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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 님의 서재입니다.

스토리 오브 아일랜드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라이트노벨

depriver
그림/삽화
강정
작품등록일 :
2021.05.05 09:11
최근연재일 :
2021.05.26 09:58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1,311
추천수 :
0
글자수 :
113,002

작성
21.05.07 20:21
조회
85
추천
0
글자
11쪽

외부의 피 - 2

DUMMY

애덤이 겁먹은 표정으로 물었다.

“형. 왜 그래. 나 또 때리려고 그러지.”


나는 애덤을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녀석을 때릴 생각은 없었다.

단지 녀석에게 화가 난 것뿐이다.


진장이 소녀를 자기 집으로 데려간 이유가 뭐겠는가.

소녀가 회복되면 진장은 의사를 시켜 그녀의 상태를 검사할 것이다.

별문제 없으면 진장은 그녀를 혼인시키려 할 것이다.

진장은 사람들에게 이 혼인이야말로 섬을 살리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사람들은 당연히 그의 조치를 환영할 것이고.


섬에는 이십 대가 아홉 명이다.

그중 미혼은 나 하나뿐이다.

소녀를 혼인시키면 상대는 당연히 내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내게 기회는 오지 않을 것이다.

진장이 소녀의 상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애덤 말고 누구겠는가.



다행히 나의 급작스런 분노는 그만큼 빨리 사그라들었다.


술을 한 모금 하고 나는 애덤에게 물었다.

“너, 소녀랑 결혼하고 싶지?”


애덤 얼굴이 상어 간처럼 빨개졌다.

참으로 뻔뻔스러운 놈이었다.


내가 말했다.

“너, 내가 소녀랑 결혼하게 해줄까?”


녀석이 배시시 웃으며 내 잔에 술을 따랐다.

응큼한 놈······.

나는 녀석의 그런 면이 좋았다.


“너는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소녀랑 결혼할 수 있어.”


녀석이 정색하고 내 눈을 들여다봤다.

뭐든지 하겠습니다, 하는 표정이었다.


“넌 앞으로 어디 돌아다니지 말고 이 창고에만 박혀 있어.”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창고에 붙어서 너희 집을 감시해.”


녀석이 머리를 갸웃했다.

우리집을 왜? 하는 표정이었다.


“너희 집을 감시하라는 게 아니고 소녀 상태를 감시하라는 거야.”

녀석이 크게 머리를 주억거렸다.


“누가 집에 드나드는지, 소녀의 상태는 어떤지, 사람들이 이상한 짓 하진 않는지 지켜봐.”


애덤이 물었다.

“지켜보기만 하면 돼?”


“결과를 매일 나한테 알려줘.”

나는 애덤을 이용해 진장의 동정과 소녀의 상태를 동시에 감시할 생각이었다.


애덤이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나는 녀석이 내 의도를 눈치챈 건가, 생각했다.

그럴 리 없을 텐데.


나는 녀석을 다그쳤다.

“알았어?”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던 애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 잠깐 있어 봐.”


애덤이 창고 안쪽으로 사라졌다 웬 상자를 들고 왔다.

상자에 < Multi - Radio >라고 쓰여 있었다.


“그게 뭐냐?”


애덤이 상자에서 조그만 물건을 꺼냈다.

손톱만큼 작고 얇고 둥글었다.

얼핏 새끼 백합 조개 같았다.


애덤이 말했다.

“래디오라는 건데 이걸 여기에 붙이면······.”


애덤이 래디오를 내 귓바퀴 뒤쪽 피부에 붙였다.

부드러우면서도 약간 끈적거렸다.

산거머리가 들러붙은 느낌이었다.


애덤이 그것을 살짝 눌렀다.

삑, 삑, 하는 소리가 났다.

그런데 소리가 귀로 들리는 게 아니고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애덤이 상자에서 또 하나의 래디오를 꺼냈다.

애덤이 래디오의 가운데 약간 튀어나온 곳을 누르자 삑, 삑, 소리가 나며 래디오에 눈꼽만큼 작은 푸른 빛이 켜졌다.


애덤이 래디오를 자기 귓불 뒤에 붙이며 말했다.

“형, 잠깐 기다려봐.”


애덤이 창고의 안쪽으로 사라졌다.


<형 들려?>


나는 깜짝 놀라 주변을 돌아봤다.

애덤은 보이지 않는데 녀석의 목소리만 머릿속에 울렸다.


나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으응.”


애덤이 말했다.

<나도 잘 들려.>


“너도 내 소리가 머리에서 들리냐?”

<응. 이건 소리가 귀로 들리지 않고 머리로 들리는 거야.>


“이것도 해안에 떠밀려온 거냐?”

<맞아.>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인간 세상이라는 곳은 얼마나 문명이 발달한 곳일까.

그곳에 꼭 가봐야겠다고 나는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이건 사람이 멀리 떨어져도 서로 말하고 듣게 해주는 장치야.>


얼마나 멀리까지 들리는데?”

<마을 끝에 가도 들려.>


“산에 올라가면?”

<산에 올라가도 들려.>


“중간에 산이 가로막으면?”

<그래도 들려.>


놀랄 일이었다.

창고 안에 이런 물건이 얼마나 많이 있을까 생각하니 한편으론 두렵기까지 했다.


내가 말했다.

“이걸로 내게 연락하겠다는 거지?”


애덤이 술자리로 돌아오며 말했다.

“이 래디오로 형한테 매일 보고할게.”


애덤이 덧붙였다.

“근데, 래디오를 아버지한테 보이면 안 돼. 창고에서 쫓겨날지도 몰라.”


나는 속으로 말했다.

‘네 아버지가 너를 쫓아내? 섬이 가라앉지 않는 한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창고에서 나와 집에 가는 동안에도 나는 애덤과 대화를 나눴다.

래디오의 능력이 어디까지 닿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내 집은 마을 외곽에 있었다.

조이산 관문이 보이는 통나무집이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애덤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마을 쪽에서 누군가 걸어왔다.

애덤의 어머니 리지였다.


“네 엄마다. 그만하자.”

<형. 래디오 들키면 안 돼.>


나는 애덤이 알려준 대로 래디오를 지그시 눌러 잠재웠다.

뽁, 하는 소리와 함께 래디오가 잠들었다.


리지는 화가 덜 풀렸는지 얼굴이 불그죽죽했다.

어디 가서 남편 욕을 진탕 늘어놓고 오는 길일 것이었다.

나는 리지를 피해 길 가장자리로 붙었다.

그녀와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리지가 눈을 들어 나를 봤다.

그녀는 나만 보면 인상을 구겼다.

그녀의 남편도 나만 보면 얼굴을 찌푸렸다.

다른 건 죄 틀리면서 그것 하나는 남편과 아내가 같았다.


원래 성질이 못 돼먹은 여자라고 알려져 있기는 했지만, 나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심하다 할 만큼 차가웠다.

우연히 마주쳐 내가 눈인사라도 건넬라치면 그녀는 딴 곳을 쳐다보며 지나쳐 가고는 했다.


그녀 태도에 나라고 기분 좋을 리 없었다.

어렸을 때 그녀 표정은 내게 큰 상처로 남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나도 이젠 성인이 됐다.


게다가 진장 부부가 나를 그렇게 대하는 이유를 나는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경계하는 것이었다.

아들이 장차 진장이 되었을 때 나를 통제하지 못할까 봐 미리 거리를 두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나를 리지의 태도가 평소와 달랐다.

나를 외면하지 않고 빤히 쳐다봤다.

얼떨결에 나는 그녀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그녀의 무뚝뚝함은 여전했다.

모호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지나쳐갔다.


집에 돌아온 후에야 나는 리지의 그 표정이 짠한 표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나를 짠하게 봐?’

나는 또다시 폭풍 같은 분노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 여자 표정은 마치 ‘너는 기회가 없어. 너는 글러 먹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랬다.

예나 지금이나 내게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다.

내가 고아이기 때문이다.


한동안 나는 고아라는 신분을 증오했다.

그렇다고 부모를 원망한 적은 없다.

내가 나의 선택으로 고아가 된 것이 아니듯, 내 부모도 자발적으로 그리 되지는 않았을 테니까.


언제였는지는 기억 나지 않는다.

누군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너희 엄마는 너를 낳다가 죽었다.”


나는 가만히 그의 눈을 쳐다봤다.


그가 또 말했다.

“쉽게 말하면 네가 네 엄마를 죽인 거다.”


나는 아주 어렸으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곁에 있던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아마 나는 여러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었던 것 같다.


“네 아버지는 죽은 엄마를 따라 물에 빠져 죽었다.”


한참 자란 후에 나는 그들의 말을 머릿속에 그렸다.

도대체 어떤 어른이 어린아이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얼마나 돼먹지 못한 사람들이 아직 말귀도 못 알아듣는 아이한테 부모의 그런 사연을 알려줄 수 있을까.


조이피아에서 고아는 수색대에 배치됐다.

사람들은 위험한 수색대에 자기 아들을 배치할 수는 없었다.


수색대에 배치되면 혹독한 훈련을 받아야 했다.

나처럼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면 더욱 견디기 힘든 훈련이었다.

그래도 나는 잘 이겨냈다.


수색대는 조이피아의 산을 누비며 멧돼지와 싸우고 바다에 뛰어들어 상어를 잡았다.

고래 떼가 섬을 지날 때는 작살잡이를 도와 고래를 잡았다.

절벽을 타고 올라 벌꿀을 채취하기도 하고 새알을 가져오기도 했다.

말하자면 수색대는 섬에서 가장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하는 집단이었다.


수색대에서 십 년을 버티면 어깨에 독수리 문신을 새겨줬다.

나는 열세 살에 독수리 문신을 새긴, 섬의 유일무이한 사람이었다.

독수리 문신은 오른쪽 가슴에서 오른팔과 목, 어깻죽지를 뒤덮을 만큼 컸다.


내 몸에 문신을 새기던 형이 말했었다.

“넌 대단한 놈이야. 언젠간 네 몸에 새겨진 독수리처럼 날개를 펼 날이 올 거야.”


나는 조이피아 역사상 수색대에 가장 오랫동안 몸담고 있는 존재이기도 했다.

누구도 수색대에 20년을 종사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든 수색 대원이 일찍 수색대를 나오고 싶어 했다.

그러나 원한다고 누구나, 언제든 수색대를 나올 수는 없었다.

수색대에서 나오는 유일한 길은 여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것이었다.

가정을 이루는 즉시 그는 수색대의 임무에서 해방되었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였다.


수색대에서 나오는 또 다른 방법은 심한 부상을 입는 것이었다.

마지막은 삶이 끝나는 경우였다.

많은 대원이 부상을 당해 수색대의 임무를 마쳤다.

그래도 그들은 부상의 정도에 따라 여자와 결혼하는 행운을 누렸다.


운이 좋지 않았던 다른 대원들은 삶의 종지부를 찍음으로써 수색대의 임무를 마쳤다.

멧돼지 뿔에 몸이 꿰뚫리고,

상어 이빨에 몸이 잘리고,

절벽에서 떨어지고,

수렁에 빠져 익사하고,

고래 꼬리지느러미에 척추가 부서지고······.

많은 젊은 영혼이 스무 살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등졌다.


그러나 나는 살아남았다.

무려 십구 년을 나는 수색 대원으로 살아왔고 그중 오 년을 수색대의 베테랑으로 살아오고 있다.


수색대 생활은 혹독했지만,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자 내 독수리가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퇸티스가 나를 대표로 삼았다.

진장과 대표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퇸티스는 나를 그들의 대변자로 세웠다.


퇸티스뿐만 아니었다.

많은 조이피아 사람이 나를 높이 평가했다.

고아로 자란 나는 그들에게 한 번도 무언가를 요구한 적이 없다.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이나 인정, 자비를 구걸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내가 이룬 업적만으로 나를 높이 봤다.


그런 나를 짠하게 보다니?

조이피아를 위해 궂은일,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수행해온 나를?

동료들뿐 아니라 동료가 아닌 사람도 우러러보는 나, 쓰론을?


분노가 가시지 않는 이유는 술기운 때문일 것이었다.

나는 벽에서 화살과 창을 떼어 들었다.

은제 칼도 허리춤에 챙겼다.


오늘처럼 분노가 가시지 않는 날이면 나는 무기와 갑옷을 챙겨 혼자 조이산으로 잠입해 들어갔다.

그곳은 내 세상이었다.

그 험준하고 위험한 곳,

야생의 멧돼지가 인육을 찾아 숲을 어슬렁거리고

깎아지른 절벽과 깊이를 알 수 없는 수렁이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의 목숨을 노리는 곳.


그곳이야말로 나 쓰론에게 어울리는 세상이었다.

그곳이 아니면 내 폭풍 같은 분노를 잠재울 곳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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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죽음의 섬-2 21.05.20 66 0 14쪽
19 죽음의 섬-1 21.05.18 40 0 14쪽
18 드러나는 진실-4 21.05.17 37 0 11쪽
17 드러나는 진실-3 21.05.15 44 0 13쪽
16 드러나는 진실-2 21.05.13 45 0 12쪽
15 드러나는 진실-1 21.05.12 36 0 11쪽
14 더러운 음모-6 21.05.12 42 0 11쪽
13 더러운 음모-5 21.05.12 79 0 12쪽
12 더러운 음모-4 21.05.12 58 0 11쪽
11 더러운 음모-3 21.05.11 48 0 11쪽
10 더러운 음모-2 21.05.11 40 0 10쪽
9 더러운 음모-1 21.05.10 47 0 13쪽
8 외부의 피 - 6 21.05.10 51 0 14쪽
7 외부의 피 - 5 21.05.10 55 0 12쪽
6 외부의 피 - 4 +2 21.05.09 58 0 12쪽
5 외부의 피 - 3 21.05.08 54 0 12쪽
» 외부의 피 - 2 21.05.07 86 0 11쪽
3 외부의 피 - 1 21.05.07 70 0 11쪽
2 섬의 운명 21.05.05 11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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