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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수십년만의 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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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스토리공장
작품등록일 :
2020.08.11 19:54
최근연재일 :
2021.02.0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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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5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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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속삭임의 던전(3)

DUMMY

동굴 천장을 도화지 삼아 그려진 룬문자가 일제히 빛났다.


문자를 중심으로 부서진 얼음조각이 뭉치기 시작했다. 조금씩, 조금씩, 꽈드드득 거리는 소리와 함께 얼음조각이 움직였다.


그것들이 바람이 내뿜는 박자에 맞춰 움직였다.

하나의 공장 기기같이.


그 흐름 사이로 얼음 조각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얼음으로 만들어진 고블린과 코볼트들이 걸어왔다.

녀석들은 평소 몬스터 때와 달리 질서정연했다.


일행의 키 절반 되는 숏다리 군단의 탄생이었다.


다만 기세등등함과 달리 겉으로 보면 보잘 것 없었다. 애초에 그럴 만한 것이······.


“우리가 죽인 덩치 몸을 나눠 만들었군.”

“재활용 군단이군요.”

“풋. 음, 흐음, 둘 다 방심하지 말아요.”


아리엔이 순간 터진 웃음을 참았다. 디폴트의 한 마디에 저 위풍당당한 얼음군단이 세상에서 가장 저렴한 군단이 돼버린 덕분이었다.


물론, 그런 박한 평가와 달리 일행은 자세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아직 동굴 주인의 정체만큼이나 의도도 오리무중이었으니까. 무지에 놓인 상태에서 방심은 더더욱 금물이었다.


‘얼음이여. 벽을 만들어라, 아이스 월.’


속삭임이 마법을 펼치자, 안 그래도 단단히 진형을 짠 난쟁이군단 앞에 벽이 솟아올랐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아이스월이 아니었다.

키가 짧은 숏다리 군단에 맞춰 높진 않았지만, 삼중 성벽에다 성문, 초소 같은, 성에서 볼법한 세세한 설계를 내보였다.


녀석 중 몇은 벽 위로 올라가 농성을 준비하기까지 했다.


일행은 소인의 요새를 침공하는 거인의 기분을 느껴야 했다. 거기다 녀석들은 벽이 오르지 않은 성문에서 나와 역공 준비까지 마쳤다.


“난데 없는 공성전이군.”


그 광경에 왕야조차 황당함을 감추지 않았다.

갑자기 달라진 전투방식에 셋은 잠시 눈길을 맞대며 의견을 나눴다.


“어떻게 합니까? 전 전쟁에 대해선 모릅니다만.”

“나도 모른다. 차라리 50미터짜리 성벽이 더 편하다. 높이가 낮아서 애매하다.”


그러자 아리엔이 버클러를 정비했다.


“일단 오는 놈들을 잡고 생각해봐요.”


녀석들은 확실히 적극적이었다. 자기들의 주인이 만들어준 성벽을 지키기로 한 소수 빼고 전원 그들에게 전진해왔다.


일행은 아까 농담 때와 달리 점점 진중해졌다.


몬스터들은 울부짖거나 이빨을 드러내거나 아니면, 잘난 뿔을 들이밀려 할 때 무서운 존재가 아니었다. 가장 무서운 몬스터는 두 가지였다.


침묵을 지키거나

그저 규칙적인 발소리를 내 거나


지금 그들은 후자를 보였다. 살아생전 ‘끼요오옷’이라던가 ‘끼에에엑’거리는 유치함을 찾아볼 수가 없는 절도 있는 전진이었다.


몬스터도 그럴진데, 그들 역시 전략이 필요했다.


“불행히도 우리에겐 탱커나 힐러는 없어요. 그러니 최대한 품속에 있는 보조 힐러를 챙기되 서두르지 말고 페이스대로 나가요.”

아리엔이 품속에 포션을 꺼내 흔들며 말했다. 둘은 그녀의 오더를 계속 경청했다.

그녀는 딱 세 오더만 내렸다.


“제게 생각이 있으니 잠깐 물러나봐요. 후에 싸움은 자기 스타일 대로 알아서. 할 수 있다면 최대한 진형을 어그러뜨리며 싸워요.”


그러면서 그녀가 방패와 검을 부닥쳤다.


“도발!”


여전히 그들은 진형을 지켰지만, 살짝이나마 움직임이 달라졌다. 제아무리 얼음덩이가 됐어도 몬스터로서의 속성은 남아있는 것이다.


‘계속 돌격. 멀리, 멀리 쫓아버려.’


속삭임이 명령을 속삭였다. 그러자 난쟁이군단이 육중한 얼음 발을 놀리며 달렸다. 이번엔 가운데를 아리엔이 맡았고, 왕야와 디폴트가 양옆으로 흩어졌다.


점점 그들을 난도질하기 위해 달려오는 얼음 날붙이들이 가까워졌다. 둘은 서로 약속이라도 하듯 눈을 맞췄다. 그러자 둘은 한밤의 훈련 때처럼 움직였다.


“벽짚기, 벽타기!”


둘은 거의 동시에 말했다. 그들은 벽을 짚고 1미터 정도 되는 높이까지 뛰어오른 뒤, 그들의 돌격이 가까워질 때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다만 그들이 달리는 땅은 벽이었다.


숏다리 군단이 열심히 위를 향해 날붙이를 휘둘렀으나, 그들은 그저 애꿎은 공기만 베어냈다. 둘은 순식간에 벽을 타고 그들의 후방으로 이동했다.


한편 가운데 있던 아리엔이 버클러를 쥐었다.

그녀는 그 자세를 유지하며 그들을 노려봤다.


‘어차피 저 녀석이 가장 성가셔. 방어하며 돌격.’


그러자 선두의 얼음 고블린과 코볼트들이 두 손을 교차했다. 물론 그것만으로 저 믹서기 방패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그게 2열과 3열까지 휩쓸지 못하리라.

오히려 2열과 3열이 버클러를 잡아낸다면 무기를 빼앗을 수도 있었다.


그 기대를 하며 군단이 계속 전진해왔다. 드디어 그녀가 힘껏 방패를 던졌다.

다만, 그건 하늘을 향했다.


천장에 닿은 버클러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엄청난 소리를 냈다.

위이이잉! 콰자자작!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그들을 향해 무언가가 떨어졌다.

고드름이었다.


쿵! 콰자작!

그 거대한 얼음정령이 몽둥이로 쓸만큼 큰 고드름들이 난쟁이군단을 덮쳤다. 비명은 없지만, 그렇다고 그 작디작고 연약한 얼음 조각이 버텨내는 건 아니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고드름이 만든 전장에 난쟁이군단의 진형은 엉망진창이 돼버렸다.

거기에 맞춰, 이번엔 그녀가 사슬을 타고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그녀는 어느새 고드름 위에 올라가 있었다.


미리 피해 있었던 둘도 고드름 위로 올라가 전투에 합류했다.


만약 지형 자체가 여전히 평면이었다면, 그들은 위협적인 적이 됐을 것이다. 허나, 기동력이 압도적인 전투방식과 고드름이 만든 기이한 전장은 양상을 바꿔버렸다.


그들의 단단한 진형은 그냥 거대한 사각형 얼음 널빤지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도 구멍이 숭숭 뚫려버린.


그들은 위아래를 자유자재로 이동하면서 발이 묶인 난쟁이군단을 요리하기 시작했다.

이후 고드름 사이에 살아남은 몬스터는 아무도 없었다.


재활용 군단이 다시 분리수거 돼버렸다.


그녀가 여전히 서 있는 얼음벽을 주시했다.


“넘어갈 준비하죠.” “아리엔 님 밑에.”


디폴트가 밑을 가리켰다.


“위에도 뭔가 있다.”

왕야가 위를 보며 말했다.

아리엔은 둘의 의견에 따라 위아래를 살폈다.

아래엔 부서진 얼음조각이 부르르 떨었고, 위에선 눈에 보일 정도로 세찬 바람이 불었다.

하늘색 룬문자 사이에 녹색 룬문자가 빛나기 시작했다.


녹색 룬문자의 세찬 바람이 얼마 안 가 폭풍이 되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얼음조각을 동반한 냉기 폭풍이었다.


“윽! 조심해라. 얼음조각이 날카롭다!”


왕야가 갑자기 올라온 따가움에 팔을 살피곤 외쳤다.


유의미한 데미지는 아니었지만, 문제는 지금 바람을 타고 날고 있는 얼음조각이 수천, 어쩌면 수만일지 몰랐다. 폭풍 자체가 거대한 버클러가 된 셈이었다.


심지어 폭풍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상태이상! -동상-에 걸렸습니다!>


잘게 바스라진 얼음가루가 그들의 몸에 달라붙기 시작한 것이다. 순간, 디폴트가 주머니 속에 잊혀진 물건을 떠올렸다.


“아리엔 님. 그거 있습니까!”


눈치 빠른 아리엔이 ‘그거’에 대해 금방 반응했다.


“물론이죠! 왕야! 너도 ‘그거’ 있지! 둘 다 꺼내요!”


“아, ‘그거’! 좋은 생각이다!”


셋은 주머니에서 동시에 곰가죽 망토를 꺼내 들었다. 셋이 ‘장착’이라 외치자, 그들의 덩치가 두 배는 커졌다.


곰가죽 망토가 워낙 큰 탓이었다.


<장비를 장착했습니다!>

<상태이상 해제!> <추위를 막아냈습니다!>


그만큼 효과도 확실했다.

추위를 이겨낸 셋은 언제 화살처럼 날아올지 모를 얼음조각을 막고자 자세를 취했다.


‘끈질기네. 하지만 내 꼬마군단이 더 끈질겨. 어디 끝까지 해봐.’


속삭임이 그들에게 속삭였다.

자연스레 셋의 눈이 맞춰졌다. 셋은 서로 눈으로 대화했다.


‘그러고 보니 얼음조각은?’

‘막상 그걸로 우릴 공격하지 않았군요.’

‘설마?’


셋은 불안한 눈초리로 얄팍한 얼음성을 바라봤다. 어느새 그들이 해치운 군단이 복구되어 있었다. 녀석들은 다시 진형을 갖추고 성문을 나섰다.


‘못 지나가.’


속삭임은 자신했다.


그들은 아까 유저의 말마따나 재활용에 지나지 않았다. 허나 그들은 그 덩치들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효율이 좋았다.


돈, 아니 마력 대비 최고의 소모품이었다.


거기에 맞춰, 자신이 깔아놓은 하늘색 룬문자는 마법스러운 신비나 품위는 없는 대신, 훌륭히 공장 역할을 다했다.


하늘색에 가려진 녹색의 룬문자가 바람을 통해 부서진 얼음조각을 다시 바람을 통해 회수하면, 그 조각으로 다시 군단을 복원시켜나갔다.


아까의 얼음정령이 명인의 수작업이라면, 이건 그야말로 최강의 공장 생산라인이었다.


그리고 모든 전쟁이 그러하듯, 시간은 생산력이 최고인 놈에게 전쟁의 승리를 선언하는 법이었다.


셋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게 탕진되기 전에 해결을 봐야했다.


*


‘생각보다 친구들이 고전하네. 큰일이야.’


본디 정령은 게임시스템상 유저들에게 우호적인 존재였다. 지금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는 정령도 마찬가지였다. 녀석은 이름이 없었다. 잠시나마 버렸기 때문이다.


그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하고 싶지 않은 충동이 일기 때문이었다.

이름을 읊조릴 때마다 머릿속에 한 가지 감정이 몰아쳤다.

자신과 계약한 이의 기억(데이터)가 계속 요구했다.


‘죽여. 이방인들을 남김없이 죽여. 대신 네게 내가 쌓아올린 모든 기억을 주겠어. 내 모든 걸.’


몇 번이고 후회한 계약이었다. 차라리 정령계에서 더 인내심을 가진 채로 더 좋은 계약을 기다려야 했다.

이 망할 계약 때문에 얼마나 많은 유저를 죽이고, 추격까지 받아야 했는지!


이젠, 감정을 추스르며 칩거한 이곳조차 더는 안전치 않았다.


‘어쩌면 이 동굴을 버려야 할지 몰라.’


정령은 실재하지도 않는 이빨로 입술을 깨물며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어딜 간단 말인가? 살인귀의 원한으로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자신이?


이방인은 물론, NPC조차도 자신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근처 마을의 촌장은 왕국에 얼마나 많은 토벌요청을 내렸는지 셀 수도 없었다.

외부로 보낸 바람이 수시로 주위를 살핀 덕분이었다.


그렇다고 계약으로 형체를 얻으면서 떠안게 된 이 원한을 버릴 수도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항상 잊지 말라고 충고하는 것처럼 형체 없는 손에서 검은 사각형이 피어올랐다.


이 정체불명의 힘이 끝까지 자길 이곳에 붙잡아 두고 있었다.


끝내 자신에게 구원은 없었다. 이마저도 자신을 위해 악착같이 이 세상에서 버텨주는 얼음정령 친구들이 있기에 인내할 수 있었다. 허나. 이젠 한계였다.


‘오랫동안 참아왔는데. 참아왔는데. 이젠······’


정령은 계속 자신의 머릴 감싼 모자를 찢을 기세로 쥐어뜯었다. 어차피 몸이 바람으로 되어 있기에 그저 흩어지다 말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한참 자신의 형체를 흩어뜨리다 말다를 반복했다.

결국 정령은 모든 걸 내려놓았다. 자신이 그동안 억눌러왔던 본능에.


‘계약에 따른다. 계약자 이름······’


그는 자신이 계약했던 그 유례 없는 이방인 살인마의 이름을 계속 되뇌었다.

그 솥뚜껑처럼 넓직한 마법사 모자를 뚫고 자신에게 목적과 사명, 모든 능력을 내준 이름을 읊조렸다.


‘아바······. 아바와의 계약에 따른다. 보이는 이방인은 전부 죽인다.’


작가의말

아바 : 예? 제가 계약을 했었다고요? 전혀 몰랐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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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10-3 지고한 종자(3) 21.02.03 21 0 12쪽
91 10-2 지고한 종자(2) 21.02.02 22 0 12쪽
90 10-1 지고한 종자 21.01.29 22 0 14쪽
89 9-5 반역의 거신(5) 21.01.28 28 0 16쪽
88 9-4 반역의 거신(4) 21.01.27 33 0 12쪽
87 9-3 반역의 거신(3) 21.01.26 28 0 12쪽
86 9-2 반역의 거신(2) 21.01.22 29 0 13쪽
85 9-1 반역의 거신 21.01.21 2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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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8-3 하즈다르둠 공성전(3) 21.01.19 24 0 12쪽
82 8-2 하즈다르둠 공성전(2) 21.01.15 26 0 13쪽
81 8-1 하즈다르둠 공성전 21.01.14 32 0 15쪽
80 7-10 검은 가족과 드워프들(10) 21.01.13 25 0 17쪽
79 7-9 검은 가족과 드워프들(9) 21.01.12 50 0 14쪽
78 7-8 검은 가족과 드워프들(8) 21.01.08 29 0 14쪽
77 7-7 검은 가족과 드워프들(7) 21.01.07 30 0 12쪽
76 7-6 검은 가족과 드워프들(6) 21.01.06 28 0 12쪽
75 7-5 검은 가족과 드워프들(5) 21.01.05 26 0 12쪽
74 7-4 검은 가족과 드워프들(4) 21.01.01 43 0 16쪽
73 7-3 검은 가족과 드워프들(3) 20.12.31 47 0 12쪽
72 7-2 검은 가족과 드워프들(2) 20.12.30 24 0 13쪽
71 7-1 검은 가족과 드워프들 20.12.29 27 0 13쪽
70 6-12 속삭임의 던전(11) 20.12.25 26 0 12쪽
69 6-11 속삭임의 던전(10) 20.12.25 26 0 14쪽
68 6-10 속삭임의 던전(9) 20.12.24 28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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