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김윤겸

진천(鎭天) : 악귀의 탄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드라마

재필장수
그림/삽화
윤겸
작품등록일 :
2022.05.11 14:46
최근연재일 :
2023.10.23 21:45
연재수 :
246 회
조회수 :
86,458
추천수 :
1,202
글자수 :
1,449,626

작성
22.06.16 13:38
조회
273
추천
5
글자
11쪽

진천 - 106화

DUMMY

그렇게 크고 작은 안팍의 우환으로 무림맹과 연합군의 기세가 시들해지며 움직임이 둔해지고 있을 때.


진천은 주간엔 속중표국의 일을, 퇴근 후에는 악야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잔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날도 평소와 같은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려던 진천의 방문 밖에서 나지막한 시비의 목소리가 들렸다.


"국주님. 속중표국의 관리인 사마교가 찾아왔습니다."


"음? 알았다."


다시 주섬주섬 몸을 일으킨 진천이 마루로 나서자 마당에 서있던 사마교가 허리를 직각으로 숙이며 말했다.


"국주님. 늦은시간에 죄송합니다."


"아니다. 무슨 일이 있느냐?"


"긴급한 일은 아니오나... 내일이 지율대사님의 기일이기에 혹 위패를 이곳에 따로 모실지 여쭙고자 합니다."


"아..."


약식이긴 했지만 지금껏 마교의 전각에서 지율의 제사를 올려왔던 진천은 얼마전 무림맹과의 회장에서 만났던 재진대사가 떠올라 괜히 씁쓸해지는 입맛을 다셨다.


"아니다. 내가 평소 올리던 곳으로 가면 된다."


"네, 국주님."


"네가 그런 세세한것 까지 신경쓸 줄 아니 대견하구나."


"부끄럽습니다. 제 부친이 몇번이나 강조한 일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래, 늦었다. 얼른 들어가 쉬거라."


"네, 국주님."


대견한 미소로 사마교를 보낸 진천은 다시 침실로 들어 먼저 잠든 악야의 옆으로 조용히 누워 잠을 청했다.


스스스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새 무한한 어둠에 들어간 진천의 앞에 조금씩 지율의 얼굴과 단정한 법복이 흐릿하게 나타났고, 진천은 그것이 흩어지진 않을까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지율을 불렀다.


'대사님.'


'시주, 오랜만이오. 그간 잘 지내셨소?'


'...죄송합니다. 저는 결국 악인이 되었습니다.'


'으음? 시주가 왜 악인이오?'


'도사와 승려들을 도륙하지 않았습니까.'


'허허. 저들이 그대의 아들을 납치하고 고문하지 않았소. 정당방위요.'


'전엔 말로 설득하라지 않으셨습니까.'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잖소. 그대의 아들을 하루빨리 구하고 싶은 마음에 여유가 없었을 터.'


'... 저는 훗날 소림도 멸해야 합니다.'


'그대가 하는 일, 그리고 무림맹이 그대에게 맞서는 일은 선과악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오. 서로의 욕망이 충돌하는 것일뿐이니 그렇게 스스로를 옭아맬 필요가 없소이다.'


'...'


'그대들이 그렇게 서로를 물고 뜯게 만든 원흉은 따로 있지 않소? 그대를 살귀로 만든 것도 그자들이고.'


'네. 그자들은...'


'물론 알고 있소. 그대가 감당키 어려운 자들이지.'


'...'


'본승은 그저 화두를 던졌을 뿐이오. 그대는 그대의 삶을 사시오. 단, 그대가 왕이 되고자 한다면 한가지를 명심하시오. 왕은 스스로 하늘인 자. 그 위로 다른 하늘이 있을 수는 없음이니.'


'대사님.'


[언제오냐?]


스스스ㅡ


"...??"


순간, 갑자기 지율대사의 몸을 흩뜨리며 울려퍼진 목소리에 눈을 번쩍 뜬 진천이 일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두리번 거렸다.


창밖에는 어느새 새벽동이 트며 스산한 회색빛이 번지고 있었고, 금새 정신을 차린 진천은 난데 없이 자신의 꿈을 깨운 호문의 전음에 짜증석인 말투로 답했다.


[젠장. 뜬금없이...]


[뭐? 뜬금없기는 이놈이? 내 한번 들리라지 않았더냐.]


[...깜박했소. 서두를 일입니까?]


[그건 아니다만 네가 전에 청한 인질들에 대한 말씀을 하실 것 같던데. 네가 아쉬울 일 아니냐?]


그 말에 짜증 가득하던 얼굴이 순식간에 풀린 진천이 몸을 번쩍 일으켰다.


[엇? 알겠습니다. 금방 가겠습니다.]


완전히 침상 밖으로 나온 진천이 아직 자고 있는 악야를 조심스럽게 깨우며 말했다.


"여보, 아버지가 갑자기 부르셔서 잠시 다녀와야 할 것 같아."


"응? 새벽부터 무슨... 무슨일 있어요?"


"아니 별건 아냐. 예전부터 부르셨는데 내가 미루다가... 금방 다녀올게."


"알았어요. 으으응..."


다시 눈을 감는 악야의 머리를 쓸어넘긴 진천은 곧장 북극으로 가는 대신 구학영을 먼저 만나기로 마음먹고 십만대산으로 몸을 옮겼다.


픽!


구학영이 수련하던 만한봉의 자락에 도착한 진천이 기감을 퍼뜨려 사방을 탐색하자 그것을 느낀 구학영이 쏜살 같은 경공으로 진천을 향해 달려왔다.


쿠아아아아아-


도저히 경공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파공음 끝에 구학영의 두 다리가 땅을 디뎓고, 그 뒤로 구학영에게 지도를 받던 범요와 구지근, 마영이 날아와 진천의 앞에 부복했다.


"천마신교의 지존을 뵈옵니다."


"그래. 일어들 나라."


옅은 미소로 고개를 끄덕인 진천이 구학영을 바라봤다.


"형님. 오늘 아버지에게 호출을 받았습니다."


"음?"


"형님의 스승님과 사형을 사면하는 일로 부른 듯 합니다."


"!!"


몸을 움찔한 구학영과 범요가 숨도 멈춘 채 눈만 껌벅이자 진천이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구학영에게 말했다.


"크흐, 너무 긴장할 필요 없소. 안될 일이었으면 그냥 안된다고 말했을 양반이니. 내 그 동족 수장놈을 후드려 패서라도 데려다 줄테니 마음 편히 있으시라고."


"..."


구학영은 물론 좌중의 모두가 평소 진천답지 않은 허세와 호언장담에 조심스레 진천의 표정을 살폈지만 진천은 눈치채지 못했는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범요의 어깨를 다독였다.


"본교의 원로시니 환영회나 거하게 준비해 놓아라."


"허헛... 네. 교주님. 감사합니다."


픽.


범요의 미소를 본 진천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범요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구학영을 바라봤다.


"허허, 사형. 교주께서 뭔가 변하신 듯 하오. 자신감이 가득하다고 해야하나..."


그 말에 구학영도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일이다. 오랫동안 가진 힘에 비해 너무 억눌려있었으니."


"으음... 헌데 뭔가 좀 이..."


구학영이 뭔가 더 말을 이으려는 범요의 말을 끊으며 먼저 몸을 날렸다.


"돌아가자."


구학영의 신형이 쏘아져 나가자 범요와 구지근, 범요가 방금 본 진천의 조금 낯선 모습을 각자 곱씹으며 구학영을 따라 몸을 날렸고, 또 다시 엄청난 파공음이 십만대산 전체에 가득 울려퍼졌다.







***








후욱-


"왔냐?"


작고 마른 체구의 호문이 뒷짐을 지고 북극으로 몸을 옮긴 진천의 앞에 나타나자 진천도 드물게 샐쭉 웃는 얼굴로 호문에게 답했다.


"크흐. 얼른 갑시다. 동족 어르신을 뵈면 되오?"


"적룡 어르신께 간다. 동족 어르신은 당분간 수면에 드셔서 일을 위임하셨다."


"당분간? 그런 자도 잠을 잡니까?"


"그냥 말이 그런거지. 네놈들 하는 명상 비슷한거다."


"아아..."


호문이 팔을 앞쪽으로 내밀자 금새 주변의 풍경이 거대한 동굴의 내부로 변했고, 호문이 그 가운데의 원탁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던 레드 드래곤 제노사이드를 보고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어르신. 저희 왔습니다."


"오, 그래. 잘 지냈느냐?"


"네. 안녕하십니까."


"크크, 그래그래. 자, 이리와 앉거라. 내 오늘 서역의 술을 맛보게 해주마."


"엇, 네..."


진천과 호문이 원탁의 양쪽을 차지하고 앉자 제노사이드가 꽤나 큼직하고 기묘한 모양의 은빛 잔을 앞으로 쭉 내밀며 그곳에 검붉은 액체를 쏟아 부었다.


"포도로 담근 과일주다."


"포도요?"


"흐흐, 맛 보거라."


진천은 잠시 그 피같기도 한 액체의 색에 코를 찡그렸다가, 새콤한 냄새에 이끌려 은빛 잔을 기울여 살짝 혀끝을 적셨다.


'오.'


벌컥!


시큼하면서도 싸하다가 이내 달콤하게 번지는 포도향을 느낀 진천이 곧장 목을 열어 순식간에 한잔을 모두 비우자 제노사이드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다시 진천의 앞에 포도주를 채워줬다.


"이놈아. 이건 한모금 한모금 맛을 음미하는 것이다. 그렇게 단번에 목을 축이는게 아니라. 크크."


진천이 멋쩍게 웃으며 새로 가득찬 술을 한모금 넘기고는 답했다.


"크- 아, 그렇습니까? 전 많이 따라 주시길래 또... 그나저나 맛이 정말 좋습니다."


"크크! 그렇지? 드워프들이 담근 최고등급의 포도주다. 일년에 오크통 백개도 채 안나오는 한정판이지."


"...?"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진천의 멍한 표정을 본 제노사이드가 다시 웃음을 흘리며 화제를 돌렸다.


"흐! 아니다. 그래, 일을 누설한 인간 둘을 풀어달라 그랬다고?"


"엇. 네...!"


진천이 손에 들었던 잔을 내린채 반색하며 몸을 기울이자 제노사이드가 말을 이었다.


"음. 어려운 일은 아니다만 그만한 대가가 있어야 할텐데 괜찮겠느냐?"


그 말에 진천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긴장이 서리며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대가라 하시면..."


"동(東)인 20만명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면 된다."


"뭣!!"


그에 소스라치게 놀란 진천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제노사이드를 향해 외쳤다.


"그게 무슨!! 양민들의 생을 거두는건 끝난 얘기 아닙니까!!!"


"이놈이 감히 어디서 어르신께 언성을 높여!!"


호문이 벌떡 일어나며 진천을 꾸짖자 제노사이드가 오른손을 가볍게 휘두르며 호문을 말렸다.


"괜찮다. 저 아이로썬 아직 어려울 얘기지 않느냐."


"면목이 없습니다 어르신."


제노사이드에게 고개를 숙이는 호문을 보자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르는 진천이 입술을 일그리며 말했다.


"그 두명을 풀어주는데 20만을 죽이라고? 사람 못죽여 안달난 살귀도 아니고... 아버지! 이게 말이 됩니까!!"


"놈!! 어르신께서 오냐오냐 하니까 겁대가리가 없어서는!! 싫으면 말아라! 누가 등떠밀더냐??"


"으극..."


"아이야."


자리에서 일어난 제노사이드가 어금니를 짓이기는 진천에게 평소와는 다르게 딱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있는 법이고, 그 대가는 아쉽지 않은 쪽이 정하는 것이다. 네 아비의 말처럼 싫으면 하지 않으면 된다. 부당하다 여겨도 어쩔 수 없는 것이야."


"미친..."


"원래 우리는 협상을 하지 않는다. 이미 너의 조건을 받아 기회를 준 것만해도 이례적인 일. 더 이상은 우리의 자비를 기대치 않는 것이 좋겠구나."


"..."


진천이 아무말도 없자 호문이 말을 이었다.


"염광이 놈에게 들으니 혼자서 수만의 무인들을 죽이고 다닌다던데, 너도 인간들에 대한 미련이 많이 희석된 것 아니냐? 괜히 인간의 선악이니 도리니 따지지 마라."


"아버지."


"허어, 왜 이리 철이 안들까? 아직도 자아가 잡히지 않아서야... 인간의 허울에 얽매이지 말고 하고 싶은대로 다 하고 살라지 않았더냐?"


하고 싶은대로.


그 말을 들은 순간, 진천의 머릿속에 염광과 겨우 얼마전에 꿈속에서 만난 지율대사의 말이 떠 올랐다.


[왕이 걸으면 그곳이 바로 길. 그저 하겠다고 하시면 그리 되는 것이 왕도 입니다.]


[왕이란 스스로 하늘이 되는 자. 그 위에 다른 하늘이 있을 수는 없음이요.]


곧 이어 진천의 몸에서 시커먼 마기와 살기가 흘러나오며 거대한 공동이 무너질 듯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


"크흐! 하고 싶은대로라... 그래, 허면 나는 주무시는 동족 어르신 좀 만나고 싶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진천(鎭天) : 악귀의 탄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26 진천 - 125화 22.06.16 246 4 10쪽
125 진천 - 124화 22.06.16 234 4 11쪽
124 진천 - 123화 22.06.16 240 4 9쪽
123 진천 - 122화 22.06.16 234 4 12쪽
122 진천 - 121화 22.06.16 235 4 14쪽
121 진천 - 120화 22.06.16 254 4 11쪽
120 진천 - 119화 22.06.16 248 5 9쪽
119 진천 - 118화 22.06.16 245 4 12쪽
118 진천 - 117화 22.06.16 251 4 14쪽
117 진천 - 116화 22.06.16 255 3 12쪽
116 진천 - 115화 22.06.16 236 4 9쪽
115 진천 - 114화 22.06.16 256 6 11쪽
114 진천 - 113화 22.06.16 253 5 14쪽
113 진천 - 112화 22.06.16 251 4 17쪽
112 진천 - 111화 22.06.16 263 4 12쪽
111 진천 - 110화 22.06.16 265 5 11쪽
110 진천 - 109화 22.06.16 271 4 12쪽
109 진천 - 108화 22.06.16 261 4 10쪽
108 진천 - 107화 22.06.16 257 4 13쪽
» 진천 - 106화 22.06.16 274 5 11쪽
106 진천 - 105화 22.06.16 292 3 17쪽
105 진천 - 104화 22.06.16 281 3 15쪽
104 진천 - 103화 22.06.16 277 4 16쪽
103 진천 - 102화 22.06.15 273 4 16쪽
102 진천 - 101화 22.06.15 282 3 18쪽
101 진천 - 100화 22.06.15 272 4 11쪽
100 진천 - 99화 22.06.15 267 4 13쪽
99 진천 - 98화 22.06.15 264 3 14쪽
98 진천 - 97화 22.06.15 262 5 15쪽
97 진천 - 96화 22.06.15 269 5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