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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선티플님의 서재입니다

죽어도 살고 싶은 무림 지존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에선
작품등록일 :
2022.05.24 02:09
최근연재일 :
2022.08.26 18:15
연재수 :
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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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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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2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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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2)

DUMMY

구름을 뚫은 뒤 급강하하는 한성의 무식하기 짝이 없는 무공에 범강은 이마를 짚었다.


“저러다 나보다 빨리 죽지. 한창 젊은 녀석이 뭐가 급해서 안달인지 원.”


낼모레면 예순을 바라보는 범강에 비해 한성은 아직 서른다섯밖에 되지 않았다.

보통 무림맹 문주 대부분이 마흔을 넘겨 8단에 경지에 다다른 것에 비해 한성은 고작 스물다섯에 8단에 등극했으니 마흔이 되기 전에 9단에 등극할 가능성도 컸다.

애당초 대국은 전투에 의한 발전보다는 깨달음을 통해 달성하는 경지일지인데, 목숨이 두 개라도 되는 양 터무니없는 무공을 펼치니 보는 사람은 늘 가슴을 졸였다.


“그래서 언제 나올 건가? 손님이 왔으면 마중은 나와야지.”

“걱정하시는 것처럼 보이기에 내버려 두었는데, 괜한 배려였나요?”

“농담이 지나치군. 저 녀석이 고작 만륜문주에게 질 리 없지 않은가.”


【사계(四季): 일엽(一葉)】


범강은 등 뒤의 삼림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9척에 달하는 길이의 대검에서 방출된 날카로운 내력은 수십 그루의 나무를 양단했다.

한성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은 파괴력도 파괴력이지만, 범강의 공격에는 마땅히 느껴져야 할 살기가 없었다.

자연과 같은 고요함. 그저 돌풍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기묘한 경지는 피해야 한다는 자각도 하지 못한 적을 베어낸다.


【전심내공(轉心內功): 강류석부전(江流石不轉)】


마교의 수장은 자신에게 흘러나오는 기운을 최대한 억제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위협이라기에는 지나친 공격이네요.”

“자네가 내뿜는 흉악한 기운만 하겠나. 마교의 수장.”

“전심문입니다. 200년 전부터 같은 이름을 쓰는데 어찌 항상 마교라 불리는지 모르겠네요.”


낡은 봉 하나로 범강의 일엽을 가뿐하게 막아낸 교주는 범강에게 고개를 숙였다.


“전심문 8대 문주. 한양이라고 합니다.”

“무슨 의도로 모습을 내게 모습을 드러낸 거지? 그 실력이면 기습도 가능했을 텐데. 정정당당한 결투, 뭐 그런 걸 원하나?”

“경계하지 말아 주세요. 저는 그저 대화를 원할 뿐입니다.”

“불가하다.”


【사계(四季): 추풍낙엽(秋風落葉)】


범강은 두 손으로 검을 쥐어 한양에게 검을 휘둘렀다.

떨어지는 가을의 낙엽처럼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내력과 검의 궤적은 산 귀퉁이를 깎아냈지만, 범강의 기는 여전히 호수처럼 고요했다.


“마교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죽음과 수감밖에 없다. 네 놈의 손톱을 뽑고, 치아를 깨부수고, 가죽을 도려내어, 인두로 온몸을 지지고 나서도 목숨이 붙어있다면 대화를 고려해보지.”

“이거 참, 유한 기운을 가진 분이기에 대화가 통할 줄 알았더니 완전히 헛짚었네요.”


【전심내공(轉心內功): 음전양변(陰轉陽變)】


범강의 공격을 모조리 흘려낸 한양은 끄트머리가 잘린 의복을 펄럭이며 신선처럼 하늘을 날다가 무너진 바위 위에 사뿐히 착지했다.

전력을 담은 공격은 아니었지만, 사계 중에서도 가장 변화무쌍한 무공인 추풍낙엽을 상처 하나 없이 받아낸 한양의 무공에 범강은 적잖이 놀랐다.


‘지금까지 잡은 마교 놈들과는 격이 다르다. 내력의 양은 많이 쳐줘도 7단에 턱걸이할 정도인데, 기술의 정교함은 나를 넘어선다. 모순이로군.’


깨달음을 얻지 못한 문하생이라면 모를까, 내력을 만들기 시작하면 기술의 정교함이 곧 내력의 강함과 직결됐다.

그 공손중처럼 육체가 망가지거나 원용처럼 정신이 무너지지 않고선 그 둘의 격차가 심하게 발생하는 경우는 없었다.


“좋습니다. 싸움만이 유일한 대화법이라면 맞춰드리는 게 도리겠죠. 조금 강하게 가겠습니다.”


한양은 두 팔을 벌려 대기에 흩뿌려진 내력을 바람에 실었다.

내력을 실은 바람은 점점 빨라져, 이윽고 열 두 겹의 장막이 형성됐다.


【전심내공(轉心內功): 천선지전(天旋地轉)】


바위도 가볍게 깎아내는 폭풍 장막에 범강은 사고를 멈췄다.

위화감이 느껴지긴 하나, 그것을 밝혀낸다고 해도 전투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고 판단한 범강은 폭풍 장막에 대검을 갖다 댔다.


“마교 수장 한양. 금지된 무공을 사용하고 나라를 어지럽힌 죄를 물어 황제를 대신해 시령장군 범강이 이 자리에서 즉결 처형한다.”

“차라리 한성 장군을 부를 걸 그랬네요. 고집불통이어라.”


범강이 폭풍에 긁힌 마찰로 붉게 달궈진 대검에 내력을 불어넣자, 바람에 꺼져가던 작은 불꽃이 바람을 타고 거센 불길로 바뀌었다.


【사계(四季): 화왕지절(火旺之節)】


화아악!!!!


한양의 천선지전을 역으로 이용한 불길이 바람과 부딪쳐 승천하는 용처럼 솟아올랐다.

짙은 어둠마저 집어삼키는 불길에 휩싸인 한양은 때를 기다렸다.

범강의 기술에 살기는 느껴지지 않기에 위험을 느끼고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살기가 없다고 대응이 불가능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는 습관과 행동 방식.

한양은 다음에 범강이 취할 행동을 예측했다.


“오의.”


불길째로 자신을 지워버릴 가장 큰 기술.

범강은 내력을 집중해 자신을 한 방에 제압할 생각이었다.

큰 기술에는 큰 틈이 생기기 마련.

고요한 내력이 확산하기 직전, 한양은 번개와 같이 범강의 사각으로 파고들었다.


【사계(四季): 이십사번화신풍(二十四番花信風)】

【전심내공(轉心內功): 청천벽력(靑天霹靂)】


***


회담을 여는 방법은 총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황제가 직접 회담을 개최하는 것.

또 다른 하나는 회담 인원 중 절반 이상이 회담 개최에 동의하는 방법이 있었다.

그렇기에 무림맹의 대응은 비정상적이었다.

만륜문주를 처형한 바로 다음 날 아침, 각 문주의 친필 서명이 적힌 회담 개최문이 황제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었다.

한성이 만륜문주를 처형한 지도 어느덧 나흘이 지난날 오후, 부관에게 잔당 처리를 맡기고 복귀한 한성과 범강은 회담장에서 무림맹 인원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즉각 엄포를 놓은 것과 달리 벌써 사흘째 모이지 않은 무림맹의 행동에 기다리다 지친 한성은 범강을 놀리면서 놀았다.


“크하하! 영감, 아직도 턱 아파? 씹어서 먹여줄까?”

“말 걸지 마라.”

“마교주는 다친 곳도 거의 없던데 어째 영감만 턱이 나갔어? 나한테만 솔직하게 말해. 사실 졌지?”

“시끄러워.”

“밥도 질질 흘리면서 먹는데요. 아기래요. 옹알이 해봐. 아부부, 아부.”


붕대로 턱을 고정한 범강의 보기 드문 모습에 아예 손수 초상화까지 그린 한성은 다시 없을 기회를 만끽하며 범강의 볼을 꼬집었다.

물론 범강도 손가락을 부러뜨리려고 하거나 목젖을 때리는 등 저항하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금강불괴에 근육 괴물인 한성을 범강이 검 없이 떼어놓을 방법은 없었다.


“승상. 도와주십시오.”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홍문장군을 떼어놓겠습니까?”

“폐하···.”


나이와 직위에 맞지 않게 가벼운 성격인 승상이 능청스레 거절하자, 범강은 자비로운 폐하께 고개를 돌렸다.

다만, 범강은 자신의 꼴이 얼마나 우스운지 알지 못했다.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던 황제는 범강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자 숨이 넘어갈 것처럼 깔깔댔다.


“하하하하! 푸핫! 얼굴에 칭칭 두른 꼴이 예술이오! 끅! 아, 배 아파.”

“봤지? 여기 영감 편은 아무도 없다고.”

“인생무상이라···.”

“신성한 회담장에 누가 웃음소리를 내는가!”


콰앙!


목청 큰 발산문주를 필두로 삼정문주, 기원문주, 소림문주, 심월문주와 파천문주, 마지막으로 문주의 통솔자격인 사초문주가 좌석에 앉았다.

상석에 앉아있는 황제를 제외하고 모두가 평등하다는 의미에서 만든 원탁이었지만, 문주들은 자연스럽게 장군과 최대한 먼 좌석에 붙어 앉았다.

고함을 지른 발산문주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황제가 먼저 사과했다.


“미안하다. 짐이 경솔했다.”

“없군.”


황제의 사과를 무시한 사초문주는 의자에 앉은 채 고개만 돌려 황제를 바라봤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지만 17년 전부터 권위를 잃어버린 황제는 감히 사초문주의 언행을 지적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무법지대나 다름없는 회담장.

이 회담장에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자는 강자뿐이었다.


“폐하. 장해호 대장군은 어디 갔습니까?”

“어? 그, 그게 말이다···.”

“야.”


한성은 찻잔을 날려 사초문주의 머리를 노렸다.

파천문주가 한 손으로 찻잔을 집어내 사초문주의 머리에 닿진 못했지만, 음속을 초월한 속도로 날아갔던 찻잔은 파천문주의 손에 닿자 모래처럼 바스러졌다.


“원탁 안 보여? 폐하는 최종 결정만 하시고 대화는 우리랑 하는 거거든? 네가 폐하랑 동급이냐? 햇병아리들을 모아두고 문주님 소리 들으니 눈에 뵈는 게 없지?”

“그대는 여전히 난폭하군. 목소리를 낮추게.”

“지랄 마라. 내가 너를 안다. 발산 놈이 소리 지른 것도 네가 시킨 거잖아.”

“대장군을 불러와라. 네 놈하고는 수준이 안 맞는다.”


사초문주는 차를 마시며 한선을 없는 사람 취급했다.

설령 한선을 개인적으로 싫어하더라도, 한선 개인이 아닌 흑랑의 장군으로 온 한선에게 수준이 안 맞는다는 말은 흑랑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최단 기록이로군.”


붕대를 찢은 범강은 사초문주의 가느다란 목을 노려보았다.

심검을 쓸 수 있었다면, 회담장에 무기가 허용되었다면 당장이라도 검을 뽑을 기세로 노려본 범강은 뚜두둑 거리는 턱을 움직였다.


“늘 그 빳빳이 세운 목을 벨 생각을 하며 화를 참는데, 오늘 가장 빨리 분노의 임계점을 넘겼다.”

“네 이놈! 지금 우리를 도발한 것이냐!”

“도발로 넘어갈지 아닐지는 네 놈들의 태도에 달렸지.”

“만륜문주를 제외하고 우리는 모두 8단의 절정 고수다! 고작 둘이서···!”

“분수를 알아라. 황궁에서 절정 고수는 대장군님 한 분 뿐이다.”

“우리가 대장군보다 못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오?”


범강이 도발하자 발산문주에 이어 심월문주까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각자의 경지에서 최고로 군림하고 있는 고수 중의 고수였다. 그런 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최강을 논하니 다른 문주들도 말을 보태지 않았을 뿐, 분위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험악해졌다.


“그냥 덤벼. 다 죽여버리게. 영감이 셋, 내가 셋. 중립을 고수하는 소림을 제외하면 딱 맞네.”

“오랜만에 의견이 합치했군.”

“네 놈이 기어이 선을 넘는구나!”


콰앙!


성질 급한 발산문주가 의자에서 박차고 일어남과 동시에 장해호가 문을 열고 회담장에 들어왔다.


“장해호 대장군! 늦게 들어오고서 이 무슨 뻔뻔한···.”


발산문주는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 사흘 밤낮 동안 장해호는 기다렸다. 공손은의 부탁을 거절하면서까지 시간에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무림맹은 날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본인들이 불러 놓고서 사흘 동안 문주들은 어떤 통보도 없이 회담에 불참했다.

후에 조사했더니, 만륜문주를 죽여놓고서 잠적할까 봐 회담 통보를 한 뒤에 모처럼 모였으니 건방진 놈들에게 맞춰주지 말고 술이나 마셨단다.


“만륜문주와 마교의 내통을 알고서도 눈감은 죄. 황제 폐하께 언성을 높인 죄. 장군 직위를 폄하한 죄. 회담 날짜를 당일 통보한 것도 모자라 사흘이나 늦게 온 죄.”


무림맹은 흑랑을 얕봤다.

한성과 범강은 망나니지만, 대외적으로는 모든 무인의 우상인 장해호의 행적을 조사한 무림맹은 그가 전형적인 한량이라고 생각했다.

어째서 그에게 미친 호랑이라는 별명이 붙었는지 그들은 알지 못했다.


“즉시 목을 베어 마땅한 죄를 넷이나 지은 너희를 여기서 살려보내야 하는 이유. 딱 하나만 대보거라. 셋을 세겠다.”


장해호가 광호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동생처럼 괴팍한 짓을 하지도, 발산문주처럼 역정을 내지도 않는다.


“하나.”

“지금 무슨 짓···!”


【광호(狂虎): 맹호절치(猛虎切齒)】


콰광!!!!


그저 죽인다.

폭력이 곧 정의인 무림에서 가장 강한 인간이기에.


“둘.”


작가의말

다음 화를 마지막으로 무기한 장기휴재에 들어갑니다

빠른 시일 내에 다른 작품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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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살고 싶은 무림 지존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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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연재 시간은 오후 6시 15분입니다 22.08.15 26 0 -
» 장군(2) 22.08.26 42 0 12쪽
28 장군(1) 22.08.25 40 1 12쪽
27 안한자적(3) 22.08.23 43 2 12쪽
26 안한자적(2) 22.08.22 40 1 12쪽
25 안한자적(1) 22.08.19 46 1 13쪽
24 원죄의 아이(5) 22.08.18 47 1 13쪽
23 원죄의 아이(4) 22.08.16 44 2 12쪽
22 원죄의 아이(3) 22.08.15 48 1 12쪽
21 원죄의 아이(2) 22.08.12 44 1 16쪽
20 원죄의 아이(1) 22.08.10 47 2 11쪽
19 용과 왕(3) 22.08.08 48 1 14쪽
18 용과 왕(2) 22.08.05 48 1 14쪽
17 용과 왕(1) 22.08.03 54 1 12쪽
16 의로움이란 허상 아래(2) 22.08.01 83 2 12쪽
15 의로움이란 허상 아래(1) 22.07.29 54 2 13쪽
14 강호의 도리(4) 22.07.27 55 2 12쪽
13 강호의 도리(3) 22.07.26 64 2 13쪽
12 강호의 도리(2) 22.07.25 62 2 11쪽
11 강호의 도리(1) 22.07.23 73 2 16쪽
10 평화로운 서문현(2) 22.07.20 72 2 16쪽
9 평화로운 서문현(1) +1 22.07.18 76 2 14쪽
8 토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4) 22.07.11 75 2 14쪽
7 토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3) 22.07.08 80 2 13쪽
6 토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2) +2 22.07.06 99 2 12쪽
5 토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1) 22.07.04 112 2 15쪽
4 살아야 한다(4) 22.05.27 142 2 11쪽
3 살아야 한다(3) 22.05.26 173 2 14쪽
2 살아야 한다(2) 22.05.25 229 2 14쪽
1 살아야 한다(1) +1 22.05.24 479 6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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