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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 님의 서재입니다.

스토리 오브 아일랜드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라이트노벨

depriver
그림/삽화
강정
작품등록일 :
2021.05.05 09:11
최근연재일 :
2021.05.26 09:58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1,308
추천수 :
0
글자수 :
113,002

작성
21.05.08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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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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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외부의 피 - 3

DUMMY

애덤은 내 명령대로 창고에 틀어박혀 자기 집을 감시했다.

녀석은 집에서 일어나는 일을 꼬박꼬박 보고해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애덤은 눈으로 관찰한 일만 보고하는 게 아니었다.

지가 하고 싶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쉴새 없이 주절댔다.

그 바람에 내 머릿속은 녀석 목소리로 뒤죽박죽 됐다.


이렇게 되고 보니 나는 애덤이 내게 래디오를 준 이유가 의심스러워졌다.

녀석이 소녀의 동향을 보고하기보다 나와 잡담을 나누려고 래디오를 준 것 같았다.


이를테면 녀석은 이런 식이었다.

<형. 밥 먹었어? 점심시간인데 뭐 먹을 거야?>


그때 나는 조이산 꼭대기에 마련한 내 비밀 은신처를 손보던 중이었다.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이야기하자.”

<점심 안 먹었으면 같이 먹을까?>


“너, 자꾸 쓸데없는 말 해서 일 못 하게 하면 래디오 잠재운다.”

<그럼 형은 소녀 일을 보고 받지 못하는 거야.>


나는 애덤에게 경고했다.

“너, 소녀랑 결혼하고 싶다고 했지? 자꾸 이러면 없던 일로 한다.”

<······.>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만 말해. 알았지?”

<응.>


나는 녀석이 내 경고를 받아들일 줄 알았다.

그런데 문제는 녀석이 아니라 녀석의 직책이었다.

녀석은 창고지기였다.

재물 창고는 애덤만 드나드는 곳이 아니었다.

진장과 대표들은 물론 어부, 농부, 잡부, 수색대 등 섬의 거의 모든 사람이 드나들었다.

그들과 대화 나누는 소리가 래디오를 통해 전부 들려왔다.


나는 견디다 못해 래디오를 잠재우고 말았다.

소녀의 동향은 저녁 무렵 애덤을 직접 만나 전해 들었다.

그 방법으로도 소녀의 동향을 파악하기에 충분했다.



*



소녀가 섬에 온 후 사람들 관심은 온통 진장 집에 쏠렸다.

모든 사람이 진장 통나무집을 기웃거렸다.

평소에는 진장 집 근처에 얼씬도 않던 사람들이 틈만 나며 진장 집 앞을 얼쩡거렸다.


농부들은 원래 마을 뒷길을 이용해 경작지를 오갔다.

그런데 지금은 우물물을 길어간다는 핑계로 진장 집(진장 집은 마을 한가운데 있었다) 앞을 지나갔다.


어부들도 바다를 오갈 때 마을을 지나갔다.

그들은 마을을 가로질러 다닐 이유가 없었다.

어부들 집은 대부분 마을 외곽, 바다와 가까운 곳에 있으므로 바다 쪽 관문을 이용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배를 수리한다며 수시로 재물 창고를 들락거렸다.

당연히 핑계였다.


잡부들도 마찬가지였다.

식스티스 이상으로 구성된 잡부들은 마을 청소를 담당했는데 그들은 평소보다 오래 진장 집 앞에 머물렀다.

덕분에 진장 집 주변은 나뭇잎 하나, 새털 하나 보이지 않았다.


짐꾼들도 다니던 지름길을 두고 진장 집 앞까지 먼 길을 돌았다.

벌목꾼도, 경비대도, 수색대도, 심지어 축사 담당들까지 돼지를 몰고 진장 집 앞을 지나갔다.

그러나 누구도 소녀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소녀 상태는 방을 드나드는 의사 표정으로 가늠할 수 있었다.

의사의 어두운 표정이 소녀 상태가 좋지 않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소녀를 집에 들인 후 진장은 거처를 망루로 옮겼다.

망루 아래층에는 사람이 거처할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진장은 하루에도 여러 번 제집을 드나들었다.

자기 집이니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진장의 꿍꿍이속이 궁금했다.

소녀를 병원에 옮기지 않고 제집에 두는 이유가 뭘까.


나는 소녀 상태가 궁금했다.

의사를 찾아가 물어볼까 생각도 했다.

의사는 나와 말이 잘 통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의사는 요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병원에 가보면 의사와 병원을 꾸리는 린다 할머니만 보였다.

소녀 일로 의사는 더욱 바빠진 것 같았다.


의사는 평소에도 한가한 사람이 아니었다.

소녀가 섬에 떠밀려오기 훨씬 전, 내가 병원에 들렀을 때 일이다.

의사는 린다한테 병원 일을 맡겨놓고 연구실에 처박혀 있었다.

나는 의사와 친한 사이므로 언제든 연구실에 드나들곤 했다.


“의사. 오랜만이야.”

"오, 독수리 쓰론. 어서 와라."


의사 양손에는 빨간 술병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훨씬 작고 투명한 그릇이 들려 있었다.

투명한 그릇에는 색이 다른 액체가 들어 있었다.


"뭐하고 있어"

“실험한다.”


“무슨 실험?”

“조이피아를 살릴 수 있는 실험.”


나는 그런 특별한 일에 구미가 확 당겼다.

나는 의사 손에 들린 투명한 그릇에 눈을 바싹 갖다 댔다.

그릇에 담긴 액체 중 하나는 엷은 선홍색이고 다른 하나는 붉은색이었다.


내가 물었다.

“이 물이 섬을 살린다고?”

“그래.”


의사가 그릇을 책상 한쪽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곳에는 그릇의 지름과 딱 맞아떨어지는 구멍이 여러 개 뚫린 나무틀이 있었다.

그 틀에는 방금 의사가 만지작거린 것과 똑같이 그릇이 수백 개나 꽂혀 있었다.


내가 물었다.

“저것들은 다 뭐야?”


“섬사람들의 피다.”

“피를 가지고 뭐 하려고?”

“비정상적인 아이들이 더는 태어나지 않게 연구한다.”


나는 깜짝 놀랐다.

의사가 지금 농담하는 건가, 생각했다.


아닐 것이었다.

그가 평소 농담을 좋아하는 사람이긴 해도 이런 일로 농담할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물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약을 하나 구했다.”

“어디서?”

“······.”


의사가 조용히 말했다.

“나중에 설명해줄게. 지금 말해줘도 넌 이해할 수 없을 거야.”

“날 무시하는 거야?”


의사가 내 어깨에 두 손을 얹었다.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 그가 하는 습관이었다.


의사가 내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내가 꼭 말해줄게.”


나는 가만히 고개만 주억거렸다.

그는 그렇게 할 것이었다.


나와 의사의 관계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러니까 아직 내 어깨에 독수리 문신이 새겨지지 않은 시절, 나는 다리를 다쳐 병원을 찾았다.


의사가 내 상처를 꿰매고 다리에 붕대를 감는 동안 나는 신음 한 번 내지 않았다.

아픈 표정도 짓지 않았다.


치료가 끝나고 의사가 말했다.

“듣던 대로 넌 용감한 아이구나.”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괜한 말로 꼬투리를 잡히고 싶지 않았다.

어른들은 고아를 그렇게 취급했다.


의사가 말했다.

“수색대는 힘들지?”


내가 말했다.

“힘들지 않아요.”


“이렇게 다리를 다쳤는데도?”

“이런 것쯤 아무것도 아니에요.”


의사는 내 표정과 말투에서 어른들을 향한 고아 소년의 증오를 읽었을 것이다.


의사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봤다.

나도 말없이 그의 눈을 쳐다봤다.

의사가 두 손을 내 어깨에 올렸다.

나는 가만히 그의 손을 치웠다.

의사가 다시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내가 다시 손을 치우려 하자 의사가 말했다.

“모든 멧돼지가 사람을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당장 그 말을 반박하려고 했다.

‘아니야. 모든 멧돼지는 다 사람을 공격해.’


그렇게 말하려다 문득, 그의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멧돼지들은 우리가 풀밭에서 쉬고 있으면 슬금슬금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어떤 멧돼지는 가까이 다가와 우리 냄새를 맡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잔뜩 긴장한 채 ‘돼지들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걸까?’생각했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멧돼지들의 특이한 행동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의사는 무슨 이유로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내가 말이 없자 의사가 말했다.

“마찬가지로 모든 섬사람이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나지막이 말했다.

“맞아요. 수색대 사람들은 섬사람과 똑같지 않아요.”


의사가 말했다.

“그래. 너한테는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건 알아둬라.”


의사가 자신의 손을 치우려고 애쓰는 내 손을 붙들고 말했다.


“섬사람 중에도 수색대 아이들처럼 허물없이 지낼 사람이 있단다. 그리고 그건 네가 마음먹기에 달렸단다.”


병원을 나와 산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의사의 말을 곱씹어봤다.

뒤늦게 나는 그가 내게 우정을 요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이 내가 의사에게 마음을 열고, 나아가 그와 우정을 나누게 된 첫걸음이었다.

의사는 지금 섬과 소녀를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



소녀가 섬에 온 지 닷새가 지났다.

주방 담당 여자가 그릇을 들고 진장 집을 방문했다.

의사가 그릇을 전달받아 방으로 들어갔다.


주방 여자의 방문이 잦아졌다.

의사 표정도 나날이 밝아졌다.

소녀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진장 집 앞을 지키던 사람들 표정도 덩달아 환해졌다.



소녀가 섬에 온 지 열흘째 날이었다.

방에서 소녀 목소리가 새 나왔다.

의사가 소녀와 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애덤 말에 따르면 소녀 목소리는 톤이 낮았다.

어린 소년 목소리 같다고 했다.


소녀의 언어는 더욱 생소했다.

혀가 안으로 꼬이고 속이 약간 메스꺼울 때 내는 소리 같다고 했다.


소녀 상태가 회복되고 있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기뻐했다.

더 많은 사람이 진장 집 앞에 몰려들었다.

덕분에 집을 지키는 경비들만 바빠졌다.


사람들이 경비에게 질문을 던져댔다.


“소녀는 어떤 상태야?”

“언제 소녀를 볼 수 있어?”

“오늘 볼 수 있으려나?”

“자네. 소녀가 나으면 나랑 교대하세.”


어떤 사람은 울타리를 넘어 집안에 들어가려고 했다.

경비가 창대로 찔러 넘어뜨렸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그는 소녀 방으로 들어갈 뻔했다.


그가 끌려가며 소리쳤다.

“소녀는 하늘에서 왔어. 우리를 구하려고 시조님이 보낸 거야.”


경비가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래도 그는 소리쳤다.

“아무도 소녀를 손대서는 안 돼. 소녀는 천사야. 우리를 구하러 온 천사.”


진장은 기다렸다는 듯 조치를 내렸다.


“오늘부터 하릴없이 마을을 떠도는 사람은 노역을 시킨다. 수색대와 함께 산에 올라야 하고 작살잡이들과 함께 고래를 잡게 하겠다.”


진장의 조치가 너무 신속했으므로 나는 소녀 방을 침입하려던 사람이 진장과 짜고 그런 짓을 저지른 게 아닌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진장의 의도가 무엇이든 사람들은 썰물 빠지듯 진장 집 앞에서 사라졌다.

그 덕에 집은 예전 고요를 되찾았다.



보름째 되는 날, 방문이 열리고 의사가 걸어 나왔다.

의사 팔을 잡고 누군가 방에서 따라 나왔다.

소녀였다.

소녀는 누워 있을 때보다 키가 작아 보였다.

그래도 의사만큼 키가 컸다.


마루에 선 소녀는 불안한 시선으로 주변을 돌아봤다.

울타리 밖에 자란 나무들을 돌아봤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눈이 부신지 손그늘을 만들었다.

날아가는 새를 찾기라도 하듯 몸을 빙빙 돌려가며 소녀는 한참 동안 하늘을 쳐다봤다.



애덤이 말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하늘을 쳐다보면 다들 그러잖아.”


소녀는 마루 위에 쓰러지고 말았다.

의사가 조금만 늦었어도 소녀는 땅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애덤이 말했다.

“의사가 소녀에게 허벅지를 내줬다니까? 방에서 베개를 가져오면 될 것을!”


내가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계속 말해봐.”


소녀의 첫 외출은 그렇게 끝났다.


다음날, 소녀는 어제보다 일찍 방을 나왔다.

의사의 부축을 받아 소녀가 마당에 내려섰다.

붕대를 감은 다리를 절며 소녀가 아기처럼 마당을 거닐었다.


애덤이 말했다.

“소녀는 새를 좋아하나 봐. 자꾸 하늘을 봐.”


애덤은 또 말했다.

“형. 소녀는 슬픈가 봐. 얼굴에 슬픔이 가득 차 있어.”


내가 말했다.

“가족을 못 만나서 그렇겠지.”


녀석이 꿈을 꾸듯 말했다.

“형. 바람이 불었는데 소녀 머리카락이랑 옷이 펄럭거렸어. 꼭 소녀한테 날개가 붙은 것 같았어.”


나는 녀석이 소녀한테 푹 빠졌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녀석은 소녀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소녀가 의사의 도움 없이 걷게 된 날, 의사가 재물 창고를 찾았다.

의사는 소녀가 입을 옷과 신발 그리고 모자를 받으러 온 것이다.


애덤이 의사에게 옷가지를 내줬다.

해안에 떠밀려온 바깥세상 의복이었다.


나중에 의사는 내게 말했다.

“옷을 줬더니 소녀가 깜짝 놀라는 거야. 이 옷을 어디에서 구했느냐면서.”


내가 물었다.

“그래서?

“사실대로 말해줬지. 해안에 떠밀려온 것이라고.”


“그랬더니?”

“언제 한번 창고를 둘러보고 싶다더군.”


내가 의사에게 말했다.

“소녀가 창고를 들르게 되면 내게 말해줘.”


내 짐작이 맞는다면 소녀는 창고의 물건을 다수 알아볼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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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드러나는 진실-3 21.05.15 44 0 13쪽
16 드러나는 진실-2 21.05.13 45 0 12쪽
15 드러나는 진실-1 21.05.12 36 0 11쪽
14 더러운 음모-6 21.05.12 42 0 11쪽
13 더러운 음모-5 21.05.12 78 0 12쪽
12 더러운 음모-4 21.05.12 58 0 11쪽
11 더러운 음모-3 21.05.11 48 0 11쪽
10 더러운 음모-2 21.05.11 40 0 10쪽
9 더러운 음모-1 21.05.10 47 0 13쪽
8 외부의 피 - 6 21.05.10 51 0 14쪽
7 외부의 피 - 5 21.05.10 55 0 12쪽
6 외부의 피 - 4 +2 21.05.09 58 0 12쪽
» 외부의 피 - 3 21.05.08 54 0 12쪽
4 외부의 피 - 2 21.05.07 85 0 11쪽
3 외부의 피 - 1 21.05.07 70 0 11쪽
2 섬의 운명 21.05.05 11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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