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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선티플님의 서재입니다

죽어도 살고 싶은 무림 지존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에선
작품등록일 :
2022.05.24 02:09
최근연재일 :
2022.08.26 18:15
연재수 :
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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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3
추천수 :
51
글자수 :
173,027

작성
22.07.0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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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토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2)

DUMMY

“독한 영감탱이. 정말로 아침까지 패고 앉았네. 태극권을 사람 패려고 배웠나. 그 나이에 밤새도록 무리했다간 한 방에 훅 가요.”


얼마나 정교하게 때렸는지 밤새도록 맞았는데도 피멍 자국 하나 없는 한청천은 입이 찢어지도록 하품했다.


“네가 남 걱정할 처지냐?”


사실 공손중도 호웅의 부탁도 있고 하니, 적당히 혼내다가 돌아갈 생각이었다.

다만 화가 누그러질 때 즈음 기름을 부어버리는 한청천의 화법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아침 해가 밝아오고 있었을 뿐, 따지고 보면 공손중도 피해자나 마찬가지였다.

눈 아랫부분에 까만 그늘이 생긴 공손중은 봉을 팔짱에 끼운 채로 대문에 어깨를 기댔다.


“내일이면 약속한 기일인데 여즉 1단에 머물러 있어서야 원. 전설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재주로구나.”

“어쩌겠어요. 괜히 내력을 더 담으려다가 몸이 망가지면 진짜 끝장이지.”

“그러니까 네 몸보신이라도 시켜주려고 사냥하러 나가는 것 아니더냐.”

“진짜요? 뭐 잡을 건데요?”

“토끼.”

“얼씨구? 난 또 곰이라도 잡는 줄 알았더니, 생색이란 생색은 다 냈으면서 고작 토끼? 아주 고마워 돌아가시겠네. 악! 왜 때려요!”

“이거라도 갖고 있어라. 지금 네 몸이면 토끼한테 맞아 죽을라.”


공손중은 네시진 동안 한청천을 곡식 털어내듯 탈탈 털었던 봉을 건네주었다.

봉을 받은 한청천은 손목을 돌려 봉을 몇 번 돌려보더니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가벼우면서도 튼튼하고, 또 유연하기까지 한 봉은 안에 용도를 알 수 없는 구슬이 들어있는 것만 제외하면 완벽했다.

마음에 쏙 드는 선물을 받은 한청천은 그 나름대로 감사 인사를 했다.


“늙으면 걱정도 많아진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가 보네.”


짜악!


“말버릇.”


한청천의 등짝에 빨간 손자국을 새기고 출발한 두 사람은 머지않아 관호산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육포를 뜯으며 기다리고 있던 호웅은 공손중을 보고 절을 올리려다 나란히 걸어오는 한청천을 보고 움직임을 멈췄다.


“이 말린 육포 같은 애는 뭡니까?”

“어제 말했던 소년이네. 몸은 왜소하지만, 실력은 쓸만해서 데려왔다네.”

“안녕. 절은 왜 하다 말았어?”


호웅은 한청천의 도발을 흘려듣고선 짧은 턱수염을 꼬집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갓 태어난 망아지처럼 삐쩍 마르고 키도 작은 소년이 무슨 도움이 된다고 데려왔는지 전혀 이해가 안 갔지만, 그래도 공손중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호웅은 이마에 생긴 주름살만큼이나 많은 질문을 접어두었다.


“가시죠. 준비는 마쳤습니다.”


호웅 역시 두 사람처럼 밤새 한숨도 못 자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토끼가 자신의 계획을 눈치채고 도망칠까 조마조마하면서 착실히 굴에 몰아넣은 호웅은 어린아이 하나가 들어갈 만한 굴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굴은 반 시진 전에 토끼가 가장 많이 돌아다니던 입구와 이 작은 구멍 하나를 제외하고는 전부 무너뜨렸습니다. 흔적으로 봤을 때 토끼는 아직 굴 안에 있고, 저는 지금부터 토끼가 스스로 굴 밖으로 나오도록 유도할 겁니다. 우선 굴 밖으로 나온 토끼를 덫으로 유인해 잡는 것이 상책이지만,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싸울 대비를 하셔야 할 겁니다.”

“알겠네. 염두에 두도록 하지.”

“누가 보면 범이라도 잡는 줄 알겠네. 고작 토끼면서.”

“이 아이는 몇 단입니까?”

“나는 무공이 단지 내력이 전부라고 아니라고 생각하네만, 굳이 따지자면 1단이라네.”

“ 『고작』 1단이란 말이죠.”


고작이라는 단어를 강조한 호웅은 아무 말 없이 한청천을 쳐다봤다.

말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감정이 전달되는 부담스러운 시선에 청천이 참다못해 대꾸했다.


“단이 뭐길래 다들 호들갑이야? 실력이 의심스러우면 덤비던가.”

“무공을 배운다는 인간이 단급제가 뭔지도 모르고, 대체 어디서 주워온 놈입니까?”

“자네가 이해하게. 희귀병을 앓고 있어서 머리를 다쳤다네. 자기가 천마라고 하질 않나.”

“중증이네요.”

“안 다쳤거든요?”

“천마의 제자이자 무림의 창시자중 한 명인 한운의 서적에서 발췌한 개념이다. 본래 한운은 무공을 모두가 쉽게 배우기를 희망했고, 그에 따라 무공의 성장 단계를 본인이 좋아하는 바둑의 단수를 가져와서 풀이했지. 현대에 들어서 단수를 나누는 세부 사항은 많이 달라졌지만, 1단은 아직 한운이 썼던 내용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호웅은 강철 의수로 청천의 이마를 지그시 눌렀다.

내력을 담은 건 아니지만, 강철 의수의 무게는 허약한 청천이 어금니를 깨물고 봉에 몸을 지탱해야 간신히 버틸 수 있을 정도로 무거웠다.


“괜히 어설프게 무공을 쓰는 것보다 맨주먹으로 싸우는 편이 나은 정도.”

“헹, 운이가 심성이 착해서 어중이떠중이들도 이해하기 쉽게 썼나 보네. 내가 이래서 괜히 책을 만들지 말라고 했다니까. 꼭 글로 남기면 곧이곧대로 해석해서 모든 사항에 적용하려는 바보가 있어요. 그 책에 이런 말은 안 쓰여 있디?”


한청천은 쓰러지는 척 몸을 뒤로 젖혀 호웅의 무릎을 걷어찼다. 무릎이 접혀 균형을 잃은 호웅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 반사적으로 몸에 힘을 주었고, 청천은 그런 호웅의 힘과 봉을 이용해 한 바퀴 크게 돌아 봉 끄트머리에 발을 올리고 신선처럼 앉은 자세를 취했다.


【전심내공(轉心內功): 음전양변(陰轉陽變)】


“위의 모든 내용은 무공의 창시자이자 위대한 무인 한청천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일어나세요. 팔튼튼 어린이.”


얕잡아보긴 했어도 순식간에 뒤를 빼앗긴 호웅은 한청천의 별명에 헛웃음을 짓고선 한청천을 지나쳐 안내를 마저 했다.


“언변만큼의 실력만 갖추고 있다면 걱정할 필요는 없겠군.”


약간의 시간이 흘러 어린아이가 지나갈 정도의 작은 굴에 멈춘 호응은 준비해놓은 모닥불에 불을 지피곤 호주머니를 모닥불에 던졌다.

연기가 바람을 타고 굴쪽으로 향하는 걸 확인한 호웅은 한청천에게 말했다.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라. 토끼가 이쪽으로 나올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 토끼를 발견하면 신호를 보내라. 사방에 덫이 깔려 있으니 괜히 쫓지 말고.”

“꽤 굴이 크네. 토끼가 아니라 늑대 소굴 아니야?”

“여기는 새끼가 드나드는 입구다.”

“새끼? 토끼 새끼가 어떻게 사람만 해? 토끼가 아무리 커봤자 한 주먹정도지.”

“너한테 설명할 필요는 없다. 서두르시지요. 어르신.”

“알겠네. 청천아. 잘 지키고 있거라. 몸조심하고.”

“다녀오세요. 팔튼튼이 넌 꼭 가다가 자빠져서 대가리 깨져라. 악!”

“말버릇.”


반대쪽 굴에 도착한 공손중은 점점 딱밤을 때리는 솜씨가 능숙해지는 자신의 모습에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청천이를 들이고 불과 반나절 만에 폭력을 긍정하는 내가 무섭다네.”

“저 나이대 애들은 다들 반항적입니다. 은이랑 평이가 어른스러운 거죠. 아까 몸놀림이 범상치 않던데 정말 1단이 맞습니까?”

“정확한 단수를 내가 함부로 정할 수 있겠나. 나라가 관리하는 일인 것을.”

“그깟 국가의 숫자놀음을 누가 믿는다고···. 슬슬 준비하십시오. 울림이 느껴집니다.”

“울림?”

“토끼는 적을 화가 난 상황이고 적을 위협할 때 발을 구릅니다. 저희의 기척을 눈치챈 것 같습니다.”


쿵!


내력이 담긴 토끼의 발구르기가 동굴을 넘어 공손중과 호웅이 밟고 있는 대지까지 흔들었다.

특별한 무공이 아닌 본능에 기저한 발구르기에 내력이 추가되었을 뿐인 행위는 이미 4단 무공 실력자의 위력을 넘어섰다.


쿵!


4단쯤 되는 무인은 바위를 맨손으로 부수거나 절벽 사이를 도움닫기 없이 넘나드는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행위 가능한 존재이다.


쿵!


무거워 봤자 500근 안팎되는 인간의 위력이 이 정도라면, 곰과 같은 크기를 가진 돌연변이 토끼가 내력을 사용한다면 어디까지 가능할까?


“퓨르아아아악!!!!!!!!”


굴 안에서 내지른 토끼의 외침이 사자후가 되어 굴 밖에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기 위해 방출됐다. 나무를 부순 것도 모자라 가루로 만드는 사자후의 파괴력에 공손중은 호웅의 뒤로 다가가 손목을 붙잡았다.


“내력 좀 빌리지.”


【태극(太極): 소강뢰(少剛雷)】


쿠르릉!!!!


호웅의 내력을 사용해 만든 우레로 사자후를 상쇄시킨 공손중은 모래 먼지 사이를 번뜩이며 돌아다니는 네 개의 붉은 안광을 포착했다.

고작 울음소리로 사자후를 만든다는 장군의 이야기는 최근에도 들은 적이 있었지만, 무림인이 아닌 짐승이 그 상황을 재연했다는 사실에 공손중의 심장이 17년 들어 가장 격하게 뛰기 시작했다.


“난폭한 짐승이군. 이 몸으로 이길 수 있을지 걱정이야.”

“기억납니다. 혼자서 십만 대군을 향해 돌격했을 때도 그런 말을 했었죠.”


***


쿵! 쿵! 쿠르릉!!!


“토끼몰이 한번 요란하게도 하네. 이럴 시간에 멧돼지나 잡지 무슨 토끼를 잡는다고 난리람.”


반대쪽의 상황을 알 리 없는 한청천은 시끄러운 굉음에 귀를 후비며 꾸벅꾸벅 졸았다.

내일이면 죽는 시한부 인생이라는 진찰을 받은 환자치고는 태연한 태도였지만, 당장 몸이 멀쩡한데 죽는다고 말하는 의사의 말보단, 네시진 동안 얻어맞은 탓 삐걱대는 몸과 감기는 눈이 훨씬 체감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졸음에 밀려 숙면에 취하려는 찰나,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울음소리에 정신을 차린 한청천은 굴 밖으로 나온 토끼를 발견했다.


“쀼우!”

“무슨 토끼가 저렇게 커? 아니지. 지금 그게 뭐가 중요하담! 크면 클수록 좋지!”


거의 육척에 달하는 크기의 거대한 토끼를 목격한 한청천을 봉을 들고선 토끼에게 달려들었다.


“와라! 오늘 점심은 토끼 고기다!”


열다섯 살 처음으로 내력을 손에 넣은 이후, 한청천은 싸우면서 한 번도 다친 적이 없었다. 제자들과의 마지막 대련에서도 압도적인 차이로 이긴 한청천에게 패배란 단어는커녕, 부상이라는 단어조차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물론 공손중에게 셀 수도 없이 맞았지만, 그가 자신과 같은 실력이라고 인정했기에 한청천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날, 한청천은 처음으로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했던 상대에게 유효타를 먹었다.

원인은 셋이었다.

하나는 토끼가 단순히 덩치만 큰 게 아니라 인간과 비슷한 체형을 갖추게 된 것이었다. 인간 크기의 토끼는 팔, 다리, 귀까지 사용해 노련하게 나무 사이를 뛰어다녔고, 한청천의 예상보다 빨리 둘의 거리가 좁혔다.

이 때문에 봉으로 토끼의 머리를 깨부수려던 한청천은 계획을 바꿔 봉을 나뭇가지에 걸어 토끼의 공격을 한 번 막은 뒤 턱에 발차기를 날릴 생각이었다.


“어라?”


두 번째 오산. 공손중이 보관 중이던 봉의 구슬은 특수제작한 구슬이라 내력을 담으면 담을수록 무거워진다.

그 사실을 몰랐던 한청천은 봉에 내력을 불어넣었고, 덕분에 나뭇가지가 부러져 한청천은 달려드는 토끼를 정면에서 받아쳐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크윽!”


【전심내공(轉心內功): 음전양변(陰轉陽變)】


세 번째 오산은 단순했다.

무술은 인간을 상대하기 위한 기술이라는 것.

긴 다리를 뻗은 토끼의 공격을 흘리고 발차기를 날린 한청천이었으나, 귀로 나뭇가지를 붙잡은 토끼는 말도 안 되는 힘으로 뒤로 물러나 한청천의 공격을 피했다.


“쮸쀼쮸쀼!”


곧이어 날아오는 토끼의 주먹을 완전히 막아내지 못한 한청천은 빗장뼈가 부러지고 나무에 부딪혔다.

일흔다섯.

신선 같은 절대적인 삶을 살았던 천마 한청천은 인간으로 추락했다.

토끼 한 마리에 의해.


작가의말

네 개같이 멸망했습니다ㅋㅋ;

다음부턴 글 다쓰기 전까진 인터넷을 꺼야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본 작품(?)은 고증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지만, 그래도 근 단위나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작가의 말에 달아둡니다

한 근=233g 입니다

소강뢰는 한국대백과사전에서 소옹이 사상을 넷으로 나눈 것 중 소강을 돌, 우레로 나눈 것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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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용과 왕(2) 22.08.05 48 1 14쪽
17 용과 왕(1) 22.08.03 54 1 12쪽
16 의로움이란 허상 아래(2) 22.08.01 83 2 12쪽
15 의로움이란 허상 아래(1) 22.07.29 54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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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강호의 도리(3) 22.07.26 65 2 13쪽
12 강호의 도리(2) 22.07.25 63 2 11쪽
11 강호의 도리(1) 22.07.23 73 2 16쪽
10 평화로운 서문현(2) 22.07.20 73 2 16쪽
9 평화로운 서문현(1) +1 22.07.18 76 2 14쪽
8 토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4) 22.07.11 76 2 14쪽
7 토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3) 22.07.08 80 2 13쪽
» 토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2) +2 22.07.06 10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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