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
내 허름한 옷을 입었지만, 드러나는 멋진 몸매의 노아는 이전의 노아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이전에는 얕보았다가 실체를 알고서는 기겁할 정도의 적이었지만, 지금은 어찌보면 대등할 정도의 상대이다. 게다가 같은 목표인 것으로 추정되는 그녀와 손을 잡는 것은 나쁠 것은 없는 이야기다.
노아의 말에 의하면, 수도의 귀족들 중 일부가 용사 추종자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애초에 용사를 소환한 왕족의 깊은 비밀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그리고, 수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혼자서보다는 세력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도 들었다.
“생각해보겠다. 일단은 내가 하려는 일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노아는 장난끼 어린 표정이 되더니 나에게 엉겨왔다.
“방해라니이? 이런 것 말인가?”
노긋노긋한 손길로 나를 만지려는 노아를 나는 거칠게 떼어내었다.
“그래. 그거다. 나는 내 복수를 위해 살아 있는 거다. 다른 것은 필요 없어.”
나의 단호한 말에 조금 실망한 표정을 짓던 노아는 다시 표정을 바꾸고 말했다.
“뭐~!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럼 잘부탁해 동업자!”
“시간이 아무리 있어도 복수에는 부족하다. 그리도 동업자가 아니고 일시적인 동행일 뿐이다.”
나는 녀석에게 차갑게 말하고는 다음 계층으로 통하는 경사굴을 내려갔다.
‘쿠당~!’
“아얏!”
나를 따라 내려온 노아는 경사굴의 마지막에서 굴렀다.
“엄살 떨지 마라. 그럴 시간도 없으니까.”
“치잇. 이 몸에 적응이 안되어서 어쩔 수 없단 말이야. 좀 부축이라도 해주면 안 돼? 귀족이 되었으면 그 정도 작법은 익혔잖아?”
“그···.렇지만, 여긴 적지다. 그럴 여유가 없어. 얼른 일어나서 따라와.”
나는 차갑게 말하고 손을 잡아주었지만, 노아는 어째서인지 싱글벙글이다.
“길란이라고 했지? 본명이야?”
녀석은 내 뒤를 졸졸 따라오며 귀찮게 여러가지를 물었다. 나는 건성건성 대답하면서, 앞에 나타나는 강력한 암석으로 외피를 가진 커다란 벌레들을 죽이고 있었다.
“어라? 이건 귀한 암석인데? 이것도? 이것도? 가방 이리 줘봐!”
내 뒤에 널부러진 벌레들의 사체를 뒤지면서 노아는 암석을 수집하고 있었다. 나는 녀석에게 가방을 던져주고는, 죽은 벌레들의 심장을 도려내서 먹었다.
“맛있게 먹네. 나는 인간의 피가 아니면 그다지 맛있지 않던데.”
내 먹는 모습을 보면서 입맛을 다지는 노아에게 벌레 심장 하나를 내밀었지만, 노아는 거부했다.
“아니, 관둘래. 힘을 되찾기 위해서는 순혈의 처녀의 피가 좋아.”
나는 궁금증에 물었다.
“피를 빨리면 어떻게 되는 건가?”
“궁금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아는 장난끼 어린 표정이 되더니 말했다.
“어떨 때는 매료가 되어서 내 부하가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죽어버리기도 해. 물론 내가 피를 적당히 먹는다면 죽는 경우는 드물지만, 그렇게 죽은 녀석은 하급 흡혈귀가 되더라고. 뒷처리가 귀찮으면 지워버리만.”
노아는 손바닥을 벌였다가 오무렸다. 마치 터뜨려버리는 듯한 느낌으로.
“힘을 찾기 위해서는 피를 마시는 수밖에 없나?”
“뭐, 꼭 피를 마시지 않더라도, 마력이 가득한 샘에서 쉬면 어느 정도는 회복이 되기도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려.”
노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복수는 빠를수록 좋다. 그렇다면, 흡혈하도록 돕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면 계속 간다.”
“잠깐만, 이곳이 던전이라는 건 알겠는데, 어디로 가는거야?”
“코어를 만나러 간다.”
나는 걸어가면서 말했다. 노아는 종종 걸음으로 따라오더니 질문을 계속한다.
“아는 사이야?”
“조금.”
노아는 조금 싫은 표정을 지었다.
“네 녀석이랑 아는 사이라니, 조금 불쌍한 느낌이 드는 걸?”
“그럴 거다. 특히나 이번에 녀석은 나를 만나게 되면 목숨을 걱정해야 할 테니까.”
나는 묵묵하게 앞에서 날아오는 암석 피부의 벌레를 손톱으로 쪼개면서 말했다.
“확실히 불쌍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어. 쿠쿠쿡···”
노아는 왠지 상황을 즐기는 지 웃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밀린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으니까.
2층도 무난하게 돌파하고 3층에 내려섰을 때, 우리 앞에는 오우거가 넘쳐나고 있었다.
“뭐···뭐야? 오우거가 잔뜩 있는 던전이라니 처음들어보는 데? 여긴 어느 던전인거야?”
노아가 나에게 물었다.
“생겨난 지 얼마 안된 던전이라 이름도 없을 걸?”
“생겨난 지 오래 안된 던전에 오우거가 넘쳐날 리가 없잖···. 아··· 그 고블린들이 여기 출신인 건가?”
노아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래도, 저 녀석들은 힘은 쎄지만, 느리고, 몸이 단단하지만, 관절은 약해서, 네 손톱을 박아 넣으면 바닥을 기어다닐 게다. 게다가 겁쟁이인 녀석들이라 그 모습을 보면 다들 도망갈 걸?”
“좋은 정보다. 고마워.”
나는 노아의 이야기를 듣자 마자, 조금 멀리 있던 오우거를 향해 달려갔다.
“우어어어어어!”
오우거가 나를 발견하자, 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후우우우웅!’
녀석이 휘두른 나무 몽둥이를 피해 녀석의 하체쪽으로 접근한 나는 손톱을 세워 무릎 관절의 뒤쪽에서 박아넣었다.
‘으아아아아아아! 쿠궁!’
사방으로 피가 튀기며 앞으로 구부러지며 쓰러진 녀석의 위로 내가 올라탔다.
“죽어라!”
녀석의 쓰러진 등쪽에서 목뼈와 머리뼈사이를 찌르고 후벼팠다. 단단한 외피를 가진 오우거지만, 관절이 있어서 움직여야 하는 곳은 약했다. 내 손톱도 강해졌기에 손쉽게 오우거를 해치우고, 심장을 꺼내 먹었다.
“약점만 확실히 알면 손쉽군.”
내 속도는 이미 일반적인 인간의 눈으로는 쫓을 수 없고, 느린 오우거의 눈으로는 더더욱 힘들다. 체력만 충분하면 몇마리가 있어도, 약점을 노려 죽일 수 있다.
한 마리, 두 마리··· 대략 스무마리쯤 해치웠을 때, ‘오우거 슬레이어’ 칭호를 얻었다. 녀석들은 그 뒤로 나만 보면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역시 계층을 확장한 모양이로군.”
나는 다음 계층으로 내려가는 깊은 경사굴의 앞에서 도달했고, 노아도 곧 이어 도착했다. 이전의 경사굴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깊어서 끝이 보이지 않았다.
“여길 내려갈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뛰어내렸다.
“기···기다려! 같이 가야지!”
아직도 몸이 어색한지 노아는 구르다시피 길고 긴 경사굴을 내려왔고, 나는 먼저 도착해서 계층을 확인하고 있었다.
“넓군.”
다른 계층과 달리 이 계층은 거대한 공동 하나로 이루어져 있었다.
높이는 적어도 인간 키의 수십배는 넘을 듯하고, 천정에는 수 없이 많은 수정들이 바닥에 흐르고 있는 용암강의 빛을 반사해서 노란 빛과 붉은 빛을 사방에 뿌리고 있었다. 그리고, 용암의 강에서 조금 떨어진 곳은 푸른 빛의 초원이 펼쳐져 있었고, 그 초원에는 일각수 떼와 수 많은 초원의 동물들이 뛰놀고 있었다.
“우와~! 이 정도 규모의 던전 공동은 처음 보는 걸? 가끔 던전 보스가 커다란 공동에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규모는 야외라고 해도 믿을 정도야.”
“보스 방일까 그럼 이곳은?”
내 말에 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스 방은 보스의 성질을 반영한다고 하니까, 아래에 흐르는 용암, 초원, 그리고 하늘의 수정을 대표하는 녀석이겠지.”
“추측되는 보스는 있는 건가?”
내 말에 노아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손가락 세 개를 폈다.
“세 가지 가능성이 있어. 각각의 성질을 지닌 보스 세 마리, 아니면 모두의 성질을 가진 보스 한마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저게 보스일 가능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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