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싸움
창문에 손이 들어갈 만한 구멍이 뚫렸다.
주호는 전동 드릴을 내려놓고, 구멍에 손을 넣어 시건장치를 풀고 창문을 열었다.
제법 높은 창문턱에 매달려 안을 살피던 주호가 말했다.
“광수야, 밟고 올라갈 만한 것 좀 가져와라.”
쪽문으로 들어간 광수가 동그란 나무 의자를 가지고 왔다.
“이거면 될까요? 형님.”
“그거 괜찮네. 이리 가지고 와.”
나무 의자에 올라서니 창문턱이 주호의 가슴께 왔다.
플래시를 켜서 캄캄한 방안을 비췄다.
문이 두 개 달린 옷장, 시트가 헝클어져 있는 침대, 책과 찻잔이 놓여있는 테이블.
그게 다였고, 방안에 아무도 없었다.
방문과 창문이 잠겨 있었으니 응당 누군가 있어야 하지 않은가.
“이 새끼가 어디 간 거야?”
“왜 아무도 없습니까?”
“아무래도 저기 옷장에 숨어있는 모양인데.”
광수가 보기에도 숨을 곳이라고는 옷장밖에 없었다.
주호가 창턱을 밟고 방안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뒤를 이어 광수가 나무 의자에 올라서서 똑같이 뛰어내렸다.
일본도를 치켜든 주호가 플래시를 비추며 조심스럽게 옷장으로 다가갔다.
한 발 뒤에서 광수가 쇠파이프를 들고 움직였다.
주호가 광수에게 턱짓을 했다.
광수는 옷장 가까이 다가가 손을 뻗어 옷장 손잡이를 잡았다.
주호를 마주보며 입 모양으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 벌컥!
플래시 불빛이 옷장 안을 어지럽게 비췄다.
“어?!”
“응? 뭐야?!!”
당장이라도 일본도와 쇠파이프를 내려치려던 주호와 광수의 손이 그대로 굳었다.
옷장 안에는 사람은커녕 아무것도 없었다.
황당한 표정으로 광수가 옷장 안에 얼굴을 디밀고 살폈다.
“그런다고 없는 게 보이냐? 근데 이상하네, 분명 누가 있었을 텐데.”
몸을 뒤로 돌린 주호가 침대를 쳐다보는 순간,
- 피슉!
소름 돋는 섬뜩한 소리가 방의 정적을 갈랐다.
“크헉!!!”
단발마의 비명을 지르며 주호가 바닥에 고꾸라졌다.
- 피슉!
“아악!!!!!”
옆에 있는 주호의 비명을 듣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던 광수 역시 무릎을 꺾으며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불에 달궈진 시뻘건 칼이 살을 가르며 파고들어 뼈까지 부수는 것 같은 엄청난 통증. 주호와 광수는 비명을 질렀다.
압정이 몸에 박힌 지렁이처럼 사지를 파닥파닥 뒤집으며 고통에 발버둥쳤다.
침대 아래에서부터 화약 냄새가 번졌다.
총알은 침대 밑에서 발사되어, 주호의 장단지에, 광수의 발목에 그대로 박혔다.
주호와 광수의 예상은 틀렸다.
방 안에 있던 영진은 옷장이 아닌 침대 밑 좁은 공간에 몸을 납작 붙이고 숨어 있었던 것이다.
“으으으으으으으 ······.”
“아아아악 ·········.”
극한의 고통에 짐승처럼 울부짖는 두 사람의 신음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영진은 침대 밑에서 미끄러져 나와 창문을 닫고 다시 잠갔다.
신음 소리를 듣고 다른 놈들이 몰려올 수도 있으니까.
“죽고 싶지 않으면 이걸로 지혈을 해.”
영진은 총을 겨누고 있지 않은 손으로 침대 위에 있는 천을 집어서 던졌다.
신철의 지시에 따라 미리 침대 시트를 가위로 잘라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주호와 광수는 고통에 부들부들 떨며, 피범벅이 된 상처를 천으로 결박했다.
피 흘리는 싸움을 많이 한 자들답게 극심한 통증을 견디며 상처를 단단히 싸맸다.
“이제 이거 뒤집어써. 피 흘려 죽기 전에 치료 받을 수 있길 기도나 하쇼.”
영진이 하얀 침대 시트를 둘둘 말아서 던졌다.
침대 시트를 툭 맞은 주호가 영진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주호의 손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일본도로 슬며시 움직였다.
“칼에 손이 닿는 순간 아저씨는 죽어.”
주호는 움찔하며 손을 오므렸다.
“그거나 빨리 뒤집어쓰라니까. 아저씨가 살려면 내가 하는 말을 무조건 따라야 될 거 같지 않아?”
하얀 침대 시트에 붉은 피를 잔뜩 묻히며, 주호와 광수가 시트를 뒤집어썼다.
영진은 그제야 긴장이 조금 풀렸다. 조심스레 깊은숨을 내쉬었다.
모든 것이 신철의 예상과 계획대로 되었다.
두 명이 창문을 넘어 들어왔고, 그들은 영진이 침대 밑에 숨은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침대 밑 공간이 좁아 힘겹게 머리를 들고 총을 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두 놈의 다리를 정확하게 맞췄다.
이제 신철에게서 미리 약속한 신호만 오면 되는 것이다.
영진은 침대 시트를 뒤집어쓴 두 사람에게서 가장 먼 구석으로 움직였다. 벽에 등을 붙이고 총구는 앞을 향했다.
주호와 광수가 총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을 때, 조칼은 그런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 시간, 조칼은 현관문을 등지고 눈앞에 있는 두 남자와 대치하고 있었다.
✭✭✭
영진이 주호와 광수에게 총을 쏘기 8분 전. 에이비앤비 숙소 2층.
이층 계단을 올라온 종섭은 사다리에 매달린 여자를 발견하고, 이층 발코니로 쫓아 나갔다. 여자를 놓치고 자신이 발코니에 갇힌 걸 깨닫았다. 함정이었다. 집 안에서 발코니 유리문을 잠근 자는 바로 신철. 종섭은 신철이 들고 있는 골프채를 보고 조칼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종섭은 잠긴 발코니 유리문 뒤에서 쳐다보고 있는 신철을 무시하고, 난간으로 갔다.
난간에 붙어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집 조명이 모두 꺼져 있는 탓에 바닥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뛰어내리기에는 조금 높아 보였지만, 난간을 넘어가 최대한 아래로 내려가서 뛰어내리면 어려울 거 같지 않았다.
일진으로 학교를 휘젓고 다닐 때, ‘야마카시’라는 영화를 보고 한창 파쿠르에 빠져 이것저것에서 뛰어내리기도 하고 그것에 기어오르기도 했었다.
그때 뛰어내렸던 높이에 비하면 이 정도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것쯤이야 껌이지 싶었다.
발코니 유리문 뒤에 있던 신철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신철이 아래층으로 내려가지는 않았겠지?
조칼 형님에다가 주호, 광수까지 있다는 걸 뻔히 알 테니까.
눈에 띄지 않는 어딘가에 숨어서 조칼 형님이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나?
그럼 형님이 위험해.
빨리 알려드려야 해.
종섭은 발코니 난간을 넘어가기 위해 발 하나를 난간 밖으로 넘겼다. 난간 위에 몸을 납작 붙이고, 조심스럽게 난간을 타고 넘었다. 몸이 난간 밖 허공에 떴다.
난간 안쪽에 있을 때보다, 높이가 높게 느껴졌다.
두 손으로 난간을 붙들고, 뛰어내릴 높이를 낮추기 위해 최대한 난간 아래로 내려갔다.
응?!
저게 뭐지?!
뛰어내리려고 정한 바닥에 뭔가 널브러져 있는 게 언뜻언뜻 보였다.
골목길에 있는 흐릿한 가로등 불빛으로는 그것이 뭔지 확인할 수 없지만, 바닥에 뭔가 있는 건 확실했다.
그것이 흙이나 천 같은 것이라면 상관이 없지만, 단단한 것이라면 발을 다칠 게 뻔했다.
눈을 돌려 뛰어내릴 만한 다른 곳을 찾았다. 하지만 마땅치가 않다.
현관 앞은 뾰족지붕이 돌출되어 있었고, 그 옆의 바닥은 정원석이 삐죽삐죽했다.
무엇보다 난간에 매달린 상태에서 도움닫기 없이 뛰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난감했다.
조칼 형님에게 빨리 신철이 골프채를 들고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뛰어내릴 수 없다니.
난간을 붙잡고 있는 팔에 점점 힘이 빠졌다.
일단 이층 발코니로 되돌아가기 위해 몸을 끌어올리는데, 아래에서 삐이걱 소리가 났다.
“저기 매달린 놈은 뭐야? 원숭이 새끼야 아니면 도둑 새끼야?”
그 소리에 종섭은 난간을 오르는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아래를 내려다봤다.
언제 나타났는지, 남자 둘이 대문 안으로 들어와서 종섭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택배 기사들이 주로 입는 조끼를 입었는데, 그 모습이 뭔가 이상했다.
앞선 남자는 스킨 헤드고, 한 발 뒤에서 올려다보고 있는 남자는 흑인 같았다.
“영세야, 우리가 제대로 찾아온 거 같지?”
"그래 말이다. 오밤중에 난간에 매달려 있는 놈이 있는 걸로 봐서 여기서 수상한 냄새가 나네, 냄새가."
"오늘밤 안으로 일이 해결되면 다 내 몫인 거는 알지? 흐흐흐흐."
“아, 씨발. 어쩐지 아까 이번에는 내기하기 싫더라니.”
“야, 새꺄. 하루라도 빨리 아일랜드 버진으로 돌아가서 타미나를 품으면 너도 좋은 거지. 야, 야, 야, 저 새끼 기어 올라간다. 빨리 잡아!”
담장에 기대져 있는 일자형 사다리를 발견한 신영세가 재빠르게 두 손을 뻗어 사다리를 잡았다.
종섭이 발코니 난간 위에 다리 하나를 걸치고, 막 난간 너머로 넘어가려는 순간, 신영세가 사다리를 들어 종섭을 내리쳤다.
- 빡!!!
“억!!”
사다리 한쪽이 발코니 난간을 때렸고, 다른 한쪽이 종섭의 어깻죽지를 그대로 때렸다.
그 충격에 종섭의 손과 팔에 힘이 쭉 빠졌다.
다른 한 손과 난간에 걸친 다리로 간신히 난간에 매달렸다.
또다시 하얀 알루미늄 사다리가 곡선을 그리며 움직였다.
- 빡 !!!
“으윽!!”
이번에 종섭의 뒤통수와 난간을 붙잡고 있는 손등 위에 떨어졌다.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 통증이 손등에서부터 팔을 거쳐 머리로 전달됐다.
손이 마비가 되며 난간을 놓쳤다.
“으악!”
뒤통수부터 아래로 떨어지려는 순간, 종섭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위로 솟구치며 다리를 밑으로 끌어내렸다. 찰나의 순간에 이층 높이에서 뒤통수부터 떨어지는 몸을 세운 것이다.
간신히 몸을 세웠지만 중심을 잡지 못한 몸은 허공에서 허우적대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악!!!”
먼저 땅을 딛은 왼쪽 발이 바닥의 뾰족한 것을 밟는 순간, 발목이 반대로 획 꺾였다. 발목을 도끼로 내려찍는 통증. 동시에 무릎으로 바닥을 찍었다. 무릎뼈가 뻐개지는 섬뜩함. 중심을 잃은 종섭은 고꾸라지며 왼쪽 이마를 그대로 잔디에 처박았다. 눈에서 번갯불이 번쩍했다.
의식이 가물가물해진 종섭의 몸이 죽은 고양이처럼 바닥에 널브러졌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행복한 글 읽기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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