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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선티플님의 서재입니다

죽어도 살고 싶은 무림 지존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에선
작품등록일 :
2022.05.24 02:09
최근연재일 :
2022.08.26 18:15
연재수 :
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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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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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글자수 :
173,027

작성
22.07.2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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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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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강호의 도리(2)

DUMMY

서문현 북동쪽에 위치한 수갱두 산골짜기 깊은 곳.

보기만 해도 한 성깔 하게 생긴 얼굴 수백 명이 서로의 무기를 맞대며 땀내를 풍기고 있었다. 때는 입하(立夏) 중반 무렵. 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려준다지만, 혹독한 수련 강도에 불만이 새어 나오자 산적단 부두령 여울이 부하들을 꾸짖었다.


“긴장을 늦추지 마라! 아마도 내일, 늦어도 모래에 장해호 대장군의 동생 장해랑이 온다! 문파 맹주에 필적하는 8단의 고수다! 목숨을 건지고 싶거든 수련을 게을리하지 마라! 함정조는 어떻게 돼가고 있나?”

“오늘도 똑같죠 뭐. 설치는 나흘 전에 끝났고, 지금은 작동이 잘되나 한 번씩 훑어보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네요. 그런데 이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산적이잖아요. 나라에서 높은 분이 오면 마을에 흩어져서 일반인 행세를 하는 편이 낫지 않아요?”

“쌍아. 너는 실력은 출중한데 그릇이 작은 게 문제야. 생각해봐라. 그럴 거면 두령이 일랑이를 미행하던 놈을 돈까지 쥐여주면서 보내줬겠냐?”


여울은 부하들에게 휴식을 명한 뒤, 간부 소쌍과 함께 바닥에 앉았다.

장대견의 오른팔 여울은 고지식하고 엄격한 성격 탓에 벗이라 부를 사람이 없었지만, 친화력이 좋은, 속된 말로 거절할 줄 모르는 소쌍이 온 이후로 그는 소쌍을 만났다 하면 앉혀서 속마음을 터놓고 말하곤 했다.


“네 말대로 장해랑은 대장군 장해호의 동생이야. 장해호가 누구냐? 이 나라의 무력 그 자체인 흑호를 총괄하는 사람 아니냐? 장해랑만 생포하면 이 나라는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흑호를 보내지 못해. 지금보다 거침없이 세력을 확장할 수 있다는 뜻이야.”

“아무리 그래도 장해랑은 8단이잖아요. 두령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6단이 8단을 이기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운데, 생포가 가능할까요?”

“이 멍청아. 너도 실력만 따지만 5단 못지않아. 그런데 네가 왜 승단을 못 하는데? 5단과 7단, 8단은 무림이나 고위 관직에 연줄이 있어야 해서 못 하는 거잖아. 무림맹이 담당하는 해는 유달리 그쪽 문파의 어중이떠중이들이 6단으로 죄다 승단하는 건 지나가던 개도 아는 사실이다. 지난번에 두령이 쓰러뜨린 호위병도 그랬지. 장해랑이 왜 시골에 있겠어? 성질이 더러운데 실력도 약해빠졌으니까 적당히 현령 자리 주고 버린 게 뻔하잖아? 그러니까 허구한 날 장강에 있는 대장군이 서문현까지 들락거리지.”

“저는 잘 모르겠네요. 너무 희망적인 해석으로 뒤덮인 게 아닐지. 미행했던 놈을 엊그제 풀어줬다고 장해랑이 군사도 없이 단신으로 올지도 의문이고, 장해랑이 8단의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가설도 설득력이 낮고, 무엇보다 미친 호랑이 장해호가 동생이 인질로 잡혔다고 안 움직일 리가 없을 것 같은데요. 그리고 사이가 안 좋으면 우리를 이용해서 장해랑을 죽이려는 계책일 수도···.”

“어쭈? 그렇게 걱정 많은 놈이 일랑이가 탈주하니까 왜 냉큼 쫓아가셨을까?”

“그거야 일랑 선배가 같이 가자고 하셨으니까···.”

“짜식이, 콩깍지 한번 독하게 씌여가지곤. 하긴 나도 그랬지. 마누라가 토끼 같은 줄만 알고 냉큼 업었더니 웬걸. 토끼가 아니라 아귀야. 아귀.”

“도저히 못 참겠다!”


파앙!!!!

열흘 동안 운기조식을 취하던 두령이 내력을 방출하자 바람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그릇이 넘칠 정도의 내력을 담은 탓에 노기(怒氣) 어린 신선처럼 수염과 머리카락, 수많은 도끼가 허공을 떠다니는 두령 장대견은 탁주 한 병을 순식간에 비우고 격하게 트림했다.


“흐아, 죽는 줄 알았네. 왜 소림 땡중들이 깨달음을 얻는답시고 명상하다가 골로 갔는지 알겠어. 굶어 죽어가는지도 모르겠잖아?”

“기상하셨습니까 두령!”

“두령님. 수련에 성과는 있으셨는지요?”

“성과가 없지는 않은데, 이길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다. 전쟁 때 봤던 괴물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해.”


과거 전쟁에서 만인지적이라 불렸던 장운의 둘째 아들 장해랑.

광호(狂虎)라는 별칭을 가진 장해호와 달리 장해랑은 요란스러운 성격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기이할 정도로 알려진 정보가 없었다.

아는 거라곤 착한 개라는 어처구니없는 문파를 만들어 객잔을 운영한다는 점뿐. 다른 문주와 대련 한 번 해본 적 없는 장해랑의 실력은 미지에 싸여 있었기에 모두가 은근히 장해랑을 무시했지만, 최소한 그와 붙어보려는 자는 없었다.

장해랑의 뒤에는 대장군이라는 뒷배가 있었기에.

더위와 훈련에 지친 산적들 앞에 선 장대견은 목소리에 내력을 담아 소리쳤다.


“이놈들아! 내가 너희들에게 먹힌 내단환만 몇 갠데 이렇게 비실비실해? 이래서야 갓난쟁이 하나 울릴 수 있겠어?”

“두령님! 배고파요!”

“부두령님이 또 저희 괴롭혀요!”

“저놈들이 두령님 앞에서 예의 없이···!”


발끈한 여울을 가로막은 장대견은 열세 개의 도끼를 바위에 꽂았다.

바위에 박힌 도끼는 대종처럼 서로 공명하더니 이윽고 바위가 모래알처럼 바스러지자 스스로 주인에게 돌아갔다.

장대견은 내력으로 바위 안에 있던 돈을 산적들에게 뿌리며 호방하게 소리쳤다.


“예의 있는 인간이 산적질을 하겠냐? 너야말로 애들 밥이나 챙겨주지 못 본 새 다들 홀쭉해졌네. 사람이 볼살도 있고 해야 귀엽지. 오늘은 내가 쏜다! 다들 하산해서 마음껏 놀고먹어라! 내일 있을 혈전에 대비해서 배 든든하게 채워라!”

“와아아아! 두령님 최고!”

“오늘 저녁은 선견파 국수다!”

“무슨 소리야? 이렇게 더운 날에는 뜨끈한 국밥이지!”

“난 만두!”

“술!”


양손 가득 돈을 쥔 산적 무리는 무기를 걷어차면서 부리나케 하산했다.

이마에 핏대가 설 정도로 현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은 여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두령님. 괜찮겠습니까? 맨정신으로도 승산이 희박한 형국인데 취하게 해서야···.”

“그래. 머릿수를 속여 나랏 놈들은 우리에게 일만의 병력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내력을 쓸 수 있는 인원은 오천도 채 안 돼. 그마저도 약탈한 내단환을 전부 꼬라박았는데 4단에 이른 인원은 일곱 명도 안되지. 진품 하나를 거친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소쌍은 말없이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두령 장대견에게 인정받은 5단급 실력자. 순수 무력만으로 따지면 내단환을 20개나 복용한 여울도 한 수 접어야 하는 명실상부한 산적단의 무력 2인자였다.


“맨정신으로 범을 보면 도망치지만, 술에 취해있으면 주제도 모르고 달려들지 않겠어? 그리고 범도 쥐새끼 수천 마리에 둘러싸이면 피곤하겠지.”

“한 번 쓰고 버리겠다는 뜻으로 들립니다만.”

“무릇 세상을 바로잡으려면 피를 뒤집어써야 하는 법. 걱정 마. 아마도 호랑이의 목적은 내 목 하나니까.”


내력을 다스리기 시작한 장대견의 머리카락과 수염이 원래 상태로 돌아갔다.

본래 남아도는 내력을 비축해서 필요할 경우 사용하려는 무인은 많았으나, 그릇이 넘치는 순간 하나의 예외도 없이 주화입마에 빠졌다. 따라서 무인은 발상을 전환했다. 또 하나의 그릇을 내부에 만들지 못한다면, 외부에 비축하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천마 한청천이 사용했던 기물 육도(六道)가 그러했듯, 한 무인이 물건에 내력을 비축하는 무공을 개발했고, 기물을 사용해 싸우는 자들은 스스로를 도사라 불렀다.


“천하는 부패하고, 잡초가 깊게 뿌리내려 양분을 빼앗아 거목을 흔드니, 우리는 잡초를 솎아내어 사천목인(四天木人) 한목의 뜻을 떠받들 것이다.”


본디 도사가 기물을 만드는 법은 외부에 유출되지 않는 기밀이나, 1년 전, 장대견은 그 비법을 전수받았다.

불과 열흘 전까지만 해도 장대견은 6단의 벽을 넘지 못하는 무인 중 하나에 불과했다.


“목협당(木俠黨)의 이름 아래.”

“천하는 강호의 도리를 되찾으리라.”


그러나 현재, 장대견이 다루는 내력의 양은 7단에 다다랐다.


***


“아이고, 팔이야. 허리야. 엉덩이야. 삭신이 다 쑤시네. 좀 쉬었다 가면 안돼?”

“이곳 전체가 산적 소굴인데 쉴 곳이 어딨어? 군소리 말고 따라오기나 해.”


다음 날, 꼭두새벽부터 말을 타고 산을 넘은 한청천 일행은 점심 무렵이 지나고 수갱두에 도착했다. 한청천과 공손평은 떠나기 전날 공손중이 싸준 주먹밥을 억지로 씹어먹으며 멀미에 괴로워했다.


“반나절 동안 쉬지 않고 달리니까 죽겠네. 너는 괜찮냐?”

“태어나서 말 처음 타봤습니다.”

“어쩐지 출발하자마자 장딴지에 힘주고 몸을 휘청거리더만, 난 또 새로운 수련인 줄 알았지.”


두 사람이 멀미에 고생하는 동안 말을 근처 마을에 맡기고 온 장해랑은 기지개를 쭉 폈다. 평소에도 말을 즐겨 타는 장해랑은 멀미로 고생하는 둘에 비해 머리를 땋는 여유를 부렸다.


“장대견. 우리 동생 출세했네. 나는 쥐꼬리만 한 현령직이 전부인데 사병을 만 명이나 거느리고 말이야. 형 된 도리로 집들이를 안 할 수가 없겠지?”

“아는 사람이야?”

“지인 정도가 아니라 핏줄이지. 우리 증조할아버지의 동생의 외동 손주의 첫째 아들의 셋째 아들. 그러니까 촌수로 따지면 9촌 정도지.”

“그 정도면 남 아니야?”

“누가 들으면 서운할 소리 하네. 9족이라도 멸하는 날에는 다 함께 머리가 효수되는 가족인데 어떻게 남이라고 할 수 있어?”

“나는 벼슬아치들 사고방식은 도통 이해가 안 된다.”

“비록 도적이 되었다고는 하나 내 가족이야. 내 가족의 식구는? 내 식구이기도 하지.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살수는 쓰지 마라. 괜히 나중에 복잡해진다.”

“식구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일단 대장을 죽기 직전까지 쥐어패고 ‘죽기 싫으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뭐 이런 식으로 부려 먹으려는 속셈 아니야?”

“가족끼리는 원래 돕고 사는 거지.”

“어련하시겠어.”


어지럼증이 조금 진정된 한청천과 공손평은 장해랑의 뒤를 따라 수갱두쪽으로 전진했다.

스스로의 깨달음으로 내력을 터득한 사람은 자신의 내력을 조절할 수 있지만, 내단환을 복용해 강제로 내력을 주입받은 산적단의 내력은 수갱두 전역을 가득 채우고도 넘쳐흘렀다.

어지간한 무인, 혹은 작은 문파의 수장조차도 수갱두의 내력을 보면 움츠러들 것이다.

그러나 호랑이 굴로 당당히 발을 들이는 셋은 달랐다.

천마와 늑대, 그리고 괴물 밑에서 자란 제자에게 수갱두에서 나오는 내력은 몸을 부풀린 고양이의 위협처럼 우습게 보일 뿐이었다.


“바글바글하기도 해라. 덤빌 테면 덤벼라 이런 뜻인가?”

“최대한 빨리 왔는데도 머릿수가 가늠이 안 될 정도네. 더 늦게 왔으면 귀찮을 뻔했어.”

“내력이 느껴지진 않으니 우두머리가 어디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먼 옛날, 서초 패왕 항우는 고작 100명으로 한신의 100만 대군을 돌파했다지. 한신은 최선의 전략을 세웠고, 하늘 역시 한나라의 편이었다. 그러나 패왕은 하늘의 뜻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겨냈다.”

“너무 길어. 짧게 말해.”

“성급하긴.”


도착했고, 보았다.

그러니 이제는 이길 차례다.


“전군. 우두머리를 생포할 때까지 가로막는 적들을 모조리 해치워라.”

“받들겠습니다.”

“쇤네가 따라야지요.”


작가의말

세계관이 점점 넓어지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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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원죄의 아이(2) 22.08.12 44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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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용과 왕(2) 22.08.05 48 1 14쪽
17 용과 왕(1) 22.08.03 5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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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강호의 도리(4) 22.07.27 55 2 12쪽
13 강호의 도리(3) 22.07.26 64 2 13쪽
» 강호의 도리(2) 22.07.25 63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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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평화로운 서문현(1) +1 22.07.18 76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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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토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2) +2 22.07.06 9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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