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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선티플님의 서재입니다

죽어도 살고 싶은 무림 지존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에선
작품등록일 :
2022.05.24 02:09
최근연재일 :
2022.08.26 18:15
연재수 :
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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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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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글자수 :
173,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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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3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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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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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용과 왕(1)

DUMMY

산적단을 퇴치한 후 엿새 뒤, 짐승 같은 회복력으로 상처가 아문 공손평은 은행나무 아래 명상을 취하고, 호웅에게 편지를 받은 공손중은 골똘히 상념에 잠겨 있으며, 한청천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수련에 매진하던 평범한 하루.

이별은 불현듯 찾아왔다.


“아버지. 소녀 출가하겠습니다.”


보따리를 싼 공손은의 깜짝 발언에 공손평과 공손중이 그게 무슨 영문 모를 소리냐는 듯 고개를 돌렸다.


“누님, 갑자기 무슨 말입니까? 출가라니요?”

“절에 귀의할 생각이냐? 아니면 세상에 이름이라도 떨치고 싶어졌나?”

“아니요. 큰 이유는 없습니다. 단지···.”


공손은은 피로한 눈을 지그시 눌렀다.

한청천이 온 이후로 공손은은 하루도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오래전 꾸었던 악몽을 다시 꾸거나, 아예 잠자리에 들지 못하거나, 한밤중까지 수련하는 한청천이 잘못한 건 없었지만, 그의 내력은 공손은과 태생적으로 맞지 않았다.


“요즘 통 잠을 제대로 못 잤습니다. 아무래도 터가 안 좋아서 그런 것 같으니, 다른 집에 머물까 합니다.”

“의탁할 생각입니까?”

“의탁은 아니고, 큰어르신이 빈집이 있으시다니까 거기서 머무를까 해.”

“네가 큰어르신과 친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 인간 성질이 여간 고약한 게 아닌데, 무슨 생각이라도 있는 거냐?”

“물론입니다.”


공손은이 나가든 말든 수련에 매진하던 한청천은 난데없이 날아오는 두 개의 큰 보따리를 낚아챘다.

이불과 옷부터 시작해 책, 양초, 책상, 바둑판까지 알뜰살뜰하게 짐을 싼 공손은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가자. 따라와.”

“나도 가요?”

“청소도 해야 하고, 짐 정리도 해야 하니까 도와줘. 평소에 밥만 축내면서 가끔은 식솔다운 일도 해야지.”

“청천아. 따라가서 은이가 어디에 머무르는지 보고 와라.”

“알았어요. 그렇게 궁금하면 지가 보고 올 것이지.”


따악!

간만에 들리는 청량한 딱밤 소리와 함께 한달음에 한청천의 바로 앞에 당도한 공손중이 한청천을 나무랐다.


“넌 언제쯤 말버릇을 고칠 거냐?”

“때린다고 고칠 버릇이었으면 진작 고쳤죠. 우씨, 분명 내력도 꽤 회복해서 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못 피하겠지?”


내심 공손중에게 당하기만 했던 게 억울했던 한청천은 일부러 공손중을 도발해 딱밤을 피하려고 했지만, 마치 보이지 않는 인력에 이끌리듯 다가온 공손중에게 당해 이마가 새빨개졌다.

그래도 처음 봤던 송장에 비해 나름 사람 형태를 갖춘 한청천을 대견스러워한 공손중은 한청천의 어깨를 토닥였다.


“내력만으로 해결될 상태가 아니다. 아직도 사람 꼴을 갖추려면 한참 멀었어. 적어도 몸이 다 낫기 전까지는 덤빌 생각도 하지 말거라.”

“넵. 알아서 설설 기겠습니다요.”

“얼른 가자. 저녁까지는 이부자리라도 필 수 있게 준비해야지.”


공손중과 원용 큰어르신은 서문현 양쪽 끝에 자리 잡고 있었다.

두 장소 모두 지리적으로 사람이 살기엔 불편한 위치였지만, 두 사람이 양쪽 끝에 머무르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17년 전, 장군직을 내려놓고 두 아이와 함께 은둔하기로 했고, 마침 서문현에 공손 가문이 심은 은행나무가 있다는 소식에 터를 잡기로 했지만, 정작 은행나무가 너무 커져 그 악취와 독기 때문에 사람이 살기 어려워 자연스레 인적도 끊기고, 공손중은 서문현 끄트머리에 거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2년 후, 모종의 이유로 서문현에 정착하기로 한 원용은 공손중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선 ‘저 쌍놈이 또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니 내가 지켜보겠다.’라며 반대편 끝자락에 집을 지었고, 자신은 공손중보다 윗사람이니 큰어르신이라 부르라며 매일같이 주민들에게 윽박지르고 다녔다.


“한 마디로 성깔 더러운 노인네구먼.”

“판단은 자유지만, 적어도 큰어르신 앞에선 말하지 말아줘. 괜히 기분 나쁘다고 내쫓을지도 모르니까.”

“잘 안될 것 같긴 한데, 노력은 해볼게요.”


원용의 거처에 도착한 공손은은 마침 지팡이를 들고 텃밭을 가꾸는 원용을 발견했다.

낯선 기척에 고개를 돌려 공손은과 한청천을 마주친 원용은 언짢은 기색을 감추지 않고 인상을 구겼다.


“오랜만입니다. 원용 어르신.”

“흥, 오랜만은 무슨. 얼마 전에도 대국을 치르지 않았더냐? 네가 직접 방문한 건 처음이다만. 일단 들어와라.”

“실례하겠습니다.”


오른쪽 다리를 절면서 앞장서 방 안으로 들어간 원용은 입가심으로 독주 한 잔을 들이켠 뒤, 한청천에게 삿대질해가며 물었다.


“저 산송장은 뭐냐?”

“얼마 전에 아버지가 주운 식솔입니다.”

“네 애비도 성격 참 한결같구나.”

“남의 아빠한테 아비, 아비 거리는 그쪽 아비도 성격이 곱진 않···!”

“청천아. 참아.”

“송장 주제에 꼴에 주인이라고 역정도 낼 줄 아는구나. 하긴, 그놈이 사람을 부려 먹길 옛날부터 좋아했지. 참으로 봐주기 힘든 악취미다.”


원용은 화를 내 볼 테면 내보라는 듯이 공손은 앞에서 대놓고 공손중을 흉보았다.

이 장소는 나의 집이고, 불만 있으면 나가라는 뜻.

그러나 부탁하는 처지인 공손은은 원용에 도발을 하찮은 농담처럼 흘리며 원용의 험담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차분하고 정적인 공손은의 태도는 전장에서 수십 년을 몸담은 원용조차 넌더리를 낼 정도로 완벽했다.

아무리 공손중을 욕해도 공손은의 평정이 깨지지 않자, 원용은 혀를 차고선 본론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로 온 거냐?”

“원용 어르신이 예전에 머무르던 작은 처소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곳에 멀지 않다고 알고 있는데 소녀가 혹시 머물러도 괜찮을지 여쭙고자 왔습니다.”

“공손중의 딸에게 공짜로 말이냐? 너도 알다시피 나는 그만큼 속이 넓지 못하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해서 제안하는 바입니다만···.”


공손은은 내력을 다뤄 보따리를 풀고 바둑판을 꺼냈다.


“내기 바둑은 좋아하십니까? 처소의 값으로 두 점 내드리지요.”


조금 전의 도발을 받아치는 것 같으면서도 호기로움이 섞인 당돌한 목소리로 내기 바둑을 요청한 공손은의 태도에 팔짱을 끼고 있던 원용이 흔들렸다.

원래라면 원용은 공손은이 어떤 부탁을 하더라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공손은과 맺은 유일한 인연,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바둑을 두 점이나 미리 깔고 시작할 수 있다는 말에 원용의 마음이 흔들렸다.


“흥미롭구나. 만약 네가 지면 어떡할 거냐?”

“제 걱정은 하지 마시길. 제가 질 일은 없습니다.”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도 은은하게 하수(下手)를 대하는 태도를 드러냄과 동시에 자신을 얕잡아보는 공손은의 발언에 원용은 마침내 팔짱을 풀고 바둑판에 두 점을 올렸다.


“흥, 자만 하나는 공손중의 장녀답구나. 좋다! 승리의 값은 네 잘난 콧대를 꺾는 것만으로 충분하겠지. 두 점 내준다 했나? 승리에 취해 자신의 그릇을 오판했군. 우리 같은 고수에게 한 점만 내어줘도 이기기란 불가능에 가깝거늘. 오늘에야말로 전쟁을 승리로 장식할 수 있겠구나!”


언제나처럼 호기로운 원용의 선전포고.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바둑판에 백군과 흑군의 대열이 더 이상 이어질 길이 없을 때 즈음, 원용은 핏대를 바짝 세우고 답이 없는 전장을 뒤엎고자 바둑판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리고 원용이 찾은 유일한 활로를 공손은은 평소처럼 차분한 손짓으로 차단했다.


“끝났습니다. 두시지요.”

“큭, 이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할배 완전 허접하네. 저번에 농사짓던 할배가 더 잘할 것 같은데?”

“닥쳐라! 화전 그놈 이름은 꺼내지도 말거라! 그 녀석하고는 350전 178승 172패로 내가 더 강하다!”

“승패를 일일이 세는 걸 보니 실력이 비슷한가 봐?”

“크악!”


바닥을 힘껏 내리친 원용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떨어진 바둑알을 지팡이로 깨부수며 소리쳤다.


“둘 다 꺼져라! 처소 따위 한참 전부터 방치해놨으니 머무르든 태워버리든 마음대로 해!”

“어르신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또 올게. 그땐 먹을 것 좀 내오고.”

“꺼져라!”


내력을 방출하는 원용을 피해 집 밖으로 도망친 공손은과 한청천은 허락도 받았겠다, 지체하지 않고 원용의 빈 처소를 향했다.


“저 할배는 우리 어르신을 엄청 싫어하나 봐요.”

“아버지가 나라의 장군이던 시절 상관인데, 둘이 성격이 안 맞아서 자주 싸웠다고 들었어. 다신 보지 말자고 하고 아버지가 떠났는데, 정작 같은 마을에서 사는 걸 보면 애증 관계 아닐까?”

“어르신 상관이면 어르신보다 강할까요?”

“전 대장군이었으니까 강하긴 할 텐데,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 아, 저기 보인다. 잠깐···.”


원용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 언덕을 넘어 수풀을 헤쳐 나아간 공손은은 마침내 발견한 초가집을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뭔가 이상한데?”


뒤따르던 한청천도 고개를 빼꼼 내밀어 초가집을 보았다.

오랫동안 방치했다던 원용의 말과는 달리 초가집은 무척이나 깨끗해 보였다.

아니, 비단 깨끗한 말로 끝낼 정도가 아니었다. 황색과 적색, 백색과 녹색, 그리고 검은색까지 총 다섯 색깔의 기다란 천이 초가집에서 뻗어져 주변에 있는 나무를 휘감고 있었다.

공손은은 무릎을 굽혀 한 발자국 앞에 있는 풀을 집었다.

별로 힘을 주지 않았는데도 공손은의 손에 닿은 풀은 힘없이 바스러졌다.


“풀이 죽어있어. 한창 파릇파릇할 계절인데, 역병이라도 있는 건가?”


마치 칼로 벤 것처럼 초가집 주변 오십 보 안에 있는 모든 풀과 나무가 죽어있었다.

무언가에 빨아 먹혀 죽은 것처럼 비쩍 마른 나무와 풀을 관찰하던 공손은이 초가집으로 걸어가려는 찰나, 한청천이 공손은의 팔을 붙잡았다.


“아가씨 눈에는 안 보여요? 집 안에 누군가가 있어요. 우리가 범위 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요. 여기서 골치 아픈 무공을 만날 줄은 몰랐는데···.”

“이게 무공이라고?”

“예. 제가 아는 무공 중에서 가장 짜증 나는 무공입니다.”


한청천은 당장 이곳을 벗어나라는 생존 본능을 잠재우고 침착하게 말했다.

수갱두처럼 내력을 주체못하는 사람이 수천 명씩이나 모여있지 않고서야 평소의 한청천은 내력을 쓰는 병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심장을 쓸 수 있다면 모를까, 단전으로 사용하는 무공은 제 위력을 발휘하지도 못했다.


“타인이 흘린 내력을 잠시 사용하는 데 그친 심기일전을 본 미치광이가 만들어낸 최악의 무공(武功)이자 삼단전 중 상단전을 사용하는 유일한 마공(魔功). 흡성대법. 그 미친 기술이 200년 동안이나 계승되다니. 빨리 내려가요! 절름발이나 현령이라도 부르자고요!”

“아까부터 왜 그래? 짐이라도 내려놓고 가자. 무겁잖아.”

“아가씨야 모르겠어요? 젠장, 이미 늦었잖아!”


초가집에서 내력을 다듬던 사람의 흐름이 바뀌었다.

더 이상 접근하지 않는 공손은과 한청천의 발걸음이 멀어지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을 눈치챘다.

이제부터는 탐색전은 의미가 없었다.


촤르륵!


초가집에서 튀어나온 형형색색의 천이 두 사람을 향해 날아왔다.

천을 향해 전투 자세를 취한 한청천이 공손은에게 물었다.


“절름발이 할배가 내력을 느끼고 올까요?”

“여기서 큰어르신 댁의 거리가 멀진 않지만, 아마도 대국을 복기하고 계실 거야. 집중력이 뛰어난 분이니까 눈치채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

“최악이네. 이럴 때 검이라도 있으면 좀 편할 텐데.”

“흡성대법이라고 했지? 이 무공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

“첫째로 절대 닿으면 안 되고, 둘째로 무공의 사용자를 조져버리면 돼요.”

“다행이네.”

“뭐가요?”


공손은은 지나치게 긴장한 한청천을 뒤로 밀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오색 천은 내력이 강한 존재에게 자연스레 이끌렸고, 공손은과 천의 거리는 불과 한 걸음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공손은은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천을 붙잡았다.


【황룡상제(黃龍上帝): 용포(龍袍)】


“적을 제압하는 무공은 내 전문이야.”


작가의말

용은 하늘에 있고, 사람은 이길 수 없다.


어느새 추천 수가 30을 넘었네요.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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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원죄의 아이(3) 22.08.15 48 1 12쪽
21 원죄의 아이(2) 22.08.12 44 1 16쪽
20 원죄의 아이(1) 22.08.10 46 2 11쪽
19 용과 왕(3) 22.08.08 48 1 14쪽
18 용과 왕(2) 22.08.05 46 1 14쪽
» 용과 왕(1) 22.08.03 54 1 12쪽
16 의로움이란 허상 아래(2) 22.08.01 81 2 12쪽
15 의로움이란 허상 아래(1) 22.07.29 53 2 13쪽
14 강호의 도리(4) 22.07.27 54 2 12쪽
13 강호의 도리(3) 22.07.26 63 2 13쪽
12 강호의 도리(2) 22.07.25 61 2 11쪽
11 강호의 도리(1) 22.07.23 71 2 16쪽
10 평화로운 서문현(2) 22.07.20 72 2 16쪽
9 평화로운 서문현(1) +1 22.07.18 75 2 14쪽
8 토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4) 22.07.11 75 2 14쪽
7 토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3) 22.07.08 79 2 13쪽
6 토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2) +2 22.07.06 99 2 12쪽
5 토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1) 22.07.04 111 2 15쪽
4 살아야 한다(4) 22.05.27 141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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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살아야 한다(2) 22.05.25 227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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