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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비 님의 서재입니다.

귀환 후 먼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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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비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2.05.11 11:26
최근연재일 :
2022.05.30 16:05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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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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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9,868

작성
22.05.2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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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레드 게이트 (2)

DUMMY

중구에 발생한 레드 게이트를 가장 먼저 발견하고 관리국에 보고했던 허정수와 성민정은 현장에 고립되어 있었다.

무너진 건물 잔해가 머리 위를 뒤덮었다.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진 이글루 같은 형태의 벙커 안에는 이곳 주택가에 거주하는 주민 여덟 명이 함께하고 있었다.


“”......””


허정수와 성민정은 그중 어린아이를 각각 한 명씩 품에 안고,

울음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쿵-! 쿠웅-!


지진에 버금가는 진동이 땅을 울렸다.

두 시간 전 레드 게이트에서 출몰했던 마물이 이동할 때 발생하는 여파였다.

이곳에서 가까운 장소를 배회하고 있었다.


다행인 점은 숨어있는 기척을 감지하는 능력이 뒤떨어진다는 점.

목적지 없이 비척비척 걸음을 옮기며 애꿎은 건물들만 부수고 다닐 뿐,

숨어 있는 이들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이내 마물의 소리가 멀어져갔다.

허정수는 그제야 아이의 입을 틀어막고 있던 손을 놓아주었다.

성민정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울먹이는 아이를 달랬다.


“잘 참았어.”

“히잉···”


허정수는 마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을 토대로 놈과의 거리를 유추할 수 있었다.

이 정도 멀어지면 소음을 감지하지 못한다는 사실 또한 알아냈다.


“이제 다들 숨 좀 돌리셔도 됩니다. 그래도 큰 소리는 내면 안 됩니다.”

“...네.”


그러나 탈출을 감행해도 된다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이십 분 전. 불안감을 주체하지 못하고 뛰쳐나가던 청년이 곤죽이 되고 말았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 벌어진 일.

꽤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순간이동에 버금가는 속도로 거리를 좁힌 마물은 거대한 손바닥으로 청년을 내려찍었다.

상하체가 분리돼 반토막 난 하체가 벙커 안으로 굴러떨어졌다.

그 시체가 일종의 경고 메시지가 되어서 사람들이 돌발 행동을 저지르지 못하게끔 억제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슬슬 정신력이 한계를 맞을 때가 왔다.

그 전에 구조대가 도착해야 했다.


“아. 아아.”


허정수는 스마트 워치의 무전 기능을 활성화해 본부와 연락을 시도했다.


-허정수 헌터님?


곧바로 연락이 잡혔다.

허정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지원은 언제쯤 도착하죠?”

-지금 이강민 헌터에게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그때까지 최대한 시민들 안전을 확보하면서 버텨주세요

“......?”


무전 내용에 허정수의 얼굴이 황당으로 번졌다.


“이강민 헌터라면 미국에 있지 않나요?”

-네, 그렇습니다. 현재 동원 가능한 병력이,

“저기요.”

-네?

“아까 말했잖아요. 여기 지금 중환자 있어서 최대한 빨리 구조해야 한다고.


허정수는 초조한 눈으로 흘끔 옆을 바라보았다.

바닥에 누워있는 아줌마는 왼팔이 날아가 있었다.

그 옆의 벽에 몸을 기댄 젊은 남성은 피가 철철 흘러내리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신음을 흘리고 있었고.

성민정이 네 개 남은 포션 중 두 개를 사용해 상태가 악화하는 것을 막았지만 이런 하급 포션으로는 시간 벌기에 불과했다.


“그리고. 지금은 이 근처만 돌아다니고 있지 언제 마물이 튀어 나갈지 모르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허정수는 소리를 지르지 않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며 말을 이었다.


“미국이라뇨. 거기서 한국까지 오는 동안 기다릴 여유 따위 없단 말입니다.”

-이봐요, 허정수 헌터. 우리라고 지금 마음 편한 줄 아세요?”

“......”

-그럼 어떻게 할까요. A급 B급 헌터들 동원해서 사지로 몰아넣을까요?

“......”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요. 그저 위에서 어떻게든 해결책을 마련하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단 말이에요.


허정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래. 일개 연락책인 그녀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

답답한 마음은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응원밖에 해줄 수 없어서 미안해요. 제발 살아남아 주세요. 그리고 돌아오면 같이 술이나 한잔해요

“...알겠습니다. 화내서 죄송합니다.”

-그럼 건투를 빌어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교신이 끊어졌다.

허정수는 착잡한 얼굴로 스마트 워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형.”


옆에서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조대 오고 있는 거죠? 우리 살 수 있죠?”

“......”


극한의 상황을 많이 경험해본 허정수는 알고 있었다.

절망감이 정신에 미치는 악영향을.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선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응. 금방 온대. 곧 구출될 거야. 그러니까 우리 조금만 더 참자. 알았지?”

“...네!”


허정수는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그리고 눈을 감고 기도했다.


‘신이시여. 하늘에서 보고 계신다면 부디 우리를 구원해 주소서.’



***



“헉!”


던전 앞을 지키고 있던 관리자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다 죽어가듯 신음을 흘리며 던전 안에서 기어 나오는 세 남녀 때문이었다.


“안에 뭐 5급 마물이라도 나왔어요?”

“차라리 5급 마물이면 더 상대하기 편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세 남녀 중 한 명인 강다혜는 한숨을 푹 쉬며 답했다.

그녀는 지금 길거리 노숙자가 보더라도 안쓰러움에 혀를 찰 만큼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이는 윤대훈과 하승원도 마찬가지였고,

오로지 진선우만 멀쩡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


강다혜는 괜히 억울해서 진선우를 노려보았다.


“뭐.”

“진짜···”


그렇게까지 위험으로 몰아넣어 놓고 태연하게 서 있는 저 인간이 너무 얄미웠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진선우의 교육이 옳았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느낌 처음이었어.’


분명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없었는데 마물이 코앞에 도달하자 신기하게 몸이 반응했다.

없는 마력을 쥐어짜 낸 탓에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도 어지러웠지만.

위기를 극복할 때마다 조금씩 마력이 차올랐다.

그리고 전신의 감각이 칼처럼 벼려져 몸이 무거워지는 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공격을 피하기 쉬워졌다.


예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긴 했었다.

다만 그 정신 나간 짓을 쉬지 않고 반복한 적이 없어서 그렇지.

지금은 그 덕분인지 전신의 감각이 날카로워져 주위의 작은 움직임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었다.


진선우의 의도대로 초감각의 끄트머리에 발을 들인 것이다.


“그래서 못 해먹겠어? 싫으면 그만하고.”

“””......”””


입을 다물고 서로를 바라보는 강다혜와 윤대훈. 그리고 하승원.

그들은 이내 결심을 굳힌 듯 진선우를 보며 말했다.


“아니. 계속해줘.”


처음에는 이 인간이 미쳐가지고 자기들을 사지로 몰아넣는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선우는 완벽하게 현장을 통제하며 훈련 환경을 조성하고 있었다.

세 명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정확히 측정했고 생명에 위협을 줄 만한 공격은 사전에 차단해주었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마물의 세례 속에서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있다니 경이로웠다.

진선우가 S급 헌터, 그 이상의 존재라는 사실이 조금은 와닿았다.


‘이건 기회야.’


원래는 억만금을 줘도 이런 실력자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기연을 쟁취한 것이다.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보상이 달라지는 합리적인 기연 말이다.


“이제 좀 눈빛이 쓸만해졌어.”


자신들은 도태되었다고 생각했는데.

태생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평생 C급에 머물러야 한다고 여겼는데 더 나아갈 길이 보였다.


그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럼 내일 똑같은 일정 소화해야 하니까. 딴짓거리들 하지 말고 집에 들어가서 쉬어.”

“””......”””


설렘도 잠시.

진선우의 일방적인 통보에 셋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러나 진선우는 신경도 쓰지 않고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무슨 일인지 한성 길드 윤세영으로부터 전화가 열 통이나 와있었다.

전화를 걸자 통화음이 두 번을 넘어가기 전에 윤세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우 씨! 지금 바로 볼 수 있을까요?!”



***



대훈이 형과 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낸 나는 곧바로 한성 길드를 방문했다.


“선우 씨!”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첫인상과는 달리 지금 윤세영의 표정은 굉장히 흐트러져 있었다.


“오면서 확인하셨죠?”

“네.”


대전에 발생했다는 게이트.

붉은색 오러를 방출하는 레드 게이트는 최소 9급 마물을 소환하는 재앙이었다.

B구역에서 사냥했던 비명목이라는 이름의 마물 보다 한 단계 더 강력한 개체라는 말이다.


“...사냥할 수 있으시겠어요?”

“네. 충분히.”


직접 마주한 적은 없어도 지금껏 획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추측해보건대 충분히 수비 범위 안이었다.

헌터들도 그렇고 마물들도 내 예상보다 터무니없이 약했다.


“근데 김건영 씨는 마물 막으러 안 가셨네요?”


헌터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는 대신 지켜야 할 의무가 하나 있었다.

바로 게이트 발생 시 국가의 부름에 응하는 것이다.

이전에 봤을 때는 되게 바른 생활 사나이처럼 굴더니 대형 길드 소속이라고 배경을 써서 빼는 건가 싶어서 물었다.

김건영이 무기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측정된 마물의 전력은 9급 플러스 등급. S급 하위권인 제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데미지를 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요?”

“그건···”

“그리고 그 윗 등급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확실히 놈을 사냥할 수 있고요?”

“......”


참 희한한 사고방식이었다.

오러 블레이드를 뽑아내지 못하는 헌터가 7급 마물을 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런 극단적인 상황도 아닐 텐데.


전투에는 상성을 비롯해 여러 변수가 존재한다.

그런데 막연한 기준으로 정립한 데이터를 가지고서 스스로의 한계를 재단하다니 우스웠다.

그러니 성장 또한 더딘 것 아니겠는가.

그러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금껏 지구에서 본 헌터들은 모두 그랬다.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인식.

이 시대의 헌터들이 안고 있는 고질병이라고 생각한다.


“따지려는 게 아니라 그냥 순수하게 궁금해서 질문한 거예요.”

“......”


김건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와 실랑이를 벌일 생각은 없어서 이만 고개를 돌렸다.

간절하게 나를 바라보는 윤세영과 눈이 마주쳤다.

아무래도 계약 관련 얘기를 꺼내려는 모양이었다.

지금 같은 위기 상황 때 9급 플러스 등급 마물을 사냥하면 그만한 공적이 또 없었기에.

한성 그룹의 주가까지 더불어 올라갈 것이다.

그 이득을 바라는 거겠지.


다만 이전에 언급했듯 이 부분에 관해서는 전적으로 내가 갑의 입장이었다.

온새미로 길드의 진선우로 갈지, 한성 길드 소속의 신분으로 갈지는 내 마음이라는 거다.

그런데 윤세영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좋으니까 최대한 빨리 부탁드릴게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


세간의 소문도 그렇고 첫인상 때문에 자기밖에 모르는 기계 같은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의외의 모습이었다.

이런 이타적인 사람들 싫지 않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그런 대훈이 형 덕분에 누나를 지킬 수 있었으니까.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요.”


게이트에서 출몰하는 마물은 100퍼센트 확률로 마정석이라는 물건을 토해냈다.

생명체의 마력이 집약된 에너지원.

9급, 그것도 플러스 등급 마물이라면 제법 쓸만한 마정석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전에 말한 물건들은 준비됐어요?”

“......!”


그리고 오늘은 온새미로 길드의

진선우가 아닌 한성 길드 소속으로 나설 생각이었다.

마침 그녀의 도움이 필요했으니까.


“네!”

“자세한 보상은 다녀와서 얘기하죠. 바쁜 문제 같으니까.”


김건영이 큼지막한 가방을 꺼내왔다.

그 안에는 한성 길드의 신분증과 검 한 자루.

그리고 외형 변화 마법이 인챈트 된 가면이 들어있었다.


가면을 착용하자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자라나며 붉은색으로 염색되었다.


신기하네.

거울을 보며 감탄했다.


“잘 만들어졌네요.”


목소리까지 변조되었다.

검을 들고 가볍게 휘둘러 보았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이전에 맨손으로 대련하는 모습을 봐서 걱정하는 모양이었다.


“걱정 마세요.”


한때 좀 다뤄본 적 있으니까.


“그럼 다녀올게요.”

“어, 어디 가세요? 차 준비해놨어요!”

“시간 없다면서요.”

“......?”

“차는 너무 느려서.”


다리에 핏줄이 불거졌다.

하체에 마력이 용솟음쳤다.


콰앙ㅡ!


준비를 끝마친 나는 땅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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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훈련 +6 22.05.19 7,236 251 13쪽
10 한성 길드 (2) +10 22.05.18 7,419 290 11쪽
9 한성 길드 (1) +14 22.05.17 7,692 26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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