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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선티플님의 서재입니다

죽어도 살고 싶은 무림 지존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에선
작품등록일 :
2022.05.24 02:09
최근연재일 :
2022.08.26 18:15
연재수 :
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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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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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글자수 :
173,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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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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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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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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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의로움이란 허상 아래(2)

DUMMY

세상이 회전했다.

깨달음을 얻지 못한 내면의 힘이 한 점으로 모여, 한 존재에 의해 뜻을 얻고 하산하니, 방대한 힘을 지녔음에도 이치를 벗어나지 않는 내면의 흐름은 곧 열두 겹의 폭풍이 되어 관호산을 뒤덮었다.


“나는 지금···무엇을 마주하고 있는 건가?”


조금 전까지 관호산에 바람이라고는 없었다.

장마가 오기 직전인 습하고 더운 환경에 공기는 가라앉아 바람도 잠잠했다.

그러나 장대견은 알 수 있었다. 한청천의 내공은 바람을 일으킨다는 단순한 기술이 아닌, 대기를 조종하는 권능에 가까웠다는 것을.


“네가···당신이 용이라도 된다는 뜻인가?”


폭풍은 난폭하면서도 고요히 관호산을 뒤덮고 있었다.

산 전체를 뒤덮는 내공을 펼치면서도 사상자를 늘리지 않았다.

자비인가, 아니면 농락인가?

한청천의 의도를 파악할 새도 없이 몰아치는 폭풍에 장대견은 엎드려 절을 올렸다.


“천마 한청천이시어. 부디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본좌를 죽이려다 힘이 부족하니 자비를 구걸하는 것이냐? 의협은커녕 자존심도 없는 놈이로다.”

“제 죗값은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제 뜻을 따라와 준 선량한 사람들입니다. 청컨대 내공을 푸시고 저들을 하산케 하소서.”

“그래. 죗값은 치러야지. 허나 네놈의 죄는 너 혼자 짊어지지 못할 것 같구나.”

“그게 무슨···!”


장대견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한청천의 손짓에 따라 자유로이 움직이는 바람이 싣고 온 사람이 그의 오른팔, 여울이었기 때문이었다.

폭풍을 헤쳐 장대견을 구출하려고 했던 여울은 바닥에 머리를 부딪쳐 피가 흐르고 있었다.


“너를 구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더구나. 꽤 중히 여기는 부하인가 보지?”

“여울!”

“누가 일어나도 된다고 했지?”


한청천의 심기에 맞춰 여울을 감싼 폭풍이 거세지자 장대견은 이빨을 갈며 머리를 조아렸다.


“저를, 차라리 저를 죽이십시오! 저자는 죄가 없습니다!”

“잘됐군. 죄가 없는 이를 자신의 업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보다 더한 죗값은 없지.”

“그만, 제발 그만···.”


장대견은 땅에 이마가 닿도록 머리를 조아렸지만, 여울을 감싼 폭풍의 기세는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

지독한 칼바람은 곧 여울의 몸에 하나둘씩 상처를 내기 시작했고, 아슬아슬하게 급소를 비꼈지만, 상처의 깊이도 절대 얕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장대견은 한청천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을 떠보기 위함이라고, 사실은 여울을 죽일 생각이 없다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한청천은 이미 여울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여울이 다칠 때마다 움찔거리는 자신의 반응을 감상하며 무표정하게, 폭풍의 세기를 서서히 올리고 있었다.


‘죽일 셈이다. (天)하늘에서 내려온 (魔)마귀. 제자 넷을 죽인 천마 한청천이 내 부하의 목숨마저 거둬갈 생각이다.’


산적단을 창설할 때부터 함께 했던 친구 이상의 존재. 여울을 구하기 위해 장대견은 머리를 송곳으로 내리찍는 것 같은 두통을 견뎌가며 고뇌했다.

자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한청천에게 눈물과 호소는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덤벼들었다간 성과도 없이 괘씸하다고 여울을 바로 죽일 수도 있다.

한청천의 손아귀에서 여울을 벗어나게 하는 방법은 오직 단 하나.

장대견은 바닥에 떨어진 도끼를 들어 자신의 목에 가져다 댔다.


“제가 이 자리에서 목숨을 끊으면 되겠습니까?”

“뭐라?”

“제 잘못입니다. 제 욕망을 감추기 위해 헛된 꿈을 덧칠하고, 그것이 진심인 것처럼 저 자신마저 속여 일을 키웠습니다. 이 사단을 일으킨 모든 원인이 제게 있으니, 제 목으로 끝맺음을 맺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러니 부디 제 부하의 목숨을 거두지 말아주십시오. 저들은 진정 제가 가리킨 의협을 믿고 따라온 자들입니다. 당신의 수제자. 한목을 위해서라도, 간청드립니다.”


장대견은 주저 없이 손잡이에 힘을 주어 자신의 목을 도끼날로 그으려 했다.

오직 피만이 한청천의 관심을 돌릴 수 있다고 판단한 장대견의 생각은 대체로 옳았다.

그의 오산은, 더럽혀진 역사서에 쓰이지 않은 한청천이라는 인간이 자기 제자를 얼마나 끔찍이 여기는지 몰랐다는 점이었다.

한목의 이름에 반응한 한청천은 장대견의 손을 쳐내 도끼를 떨어뜨리고선 여울을 바닥에 눕혔다.


“허튼 망상으로 본좌를 멋대로 판단하지 마라. 제자의 기술로 무고한 이를 죽일 생각은 없다. 너도 나와라. 언제까지 구경만 하고 있을 셈이냐?”

“아고, 들켰네.”


점차 누그러지는 천선지전의 폭풍을 뚫고 나온 장해랑은 혀를 내밀며 어색하게 웃었다.

장해랑의 얼굴을 보자 인상을 구긴 한청천은 공손평을 어깨에 들쳐업은 뒤, 장해랑에게 통보했다.


“비록 공손평이 직접 나선 일이나, 어르신이 네게 평이를 맡긴 이유는 8단의 고수가 지켜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는 평이를 지키기보다 우두머리를 치는 데 급급했지. 어르신의 노비인 나는 이번 일에 첨언하지 않겠다. 그러나 어르신이 결코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게. 대인한테 엄청 혼나겠다.”


자신의 말에 어떤 무게가 담긴 줄도 모른 채, 한청천이 떠나가자 한숨 돌린 장해랑은 장대견의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너 진짜 나 아니면 어쩔 뻔했냐?”

“네가 아니면 천마가 이곳까지 기어 올 일이 없었겠지.”

“그건 인정. 그래도 고맙지?”


장대견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장해랑의 말을 무시한 게 아니라, 폭풍이 사라진 뒤 자신을 찾는 부하들의 목소리에 장해랑의 말이 묻혔기 때문이었다.

약간의 타박상만 입었을 뿐, 대부분 멀쩡히 일어난 부하들이 두령을 발견하자 어미 닭을 찾은 병아리처럼 소리쳤다.


“두령님! 괜찮으십니까?”

“어떡해요? 쟤 졸라 쎄요!”

“아니야. 갑자기 태풍이 불어서 그렇지, 아니었으면 두령님이 이겼어.”

“걔가 무공 쓴 거 아니야?”

“너 바보냐? 무공도 사람이 쓰는 건데 어떻게 사람이 태풍을 부르냐? 우리가 너무 열심히 해서 산신님이 노하신 거야.”

“그렇구나! 그럼 산을 옮겨서 싸우면 되겠다!”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다음번에 더 잘하면 되죠!”

“일단 내려가서 밥이나 먹어요!”

“난 찬성!”


천마의 폭풍에 집어삼켜질 뻔한 것도 모르는 멍청한 부하들의 대화를 들은 장대견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의협이라는 이름 아래 모였던 순박하고도 의로운 사람들.

자신이 올바르지 못한 길로 이끌었음에도, 아무것도 모르고 같이 밥이나 먹자고 말하는 착한 사람들.

정의롭고 착한 사람 무리에 둘러싸인 장대견은 부하가 듣지 못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족이 좋긴 좋군.”

“나도 우리 동생이 좋다.”

“너 말한 거 아니야.”


***


산적 장대견이 장해랑에게 잡힌 날 밤, 선의 송산은 땀을 닦으며 공손중에게 수술 결과를 보고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습니다. 도끼에 찍혔지만, 생각보다 깊게 박히진 않아서 쉬웠습니다. 상처가 상처다 보니 흉터는 남겠지만요. 봉합도 잘 됐고, 약 꾸준히 바르면서 살이 붙으면 나중에 실 빼러 오면 되겠습니다.”

“항상 신세 집니다.”


공손평이 중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들은 공손중은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않고 의원에 도착해 수술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제대로 된 마취약도 없어 맨정신에 살을 꿰매는 공손평의 신음을 들으며 기다린 공손중의 표정은 터지기 직전의 화산처럼 고요했다.

옛날의 공손중을 알고 있는 송산은 손가락을 튕기며 공손중에게 경고했다.


“대인이야말로 마음 추스르세요. 하나뿐인 아들이 죽을 뻔했던 심정은 이해합니다만, 대인은 경거망동해선 안 되는 위치입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까진 경과를 지켜보고, 내일부턴 집에서 안정을 취하면 될 겁니다. 기다리셨는데 얼굴이라도 보고 가시지요.”


송산이 권유한 대로 공손중은 옷매무새를 다듬은 뒤, 아들이 누워있는 병상으로 다가갔다.

공손평의 상처는 약초와 붕대로 가려져 있었지만, 아직 온전히 아물지 않아 붕대에 피가 서서히 번지고 있었다.

그나마도 한청천이 말 두 필을 번 갈아타며 최대한 빨리 왔기 망정이지, 더 늦었다간 큰일 날 뻔했다.


“좀 어떠냐?”

“전보다 숨은 쉴만합니다.”


가는 숨을 내쉬는 공손평은 말하는 것도 힘들어 보였지만, 아버지에게 몹쓸 꼴을 보여준 아들로서 사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제가 살생을 주저했기에 이런 꼴이 되었습니다.”

“됐다. 청천이에게 이야기는 대충 전해 들었다. 일개 산적이 도사의 재주를 사용하리라 네가 어찌 예상했겠느냐? 네가 무사하면 이 아비는 그걸로 족하다.”


공손중은 공손평의 손을 잡고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감정을 추스르고, 단어를 솎아내어, 아들에게 전해야 할 말을 정리한 공손중은 깊게 숨을 들이킨 뒤, 입을 열었다.


“네가 무슨 깨달음을 얻었는지, 산적과 싸우면서 어떤 마음가짐이었는지 아비는 모른다. 너와 나는 피로 맺어진 인연이나, 결국은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온 타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네 행동을 나무라지도, 평가하지도 않겠다. 다만, 이 말만은 명심해주거라. 내겐 더 이상 사람의 죽음을 감당할 힘이 없다. 부디 죽지 말아다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리고 책임은, 때로는 흘러넘쳐 주변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당장이라도 흐느낄 것 같은 아버지의 간청을 들은 공손평은 이날 다짐했다.


“명심하겠습니다.”


다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리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

.

.

같은 시각, 사냥꾼 호웅에게 묘랑이라는 이름을 얻은 토끼는 나무 꼭대기에서 달을 감상하고 있었다.


‘당분간 나갔다 올 테니 산을 지키고 있거라.’


묘랑은 호웅의 말을 착실히 따랐다.

산을 나가 논밭을 헤집으려는 멧돼지를 잡아 오기도 했고, 가끔 상인을 공격하려는 도적을 퇴치하기도 했다.

와중에 자신을 보려고 산을 오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묘랑은 잠시 어울려준 뒤, 사람들을 다시 마을에 돌려놓았다.


“쮸쀼쮸···.”


다만 호웅이 없는 산은 묘랑에겐 너무나도 심심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진 4단의 내력과 성인 남성 크기의 육체가 합쳐진 묘랑은 어지간한 잡범은 고함만으로 내쫓을 정도로 강했고, 그런 묘랑에게 산을 지키기란 너무 쉬운 임무였다.


“쮸쀼!”


그런 묘랑에게 최근 소소한 취미가 생겼으니, 바로 밤에 날아다니는 신기한 매를 잡는 일이었다.

원래 매는 밤에 날지 못하는데, 발목에 작은 대나무 통을 달고 다니는 매는 크기도 독수리만큼 큰데다 밤에도 매우 잘 날았다.

달빛 아래에서 매를 포착한 묘랑은 발에 내력을 담아 나무를 기울였다.

열 번 시도하면 아홉 번 실패할 정도로 반응속도가 뛰어난 매를 잡으려면, 매가 알아챌 틈도 없이 한순간에 뛰어올라야 했다.


“쀼!”

“꽤액!”


화아!!!!


기울었던 나무의 탄성을 이용해 한순간에 매가 있는 곳으로 뛰어오른 묘랑은 마침내 처음으로 매를 붙잡는 데 성공했다.

토끼한테 처음 잡혀본 매는 처음에는 소리 지르다가 이내 멀뚱히 묘랑을 바라보았고, 매를 잡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막상 잡아서 뭘 할 거라는 생각까진 안 해본 묘랑도 멀뚱히 매를 바라보았다.


“뭐하냐? 잡았으면 먹든가 아니면 깃털이라도 뽑아야지.”

“쮸쀼!”


묘랑의 매를 빼앗은 호웅은 오랜만에 만난 묘랑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옷과 얼굴엔 잿가루를 잔뜩 묻히고 다른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가죽을 한 수레 가득 가져온 호웅은 독수리처럼 큰 매를 살펴보았다.


“이 녀석도 내단환을 먹였군. 방금 세력 하나를 궤멸시키고 왔는데, 대체 얼마나 있는 거야? 발에 뭔가 묶여있는 걸 보니 전서구인가?”


매의 발목에 묶인 대나무 통을 열어본 호웅은 안에 들어있는 쪽지를 읽었다.

호웅의 행동이 옳았는지, 혹은 경솔했는지, 그때의 호웅은 알지 못했다.


“허, 이 새끼들 좀 봐라?”


그가 알아챈 것은 단 하나.


「교주님께 전하라. 마침내 천마께서 돌아오셨다.」


마교가 한청천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작가의말

산적단편이 끝났습니다

진지한 에피소드는 쓰면서 괜히 감정이입하게 되네요
다음은 가벼운 에피소드 하나로 환기하고 가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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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장군(1) 22.08.25 40 1 12쪽
27 안한자적(3) 22.08.23 44 2 12쪽
26 안한자적(2) 22.08.22 40 1 12쪽
25 안한자적(1) 22.08.19 47 1 13쪽
24 원죄의 아이(5) 22.08.18 47 1 13쪽
23 원죄의 아이(4) 22.08.16 44 2 12쪽
22 원죄의 아이(3) 22.08.15 49 1 12쪽
21 원죄의 아이(2) 22.08.12 45 1 16쪽
20 원죄의 아이(1) 22.08.10 48 2 11쪽
19 용과 왕(3) 22.08.08 50 1 14쪽
18 용과 왕(2) 22.08.05 48 1 14쪽
17 용과 왕(1) 22.08.03 55 1 12쪽
» 의로움이란 허상 아래(2) 22.08.01 84 2 12쪽
15 의로움이란 허상 아래(1) 22.07.29 54 2 13쪽
14 강호의 도리(4) 22.07.27 56 2 12쪽
13 강호의 도리(3) 22.07.26 65 2 13쪽
12 강호의 도리(2) 22.07.25 63 2 11쪽
11 강호의 도리(1) 22.07.23 73 2 16쪽
10 평화로운 서문현(2) 22.07.20 73 2 16쪽
9 평화로운 서문현(1) +1 22.07.18 76 2 14쪽
8 토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4) 22.07.11 76 2 14쪽
7 토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3) 22.07.08 80 2 13쪽
6 토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2) +2 22.07.06 101 2 12쪽
5 토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1) 22.07.04 113 2 15쪽
4 살아야 한다(4) 22.05.27 142 2 11쪽
3 살아야 한다(3) 22.05.26 173 2 14쪽
2 살아야 한다(2) 22.05.25 229 2 14쪽
1 살아야 한다(1) +1 22.05.24 479 6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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