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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 님의 서재입니다.

스토리 오브 아일랜드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라이트노벨

depriver
그림/삽화
강정
작품등록일 :
2021.05.05 09:11
최근연재일 :
2021.05.26 09:58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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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0
글자수 :
113,002

작성
21.05.0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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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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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외부의 피 - 4

DUMMY

소녀는 상처를 회복해 스스로 걷게 됐다.

처음으로 소녀는 진장 집을 벗어났다.

늙은 경비 둘이 소녀에게 배치됐다.

그들은 창을 들고 소녀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외출 첫날, 소녀는 울타리 주변을 거닐었다.

울타리를 에둘러 자란 나무 사이를 거닐고 꽃과 풀을 구경했다.

그런 것을 처음 보기라도 하듯 신기한 표정이었다.


소녀는 자주 하늘을 쳐다봤다.

새를 찾는지, 구름을 보는지는 알 수 없었다.

때때로 길 건너 마을의 움막들을 바라보기도 했다.

한번은 재물 창고에 다가왔다.


애덤이 말했다.

“쓰론 형. 소녀는 내가 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창고로 다가왔어. 나는 창문으로 가만히 소녀를 구경했지.”


내가 물었다.

“애덤. 소녀는 어떻게 생겼든? 예쁘든?”


"형. 시조님이 사전에 남겼잖아. 천사라는 아름다운 존재가 있다고. 세상에 천사보다 아름다운 존재는 없다고.”


“사전에 그런 내용이 있지.”


“내가 오늘 천사를 봤어.”

나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애덤이 말했다.

“소녀는 머리카락과 눈썹이 황금색이었어. 꼭 호박꽃가루를 뒤집어쓴 것 같았어. 얼굴은 하얀 조갯살 같고, 입술은 우리가 마시는 술보다 더 빨갰어.”


이제 내가 나설 차례였다.

그날 밤, 나는 경비의 집을 찾아갔다.


“독수리 쓰론. 이 밤중에 무슨 일인가?

“부탁할 게 있어.”

“독수리가 내게 부탁할 일이 있다니.”


껄껄 웃으며 그가 덧붙였다.

“설마 내 마누라를 달라는 건 아니겠지?”


실없는 농담에 나는 한 번 큰소리로 웃어줬다.


내가 말했다.

“애덤이 소녀의 곁에 있게 해줘.”


얼굴빛을 바꾸며 경비가 말했다.

“진장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데.”


“애덤은 진장의 아들이야.”

“그럼 아버지한테 허락받으라고 해.”


“애덤이 아버지를 불편해하는 건 알고 있겠지.”


경비가 허옇게 샌 수염을 어루만지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흠······. 근데 애덤이 왜 소녀 곁에 가려고 하지?”


“이봐. 당연한 거야. 둘은 결국 결혼하게 되어 있어.”


경비가 짐짓 놀란 표정으로 나를 봤다.

내 말이 그의 무지를 깨운 것 같았다.


내가 말했다.

“생각해봐. 소녀는 젊어. 애덤도 젊어. 우리 섬은 외부의 피가 필요해.”


그는 가만히 머리를 주억거리며 내 말을 경청했다.

“둘이 결혼하지 않으면 소녀를 누구랑 맺어주겠어.”


경비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건 그렇지만 순서로 보면 쓰론, 네가 결혼해야 하지 않아?”


나는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말했다.

“진장이 그렇게 해줄 것 같아?”


경비 얼굴에 아쉬운 표정이 스쳐 갔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튿날, 소녀가 외출했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소녀가 길 위에 섰다.

어제보다 먼곳으로 가볼 심산인 듯했다.

경비들이 나서자 소녀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마을은 진장 집을 중심으로 거대한 원을 형성하고 있었다.

마을의 자랑거리 중 단연 최고는 돌길이었다.

돌길은 화강암을 일정한 크기로 쪼개 흙에 묻어 완성했다.

마을을 거미줄처럼 연결한 돌길은 시조가 남긴 위대한 유산 중 하나였다.


집들은 돌길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진장과 대표들의 통나무집을 빼고는 마을 집 대부분이 움막집이었다.


소녀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마냥 신기한 듯했다.

길가에 자리 잡은 움막집, 집들 사이 텃밭, 텃밭에 자란 채소들, 바람에 나부끼는 빨래.......

우리에겐 평범하기만 한 광경이 소녀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 같았다.


마을 사람들에겐 소녀의 모습이 더 신기했다.

모든 사람이 일손을 멈추고 소녀를 바라봤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움막집에서 나왔다.

어떤 사람은 먼발치에서 소녀와 보조를 맞춰 걸었고 몇몇은 소녀의 뒤를 따라오기도 했다.


경비가 그들을 점잖게 타일렀다.

“진장의 명령을 어기면 노역에 나가야 해. 가서 일이나 해.”


대부분 사람은 경비 말을 듣고 흩어졌다.

그러나 개중에는 소녀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발돋움하고 서서 지켜보는 사람도 있었다.


애덤도 소녀를 따라갔다.

녀석은 소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조용히 걸었다.


다음날, 애덤은 소녀를 따라가지 않았다.

먼발치에서 소녀와 나란히 보조를 맞추며 걸었다.

종종 애덤은 고개를 돌려 소녀를 바라봤다.

소녀도 애덤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다.

한 소년이 자신을 따라다니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마을 외곽에는 공동 식당이 있었다.

그곳에서 마을 사람들은 함께 식사했다.

주방 담당들이 음식 조리와 배급, 설거지를 도맡아 했다.

이것 또한 시조가 물려준 조이피아의 유산이었다.


소녀가 식당 앞을 지나던 시간은 마침 점심때였다.

식당은 사람들로 붐볐다.

진장도, 의사도 식당에 있었다.


누군가 말했다.

“진장님. 소녀와 함께 식사하게 해주시오.


다른 사람이 말했다.

“소녀도 배가 고플 텐데 지금 밥을 먹이시오.”


진장이 의사에게 물었다.

“소녀가 밥을 먹어도 되겠소?”


의사가 말했다.

“음식이 입에 맞을지는 모르지만, 먹여도 되겠지요.”


진장이 소녀를 손짓해 불렀다.

소녀는 당황한 듯했다.

낯선 사람들이, 그것도 수백 명의 사람이 지켜보는 곳으로 걸어가야 하는 상황이 두려운 것 같았다.


의사가 소녀에게 손짓을 섞어가며 말했다.

“밥 먹어. 이리 와.”


의사 얼굴을 보자 소녀는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소녀가 의사 곁에 앉았다.

애덤도 소녀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애덤이 말했다.

“쓰론 형. 소녀가 식당에 들어갔을 때 그곳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

“나야 모르지.”

“식당에 환한 빛이 들어온 것 같았어. 꼭······.”


녀석은 당시의 일이 머릿속에 그려지기라도 하듯 눈동자를 굴리며 말했다.

“꼭 식당에 보름달이 뜬 것 같았어.”


내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자 녀석이 흥분했다.

“진짜야. 보름달이 식당에 뜬 것 같았다니까? 빛 때문에 사람들 얼굴도 환해졌어. 나만 본 게 아니고 식당 모든 사람이 그걸 보고 신기해하는 것 같았어.”


그날 점심은 언제나처럼 세 가지 메뉴였다.

쌀에 기장을 섞은 밥과 삶은 카사바, 칠면조 훈제였다.

소녀가 식탁에 놓인 음식을 말없이 응시했다.

처음 보는 음식들인 것 같았다.


소녀 앞에 나무 수저가 놓였다.

소녀는 숟가락을 골랐다.

소녀가 밥 한술을 떠 입으로 가져갔다.

식당 안은 정적에 휩싸였다.


숟가락을 입에 가져가다 말고 소녀가 주변을 살폈다.

식당 안 모두의 시선이 소녀에게 모여 있었다.

소녀가 눈을 끔뻑거렸다.

사람들 시선에 당황한 것 같았다.


소녀의 입술 사이로 숟가락이 사라졌다.

침 삼키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소녀의 아래턱이 보일 듯 말 듯 움직였다.

사람들 얼굴에 흡족한 표정이 떠올랐다.


의사가 나무라듯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만 쳐다보고 밥이나 먹어요.”


애덤이 내게 말했다.

"사람들 눈동자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니까?"


소녀는 카사바를 먹었다.

입에 맞는지 숟가락이 자꾸 카사바로 갔다.

그러나 소녀는 칠면조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의사가 소녀에게 칠면조 요리를 권했다.

의사는 여전히 손짓을 섞어가며 말했다.

“터키. 먹어.”


소녀가 머리를 가로저었다.


애덤이 내게 말했다.

“쓰론 형. 소녀는 고기를 싫어하는 것 같았어. 칠면조 고기를 권했더니 슬픈 표정을 짓더라고.”


나는 곰곰 생각했다.

고기를 싫어한다······.

소녀는 고기를 못 먹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고기를 먹지 않아 몸이 그렇게 약해 보일 수도 있었다.


그날 이후 소녀는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식당 처마에는 커다란 종이 매달려 있었다.

종은 하루에 두 번, 식사 시간에 맞춰 울려 퍼졌다.

종소리가 울리면 소녀와 경비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식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애덤은 내가 시킨 대로 소녀 주변을 맴돌았다.



그즈음, 나는 진장과 대표들에게서 수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소녀가 섬에 온 후 연령대 대표 회의가 열리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회의 소집이 없는데도 대표들이 망루에 드나들었다.


나는 진장과 대표들이 나를 빼고 회의하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그들은 전에도 중요한 일을 결정하면서 나를 빼돌린 전력이 있었다.


비단 그 일뿐 아니라 다른 경우에도 진장과 대표들은 퇸티스를 따돌리려고 했다.

퇸티스에게 무력감과 상실감을 심어주려는 것 같았다.

나는 소녀 일로 애덤에게 신경을 써야 했지만, 진장과 대표들 동향에도 관심을 기울이기로 했다.


애덤과 소녀를 위한 1단계 계획이 끝났다.

이제 나는 그들을 위한 2단계 계획에 착수했다.


소녀는 하루 대부분을 마을과 마을 주변을 산책하는 일로 채웠다.

조이피아는 지형이 험해 접근이 어려운 곳이 많았지만, 면적이 넓어 갈 수 있는 곳도 많았다.


오늘, 소녀는 마을을 벗어나 바닷가를 거닐기로 한 듯했다.

바닷가에는 야자수가 많이 자랐다.


경비가 나무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야자가 떨어지면 다쳐.”


경비가 손짓을 섞어가며 말했지만, 소녀는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Fruit fall, you hurt.”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소녀가 뒤를 돌아봤다.


애덤이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는 애덤의 말을 알아들은 것 같았다.


조이피아 사람 중 일부는 간단한 영어를 할 줄 알았다.

영어는 우리의 시조가 자식들에게 취미로 가르쳐준 또 하나 언어였다.

시조는 백과사전에 많은 영어 단어를 기록해 놓기도 했다.

애덤은 다른 건 몰라도 많은 영어 단어를 알고 있었다.


소녀가 물었다.

"This trees?”


애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덤이 소녀에게 물었다.

“name?”


소녀가 나지막이 말했다.

“레지나.”


애덤이 소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레지나······.”


이제 레지나라는 이름을 갖게 된 그녀가 애덤에게 물었다.

“and you are······.”

“애덤.”


레지나의 얼굴이 환해졌다.

“애덤?”

“애덤.”


애덤은 레지나가 자신의 이름을 듣고 좋아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소녀의 밝은 표정만으로도 녀석은 족했다.


애덤이 물었다.

“you like 애덤?”


레지나가 흰 이를 드러내 웃으며 말했다.

“애덤 is the father of all man.”


애덤은 그렇게 긴 문장은 빨리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레지나가 자기 이름을 좋아하는 건 분명해 보였다.


애덤은 레지나에게 야자나무 아래에서 벗어나라고 몸짓했다.

레지나가 애덤을 따라 모래사장으로 걸어 나왔다.


이제 애덤과 레지나는 단둘이 모래사장을 걸었다.

경비들은 멀찌감치 물러나 있었다.


내가 애덤에게 물었다.

“소녀가, 그러니까 레지나가 너랑 걷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어?”


애덤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런 것 같았어.”


“어디서 왔는지 물어봤니?”

“물어봤어.”


“어디?”

“피레네.”


애덤이 레지나에게 물었다.

“why you here?”


그녀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


애덤은 괜한 걸 물었다고 생각하고 얼른 화제를 돌렸다.

“피레네 good?”


레지나가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not bad······. This island is better.”


그렇게 말하는 그녀 표정이 조금 슬퍼 보였다.


애덤이 물었다.

“why, how?”


그녀가 말했다.

“This island peaceful. and many trees many plants······.”

"아하!”


"Singing Birds and Running Animals. I'm really surprise.”


애덤은 레지나의 말 전부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녀석이 내게 전해준 건 레지나의 발언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한 것 같았다.


나는 생각했다.

레지나의 말에 따르면 그녀의 고향은 ‘피레네’라는 곳이다.

그곳에는 나무도 없고 날아다니는 새나 동물도 없다.

조이피아처럼 아름다운 자연도 없다.

그럼 그녀의 고향에는 뭐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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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드러나는 진실-3 21.05.15 44 0 13쪽
16 드러나는 진실-2 21.05.13 45 0 12쪽
15 드러나는 진실-1 21.05.12 36 0 11쪽
14 더러운 음모-6 21.05.12 42 0 11쪽
13 더러운 음모-5 21.05.12 78 0 12쪽
12 더러운 음모-4 21.05.12 58 0 11쪽
11 더러운 음모-3 21.05.11 48 0 11쪽
10 더러운 음모-2 21.05.11 40 0 10쪽
9 더러운 음모-1 21.05.10 47 0 13쪽
8 외부의 피 - 6 21.05.10 51 0 14쪽
7 외부의 피 - 5 21.05.10 5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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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외부의 피 - 3 21.05.08 53 0 12쪽
4 외부의 피 - 2 21.05.07 85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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