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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비 님의 서재입니다.

귀환 후 먼치킨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가늘비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2.05.11 11:26
최근연재일 :
2022.05.30 16:05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161,043
추천수 :
6,680
글자수 :
109,868

작성
22.05.14 19:05
조회
8,925
추천
317
글자
10쪽

뒷처리는 확실하게 (1)

DUMMY

대부분의 사람은 눈앞에서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면 몸이 굳어버린다.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그랬다.


"흐어, 아아..."


입이 함몰된 양정훈만,

입 주변을 두 손으로 감싸고서 고통에 가득 찬 신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이젠 좀 낫네.

내뱉는 말들이 하나같이 역겨워서 듣고 있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들어줄 만하다.


"흐으···"


양정훈의 턱은 기괴하게 비틀려 있었다.

제아무리 각성자라도 몇 년간 죽만 먹으며 요양해야 할 상태다.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잠깐. 입 좀 다물어 봐."


나는 헐레벌떡 뛰어온 똘마니들에게는 관심을 주지 않았다.

커피 안에 들어 있던 유해 성분을 체내에서 분해 중이라 바빴으니까.


내가 처음 감지했던 마력은 신체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작용을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약 성분까지 검출되었는데 근육이완제와 수면제로 추측된다.

그리고 이 모든 증상이 서서히 발현되게끔 복잡하게 배합되어 있었다.

양정훈의 꿍꿍이가 무엇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던전 공략 이후 우리끼리 회식을 하다가 몸의 이상증세를 느낀 다혜는 피곤하다며 먼저 집에 들어가려 할 것이고,

귀가 도중 약 기운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겠지.

그때를 노려 개수작을 부릴 계획이었을 것이다.


다혜 성격상 던전을 나서면 절대 양정훈과 겸상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에 번거롭게 작업한 거라고 추측했다.

약물 분해를 끝마친 나는 양정훈의 똘마니들을 보며 말했다.


"커피에 약이 들어있었네."

"......"

"별로 안 놀라는 걸 보면 너희도 알고 있었나 봐?"

"모, 모릅니다! 저희는 관계없습니다!"


똘마니들은 발작하듯 몸을 떨며 소리를 질렀다.

그나저나 보기보단 눈치가 있네.

행동들이 조심스러워.

이곳의 헌터들 중 가장 강한 양정훈이 손도 못 쓰고 개박살 나는 모습을 봤으니 알아서 기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리라.


“그럼 비켜.”

"...선우야."


추가적인 조치를 위해 앞으로 나서는데 대훈이 형이 굳은 얼굴로 다가왔다.


"나랑 얘기 좀 하자."

"잠깐만."

"지금 바로."

"......"


표정이 많이 심각해 보인다.


"알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는 던전 공략을 끝맺지 못하고 왔던 길을 통해 던전을 빠져나갔다.




***



양정훈을 옭아맬 증거인 커피는 성분 분석을 위해 헌터 관리국에 감식을 요청했다.

당장 치료가 시급한 양정훈은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그 외 인원들은 수사에 협조하기 위해 던전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윤대훈은 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진선우와 함께 자리를 벗어나 단둘이 얘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선우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냐···"


윤대훈은 지금 여러 이유로 경악하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양정훈의 입을 짓뭉갰던 진선우의 잔인한 손속도 그렇고.

무엇보다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강함이 놀라웠다.


그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B급 헌터인 양정훈이 진선우에게 얼굴을 붙들린 채 발악하는 처량한 모습을 말이다.

양손에 마력까지 두르고 주먹을 휘둘렀는데 진선우는 그것을 맞고도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마치 어린아이가 어른에게 투정을 부리는 것 같았다.

대체 얼마나 실력 격차가 심하게 나면 그럴 수 있는 걸까.


"전에 말했잖아. 나 강해졌다고."


진선우는 회식 자리 때 크라카타우를 사냥한 사실까지 얘기해줬었다.

다만 진선우는 물론이고 윤대훈 또한 크라카타우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진선우의 강함을 실감할 수 없었다.

S급 타이틀은 거뜬할 거라던 얘기도 술기운에 내뱉은 허세라고 여겼었다.


'설마 진짜 S급인 건가? 에이, 설마. 그 정도는 아니겠지···'


둘 사이에는 아득한 수준의 격차가 존재했기 때문에 윤대훈으로서는 진선우의 강함을 가늠할 수 없었다.

윤대훈이 진땀을 흘리며 물었다.


"그리고 커피에 약 들어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내 능력.”

“...하아. 정말 확실한 거 맞지?”

“확실해.”

“믿는다.”


윤대훈은 머리가 아픈지 손가락으로 이마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지금 다른 게 문제다.”

“뭐가.”

“양정훈. 저렇게 만들었는데 쟤 부모가 가만있겠냐?”


양정훈에게는 든든한 뒷배가 있었다.

온새미로 길드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큰 규모의 길드 마스터가 바로 양정훈의 아버지였다.

진선우의 말이 사실이라면 양정훈이 범죄를 저지르려던 증거도 있으니 그나마 폭력에 대한 처벌은 어느 정도 무마할 수 있겠지만,

이후 양정훈의 아버지는 어떤 식으로든 보복하려 들 것이다.


"일단. 내가 어떻게든 수습해볼게. 대신 앞으로는 그렇게 막무가내로 행동하지 않겠다고 나랑 약속하자. 선우 니 행동이 틀렸다는 건 아냐. 다만 힘만 믿고 그런 식으로 계속 행동하다가는 니 주위에 적이 넘쳐나게 될 거다."

“......”


진선우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윤대훈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가 진선우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너무 안 좋은 말만 쏟아부었는데. 그래. 솔직히 통쾌하기는 했다. 그 새끼 그 정도로 쓰레기일 줄은 몰랐지. 고맙다 선우야.”


진선우는 그제야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윤대훈도 피식 웃어 보였다.


“나중에 선물이라도 사서 같이 사과하러 가자. 걱정 마. 잘 해결될 거니까.”


그전에 따로 찾아가서 무릎 꿇고 빌어봐야지.

양정훈이 저지르려던 범죄도 있으니 조금은 사정을 헤아려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깨가 무거워졌지만 윤대훈은 티를 내지 않고 애써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둘의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



던전에 입장한 사람들은 헌터 수사과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헌터 협회에 감식을 요청했던 커피에서는 진선우가 말한 성분들이 정확히 검출되었다.

양정훈은 극구 혐의를 부인했지만,

정황과 증거가 너무 명확했기에 진선우에게 유리한 구도로 흘러갔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후우-”


양정훈의 아버지, 양혁수는 이른 아침부터 아들의 병문안을 다녀온 후,

굳은 얼굴로 사무실 의자에 앉아있었다.


입이 짓뭉개져 제대로 말도 못하고,

휴대폰 자판에 글을 적어 억울함을 토로하던 아들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어린 나이에 어미를 여의어 금이야 옥이야 키운 자식인데.

귀한 아들이 고통에 울부짖는 모습을 본 양혁수는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것 같았다.


“......”


차갑게 가라앉은 얼굴로 담배를 입에 물며,

이 사달을 일으킨 온새미로 길드의 헌터들을 향해 적개심을 불태웠다.


'벌레 새끼들. 지옥이 뭔지 보여주마.'


윤대훈은 그늘에 가려진 양혁수의 실체를 몰랐다.

윤대훈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분노하고 있었고,

그에 걸맞는 복수까지 계획했다.


호연 길드.

양혁수가 운영하는 이 길드는 표면적으로는 일반적인 헌터 길드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음지에선 각종 불법을 자행하고 있다.


인신매매부터 마약 유통. 심지어 청부살인까지.

각성자들이 생기기 이전의 세상이었다면 감히 상상도 못할 중범죄들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런데도 지금껏 꼬리를 밟히지 않은 이유는 이 세상의 질서가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수십 년에 걸친 마물의 위협은 인류를 벼랑 끝까지 몰아갔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사회 질서를 무너뜨릴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헌터들은 초기에만 하더라도 강력한 규제의 대상이었지만,

불만을 품은 헌터들이 비싼 몸값을 받고 해외로 망명하기 시작하면서 한국 사회에 불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범람하는 마물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헌터들이 한국 사회의 기득권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법 또한 그들의 입맛에 맞게 개정되었다.

시대를 역행해 약육강식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리고 양혁수는 한국의 먹이사슬 피라미드에서 꽤 높은 층에 자리한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아무런 뒷배도 없는 C급 헌터들 따위 벌레처럼 밟아죽일 힘을 지녔다.


'주제를 모르는 것들은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지.'


그런 그가 피의 복수를 다짐했다.

지금껏 그러했듯 그 대상은 피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양혁수의 책상 위에는 전날 조사한 서류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진선우를 비롯한 온새미로의 헌터들.

그들의 가족 신상 정보까지 상세히 기재되어 있다.


양혁수는 서류들을 차례대로 넘기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네 사장님.


전화 너머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강 실장."


양혁수는 서류 중 진선우의 얼굴 사진을 담배로 지지며 물었다.


"준비는 잘 돼가?"

-내일이면 끝납니다.

"그래. 고생이 많아. 보너스는 잘 챙겨줄게. 사내새끼들은 모조리 불구로 만들어놓고. 여자들은 상품 가치 안 떨어지게 잘 정리해서 박사장한테 넘겨.

-알겠습니다. 주말까지 작업 끝내겠습니다."

"그래. 수고하고."


모든 조치를 끝마친 양혁수는 의자에 몸을 파묻고서 커피 향을 즐겼다.


“흐음.”


그것이 이승에서 마시게 될 마지막 커피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말이다.


"......?"


연기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른 어둠이 사무실 전체를 뒤덮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양혁수가 화들짝 놀라 벌떡 몸을 일으켰다.


“기껏 베풀어준 은혜를 이딴 식으로 갚다니. 섭섭하네.”


그리고 그의 사무실에 진선우가 연기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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