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에선티플님의 서재입니다

죽어도 살고 싶은 무림 지존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에선
작품등록일 :
2022.05.24 02:09
최근연재일 :
2022.08.26 18:15
연재수 :
29 회
조회수 :
2,528
추천수 :
51
글자수 :
173,027

작성
22.08.22 18:15
조회
39
추천
1
글자
12쪽

안한자적(2)

DUMMY

“어떤 썩을 자식들이 우리 집 기와를 죄다 날려버렸다니까요? 하여간 한청천 그놈이 오고 나서 마을이 조용할 날이 없어요.”

“아이고, 이를 어째요. 정말 안타깝습니다. 기와 한 장이 얼마인데 고치려면 비용도 장난 아니게 깨지겠네요.”

“내 말이 그 말입니다! 에잉, 공손중 어르신만 아니었으면 진작 엉덩이를 걷어차 내쫓는 건데, 흉물스러운 놈.”


장해랑과 충분히 정보를 공유한 상단주 소화는 서문현에서 나름 잘나가는 졸부의 집을 방문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서문현에 들른 덕에 졸부는 장사꾼에게 꾸밈없이 자신의 감정을 표출했다.

졸부의 분노는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함에 의한 울분.

소화는 싱긋 웃으면서 졸부의 기분을 띄워주었다.


“이야, 그래도 대단합니다. 그 난리가 있었는데도 지붕만 날아가고 집은 멀쩡하네요. 아주 튼튼하게 지었나 봅니다?”

“네? 에헤이, 이거 참. 다른 사람들은 아무리 설명해도 못 알아듣던데, 역시 상단주님은 보는 눈이 다르십니다. 저희 아버지가 빚까지 세운 기와집입니다. 덕분에 아들인 저까지 빚을 갚느라 죽을 맛이었죠. 후회는 안 하지만.”


졸부는 쑥스러운 듯 쭈뼛거리며 목덜미에 손을 올렸다.

칭찬을 많이 받아보지 못한 사람의 전형적인 반응.

이런 시골에 사는 부자는 쌀만 조금 풀어도 마을 주민들의 칭찬을 절로 받을 텐데 이런 반응이 나온다는 건, 주민들의 평판이 그리 좋지 못한 사람이라 유추할 수 있었다.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사실 저도 어르신의 댁을 유심히 본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기와가 어디서나 볼 법한 평범한 기와라서요. 그냥 조금 큰 기와집인가 했습니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그 진가를 알아볼 수 있었으니 저 같은 사람에게는 호재였네요.”

“그, 그렇습니까? 상단주님도 못 알아볼 정도면 기와가 꽤 흔한 거였나 보군요. 주민들이 몰라볼 법도 합니다. 워낙 못 배운 인간들 뿐인지라.”


소화의 소감을 들은 졸부는 고민에 빠졌다.

기와집은 졸부의 자부심이나 다름없었다.

2대에 걸쳐 빚을 갚으면서까지 지은 기와집을 자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졸부가 자랑하면 자랑할수록, 주민들은 졸부를 멀리했다.

흔한 떡 하나 돌린 적도 없으면서, 조금 잘 사는 도시에서 볼 수 있는 흔한 기와집 가지고 으스댄다고 말이다.

보통 그런 소문은 졸부의 집이 흔해서라기보다는 졸부의 성격이 나빠서 생기기 마련이지만, 많은 부자가 그렇듯 졸부 역시 자기 잘못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흔한 집이 아니라고. 내 집은 다른 기와집과 달라. 기초부터 좋은 재료만을 엄선해 사용한 명품 중의 명품이라고. 왜 다들 몰라봐 주는 거지?’


자기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으며 초조해하는 졸부의 걱정을, 타고난 장사꾼은 놓치지 않았다.


“다행히도 이번 사고에 관련된 피해 복구 비용은 현령님께서 일부 부담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정말입니까?”

“아무렴요. 조금 전까지 현령님하고 차를 나누면서 들은 정보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바쁘게 뛰어다니는 거 아니겠습니까?”


현명한 소비자는 위협적이다.

그들은 욕망에 매몰되지 않고, 철저히 필요한 것만을 구분하기 때문에 많은 돈을 뜯을 수 없다.

세상에 모든 소비자가 현명했다면, 장사꾼은 존재할 수 없었으리라.


“보상금도 나온다면 어차피 바꿀 기와. 더 좋은 물건으로 바꾸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는 편이 좋···겠지요?”


평범한 소비자는 가치를 따진다.

그들은 필요한 것만 사진 않지만, 세상이 매긴 가치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세상의 흐름에 따라 ‘올해는 물가가 비싸네.’ 하며 투정 부리는 양 떼에 불과하다.


“혹시 단양제 기와에 흥미가 있으십니까?”

“다, 다, 다, 단양이요? 수도 관리들이 쓴다는 그, 봉황 조각과 해치 무늬가 있는 기와 말입니까?”

“잘 아시네요! 사실 이번에 수요를 잘못 파악해서 조금 남는 상황이거든요. 깨지기 쉬운 제품이라 팔릴 때까지 천년만년 썩혀두는 것도 불안하고, 좋은 주인을 만난다면 기존보다 싼 값에 넘길까 생각 중인데···.”


멍청한 소비자는 가치를 매긴다.

그들은 스스로를 귀중하다고 여기고, 귀중한 자신을 치장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바칠 각오가 되어있다.

모순되게도, 장사꾼의 가장 쉬운 먹잇감은 가난한 자가 아닌 부자였다.

한 푼이 간절해 시시비비를 따지는 거지와 달리, 부자에게 돈을 뜯어내는 방법은 간단했다.


“천천히 고민하시지요. 저는 다른 주민분들을 방문하면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닙니다.”


아주 조금만 욕망을 부추기면, 그들은 기다렸다는 것처럼 자기 재산을 덥석 내놓는다.

자신이 현명한 소비자라 오판하면서.


“사겠습니다. 단양 기와.”


자신이 기회를 잡았다고 착각하는 졸부를 향해, 소화는 먹잇감을 위한 환한 미소를 띠었다.


“현명한 구매 감사합니다! 저희 상단은 어떤 물건이든 보름 이내에 배송해드리며 배송 도중 생기는 모든 피해는 상단이 보상해드립니다. 구매 후 이레 이내에 생기는 사고는 일부 보상해드리고요. 제품에 불만이 있으실 경우 사흘 이내에 교환 혹은 환급을 약속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거짓말투성이였다.

현령의 지원은 단 한 푼도 없는 건 물론일뿐더러, 주민들의 수요는 졸부와 만나기 전에 이미 다 해치웠다.

기와도 단양 기와를 따라한 모조품이라 단양 출신 귀족에게는 팔리지도 않는 하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현령의 지원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더라도, 졸부는 주문을 취소하지 않을 것이다.

단양 귀족과 같은 기와를 걸친 자신의 집을 상상한 순간, 그는 이전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된 것이다.

가치를 매기는 사람은 으레 그런 법이었다.


“오늘도 호구 하나 등쳐먹었고, 급한 일을 해치웠으니 얼굴이나 보러 가볼까?”


삿갓을 눌러쓰며 미소를 지은 소화는 다음 방문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호구 중에서도 최강이자 최악의 호구를 만나기 위해서.


“이번 한청천은 돈이 많았으면 좋겠는데.”


***


서문현에서 한참을 달려야 도착하는 천축의 경계.

경계에서만 구할 수 있는 광물을 잔뜩 사 온 대장장이 황지심과 농부 화전은 수레에 광물을 가득 싣고 서문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소 두 마리가 끌어도 꿈쩍 않던 수레를 한 손으로 끄는 화전을 본 황지심이 말했다.


“영감. 고맙수다. 나 혼자서라면 이렇게 많은 양은 못 샀을 텐데.”

“신경 쓰지 마. 오랜만에 무공을 썼더니 몸이 무뎌진 것 같아서 운동 삼아 따라 나온 거니까. 품앗이를 많이 해놔서 이레 정도는 시간을 내도 괜찮아. 너도 참 독종이다. 상단도 안 파는 광물을 어떻게 알았냐?”

“장인어른하고 부인한테 지겹도록 따졌거든. 둘이서 위험하게 천축까지 다녀오냐고. 상단도 안 찾는 변방 광석이 뭐가 그렇게 중하길래 목숨을 거냐고. 그땐 지금보다 더했지. 단양에 있었을 때니까.”

“그놈이 원래 마음을 굳히면 남의 말은 죽어도 안 들었지.”


옛날 생각에 미소를 띠던 중년과 노년의 담소는 마치 곰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은 토끼처럼 순식간에 침묵으로 변했다.

오랜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죽은 자를 가끔 산 사람처럼 이야기하는 건 즐거웠지만, 뒤이어 따라오는 씁쓸함만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올 추수철에도 갈 거냐? 작년에는 거의 죽을 뻔했잖아.”

“가야지. 남편이 부인 보러 가는 게 잘못인가? 빌어먹을 도사 놈들. 자기네들은 가족과 연을 끊었다 이거지?”

“대책 없이 가는 거면 이번엔 안 데려다준다.”

“영감은 걱정이 너무 많아. 걱정하지 마. 나도 그딴 산골짜기에서 죽을 생각 없으니까. 믿는 구석도 있고.”

“너 친구 없잖아.”

“친구는 없지만, 최근에 알게 된 인연이 있잖아?”

“썩을.”


화전은 입에서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육두문자를 간신히 삼켰다.

불과 얼마 전에 자신의 소중한 오이밭을 송두리째 뽑아버린 것도 모자라 도사 시절 비할 바가 없던 무공 화왕지절마저 농락한 소년을 화전이 잊을 리가 없었다.


“그곳에 있잖아? 반송장 꼬맹이가 정말 한청천이라 물 수밖에 없는 미끼가.”


그리고 그 소년이라면 황지심의 미끼에 보기 좋게 낚일 것이다.

황지심답지 않은 야비한 술책에 화전은 황지심의 머리를 헤집으며 실실 웃었다.


“우리 태위 나리도 속물 다 됐군.”

“대장장이로 전직한 지가 언젠데 귀족 티는 벗어야지.”


확실히 황지심은 귀족 티를 벗긴 했다.

벽이 무너진 것도 모자라 대장간 창고에 있던 무기 중 절반이 부러진 풍경을 보고서 귀신처럼 울부짖었으니.


“꺄아아악! 내 대장간! 내 새끼들! 어떤 개자식이 내 새끼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어!”

“아오, 귀 간지러워. 누가 내 욕 하나?”


한청천이 대장간을 망가뜨린 사실을 황지심이 알게 되는 것은 조금 미래의 이야기.

지금은 송산과 송암, 하후윤, 마희와 함께 식탁에 앉아있는 한청천은 태평하게 귀를 후볐다.


“맛있으십니까?”

“움멈머.”

“다 먹고 말해라. 나물 튀긴다.”

“맹한 표정도 귀여우십니다.”

“지랄을 해라. 지랄을 해.”


당장에라도 꿀이 떨어질 것같은 시선으로 마희를 바라보는 하후윤의 태도에 한청천은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며칠 굶은 들개처럼 나물 비빔밥을 흡입하는 마희는 어디로 보나 아름다움이나 귀여움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다.

특히나 밥 한 공기를 쌀 한 톨 남기지 않고 박박 긁어먹은 뒤에 맛을 평가할 때는 그야말로 이매망량이 따로 없었다.


“밥이 어제보다 푸석하구나. 거기다가 보리를 너무 많이 넣었어. 나물도 숨이 덜 죽어서 쓴맛이 남더구나.”

“얻어먹는 주제에 품평하지 마세요.”

“어쩜 입맛까지 고급지실까.”

“산아, 너 혹시 심리치료사로 진로를 바꿨니? 어떻게 주변에 정상인이 없어?”

“나한테 따지지 마. 나도 머리 아파 죽겠어.”


한눈에 반했다는 말은 많이 들어봤어도, 정작 눈앞에서 이렇게까지 주접을 떠는 꼴을 본 적이 없던 한청천은 하후윤의 애정어린 시선에 몸서리를 치며 의원을 몰래 빠져나왔다.

점심으로 먹은 국밥이 속에 걸린 건지, 하후윤의 꼴값에 속이 뒤틀린 건지는 몰라도, 니글니글한 배를 붙잡고 나온 한청천은 대문에 몸을 기대고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 돌렸다.


“후아, 이제야 좀 살겠네.”

“한청천 본인 맞으십니까?”


안심도 잠시, 귀한 옷에 걸맞지 않은 삿갓을 쓰고 나타난 청년이 한청천의 손목을 붙잡았다.

낯선 청년에게서 불길한 느낌을 감지한 한청천은 손목에 내력을 넣어 청년을 뿌리치려 했으나, 내력을 담은 한청천의 팔을 손쉽게 들어 올렸다.


“칫!”

“한천상단 철칙 제1조 2항. 자신보다 강한 손님에게 돈을 빌려주지 마라. 이 조항 때문에 한청상단은 항상 최소 4단 이상의 무인을 호위로 붙이고 다니죠.”

“한천상단? 설마···!”


한청천의 촉은 정확했다.

열 여덟 살 때 데려온 첫 번째 제자이자 세계 제일의 부자였던 한천.

헤어지기 직전까지, 아니, 사후세계에서도 기어이 빚을 받아내려고 했던 그의 의지는 200년이 지난 지금껏 이어지고 있었다.


“현 한청상단 단주 소화입니다. 밀린 빚을 받으러 왔습니다. 한청천님.”


작가의말
200년 채무면 이자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죽어도 살고 싶은 무림 지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시간은 오후 6시 15분입니다 22.08.15 26 0 -
29 장군(2) 22.08.26 41 0 12쪽
28 장군(1) 22.08.25 40 1 12쪽
27 안한자적(3) 22.08.23 43 2 12쪽
» 안한자적(2) 22.08.22 40 1 12쪽
25 안한자적(1) 22.08.19 46 1 13쪽
24 원죄의 아이(5) 22.08.18 47 1 13쪽
23 원죄의 아이(4) 22.08.16 44 2 12쪽
22 원죄의 아이(3) 22.08.15 48 1 12쪽
21 원죄의 아이(2) 22.08.12 44 1 16쪽
20 원죄의 아이(1) 22.08.10 47 2 11쪽
19 용과 왕(3) 22.08.08 48 1 14쪽
18 용과 왕(2) 22.08.05 47 1 14쪽
17 용과 왕(1) 22.08.03 54 1 12쪽
16 의로움이란 허상 아래(2) 22.08.01 83 2 12쪽
15 의로움이란 허상 아래(1) 22.07.29 54 2 13쪽
14 강호의 도리(4) 22.07.27 55 2 12쪽
13 강호의 도리(3) 22.07.26 64 2 13쪽
12 강호의 도리(2) 22.07.25 62 2 11쪽
11 강호의 도리(1) 22.07.23 73 2 16쪽
10 평화로운 서문현(2) 22.07.20 72 2 16쪽
9 평화로운 서문현(1) +1 22.07.18 76 2 14쪽
8 토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4) 22.07.11 75 2 14쪽
7 토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3) 22.07.08 80 2 13쪽
6 토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2) +2 22.07.06 99 2 12쪽
5 토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1) 22.07.04 112 2 15쪽
4 살아야 한다(4) 22.05.27 142 2 11쪽
3 살아야 한다(3) 22.05.26 173 2 14쪽
2 살아야 한다(2) 22.05.25 229 2 14쪽
1 살아야 한다(1) +1 22.05.24 478 6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