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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 님의 서재입니다.

스토리 오브 아일랜드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라이트노벨

depriver
그림/삽화
강정
작품등록일 :
2021.05.05 09:11
최근연재일 :
2021.05.26 09:58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1,306
추천수 :
0
글자수 :
113,002

작성
21.05.10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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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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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외부의 피 - 5

DUMMY

애덤은 레지나에게 조이피아 말을 가르치기로 했다.


애덤이 말했다.

”쓰론 형. 레지나는 머리도 좋은가 봐. 얼마나 똑똑한지 내가 가르쳐준 말을 바로바로 따라 했어.”


불과 며칠 사이 레지나와 애덤은 우리말로 간단한 대화를 나눌 정도가 됐다.

그러나 아직은 영어를 섞어야 최소한의 대화가 가능했다.


그 며칠, 레지나와 애덤은 친구 사이처럼 가까워졌다.

레지나가 애덤보다 한 살 많았지만, 둘은 비교적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여기서 나는 나의 치밀한 계획을 자찬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부터 나는 둘이 이렇게 친하게 될 것을 예상했다.

내가 그렇게 예상한 데는 이유가 있다.


애덤은 조이피아에 둘 뿐인 십 대였다.

외모로 봐 소녀의 나이는 애덤과 비슷할 것이었다.

둘이 비슷한 또래라면 대화가 잘 통할 것이고 대화가 통하면 소녀는 애덤의 천진무구함에 자연스레 마음을 열 것이었다.


애덤이 레지나의 고향을 알아내긴 했지만, 레지나의 다른 정보는 더 알아낼 수 없었다.

레지나가 자신에 관한 정보나 과거 일에 대답을 꺼린 탓이었다.


오히려 레지나는 애덤에게 조이피아에 관한 질문 공세를 폈다.


“이곳 사람 very kind. but 아기 없어. youth 없어. why?”


레지나는 조이피아에 젊은 사람이 부족한 것을 벌써 알아차린 것이다.


애덤이 영어와 우리 말을 섞어가며 레지나에게 이유를 알려줬다.


“우리 시조는 부부였어. 우리는 모두 그분들 후손이야. 조이피아의 모든 사람이 한 가족인 셈이지.”


레지나는 애덤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한 것 같았다.

애덤에게 이렇게 물었으니 말이다.


“아기 hurt? something wrong?”


애덤이 고개를 끄덕였고 레지나는 그것에 대해 더는 질문하지 않았다.


애덤이 내게 말했다.

“그런데 형. 아이들 문제를 언급한 뒤부터 레지나 얼굴이 어두워졌어. 걱정거리라도 생긴 것 같았어.”


나는 생각했다.

레지나는 영리한 여자였다.

우리말을 며칠 만에 배울 정도로 지능도 뛰어났다.

그런 레지나가 조이피아의 출산 문제를 간파하고 얼굴에 드러낸 것이다.

나는 그녀의 과거가 궁금했다.



다음 날도 둘은 해변을 걸었다.


레지나가 애덤에게 물었다.

“애덤 무슨 일 해? your job.”

“나는 창고지기야.”


레지나의 환하게 얼굴이 밝아졌다.

"really?"


애덤은 레지나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우면 행복하다고 했다.

레지나의 기분을 좋게 하는 것이 자기가 할 일이라고 했다.

레지나에게 완전히 빠진 것이다.


레지나가 말했다.

“나 창고 보고 싶다.”

“같이 보러 가자.”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다.

레지나는 의사에게서 외부의 옷을 건네받은 순간부터 창고를 구경할 날을 기다려온 것인지도 몰랐다.



다음날, 나는 이른 점심을 먹고 창고로 갔다.

창고 앞 나무에 올라 둘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애덤과 레지나가 돌길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레지나를 본 건 그녀가 섬에 온 지 꼭 한 달 만이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레지나를 모래사장에 누워있던 다친 소녀의 모습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를 본 순간, 나는 숨이 멎는 듯했다.

난생처음 느끼는 감정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때 한 줄기 바닷바람이 불어왔고 레지나의 흰색 드레스와 황금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풀거렸다.

그 모습이 어찌나 신비로운지 나는 애덤의 말대로 그녀가 천사가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나름 멋들어진 모습을 보여주려고 나뭇가지를 잡고 공중제비한 후 착지했다.

그런데 레지나는 내 묘기를 칭찬하기는커녕, 위험해 보였는지 손으로 눈을 가리고 비명을 지렀다.

결과야 어찌 됐건 내 공중제비는 레지나에게 퍽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애덤이 레지나에게 나를 소개했다.

“레지나. 내가 말한 쓰론 형이야.”


레지나가 고개를 까딱해 보이며 말했다.

“쓰론. 안녕.”


레지나의 맑고 푸른 눈동자가 대양의 물처럼 깊어 보였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양손을 허리춤에 얹었다.


내가 약간 거만하게 말했다.

“안녕. 내가 쓰론이야.”


레지나는 키가 컸다.

섬사람 중 키가 큰 편에 속하는 나와 애덤의 눈높이와 비슷할 정도였다.


그런데 나와 인사를 나눌 때 레지나의 표정에 놀란 기색이 엿보였다.

내 얼굴에 뭐가 묻기라도 한듯 눈을 굴려 살피는 것이었다.


레지나가 내게 물었다.

“조이피아 사람?”


내가 말했다.

“그래. 조이피아 사람, 독수리 날개 쓰론.”


레지나가 머리를 갸웃하며 물었다.

“독수리?”


나는 상의 한쪽을 내려 오른쪽 어깨와 가슴을 드러내 보였다.

은근히 레지나에게 내 근육을 과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레지나가 내 문신을 들여다보더니 대뜸 손을 뻗어 내 가슴을 어루만졌다.

레지나의 도발에 가슴 근육이 움찔했다.


레지나의 손이 가슴을 지나 위쪽으로 올라왔다.

심장이 터질 듯했다.

이렇게 부드러운 손길은 난생처음이었다.


레지나의 손이 멈춘 곳은 독수리 문신의 눈 부분이었다.

레지나가 그곳을 손끝으로 누르며 말했다.


“상처······.”


내가 되물었다.

“상처?”


나는 손으로 레지나가 가리킨 부분을 만져봤다.

피부가 약간 도드라져 있었다.

상처가 아니라 조그만 뾰루지였다.


내 독수리 문신을 새겨줬던 형의 말이 떠올랐다.

“쓰론. 네 가슴에 뾰루지 같은 게 있어. 거기에 독수리 눈을 새기면 아주 멋질 거야.”


내가 레지나에게 말했다.

“이건 상처가 아니야. 어렸을 때부터 있던 거야.”


레지나는 내 문신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내 독수리와 눈이라도 맞추려는 듯 그녀는 한참 동안 문신을 바라봤다.


레지나와 나 사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는지 애덤이 우리 사이로 걸어가며 말했다.

“창고로 들어가자.”


나는 껄껄 웃으며 녀석을 따라갔다.


“오. 멋져.”

창고를 돌아보며 레지나가 감탄사를 연발했다.

특히 레지나가 마음에 들어한 건 진주였다.


애덤이 물었다.

“진주 처음 봐?”

“말로 봤어. (말로만 들었어) 굉장해.”


그런데 문득 나는 레지나의 표정과 말투가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레지나가 애덤의 자랑질에 맞장구를 쳐줌으로써 우리 기분을 맞춰주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애덤. 레지나한테 그걸 보여줘 봐.”

“그거라니?”


“래디오 말이야.”

“아, 래디오······.”


애덤이 자기 머리카락을 쓸어넘겨 귓불 뒤의 피부를 드러내 보였다.

“레지나. 이것 봐.”


나는 가만히 레지나 얼굴을 살폈다.

레지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래디오를 처음 봐서 놀라는 표정이 아니었다.

이게 왜 여기 있지? 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내 귓불에서 래디오를 떼어 레지나에게 건네줬다.

“레지나. 이것 봐. 나도 있어.”


래디오를 받아들며 레지나가 말했다.

“래디오······.”


내 짐작은 맞았다.

레지나는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한때 자신에게 익숙했던 물건과의 재회로 마음이 푸근한 얼굴을 해 보였다.


애덤이 말했다.

“레지나. 그걸 여기에 붙여봐. 그럼 우리 둘이 온종일 이야기할 수 있어.”


애덤 이 자식······.

녀석은 내 래디오를 레지나에게 건네줄 작정이었다.

녀석은 래디오가 자신과 레지나를 혼인이라도 시켜줄 줄 아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레지나는 래디오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레지나가 내게 말했다.

“how this here?”


내가 말했다.

“레지나처럼 바다에 떠밀려왔어.”


레지나가 물었다.

“떠밀려 온 사람 나 그리고 또 있어?”

“레지나가 처음이야.”


“창고에 래디오 말고 다른 물건 있어?”

“물론, 다른 물건도 있지.”


애덤이 물끄러미 우리를 바라봤다.

내게 대화 주도권을 뺏겨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나는 이즈음에서 녀석에게 대화 주도권을 넘겨주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내가 한발 물러서며 말했다.

“애덤. 레지나한테 물건들을 보여줘.”


녀석이 뾰로통하게 말했다.

“외부에서 온 물건들 말이야?”

“그래.”


대화 주도권을 되찾았다는 생각에 애덤의 얼굴은 금방 밝아졌다.


녀석이 말했다.

“레지나. 이쪽으로.”


우리는 애덤을 따라 창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창고 안쪽 물건은 바깥쪽 물건과 분위기부터 달랐다.

그것들은 모두 각진 상자 모양이었고 창고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반짝거렸다.

개수도 많았다.

크고 작은 물건들이 천정에 닿을 만큼 잔뜩 쌓여 있었다.


시조가 섬에 온 후 삼백여 년 동안 많은 물건이 파도에 떠밀려왔다.

물건 중 일부는 섬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사용했다.

시계, 의복, 칼, 그릇 같은 단순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나머지 대부분 물건은 사용하고 싶어도 방법을 몰랐다.

창고에 보관된 물건은 그런 것들이었다.

촌장과 진장에게 대를 이어 전해오는 동안 이것들은 사람들에게 잊혀 가고 있었다.


애덤이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상자마다 물건이 하나씩 들어 있어.”.


나는 상자를 손에 들고 흔들어봤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안에 뭔가 들어 있는 건 확실했다.


상자는 크기에 비해 가벼웠다.

겉에는 알록달록한 그림과 크고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상자의 표면은 매끄럽고 단단하며 얇고 투명한 물질로 덮여 있었다.

그 투명한 물질 덕에 상자가 물에 젖지 않은 것 같았다.


애덤이 레지나에게 물건들을 설명하고 있었지만, 나는 녀석이 제대로 알고 설명하는지 궁금했다.

반면, 레지나는 대부분 물건이 낯이 익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레지나는 물건의 용도를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레지나가 상자 하나를 손에 들고 유심히 들여다봤다.


내가 물었다.

“그 물건은 뭐지?”


레지나가 상자의 넓은 면을 내게 보이며 말했다.

“이거?”

“그래.”


레지나가 말했다.

“음악 재생기.”


애덤이 물었다.

“음악 재생?”


레지나가 우리를 가만히 쳐다봤다.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레지나가 물었다.

“Can I?”


내가 말했다.

“그래. 꺼내도 돼.”


애덤이 힐끗 나를 바라봤다.

월권행위 하지 말아요, 하는 표정이었다.


레지나가 상자 중앙에 있는 손가락 모양 기호를 눌렀다.


<Glad to meet you.>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그건 상자에서 흘러나온 소리였다.

남자 목소리였고 굵고 다정한 목소리였다.


상자가 계속 말했다.

<You open this box, you get the rights to this product.>


레지나가 말했고 애덤이 해석해줬다.

“이 상자를 열면 물건의 권리를 얻게 된다는 뜻이야.”


내가 말했다.

“잘 모르겠는데.”


레지나가 웃으며 말했다. (애덤의 해석)

“네가 이 물건의 주인이 된다는 뜻이야. 달리 말하면 너의 통장에서 돈을 빼가겠다는 뜻이지.”


나는 레지나의 말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이 물건이 어떤 신기한 기능을 가졌는지에 더 관심이 갔다.


레지나가 상자의 손가락 모양 기호를 다시 한번 눌렀다.

손가락 기호가 상자 안쪽으로 조금 내려앉는 듯했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상자 한쪽이 열렸다.

상자 안에는 손가락보다 작은 물건이 들어 있었다.


애덤이 물었다.

“이게 레지나가 말한 ‘음악 재생기’야?”

“그래. 내가 보여줄게”


레지나가 재생기 가운데 부분을 누르자 허공에 무지개 처럼 오색 찬란한 빛이 나타났다.

애덤과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레지나의 마술 쇼를 감상했다.


그 무지개는 내 손바닥보다 크고 투명했으며 사각형이었다.

그것은 재생기에서 한 뼘 정도 높은 허공에 떠 있었는데 그 형상은 재생기가 만들어 낸 것이 분명했다.

가만히 보니 그 허상 안에는 형형색색의 작은 기호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레지나가 그 기호 중 하나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묭, 하는 이상한 소리와 함께 사각형 옆에 더 작은 사각형이 나타났다.


레지나가 사각형에 대고 소리를 냈다.

“아아.”


그러자 재생기가 레지나의 목소리를 따라했다.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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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드러나는 진실-4 21.05.17 37 0 11쪽
17 드러나는 진실-3 21.05.15 44 0 13쪽
16 드러나는 진실-2 21.05.13 45 0 12쪽
15 드러나는 진실-1 21.05.12 36 0 11쪽
14 더러운 음모-6 21.05.12 42 0 11쪽
13 더러운 음모-5 21.05.12 78 0 12쪽
12 더러운 음모-4 21.05.12 58 0 11쪽
11 더러운 음모-3 21.05.11 48 0 11쪽
10 더러운 음모-2 21.05.11 40 0 10쪽
9 더러운 음모-1 21.05.10 47 0 13쪽
8 외부의 피 - 6 21.05.10 51 0 14쪽
» 외부의 피 - 5 21.05.10 55 0 12쪽
6 외부의 피 - 4 +2 21.05.09 58 0 12쪽
5 외부의 피 - 3 21.05.08 53 0 12쪽
4 외부의 피 - 2 21.05.07 85 0 11쪽
3 외부의 피 - 1 21.05.07 70 0 11쪽
2 섬의 운명 21.05.05 11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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