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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 님의 서재입니다.

스토리 오브 아일랜드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라이트노벨

depriver
그림/삽화
강정
작품등록일 :
2021.05.05 09:11
최근연재일 :
2021.05.26 09:58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1,298
추천수 :
0
글자수 :
113,002

작성
21.05.07 13:56
조회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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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외부의 피 - 1

DUMMY

경비가 들것을 가져왔다.

소녀가 들것에 실려 마을로 옮겨지는 동안 사람들이 웅성대며 뒤를 따랐다.

진장과 대표들도 뒤를 따라갔다.

무언가를 상의하며 걷는 그들 표정이 심각해 보였다.


행렬이 마을로 접어들자 진장이 말했다.

“일단, 내 집으로.”


사람들 사이에 조그만 웅성거림이 번져갔다.


“진장네 집으로 간대.”

“왜?”

“낸들 알아?”

“구경 좀 하게 밖에 놔두면 좋은데.”



나도 의문이었다.

다친 소녀를 병원이 아닌, 진장의 집으로 옮기다니?

가만 보니 의사 얼굴에도 불만스러운 표정이 드리워 있었다.

그러나 의사도 진장의 명령을 어길 수는 없었다.


들것을 든 경비들이 진장의 집으로 들어섰다.

대문이 닫히고 경비들이 울타리를 에워쌌다.

나는 사람들 무리에서 떨어진 곳, 나뭇가지에 올라 진장의 집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지켜봤다.


경비들이 소녀를 방으로 옮겼다.

진장과 의사가 방으로 사라졌다.


구경꾼이 점점 불어났다.

섬에 사는 모든 사람이 모여든 것 같았다.


그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켜라, 비켜!”


누군가 사람들을 밀치며 나타났다.

진장의 아내 리지였다.

경비들이 그녀 앞을 가로막았다.


늙은 경비가 말했다.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진장의 명령이오!”


“까불지 마!

그녀가 경비를 밀어 넘어뜨리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녀가 왜 저렇게 흥분해 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평소에도 저 부부는 자주 싸웠다.


넘어진 경비가 창을 내던지며 투덜거렸다.

“나, 안 해!”


나는 혼자 낄낄대며 구경했다.

마침 방에서 진장이 걸어 나왔다.

그는 아내 목소리를 듣고 나온 것 같았다.


진장이 마루 위에 서자 경비대장이 사람들을 조용히 시켰다.

진장의 표정이 엄숙했다.


그가 말했다.

“오늘부터 이곳은 출입 금지다. 나와 의사 외에는 아무도 얼씬거리지 못한다. 명령을 어기는 자는······.”


진장의 시선이 힐끗 아내를 향했다.

나는 그녀의 얼굴에 수심이 드리운 것을 놓치지 않았다.


진장이 말을 이었다.

“코를 자른다. 경비대장은 지금부터 내 명령을 철저히 이행하도록!”


사람들이 술렁댔다.

몇 사람은 한숨을 내쉬고 몇 사람은 돌아서서 바닥에 침을 뱉기도 했다.


리지가 남편을 노려봤다.

진장은 줄곧 아내의 시선을 외면하고 있었다.

한동안 남편과 눈 맞추기를 시도하던 리지는 발을 구르며 사라졌다.


“쓰론 형. 무슨 일이래?”

창고지기 애덤이었다.


녀석은 동생이자 내 친구였다.

부하이자 물주(物主)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녀석이 진장의 유일한 혈육이라는 점이었다.

녀석이 나무로 올라와 내 곁에 걸터앉았다.


내가 말했다.

“외부에서 여자가 떠밀려왔어.”


애덤이 비명을 질렀다.

“여자가?”

“그래.”


“외부에서?”

“조용히 해라.”


아니나 다를까, 아들 목소리에 진장의 시선이 우리 쪽을 향했다.

진장의 인상이 구겨졌다.

그는 내가 아들과 어울리는 걸 싫어했다.


애덤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녀석은 눈치 없이 굴 때가 많았다.

아버지의 시선은 아랑곳없이 애덤의 질문이 연달아 터졌다.


언제요?

어디서 왔대요?

왜 왔대요?

몇 살이래요?

아버지가 어떻게 할 생각이래요?


나지막이 내가 말했다.

“기절해 있었어······.”

녀석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녀석이 내 팔을 잡아끌었다.

자신의 은신처로 가자는 말이었다.

녀석의 은신처는 진장의 집, 그러니까 자기집 건너편 재물 창고였다.


우리는 진장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한 사이 나무에서 내려와 잽싸게 창고로 들어갔다.

재물 창고는 섬에서 나오는 진귀한 물건을 보관하는 곳이었다.

진주, 고래 뼈, 벌꿀, 멧돼지 가죽, 호박 같은 것들이 창고에 가득 쌓여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보다 더 귀한 물건이 있었다.

그 물건들은 섬에서 나지 않고 섬에서 만들 수도 없는 것들이었다.


요컨대 항상 같은 방향만 가리키는 금속 화살표,

멀리 떨어진 물건이나 장소를 확대해주는 막대기,

무엇이든 단번에 벨 수 있는 예리한 은제 칼,

하루에 두 바퀴씩 돌며 낮과 밤을 알려주는 시계,

그 외에도 어디다 쓰는지 알 수 없는 물건들이 창고에 가득했다.


그런데 그런 이상한 물건보다 정작 사람들이 선호한 건 의복이었다.

재물 창고에는 조이피아에서 나오는 재료로는 만들 수 없는 가볍고 질기며 화려한 옷가지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이 의복들은 기능이 워낙 다양해 시간과 날씨, 장소, 하는 일에 따라 골라 입을 수 있었다.

창고의 의복을 여러 벌 갖고 있으면 잘 때, 놀 때, 비 올 때, 뙤약볕이 강할 때, 바다에 나갈 때마다 형편에 맞는 옷을 입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가능하면 더 많은 의복을 집에 쌓아두려고 노력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장이 섬을 지배하는 원동력이었다.


그런데 재물 창고에 올 때마다 나는 한 가지 의문에 사로잡혔다.

창고 안의 이 물건들은 다 어디서 가져온 걸까?

당연히 그것들은 파도에 떠밀려왔다.


선조들이 해안에 떠밀려온 물건을 공공의 재산으로 선언한 이래 재물 창고에는 무수히 많은 물건이 쌓여갔다.

내 의문의 시작점은 그 부분이었다.

별의별 물건들이 해안에 떠밀려오는데 왜 유독 인간만 떠밀려오지 않는 걸까.


동물 사체도 많이 떠밀려왔다.

언젠가는 향유고래만큼 큰 동물이 떠밀려오기도 했다.

그 동물의 사체는 바닷물에 불어 터지고 상어와 물고기에게 뜯어먹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되었지만, 남은 살점과 뼈의 형태로 봐 다리가 네 개에 커다란 뿔을 가지고 있었다.

바깥세상에 얼마나 크고 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을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었다.


이처럼 여러 종의 동물이 섬에 떠밀려오는데 정작 인간은 왜 떠밀려오지 않는 걸까?

섬 주변에 인간 고기만 특히 좋아하는 바다생물이 살고 있을까?

그래서 섬에 인간이 접근하기만 하면 죄 먹어 치우는 걸까?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건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는 점뿐이었다.

선조들은 알고 있을 것이었다.

선조들이 알았다면 대표들에게도 전해졌을 것이었다.

대표들이 모르면 최소한 진장은 알고 있겠지.

언젠가는 꼭 밝힐 생각이다.



“빨간 술 남았니?”

내가 애덤에게 물었다.


“형을 위해 내가 많이 숨겨뒀지.”

애덤이 창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애덤이 한 손에 술병을, 다른 손엔 커다란 잔을 들고 왔다.

동그란 병을 가득 채운 빨간 술.

과일을 발효시켜 만들었을 이 술도 외부에서 온 것이었다.

커다란 나무 궤짝에 실려 섬에 떠밀려왔었다.


조이피아에도 술은 있다.

기장을 발효시켜 만든 술, 옥수수, 카사바를 발효시킨 술, 망고를 발효시킨 술 등 종류가 다양했다.

그러나 우리 술은 맛이 쓰고 독했다.

다음날 깨어나면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그런데 외부에서 온 술은 맛이 그윽하고 다음날 머리도 아프지 않았다.

특히 지금처럼 조용한 곳에서 시간을 들여 홀짝홀짝 마시기에 좋았다.

이런 것들이 내가 애덤과 가까이 지내면서 얻게 된 특혜였다.



애덤을 만날 때마다 나는 녀석에게 세 가지 감정을 느꼈다.

하나는 이런 혜택을 제공해준 것에 대한 고마운 감정,

또 하나는 녀석을 보호해주고 싶은 감정,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쥐어패주고 싶은 감정이었다.


내가 애덤을 보호해주고 싶은 이유는, 녀석에게서 형제애 같은 정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내게 먼저 접근해 형처럼 따른 건 애덤이었다.

그러나 처음 만날 때, 벌어진 앞니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던 녀석의 해맑은 모습은 꽉 닫혀 있던 내 마음을 완전히 열어젖히고 말았다.


나와 애덤은 세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올해 벌써 열아홉인데도 녀석은 하는 짓이 십 대 초반이었다.

녀석은 몸도 약했다.

키는 큰데 몸이 빼빼 마르고 힘도 없었다.

사냥이라도 나가면 잔뜩 겁에 질려 내 곁에 바싹 붙어 다녔다.

내가 애덤을 보호해주려는 이유는 대략 그런 것들이었다.


녀석을 쥐어패주고 싶은 이유는 신분 때문이었다.

진장이라는 직책은 대물림되었고 녀석은 진장의 유일한 혈육이었다.

진장이 되면 녀석은 조이피아라는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애덤을 좋아하지만, 공적인 입장에서 이건 잘못된 제도였다.

능력도 안 되는 녀석이 진장의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런 자리에 오른다니.

비단 진장의 자리뿐 아니라, 섬의 행정체계 전반에 문제가 있었다.


섬의 행정체계가 처음부터 이런 것은 아니었다.

어른들의 말에 따르면 얼마 전까지도 조이피아는 지금과 달랐다.

다섯 개 마을에 대표가 있고 각 대표는 자치권을 가지고 있었다.

진장의 권한도 지금처럼 막강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의 진장이 자리에 오르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그는 별안간 마을 대표라는 직책을 없애고 새로운 직책을 만들었다.

그것은 연령대별 대표라는, 사람들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직책이었다.

촌장이라고 불리던 자신의 직함도 군대 용어처럼 진장이라고 바꿨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섬의 인구가 갈수록 줄고 있으니 사람들을 연령별로 구분해 임무를 부여하자는 것이었다.

처음에 들으면 귀가 솔깃한 말이었다.

대부분 사람은 진장의 조치가 일리 있는 처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의식 있는 몇몇 사람은 진장의 의도를 간파했다.

그들은 진장이 섬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려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마을별로 규합하는 것을 막아 섬의 유대를 깨트리려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 예상은 맞았다.

진장의 의도는 단시간에 드러났다.

대표들은 마을의 공동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다.

연령대별 희망 사항과 요구 사항만을 관철하려고 노력했다.


바야흐로 조이피아의 공동체는 힘을 잃어갔다.

조이피아는 진장을 중심으로 한 일종의 군대 시스템으로 변해갔다.

더 자세한 내용은 언급하지 않겠다.



술잔을 비우며 애덤이 말했다.

“형, 있지?”


녀석은 부끄러운 이야기를 꺼낼 때 꼭 그렇게 운을 뗐다.

녀석이 물었다.

“그 소녀 예쁘게 생겼어?”


대답하기 애매한 질문이었다.

소녀를 예쁘다고 해야 할지, 귀엽다고 해야 할지, 혹은 이상하다고 해야 할지 말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소녀의 외모가 보기에 좋은 건 인정할 수 있었다.


“예뻐.”


벌겋게 술기운이 올라온 얼굴로 애덤이 씩 웃었다.

녀석의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녀석은 지금 소녀를 상상하고 있었다.

엉큼한 놈······.


애덤이 말했다.

“형. 마침내 우리 섬에 기회가 온 것 같아.”


내가 물었다.

“기회라니?”


애덤이 말했다.

“시조님의 예언이 이루어진 거야.”


나는 애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녀석은 시조가 사전에서 언급한 ‘섬의 파멸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말하는 것이었다.


애덤은 맞는 말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조이피아 역사에 하나의 이정표가 되는 날이었다.

시조가 조이피아에 도착한 이래 처음으로 외부에서 인간이 들어왔다.

그것도 여자가.

애덤이 말한 것처럼 조이피아는 파멸의 위기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런데 나는 갑자기 분노가 끓어올랐다.

녀석을 쥐어패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종종 나는 폭풍 같은 분노에 휩싸여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곤 했는데 지금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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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드러나는 진실-4 21.05.17 37 0 11쪽
17 드러나는 진실-3 21.05.15 44 0 13쪽
16 드러나는 진실-2 21.05.13 44 0 12쪽
15 드러나는 진실-1 21.05.12 36 0 11쪽
14 더러운 음모-6 21.05.12 42 0 11쪽
13 더러운 음모-5 21.05.12 78 0 12쪽
12 더러운 음모-4 21.05.12 57 0 11쪽
11 더러운 음모-3 21.05.11 48 0 11쪽
10 더러운 음모-2 21.05.11 39 0 10쪽
9 더러운 음모-1 21.05.10 47 0 13쪽
8 외부의 피 - 6 21.05.10 50 0 14쪽
7 외부의 피 - 5 21.05.10 54 0 12쪽
6 외부의 피 - 4 +2 21.05.09 57 0 12쪽
5 외부의 피 - 3 21.05.08 53 0 12쪽
4 외부의 피 - 2 21.05.07 85 0 11쪽
» 외부의 피 - 1 21.05.07 70 0 11쪽
2 섬의 운명 21.05.05 118 0 11쪽
1 프롤로그 +2 21.05.05 138 0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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