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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겸

진천(鎭天) : 악귀의 탄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드라마

재필장수
그림/삽화
윤겸
작품등록일 :
2022.05.11 14:46
최근연재일 :
2023.10.23 21:45
연재수 :
246 회
조회수 :
86,720
추천수 :
1,202
글자수 :
1,449,626

작성
22.06.16 15:07
조회
272
추천
4
글자
12쪽

진천 - 109화

DUMMY

2년 전, 이도의 생을 거둔 그때의 평원으로 몸을 옮긴 진천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오랜만이야 이도. 눈이 제법 많이 쌓였군."


털썩.


평원의 한가운데에 털썩 주저앉아 허전한 손짓으로 허리춤을 어루만진 진천은 뭔가 아쉬운듯 입맛을 다시며 어느새 해가 중천에 뜬 하늘을 바라봤다.


"술을 좀 가져올 걸 그랬나."


그렇게 혼자 넋두리를 하듯 홀로 중얼거린 진천이 슬쩍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자, 그의 주변으로 가벼운 바람과 묘한 녹빛이 일렁이며 소복한 눈이 사르르 녹아 갈색의 잡초와 낙엽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방원은 왕도니 뭐니 거창하게 얘기 했지만 결국은 하고싶은 대로 한다 그말이야. 나느 지금껏 나를 방해하는 자들 앞에서 인간의 규율과 도덕성에 얽매였기에 괴롭고 답답했다. 그럼 나는 결국 악인이었나? 내 의도대로 되지 않거나 날 방해하는 자들은 죽여야 속이 시원한 악인...'


진천의 눈썹이 크게 꿈틀거리며 녹색의 기운이 확 커지는가 싶더니, 금새 원래의 크기로 돌아와 다시 잔잔하게 공간을 유영했다.


'아니. 이제는 정말 악이니 정의니 하는 것에 얽매이지 말자.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타인에게 인정 받을 필요도,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려 할 필요도 없다. 그런 기준은 인간들의 것. 나는 그저 하고 싶은대로 하면 된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하고 싶은건 동족 수장놈을 때려 잡는거지만 아직은 시기상조... 그래, 힘이 생길 때 까지는 시키는대로 해주마.'


후우웅...


'나는 70이 넘어서야 나의 욕망을 깨달았구나. 그때 이방원을 보고 매료 됐던 건 그에게서 나의 욕망을 봤기 때문이었어. 인정하자. 나는 원래 그래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거다.'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모두 하나씩 정리하느라 상당히 긴 시간을 소비한 진천은, 약 3시진이 지나 해가 뉘엿뉘엿지는 저녁이 되어서야 눈을 열고 이도가 쓰러졌던 그 자리를 다시 바라봤다.


"이도. 나도 이제서야 생각해보는 건데. 내가 너를 탐냈던 이유말야. 왕이란 원래 인재를 갈망하지 않던가. 그만큼 너는 탐나는 사내였다. 네가 내 옆에 있었다면 큰 도움이 됐을 터인데 참 많이도 어긋났어. 이방원의 아들로 새로 태어난 너와는 좋은 사이가 되도록 노력해보마."


신축년 일월, 진천의 나이 71세.


이때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욕망을 완전하게 마주 본 진천은 이도에 대한 아쉬움을 그곳에 완전히 묻어둔 채 마교로 몸을 옮겨 곧장 염광과 사마의를 찾았다.








***








"천마신교의 지존을 뵙습니다."


"위대한 분을 뵙습니다."


염광의 한결 같은 인사에 대전의 태의에 턱을 괴고 앉아있던 진천이 헛웃음을 흘렸다.


"흐! 대체 그 인사말은 누가 정한거냐?"


"엇, 죄송합니다. 저도 어릴적부터 배운거라 잘..."


"됐다. 편히 앉아라."


"감사합니다."


"사마의."


"네, 교주님."


"조선과 동영의 무인들을 모두 제거하자면 어느정도의 전력이면 되겠나?"


"기간에 따라 달라지겠습니다."


"5년... 아니, 8년으로 하지."


"허면 천마대와 마뇌척살대를 보내시면 좋을 듯 합니다."


"곧장 보내라."


"아직 무림맹주의 답신이 오지 않았습니다. 기다리셨다가 전황을 보고 움직이시는 것이..."


"아니, 그냥 보내라. 만에하나 무림맹이 우리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서안엔 다른 무력대를 배치하고."


"네, 교주님."


"천마대주에게 그곳의 이방원이란 자를 찾아 그를 도우라 일러라. 그리고 호법원 극마의 고수 둘과 신검합일 열정도를 따로 붙여 이방원의 아들 중 이도란 놈을 호위하게 하라."


"존명."


"본좌는 당분간 일이 있어 북극으로 다녀올 생각이다. 무림맹이 본교의 제안을 수락하면 계획에 맞춰 진행하라. 본좌가 더 알아야 할 것이 있느냐?"


진천은 동인 20만의 생을 거두는 일은 악야는 물론 마교의 인물들에게도 공유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제 다른 이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 없었지만, 진호나 악야가 알게 되는것은 아직 감당할 자신이 없었고 말이란 한번 옮겨지면 어떻게든 새어나가기 마련이기 때문이었다.


"이틀전에 들어온 소식입니다. 전 황제가 천진에서 발견됐습니다. "


"음? 천진?"


그 의외의 소식에 진천이 앉은 몸을 앞으로 기울이자 사마의가 말을 이었다.


"전 황제가 30일전 천진에서 개방의 거지들을 때려잡다가 개방의 방주에게 크게 당했습니다. 그를 알아본 방주가 손속에 사정을 둔 탓인지 전투 중 도주한 후 행적이 묘연합니다. 원래 그에게 붙었던 무영문의 감시조가 이번일로 모두 철수하는 바람에 경로추적에 공백이 많이 생겼습니다."


"헛, 천둥 벌거숭이 같은 놈... 알았다. 그 얘긴 더 들어오는대로 알려라."


"네, 교주님."


"그래. 간간히 들리겠다. 구학영 형님께는 둘을 데려오는 일이 예상보다 시일이 좀 더 걸리겠다고 전해라. 10일 내에는 데려오마."


"존명."


픽.


진천이 신형이 꺼지고 나자 자리에서 일어나 사마의가 염광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염장로님. 교주님께서 말씀하신 북극의 일이 무엇인지 혹 아십니까?"


"음? 어째 네놈 목소리에 걱정이 섞였구나."


"...그렇습니까? 사실 근래에 교주님께서 심경의 변화가 잦으신 듯 하여... 어제는 수심이 가득하셨다가 오늘 또 시원시원 하셔서 그렇습니다."


염광이 재밌다는 얼굴로 등을 돌려 천천히 대전 밖으로 걸어나가자, 사마의도 그 뒤를 따라 발을 옮기며 둘의 대화가 이어졌다.


"크흐! 네가 앞으로도 진천 어르신을 계속 모실 생각이라면 하나 알아라. 어르신들을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그 분들은 천지자연 그 자체. 우리의 기준에서 예측하거나 판단하려다 보면 네놈 머리속만 복잡해진다."


"조금만 더 쉽게 얘기해주십시오."


"똑똑한 놈이 둔한척은? 왜, 네 주인이 점점 변해가니 겁나느냐?"


"당치 않습니다. 어떤 분이시든 저는 교와 교주님께 충성을 다 할 뿐입니다."


"흐음. 어느날 갑자기, 아무 이유도 없이 이 마교 전부를 멸한다고 해도?"


"무, 무슨 그런..."


"하늘색이 마음에 안든다는 이유로 너와 네 일가 전체의 목을 치실 수도 있다. 그러고 나서 바로 땅을 치고 후회 하시기도 하지."


"...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습니까?"


"물론. 150년쯤 전에 서역에서 자신의 영지에 사는 인간 2천만을 하루아침에 쓸어버린 분이 계셨다. 별 이유없이."


"..."


"흐흐. 원래 그런 분들이다. 힘 뿐만 아니라 생각하시는 것 부터가 우리와는 참 많이 달라."


대전밖으로 나온 사마의의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우자 염광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사마의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였다.


"진천 어르신이 그리 되신단 뜻이 아니다. 그만큼 우리의 생각으로는 예측하기 어려우니 어르신의 변화에 일일히 고심하지 말란 뜻이야."


"... 감사합니다. 장로님."


"그래, 가보마."


후욱- 콰아아아아아!!


깊이 고개를 숙인 사마의의 귀에 염광의 경공에서 흐르는 파공음이 무겁게 울려퍼졌다.








***








그날 밤.


섬서의 자택에서 하루를 지내기로 한 진천이 이제 막 잠자리에 들려는 악야에게 말했다.


"여보, 나 내일부터 한 10일 정도 북극에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아."


"또요? 어제 다녀왔잖아요."


"어젠 아버지만 잠깐 보고 온거고, 그냥 어머니랑도 시간 좀 보내고 어른들 사시는 거 구경도 좀 하려고. 매일 용건있을 때 아버지만 잠깐 만나고 오다 보니까 어머니도 보고싶고."


진천의 말에 악야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오랜만에 가서 효도 좀 해요. 나도 같이가면 좋으련만. 한번도 못뵀는데."


"아이고, 다음에 내가 모시고 올게. 거기가 얼마나 추운데? 나야 그렇다 쳐도 당신은 아무리 싸매고 가도 못견뎌."


이방원을 도와 조선을 침략하는 오랑캐들을 막으러 간다고 할까도 생각을 해 봤지만, 겨우 그정도 일에 자신이 직접 나가는 것도 말이 안되거니와 괜히 또 전쟁에 나선다고 말하기가 껄끄러웠던 진천은 상당한 죄책감을 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진천은 새벽같이 일어나 마교의 교주전용 연공실 안쪽으로 있는 밀실로 몸을 옮겨 흑룡검을 풀고 적당한 상품검을 집어들고 요동으로 몸을 옮겼다.


사실 이젠 검이 있고 없고는 별 상관이 없었지만, 괜히 과한 힘을 써서 중원에 말이 퍼지는 것을 조심하고자 했던 진천은 요령성에 들어 적당히 저렴한 흑색무복으로 옷까지 갈아 입은 뒤 근처의 개방도를 찾아 거리를 두리번 거렸다.


'모용세가 놈들이 꽤 많이 보이는구나. 밖으로 돌던 놈들이 죄다 들어왔나보군.'


모용세가는 주원혁에 의해 멸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후 무림맹과 중원 각지에 흩어졌던 무사 300여명이 복귀했는데, 통일된 무복을 입고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성내의 거리를 몰려다니는 것이 어떻게든 중원 5대 세가의 위용을 유지하려 애쓰는 듯 했다.


"저기있군."


얼마 안돼 대로의 한켠에 주저앉은 거지를 발견한 진천이 반가운 얼굴로 다가가 말을 붙였다.


"말 좀 묻지."


"... 물으쇼."


"...?"


진천은 평소와는 다른 퉁명스러운 거지의 반응에 잠시 당황했으나 곧 자신의 행색이 평소와는 다르다는 걸 되새기고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품속에서 은자를 꺼냈다.


"자, 이거 받거라. 조선 근처에 여진족이나 왜구가 자주 출몰한다고 하던데 혹 놈들의 본거지가 어디인지 아나?"


"엇... 네,네 나으리!"


손에 은자덩어리를 쥐고서야 공손해진 거지는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막힘 없이 정보를 쏟아냈다.


"길림성 위쪽과 흑룡강 일대에 북방 여진족들의 본거지가 있습니다. 왜구들은 때마다 동영에서 바다를 건너와 한차례 약탈을 한 후 돌아갑니다! 워낙 각지의 해안에서 출몰하는 터라 딱히 근거지는 없습니다!"


"음, 고맙네."


"살펴 가십쇼 나으리!!"


'흑룡강이라...'


여느때처럼 인적이 없는 산길로 경공을 펼친 진천은 곧장 흑룡강 일대의 상공으로 몸을 옮겼다.


"음?"


한동안 상공을 배회하던 진천은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고는 곧장 지상으로 몸을 쏘아 내렸다.


후우우우웅-


턱.


"...뭐야 이거?"


진천이 내려선 곳은 거대한 산맥에 둘러쌓여 펼쳐져 있는 평원.


그곳엔 이미 수천에 이르는 여진족 전사들의 시체가 상당히 넓은 영역에 걸쳐 널부러져 있었고, 그것은 이들의 본거지였던 듯한 약 100장 뒤의 목책성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다.


"시체위로 눈이 꽤 쌓였으니 이정도면 3일쯤 된건가?"


한겨울인 덕에 시체들은 그대로 얼어 붙어 부패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지만, 진천은 대략 눈대중으로 시기를 유추하고는 몸을 띄워 흑룡강 지역 전체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여기도... 설마 이 일대놈들 전부 다 이꼴인가? 나야 손을 덜어서 좋긴하다만..."


약 한시진에 걸친 비행으로 흑룡강 일대에서 보이는 수십개의 목책성이나 작은 성들에 있던 모든 여진족들이 시체가 되었음을 알게된 진천은 눈살을 찌푸리며 방향을 틀었다.


"무공에 당한건 분명한데."


여진족의 시체나 주변에 남은 상흔들은 분명 베였다기 보다는 터뜨리고 뭉개는 상당히 패도적인 무공의 흔적이었다.


간간히 개방이나 청성파, 소림 무공의 흔적도 있었기에 진천은 잠시 연합군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 모든 흔적에서 느껴지는 묘한 익숙함과 일관성에서 범인을 대략 유추한 진천이 혀끝을 차며 조선의 경주로 몸을 옮겼다.


"쯧, 개방 방주에게 쥐어 터지고 여기와서 화풀이를 한건가? 발정난 똥개도 아니고... 헛. 여긴 공쳤군. 젠장."


어쨋든 주원혁 덕에 손을 아낀 진천은 왜구들의 정보를 찾아 경주 일대의 가까운 관청을 찾았다.


"근래에 왜구들이 출몰한 곳이 있는지 물으러 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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