버린다.

이 말을 들은 당신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또 바보 같은 죄책감을 느끼진 않을까.

숨기고, 또 숨겼던 진심을 내뱉었다.


“제발 나를 믿어줘.”


하후윤은 부모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집을 뛰쳐나왔다.

들을 자신이 없었다.

믿어달라니, 하후윤이 뱉었지만, 모순적이기 짝이 없었다.


“아프지 마라. 밥 잘 먹고.”

“엄마랑 아빠는 그거면 돼.”


부모는 항상 믿고 있었다.

믿지 못하는 것은 하후윤 본인이었다.

당연했던 작별 인사조차 자신을 향한 위로가 아닐까, 죄책감을 느끼고 내뱉는 말이 아닐까 의심하는 자신이 미웠다.

사랑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응. 돌아올게.”


몇 년 후, 마교가 심장을 사용해 무공을 펼친다는 사실을 입수한 하후윤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집으로 달려갔다.


“엄마! 아빠! 나 원죄를 푸는 방법을 찾았어! 그러니까 조금만···!”


그러나 몇 년 만에 돌아온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엄마? 아빠?”


하후윤은 부모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지 못한다.

알고 싶지 않았다.

혹여나 아빠가 죄책감에 못 이겨 목숨을 끊었을까 봐.

만에 하나 엄마가 아들이 망가져 가는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보지 못해 도망갔을까 봐.

두려웠다.


“···싶어.”


죽어가는 몸뚱이를 간신히 일으킨 하후윤은 아주 작게, 숨소리처럼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믿고 싶어.”


두근.


누군가가 하후윤의 손을 잡아채 한 손은 동맥에, 한 손은 심장에 갖다 댔다.


“살고 싶으면 들어라. 느껴지나?”


정신이 아무리 피폐해져도, 마음이 아무리 갈가리 찢어져도, 몸은 정직하다.

맥박이 뛰고, 심장이 고동치며, 필사적으로 숨을 고른다.

온몸으로 살고 싶다고 외치는 하후윤을 본 한청천은 비약을 삼켰다.


【전심내공(轉心內功): 심기일전(心機一轉)】


“이것이 전심내공이다.”


필사적인 고동.

한청천은 이 고동 때문에 생을 잊지 못하고 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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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안한자적(2) 22.08.22 39 1 12쪽
25 안한자적(1) 22.08.19 46 1 13쪽
24 원죄의 아이(5) 22.08.18 46 1 13쪽
» 원죄의 아이(4) 22.08.16 43 2 12쪽
22 원죄의 아이(3) 22.08.15 48 1 12쪽
21 원죄의 아이(2) 22.08.12 44 1 16쪽
20 원죄의 아이(1) 22.08.10 46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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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용과 왕(2) 22.08.05 46 1 14쪽
17 용과 왕(1) 22.08.03 5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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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의로움이란 허상 아래(1) 22.07.29 53 2 13쪽
14 강호의 도리(4) 22.07.27 54 2 12쪽
13 강호의 도리(3) 22.07.26 63 2 13쪽
12 강호의 도리(2) 22.07.25 61 2 11쪽
11 강호의 도리(1) 22.07.23 72 2 16쪽
10 평화로운 서문현(2) 22.07.20 72 2 16쪽
9 평화로운 서문현(1) +1 22.07.18 75 2 14쪽
8 토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4) 22.07.11 75 2 14쪽
7 토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3) 22.07.08 79 2 13쪽
6 토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2) +2 22.07.06 99 2 12쪽
5 토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1) 22.07.04 111 2 15쪽
4 살아야 한다(4) 22.05.27 141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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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살아야 한다(2) 22.05.25 227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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